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객석’ 기자들이 직접 뛰어다닌 공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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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7월 4일 4:29 오후

제1회 중국희곡 낭독공연

아주 가까운 중국, 그보다 더 가까운 중국 현대연극

‘워 아이 차차차’

지난 5월 22일 열린 제1회 중국희곡 낭독공연은 1990년대 이후 중국 현대 희곡을 선보였다. 정치적으로는 1989년 텐안먼 사건 이후, 경제적으로는 시장개방 이후 작품들이다. 궈스싱(過士行)의 ‘물고기인간’, 장궈웨이(鄭國偉)의 ‘최후만찬’, 멍징후이(孟京煇)의 ‘워 아이 차차차’, 라오서(老舍)의 ‘낙타상자’ 등 4편의 희곡에 김광보·박정석·윤한솔·고선웅이 각각 연출을 맡았다. ‘낙타상자’는 1937년 발표된 장편소설을 1998년 현대경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물고기인간’은 1989년 창작되어 1997년 초연되었고, ‘워 아이 차차차’는 검열로 1994년 내부공연으로 초연된 멍징후이의 초기작이다. 홍콩 작품인 ‘최후만찬’은 2011년 초연 이후 중국 각지에서 공연되고 있는 화제작이다. 이번 낭독공연은 “범중국어 문화권 연극을 체계적이고 다양하게 소개”하고자 출범한 한중연극교류협회의 첫 번째 공연이다.

 

‘물고기인간’과 ‘워 아이 차차차’:

유쾌한 정치적 상상력

‘물고기인간’의 소재는 단순하다. 낚시 이야기다. 공연은 북방 어느 호숫가에서 낚시동호회의 낚시대회가 열리면서 시작된다. 독일제 낚싯줄, 일제 바늘, 미국산 카본 낚싯대 자랑이 이어지는 평범한 낚시터 풍경이다. 이 공간이 일순 비범한 공간으로 돌변하는 것은 이 대청호의 수호신인 대청어를 낚기 위해 30년을 기다려온 ‘낚시의 신’이 등장하면서다. 마찬가지로 30년 동안 대청어를 지키며 살아온 양어장 주인 ‘위씨 영감’은 30년 전 단 한 번 만났을 뿐인 ‘낚시의 신’을 알아본다. 흡사 무협영화 같다.

김광보 연출은 신화와 일상이 뒤섞인 희곡을 공연 내내 웃음이 터지게 하는 부조리극 스타일로 여유 있게 풀어냈다. 중국 허베이성 민요와 ‘짜요짜요!’라고 외치는 응원가 구호를 비롯한 다양한 음향효과를 통해 낭독공연의 한계를 전혀 의식하지 않게 한다. 위씨 영감의 수양딸 류샤오옌은 문화대혁명 당시 도시에서 하방(下方)을 내려온 지식청년이다. 시간이 흘러 모두들 떠난 이곳에 그대로 남아있는 류샤오옌은 물길이 막혀 대청호에 갇혀있는 대청어의 존재와 겹쳐지고, 바다를 건너다 빠져죽은 정위가 새가 되어 돌을 하나씩 물어다 바다를 메운 이야기와도 겹쳐진다. ‘물고기인간’이 문화대혁명 이후 톈안먼 사건에 이르는 거대한 비유로 읽히는 순간이다.

‘워 아이 차차차’ 또한 ‘적극적 읽기’가 요구되는 작품이다. 제목 ‘워 아이 차차차’는 ‘나는 xxx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검열언어처럼 지워진 채 발음되는 ‘xxx’는 그 자체로 정치적 메타포를 발동시킨다. 공연은 매우 영리하게도 정치적 구호 하나 없이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1900년대를 사랑한다. 나는 아침체조를 사랑하고, 산요 워크맨을 사랑하고, 톈안먼을 사랑하고, 집체무를 사랑하고, 집체무의 시대를 사랑한다’ 등의 말들을 쏟아놓는다. 공연은 ‘사랑한다’는 말로만 이루어져 있다. ‘사랑한다’는 끈질긴 말 속에서 강한 해방감이 느껴진다.

