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 이응광

젊음과 사랑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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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0월 9일 11:50 오후

HE IS NOW

스승과 함께 빚어낼 감동의 무대

©taeukkang

“양파밭에서 오페라 극장으로 온 한국의 젊은 바리톤 이응광은 바젤의 사랑받는 예술가다”

스위스 바젤 신문의 한 면이 이응광의 기사로 가득 채워졌다. 바젤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주역을 연기하게 된 한국인 바리톤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스위스 바젤 오페라극장 전속 주역 가수로 큰 인기를 끌고,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공연장과 페스티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바리톤 이응광. 그의 시작은 한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시작된다.

경상북도 김천 구성,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농번기에는 부모님을 돕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그곳에서 다니며 자연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1995년, 만 13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맞은 아버지의 죽음은 어린 나이의 그를 성숙한 소년으로 성장하게 했다. 어린 시절 겪은 자연의 신비함과 풍요로움,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웠을 현실과 감정들까지,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이응광을 이루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께서 어머니를 학교로 부르신 후 ‘이 친구는 꼭 성악을 해야 한다’고 권유하셨습니다. 하지만 성악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없었고 또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저는 그 권유를 그저 흘려보냈습니다.”

그렇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헤레클레스라는 로큰롤 밴드 활동을 하며 김천교도소·성당·학교 등에서 공연을 하고, 주말에는 선교중창단에서 작은 솔로를 맡아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성악 공부에 대한 권유가 계속되었지만, 처음과 마찬가지로 그저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러던 그가 성악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로마 월드컵 결승전 전야제 무대에 선 호세 카레라스·플라시도 도밍고·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를 들었을 때. “나이가 들어서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노래를 고민했는데, 그들의 공연을 보며 그게 바로 성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이응광은 왕복 6시간이 걸리는 서울과 김천을 오가며 조금은 늦은 시기에 성악 공부를 시작했다. 레슨을 받은 지 1년여 만에 서울대 음대 장학생으로 입학한 그는 국내외 여러 콩쿠르에서 상위 입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동 대학원에 입학, 김성길 교수의 조교로 2년의 생활을 보내고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대에서의 유학 생활을 거쳐 스위스 바젤 오페라극장 전속 가수가 되었다.

“축복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입단 초기 당시 유일한 동양인 가수로서 차별보다는 극장장과 오페라감독 이하 많은 분의 도움과 배려 속에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한 시즌에 2~3개의 작품에서 바리톤 주역을 소화했고, 이외의 시간에는 다른 극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었습니다.”

많은 배려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그는 시즌마다 꿈꿔왔던 역할들로 무대에 오르며 음악적 자양분을 쌓았다. 극장을 떠난 후에도 그의 음악적 성장과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말러·리스트·리흐마니노프를 프로그램으로 전국투어 리사이틀을 선보였고, 올해는 슈만과 풀랑크의 작품으로 서울과 통영, 부산에서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지난 4월,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초연한 ‘귀향’에서의 과감한 퍼포먼스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편입니다. 오래된 작품들이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인물간의 관계나 사건, 갈등이 충분히 공감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 있어 예전 작품들의 베이스는 유지하면서 다른 장르와의 컬래버레이션이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초연한 ‘귀향(Returning Home)’은 베를린에서부터 준비한 작품입니다. 몬테베르디 ‘율리시스의 귀환’과 한국 전통 가곡이 교차하는 작품이었는데, 율리시스라는 역할 속에서 많은 세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며 겪었을 방황과 정신적인 고통, 결국 페넬로페를 만났지만 다시 이별해야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저 또한 눈물을 멈추지 못하였습니다. 맡은 역할 속에서, 무대 위에서, 관객 앞에서, 음악적인 부분을 냉정히 생각해야 하지만, 동시에 캐릭터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 그 인물이 되어보려고 노력하고 연구합니다. 그랬을 때 그 감정과 느낌이 관객에게 감동으로 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귀향’ ©SihoonKim/TIMF2018

2018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돈 카를로’ © 대구오페라하우스

 

가을을 적시는 따스한 음성

지난 9월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 ‘돈 카를로’에 올라 베이스 연광철, 소프라노 서선영 등과 함께 멋진 호흡을 선사한 이응광은 오는 10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선보일 특별한 무대 준비에 한창이다. ‘젊은이와 사랑(Youth&Love)’을 제목으로 스승 김성길과 함께하는 무대. 두 사람의 음성이 쓸쓸한 가을의 분위기를 따스함으로 적실 예정이다.

“공연의 제목인 ‘젊은이와 사랑(Youth&Love)’은 이번 무대에서 선보일 본 윌리엄스의 ‘여행자의 노래(Songs of Travel)’ 중 하나입니다. 젊음과 젊은이로 대변되는 제 열정과 저를 뒤에서 바라봐주시는 김성길 선생님의 진심 어린 애정과 예술, 나아가 삶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무대를 채워가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선생님의 삶과 마음속에도 여전히 젊음과 사랑이 있습니다. 저 또한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청춘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을 생각합니다.”

공연의 1부는 영미가곡, 2부는 한국가곡으로 채워진다. “가곡은 조국에 대한 사랑에서 태어났습니다. 브리튼·윌리엄스·코플랜드 모두 독창성과 민속적인 멜로디를 갖고 있으며,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가사와 언어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한국가곡 역시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고 아픔을 위로하고자 생겨났습니다. 이런 의미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고, 특히 브리튼 ‘전쟁 레퀴엠’을 통해서는 더는 이 세상에 전쟁이 있을 수 없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번 리사이틀 이후에도 그의 노래는 M-PAT 클래식음악축제와 내년 베를린에서 재공연할 ‘귀향’ 등 국내외 여러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유의 서정성으로 공감을 끌어내는 이응광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완숙미를 더해가고 있다. 따뜻함과 열정을 바탕으로 삶의 풍부함을 노래하는 그의 소리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하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봄아트프로젝트

 

바리톤 김성길·이응광 듀오 리사이틀

10월 20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벤자민 브리튼 ‘전쟁 레퀴엠’, ‘그리움의 아리랑’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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