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피에르 불레즈 비엔날레

피에르 불레즈의 음악적 발자취를 따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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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0월 9일 11: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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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렌보임과 불레즈의 오랜 우정이 만들어낸 피에르 불레즈 비엔날레 현장

©Philharmonie de paris

피에르 불레즈(1925~2016)는 20세기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작곡가이자 지휘자, 그리고 음악 교사였다. 그가 남긴 음악적 발자취를 짧은 글로는 소개할 수 없다. 올해 첫해를 맞은 피에르 불레즈 비엔날레는 파리 필하모니의 대표인 로랑 바일과 다니엘 바렌보임의 의기투합으로 열리게 되었다. 9월 3일에서 8일까지 열린 피에르 불레즈 비엔날레는 불레즈의 음악적 발자취와 파리 필하모니를 찾는 청중 사이의 접점을 찾은 훌륭한 시도였다.

 

파리에서 만난 일본 정악

첫날인 9월 3일은 파리 필하모니에서 ‘가가쿠’라 부르는 일본 정악 공연이 있었다. 불레즈는 실제로 ‘가가쿠’에 상당히 경도되었고, 작곡에도 영향을 받았다. 일본문화는 아시아 문화 가운데서 가장 먼저 유럽에 유입되었고, 잘 알려진 것처럼 유럽의 음악·미술·문학 등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한편으로는 올해가 프랑스와 일본 외교 수립 160주년이라, 파리에서는 일본 관련 문화 행사가 매우 많이 열릴 예정이기도 하다. 이날 공연의 전반부는 음악, 후반부는 음악과 무용으로 채워졌는데, 일본의 정악은 우리의 정악과 비교해 훨씬 단순했고, 음악에 생기가 없었다. 연주하는 악기 편성은 비슷했지만, 음악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의 전통음악은 의도적으로 화음을 피하고, 선적인 특성은 유지한다. 또한 한 음을 연주한 뒤에 농현(본래의 음 외에 여러 가지 장식음을 내는 기법)을 통해서 생명을 불어넣고, 한 음 이상을 동시에 연주하지 않는다. 하나의 음은 하나의 생명이고, 삶이라는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선율을 여러 악기가 동시에 연주하는 데서 생겨나는 풍부한 울림은 유럽의 화성과 대위를 충분히 보완하고, 넘어서는 표현력을 만들어 낸다. 이는 아시아 음악 중에서도 한국 전통음악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수제천’과 같은 음악이 주는 신비함을 다른 아시아 음악에서 찾기는 어렵다. 과거에 작곡가란 우주에 이미 충만한 음악을 듣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다만 그들은 익명의 천재들이었다.

 

불레즈의 음악으로 가득 찬 필하모니홀 ©Philharmonie de paris

불레즈의 음악으로 가득 찬 필하모니홀 ©Philharmonie de paris

불레즈의 음악으로 가득 찬 필하모니홀 ©Philharmonie de paris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연주로 추억하는 불레즈

9월 4일에는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연주가 있었다.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은 피에르 불레즈가 창단한 현대음악전문 앙상블로 개개인의 연주자들은 매우 뛰어난 음악적 기량을 지니고 있다. 불레즈는 현대음악을 최고의 연주자들이 완벽한 수준으로 연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관철했었다. 전반부에는 알반 베르크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작품 Op.5가 마틴 아다멕의 클라리넷 연주와 디미트리 바실라키스의 피아노 연주로 올려졌다. 클라리네티스트들에게 고전적인 레퍼토리가 된 이 작품을 두 사람은 매우 간결하고 확신이 담긴 연주로 들려주었다. 이어 피아니스트 바실라키스가 불레즈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연주했다. 느린 악장을 제외하고 빠른 악장은 모두 암보로 연주했는데, 그의 막힘없는 연주는 이 소나타의 복잡함을 잊고 음악에 빠져들게 했다. 불레즈가 1948년에 작곡을 마친 소나타 2번은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와 비교할 만한 어려움과 장대함을 지니고 있다. 불레즈가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이 작품을 루브르 미술관의 오디토리움에서 연주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폴리니가 연주를 마치자 청중석에 있던 불레즈가 무대에 올라가 그에게 인사를 했었다. 너무나 복잡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악보를 보고 연주한다는 것이 사실 불가능한 작품이다. 폴리니도 이 소나타를 익히기 위해서 하루에 한 마디씩 외웠다고 한다.

베베른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Op.10은 모두 5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곡이다. ‘음색선율(Klangfarbenmelodie)’의 개념을 선구적으로 작곡에 적용한 이 작품은 고도로 압축되어 있으면서도 투명하다. 그리고 연주를 마친 뒤에는 연주 시간만큼의 침묵을 만들어 낸다.

후반부는 마티아스 핀처의 지휘로 불레즈의 ‘주인 없는 망치(Le Marteau sans Maître)’가 연주됐다. 이 곡은 메조소프라노와 플루트·비브라폰·실로마림바·타악기·기타·비올라 6명의 기악 연주자가 참여하는 곡으로 지휘자 없이는 연주할 수 없다. 르네 샤르의 시를 바탕으로 1955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20세기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우선 핀처의 지휘와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연주는 완벽했다. 그는 이 작품을 완전히 내면화시켰다. 다만 메조소프라노 살로메 할러는 작품의 색채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다. 이날 연주회장에는 대부분의 파리 음악평론가들이 자리했고, 연주가 끝난 뒤에 청중들이 큰 환호를 보냈다.

