함부르크 발레단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

GAEKSUK’S EYE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4월 1일 12:00 오전

©Kiran West

 

 

 

 

 

 

 

 

 

 

 

 

 

상상과 현실, 두 세계의 공존

바닷속 분위기를 자아내는 파란 무대 막이 오르고, 동화책을 연상시키는 무대 위로 시인이 등장해 과거를 회상하는 듯 심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시에 신랑과 신부, 그리고 턱시도 차림의 남자 무용수들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무대는 오케스트라의 음악 대신 무용수들의 환호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로 가득하고, 고뇌하는 시인의 슬픈 표정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비극을 어렴풋이 암시한다.

존 노이마이어의 발레 ‘인어공주’는 2005년 덴마크 극작가 안데르센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로열 덴마크 발레와 함께 제작, 덴마크 코펜하겐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노이마이어는 ‘인어공주’에서 미숙한 사랑의 주인공인 에드워드에 대한 고통을 표하는 시인의 역할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시인은 두 개의 시공간 즉, 그가 창조한 수중 세계와 땅을 넘나들며 무대의 전개를 돕는다. 무대 위에 놓인 큰 소라는 육지와 바다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소라에서 나는 파도 소리를 듣는 시인의 행위를 통해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곡이 연주되고, 바닷속 풍경이 처음으로 관객들에게 소개된다. 파란 조명과 형광 네온사인이 물결을, 무용수의 의상과 동작이 곧 움직이는 배경이 되어 바닷속 해초와 같은 물속 풍경을 잘 표현해낸다. 이때 인어공주는 시인이 창조해 낸 가상의 인물임을 드러내듯 하얗게 분장한 얼굴로 등장한다. 길게 축 늘어진 하늘하늘한 의상이 다리를 가려 인간이 아닌 인어를 표현했고, 주변 가드의 도움으로 물속을 헤엄친다.

작품의 초반, 육지 세계에서는 선원들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남자 무용수들이 뽐내는 테크닉과 그들의 씩씩한 기합 소리가 밝고 힘찬 에너지를 전달하고, 아크로바틱·발레·모던 댄스을 조합한 장면들은 선원들의 기강을 자아낸다. 한편 에드워드 왕자는 아주 짧고 타이트한 팬츠에 선장 의복을 하고, 골프채를 들고 등장한다. 이는 왕자의 우스꽝스러운 권위와 허세를 의미하고, 앞으로 전개할 행동의 불완전성을 암시한다. 한편, 물속을 지배하는 바다의 마귀는 인어와 함께 또 다른 가상 인물로서 하얀 분장을 하고 엄청난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한다. 힘찬 춤 동작과 붉고 검은 강렬한 의상으로 힘을 과시하고, 바닷속 전체를 위협한다.

노이마이어는 동화 ‘인어공주’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임과 동시에, 사랑 때문에 많은 고통을 지는 인어공주의 비극으로 해석한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이겨낸 인어공주는 두 다리를 얻게 되지만, 걷는 대신 휠체어에 앉아 등장하기도 한다. 이 불완전한 모습은 인간세계에 대한 동경과 사랑에 대한 그녀의 순수한 소망과 대조되며 차가운 인간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막에서는 인어공주와 시인, 그리고 왕자와 왕자의 마음을 빼앗은 공주, 이 네 사람이 4인무를 선보인다. 인어를 도와주는 시인, 왕자의 마음을 얻으려는 인어,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왕자와 왕자를 유혹하는 여성의 애절한 감정이 돋보이며, 작품 속 비극의 절정을 보여준다.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한 인어에게 바다 마귀는 칼을 쥐여 주고, 인어에게 자살을 권유한다. 칼을 쥐고 우왕좌왕 고민하는 인어의 모습 뒤에 결혼식장 연인들의 춤도 동시에 그려지며 또 한 번 두 세계의 거리감을 강조하고, 나약한 인어를 바라보는 관객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결국, 두 세계를 방황하던 인어는 죽음을 맞이하고, 별이 가득한 하늘로 승천하여 다른 세계로 인도된다.

안데르센 동화를 모티브로 한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는 이상과 현실, 남자와 여자의 관계 등 세계의 비호환성을 현대적으로 잘 표현해냈다. 그의 안무와 댄서들의 다양한 움직임, 감정 연기뿐만 아니라 의상·조명·무대 디자인까지 신비스럽고 현대적인 구성으로 볼거리가 풍부하다. 연극적인 요소와 함께 작곡가 레라 아우어바흐(Lera Auerbach)의 현대적인 음악 또한 감상할 수 있다.

 


글 김수진(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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