‘물고기인간’

공연 시작 전 하우스 음악으로 비틀스의 ‘레볼루션’이 흘러나온다. 대본에 나와 있는 그대로의 선곡이다. 막간 장면에선 배우들이 낭독극 톤으로 따라 부르면서 기묘한 합창을 한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바꾸고 싶다(We all want to change the world)’는 가사처럼, ‘불온한 상상력’을 표방하는 극단 그린피그가 멍징후이의 불온한 아방가르드와 만나는 유쾌한 장면이다. 그린피그 배우들이 붉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아침체조 영상에 맞춰 집체무를 추는 장면은 압권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를 사랑하고, KGB를 사랑하고, 007영화를 사랑하고, 제임스 본드를 사랑하고, 로널드 레이건과 존 케네디를 사랑했던 지난 냉전의 세계사가 눈앞에 뜨겁게 지나간다.

 

‘낙타상자’

‘낙타상자’와 ‘최후만찬’:

아주 오래된 화두, 자본주의

‘낙타상자’는 1920년대 군벌들의 전쟁 시대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인력거꾼 이야기다. 순한 동물 ‘낙타’라는 별명을 가진 젊은 인력거꾼 상자(祥子), 중국어 발음으로는 ‘샹즈’의 이야기다. 이름은 ‘상서로울 상’자 샹즈이지만, 이야기는 샹즈의 불운의 연속을 그리고 있다. 오직 젊고 건강한 몸 하나 믿고 열심히 땀 흘려 번 돈으로 새 인력거를 장만한 샹즈. 그런데 새 인력거는 전쟁통에 빼앗기고, 또 다시 돈을 벌어 인력거를 마련하려고 고난을 겪고, 사랑하는 여자는 아버지 노름빚에 두 번이나 팔려가 자살하고, 난산을 겪는 아내는 의사를 부를 돈이 없어 아이와 함께 죽고, 결국 오로지 죽음만이 진짜라는 무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 가짜야, 인력거만이 진짜야! 다 가짜야, 돈만이 진짜야!”를 거듭 외치던 샹즈는 세상 모든 것은 다 가짜고, 인력거도, 돈도 가짜이고, 결국 죽음만이 진짜라고 외친다.

경극 대본 특유의 운문 대사와 단순화된 채 반복되는 양식적인 장면들은 혼란한 시대 속 한 인물의 일대기에 대한 압축적이고 선명한 인상, 곧 총체성의 시각을 가지게 한다. ‘총체성’은 물론 이전 시대의 미적 감각이지만, 그럼에도 총체성의 감각은 여전히 강한 미적 쾌감을 느끼게 한다. 고선웅 연출과 극공작소 마방진 배우들은 대본을 손에서 떼지 않고 그대로 읽는 낭독극 형식을 유지한 채 단음조로 대사를 읊고 대본을 내려놓을 때도 일부러 탁,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면서 낭독극 양식을 공연의 스타일로 활용한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중국 고전 연출에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었던 고선웅 연출에게 다시 한번 좋은 작품의 운이 찾아왔다.

‘최후만찬’ 역시 돈 이야기다. 일명 ‘벌집 아파트’, ‘관 주택’ 등 전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홍콩의 주택난을 다룬다. 공연은 평범하게 시작된다. 어머니와 아들의 저녁 식사 장면, 오래간만에 아들과의 식사를 위해 어머니 리빙은 이것저것 잔뜩 음식을 차려놓고 직접 떠먹여도 준다. 어색한 아들 궈숭은 리빙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낳은 아들이다. 남편은 가정폭력으로 감옥에 갔다 왔고, 아들은 격리되어 고아원에서 자랐다. 낯선 대화들이 오가고, 관객들은 서서히 이 공연이 홍콩판 ‘세일즈맨의 죽음’인 것을 눈치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남겨준 자가주택과 보험금을 아들에게 남겨주고 싶어 한다.

‘최후만찬’

하지만 아들도 똑같이 자살을 준비하고 있었고, 슈퍼에서 산 번개탄 상표까지 똑같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자살도구로 등장했던 독약·부엌칼·번개탄이 모두 등장한 이후 나타나는 제3의 인물은 바로 아버지다. 인터넷 채팅을 하며 맥주를 가져오라고 말하는 아버지와, 독이 든 맥주를 마시는 그를 보면서 탁자 위에 놓인 칼을 바라보는 엄마와 아들 장면이 마지막이다. 샹즈의 대사가 다시 한번 떠오른다. “다 가짜다, 결국 죽음만이 진짜다!” 시장경제 체제 성공으로 ‘자본’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신중국의 맥락에서 오래 침묵에 잠기게 하는 작품들이다. 중국희곡 낭독공연의 좋은 작품들을 우리 배우들의 인상 깊은 공연으로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자리였다.

김옥란(연극평론가) 사진 한중연극교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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