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 ‘카르멘’

예술에서 발견한 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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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0월 7일 11:43 오후

Prologue

사랑은 야생의 새, 아무도 길들일 수 없어
한번 날아가 버리면 돌이킬 수 없지
협박을 해도 안 되고 애원을 해도 소용없어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말이 없는 사람을 택할 거야
말이 없어도 나는 당신이 좋아
사랑, 사랑… 사랑은 집시의 아이, 제멋대로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이 좋아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면 그때는 조심해야 할 거야
잡았다 싶은 순간 새는 퍼드득 날아가 버릴 테니까
새가 멀리 날아가면 기다려야 해
그러면 뜻하지 않을 때 다시 찾아올 거야
어디서나 느닷없이 사랑은 왔다가 가고, 갔다가 오지
잡았다 싶으면 날아가고, 놓쳤다 싶으면 날아오고

 

오페라 ‘카르멘’ 中
카르멘의 아리아
‘사랑은 자유로운 새(하바네라)’

 

1820년경 세비야의 드넓은 광장. 스페인 남부에 위치한 안달루시아 지방의 수도인 이곳에서는 아랍 문명이 섞인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점심시간이 되자 담배공장 여공들이 광장에 쏟아져 나온다. 알록달록한 집시치마를 입고 빨간 장미를 입에 문 카르멘이 등장하자 남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녀를 에워싼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하사관 돈 호세를 유혹하기로 작정한 카르멘은 관능적인 춤을 추며 노래한다. 노래가 끝난 후 카르멘이 던진 붉은 꽃 한 송이를 받아든 돈 호세는 그녀를 마녀라 생각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끌린다.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오페라 ‘카르멘’은 당대의 두 거장 바그너와 베르디의 오페라와는 완전히 달랐다. 신화나 귀족사회가 아닌 하층민의 삶을 소재로 했으며, 스토리도 파격적이었다. 명예로운 군인이 되고자 했던 돈 호세가 집시이자 담배공장 직공인 카르멘에게 유혹당해 타락하고, 마침내는 그녀를 죽인다는 줄거리 때문에 당시 비제에게 신작을 의뢰했던 오페라 코미크 극장의 공연 책임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간신히 무대에 올라간 오페라 ‘카르멘’에 대한 파리 시민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 야유를 받자 실의에 빠진 비제는 33회차 공연이 있던 날 심장발작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파리에서와는 달리 오페라 ‘카르멘’은 다른 유럽 도시들에서는 연이은 성공을 거뒀다. 오늘날에는 아름다운 음악뿐 아니라 극과 음악이 절묘하게 융합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카르멘이 부르는 하바네라는 부점 리듬이 특징인, 여유 있는 템포의 4분의 2박자 춤곡이다. 비제는 언밸런스한 부점 리듬을 절묘하게 사용하여 긴장감과 관능적인 느낌을 표현했다. 19세기 후반까지 통속적인 춤곡으로 여겨졌던 하바네라는 비제 덕분에 예술적으로 승화되었고, 시대를 초월한 유혹의 노래가 되었다. 아름다운 가을밤과 어우러지는 그녀의 고혹적인 중저음은 찰나의 일탈을 선사할 것이다.

글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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