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네티스트 찰스 나이디히, 상상력으로 새로운 음악을 열다

상상력으로 새로운 음악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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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7월 9일 12: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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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계를 뜨겁게 달군 젊은 음악가들의 스승을 만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수석 조인혁은 찰스 나이디히를 가리켜 “감히 넘볼 수 없는 실력의 소유자”로 평가했다. 잉(Ying) 현악 4중주단의 제1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이스트만 음대 교수인 로빈 스캇은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천재 음악가’ 말고는 더 나은 표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찰스 나이디히는 여느 세계적인 클라리넷 연주자들처럼 뮌헨·제네바·파리·나움버그와 같은 저명한 콩쿠르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음악가이다. 하지만 이런 수상 경력은 그를 설명하는데 잘 등장하지 않는다. 단순히 뛰어난 연주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작품을 들고 무대에 서기도 하고 연주와 지휘를 겸하기도 한다. 이미 수많은 세계적인 악단들과 함께 연주했고, 도이치 그라모폰을 비롯한 주요 레이블을 통해 그의 연주를 만나볼 수 있다.

그는 코플런드 클라리넷 협주곡의 오리지널 버전을 발견, 최초로 연주하며 소개한 역사적인 인물이기도 하다(당시 코플런드는 베니 굿맨의 요청으로 원본 악보를 변경했었다). 닐슨 협주곡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 곡을 초연하기로 했던 클라리네티스트 아게 옥센바드(Aage Oxenvad)는 곡이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닐슨에게 곡의 수정을 요청했고, 작곡가는 이를 받아들여 실제 초연 때는 변경된 버전으로 연주되었다. 현재 닐슨 협주곡은 두 개의 다른 출판사로 나와 있으며, 두 개의 에디션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찰스 나이디히는 최근 이 작품의 새로운 수정판을 뉴욕에서 연주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는 현재 줄리아드 음악원·맨해튼 음대·매네스 음대, 그리고 퀸스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연주를 병행하고 있다. 탐구하고 연구하는 모습만큼 학생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방법이 또 있을까? 수십 년을 최고의 연주자이자 교육자로 헌신하고 있는 찰스 나이디히를 그의 제자 김윤아와 함께 만났다. 캐나다 교포인 김윤아는 매네스 음대와 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했고, 2016년에는 젊은 연주자들의 등용문인 콘서트 아티스트 길드(CAG) 국제 오디션에서 깜짝 우승한, 말 그대로 떠오르는 신예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 장유진도 소속되어 있는 CAG에서 클라리넷이 우승한 것은 30년 만이었다. 또한 카네기홀이 2년마다 선발하는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앙상블 커넥트의 단원으로 선정되어 카네기홀 소속 아티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음악, 피할 수 없는 운명

첫 음악 선생님이 부모님이라고 하던데.

찰스 나이디히(이하 나이디히)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처음 배운 시기가 4~5살쯤 되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클라리넷에 더 관심을 가졌는데, 아버지가 준 마우스피스 몇 개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가 실제 클라리넷을 잡은 건 일곱 살 때였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직업 연주자였기 때문에 바이올린을 배웠던 여동생과 함께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부모님 외에 어린 시절 영향을 받은 음악가들이 있었는가?

나이디히 재즈 클라리넷으로 베니 굿맨이라는 출중한 연주자가 활동하긴 했지만, 당시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클라리넷 연주자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악기를 직접 배울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지만, 아버지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이나 마리아 칼라스, 토스카니니의 연주를 즐겨 들었고, 크라이슬러나 하이페츠, 오이스트라흐 같은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내 영감의 대상이었다. 그 이후로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의 연주에 관심을 가졌고, 한동안 함께 무대에 서는 일도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현악기나 피아노 음반을 즐겨 들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나이디히 처음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듣기 시작했지만, 그 연주자들이 특정 악구를 처리하는 매력적이고 독특한 방법들을 찾아내어 클라리넷으로 따라 해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크라이슬러가 연주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에서 스타카토 음계를 다루는 그만의 연주법을 익히거나 슈나벨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나 슈만 협주곡을 들으면서 악절을 마무리하는 그만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런 일들이 즐거웠다.

 

음악을 듣고 연주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데 즐거움을 느꼈다면, 언제쯤 음악가 되겠다고 결심했는가?

나이디히 어느 순간 내가 음악가가 되겠다고 정하지는 않았다. 음악가는 그런 결심으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음악을 좋아했고,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아주 자연스럽게 이 자리까지 왔다. 지금 돌아보면 한 번도 음악가로서의 길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이나 과학 같은 분야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소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소명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은 그 일을 하는 것이 맞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지적이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자녀교육에 열성적이다. 특히 재능이 보이는 자녀들에게는 매우 전략적이기도 하다. 때로는 아이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부작용도 생기기도 하는데.

나이디히 내가 자라면서 공부했던 시대와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내 경험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적절할지는 모르겠다. 나도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동시에 배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클라리넷이 더 좋아졌고, 한 악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부모님은 이런 내 생각을 존중해 주셨다. 두 분 모두 직업 음악인이셨기 때문에 클라리넷 연주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분은 내게 음악이 아닌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꾸준히 말씀하셨다. 음악은 취미로 해도 괜찮다는 의미였을 수도 있지만, 너무 하나에만 집중하다 보면 넓게 보지 못하게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음악교육보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의 식견을 넓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늘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음악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예일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는데,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

나이디히 인류학을 전공하면서 부전공으로 철학을 공부했다. 어떻게 보면 음악과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분야일 수도 있다. 연주자는 생산해내는 일을 한다. 음대에서 공부하면 음악을 잘 만드는 방법과 기능을 배우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인류학이나 철학을 통해서는 생각하는 법을 익힐 수 있다.