 

비엔날레의 주요공연을 이끈 바렌보임

이번 피에르 불레즈 비엔날레의 핵심 인물인 바렌보임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파리 필하모니에서 중요한 연주회들을 지휘했다. 9월 5일에는 불레즈가 가장 좋아했던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인 드뷔시의 ‘영상’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바다’를 연주했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Philharmonie de paris

9월 6일에는 불레즈 ‘브루노 마데르나를 기억하는 의식’과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연주했다. 바렌보임은 예외적으로 마이크를 잡고 보통 ‘의식(Rituel)’이라는 제목으로 통하는 불레즈의 작품에 관해 설명했고, 작품 일부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의 설명 시간은 작품 연주 시간과 거의 비슷할 정도였다. 설명을 마치고, 바렌보임은 “이제 이 작품이 여러분에게는 결코 어렵게 들리지 않을 겁니다. 비록 나에게는 매우 어렵지만 말이지요”라는 농담도 던졌다. 불레즈의 ‘의식’은 불레즈 자신이 지휘하기를 가장 좋아했던 자신의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바렌보임은 불레즈와 긴밀한 우정을 나눈 사이였고, 그의 작품을 다수 지휘했다.

불레즈는 한때 자신의 나라 프랑스와 완전히 등을 돌리기도 했었다. 1968년, 그는 자신의 작품과 음악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라를 떠나서 그는 독일에 정착했다. 바렌보임은 1975년에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카리스마는 불평 많은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가들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이후 1989년까지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역임했는데, 임기를 마치고 파리 오케스트라를 떠날 무렵의 연습 시간에 이런 일화를 남겼다. 바렌보임은 파리 오케스트라의 단원들 가운데 일부를 가리키며 “당신, 당신, 당신, 당신은 최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당신들 전체는 이류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바렌보임 뿐일 것이다. 그는 피아니스트로 파리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러 와서도, 종종 단원들의 태도를 지적하곤 한다. 아무튼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된 1975년에 바렌보임은 당시 독일에 있던 불레즈를 지휘자로 초대했다. 당시 불레즈의 지휘와 바렌보임의 협연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했고,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또한 불레즈가 지휘했다. 둘의 우정은 이때 탄생했다. 바렌보임은 그 이후로도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불레즈와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다. 바렌보임은 파리 오케스트라 외에도 자신이 음악감독을 역임했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에 불레즈를 지휘자로 초대했고, 녹음 또한 주선했다. 불레즈는 당시 도이치그라모폰과 함께 여러 장의 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피에르 불레즈는 브루노 마데르나(1920~1973)를 1952년 다름슈타트 음악제에서 만났다. 당시 다름슈타트에는 가장 현대적이고 전위적인 음악을 주도하는 작곡가들이 모였었다. 당시 불레즈가 교류를 했던 작곡가로는 루이지 노노,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등을 들 수 있다. ‘브루노 마데르나를 기억하는 의식’은 작품의 구성적인 면에서는 복잡하지만, 음악적으로 접근하고 이해하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 작품이다. 연주자는 타악기 연주자가 각각 한 명씩 포함된 8개의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그룹들은 연주회장 곳곳에 분산되어 있었다. 이제는 피에르 불레즈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파리 필하모니의 가장 큰 연주회장에서 공연되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어 보였다. 다만 실제 연주회에서 이 작품을 몇 번 들어본 결과,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너무 크지 않은 원형 형태의 연주회장에서, 연주자를 청중의 자리에 배치하고 관객은 원형 무대 중앙에서 연주를 듣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바렌보임은 올해 76세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연주를 소화하고 있다. 이날 약간은 피곤한 기색으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지휘했는데, 이 작품 역시 불레즈가 자주 지휘했던 작품이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매우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화려한 색채가 번뜩이는 러시아적인 혹은 프랑스적인 해석은 아니었고, 다소 독일적인 스트라빈스키 연주였다. 이지윤이 악장으로 올랐는데, ‘봄의 제전’ 연주 뒤에 바렌보임이 한동안 그녀에게 귓속말을 속삭였고, 여기에 이지윤은 웃음으로 답했다.

9월 8일에는 바렌보임이 창단한 불레즈 앙상블이 슈만 피아노 5중주와 불레즈의 ‘삽입절에(sur Incises)’를 연주했다. 같은 날 파리 필하모니의 스튜디오에서는 피아니스트 랄프 판 라앗이 불레즈의 피아노 작품만으로 구성한 독주회를 열어 최근에 발견된 불레즈의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 토카타, 스케르초’를 초연하기도 했다.

파리 필하모니에 먼저 만난 피에르 불레즈 비엔날레의 모든 프로그램은 베를린에서도 동일하게 올려진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강력한 의지 덕분이다.

글 김동준(재불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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