아마도 한국이 클래식 음악 교육에 큰 관심을 가지기 이전일 것 같은데,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3년간 구 소련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모스크바 음악원은 러시아 전역에서 가장 특출난 학생들이 모인 곳이다. 이 학교에 원숭이가 다닌다면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철저한 시스템을 갖추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저명한 음악가들을 배출한 매우 훌륭한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굉장히 보수적이었고 연주법 역시 정형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음악에 깊이가 생기기 위해서는 음악 자체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찰스 나이디히(우)와 김윤아(좌)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라

어떤 클라리넷 연주자로부터 당신이 독특한 연주자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평가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이디히 내가 독특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미 수많은 학생을 가르쳐왔기 때문에 내 방식이 더 이상 독특하지는 않을 것 같다.(웃음)

김윤아 독특한 연주자라는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 짐작이 간다. 선생님이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악보를 기계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이다. 특정 부분을 포르테로 연주하라는 표시가 있다면 그 악상을 기술적으로 잘 구현해 내는 것을 가지고 ‘잘했다’ 혹은 ‘음악적이다’라고 평가하지 않으신다. 모든 변화는 이유를 동반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악보를 잘 이해할수록 설득력 있게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선생님의 이런 접근은 다른 클라리넷 연주자들의 방식과는 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찰스 나이디히로부터 받은 기억에 남는 가르침이 있다면.

김윤아 브람스 소나타 2번이었는데, 선생님은 이 곡으로 스토리 라인, 즉 이야기를 만들어 주셨다. 단순히 피아노의 화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분석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런 변화들을 어떻게 실제 연주에 담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악보를 보고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연주자를 뛰어넘어, 분석한 작품을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연주자가 기계적으로 악보에 반응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한 역량이지 않은가?

나이디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곧이곧대로 악보를 재현하는 연주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연주자가 갖춰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상력’이다. 상상력의 바탕은 악곡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된다. 만일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을 연주한다면 그 곡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아마도 자기 자신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작곡가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상상력이 작품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작곡가의 처음 의도와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러한 접근은 연주자의 영역이며 역할이다. 때에 따라서는 곡에 대한 작곡가의 시선을 바꿔버린다.

 

연주자의 역할이 극대화될 때 만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아닐까. 이런 연주자를 만나는 것은 작곡가에게 큰 행운일 것 같다.

나이디히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줄리아드 현악 4중주단의 원년 멤버 로버트 만이 쇤베르크의 현악 4중주를 연주했던 적이 있었는데, 쇤베르크가 다가와 자신이 그 곡을 쓸 때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연주를 들었다고 말했단다. 정말 대단한 찬사다.

 

초연 이후에 작곡가가 곡을 수정하는 것도 이런 부분과 맥이 닿은 것이 아니겠는가?

나이디히 그렇다. 작곡가 엘리엇 카터와 많은 작업을 했었는데, 초연 이후에 작품을 개정하곤 했다. 작곡가에게까지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을 만한 연주를 하는 것은 작품의 기계적 해석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연주자가 곡을 대할 때, 작곡가의 마인드를 가지고 작품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훈련이다. 연주자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자극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로서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나이디히 기대라는 말보다는 희망이라는 표현이 좀 더 나을 것 같다. 일정 기간 나와 공부하는 제자들이 기본적인 테크닉을 익혔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는다. 아무리 자주 만난다고 해도 일주일에 한 시간이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 책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 시간의 레슨은 일시적인 충격과 순간적인 자극을 통한 깨달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음악적으로 눈을 뜨거나 기술적인 어려움이 해소되기도 한다. 물론 단 한 번의 가르침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필요에 따라 수차례 반복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김윤아 예전에 선생님이 반복해서 강조하셨던 내용이 있었다. 당시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깨달음으로 다가온 경우도 있었다. 반복적인 충격과 자극에도 해결되지 않았던 고민은 시간이 흐른 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정한 테크닉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지만, 악기를 잡는 방법과 같이 아주 단순하고 기초적인 내용일 수도 있다.

나이디히 이 이야기에 덧붙이자면,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학생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간파하는 것만큼, 어떤 방법으로 그 내용을 전달할지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개념을 모르는 대상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효과적이고 정제된 방법으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다. 한 방법으로 안 된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찰스 나이디히에게 지금까지 가르친 한국인 제자들이 몇 명쯤 되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현재 가르치고 있는 한국인 제자들의 이름부터 나열하기 시작했다. 듣다 보니 중간중간 친숙한 이름도 등장했다. 페스티벌이나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난 인연까지 포함을 시킨다면 꽤 많은 수가 될 것 같다고 하더니 곧 헤아리기를 포기했다.

그의 집은 온통 음악과 관련된 것들로 가득했다. 올해 65세를 맞은 찰스 나이디히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순례자처럼 보였다. 자기 자신을 불태워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영감을 줄 수 있겠는가. 그는 여전히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 긴 시간을 음악과 함께 공존하며, 또 앞으로의 여정 또한 그렇게 살아갈 그를 보며 음악인이자 스승, 그리고 깊은 깨달음을 주는 인생의 선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글 김동민(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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