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무용단 LDP 이탈리아 밀라노를 넘다

제32회 밀라놀트레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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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1월 15일 5:37 오후

WORLD HOT _글 문애령(무용평론가)  사진 LDP

전통을 넘어선 만남으로 관점의 교차를 경험하다

 

축제 포스터(좌)와 푸치니홀(우) ©LDP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현대무용가를 주축으로 한 LDP(Laboratory Dance Project)가 밀라노 엘포 푸치니 극장(Teatro Elfo Puccini)에서 열린 무용축제 ‘밀라놀트레(MILANoLTRE)’에 참가했다. 밀라놀트레는 밀라노(Milano)와 올트레(Oltre)의 합성어로 ‘밀라노를 넘어’라는 의미다. 밀라노의 빛나는 발레 역사에 빗댄다면 ‘스칼라 극장의 고전을 넘어’로 까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현대무용 축제다. 엘포 푸치니 극장에는 공연장 세 개가 있는데, 대극장은 ‘셰익스피어’, 중극장은 ‘파스빈더’, 소극장은 ‘바우쉬’로, 연극·영화·무용의 대가들을 떠올리게 한다.

 

LDP가 선보인 6일간의 데뷔무대 
제32회 밀라놀트레는 9월 17일부터 10월 14일까지 진행되었고, LDP는 셰익스피어 홀에서 장장 6일간 공연했다. 9월 27·28일은 ‘룩 룩(Look Look)’과 ‘노 코멘트(No Comment)’, 29·30일에는 ‘바우(Bow)’, 10월 1·2일에는 ‘노 필름(No Film)’과 ‘노 코멘트’가 무대에 올랐다. LDP 레퍼토리는 기교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공통점이 있으나 각 작품의 개성은 뚜렷한 편이다. 밀라노 관객은 서울보다 연령대가 높았고, 작품 감상의 연륜도 깊어 보였다. 특히 로비에서 예술가들을 기다렸다가 감동을 전하고 감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동규 작 ‘룩 룩’은 화려한 문양의 의상 덕에 올해 밀라놀트레 포스터 모델로도 빛을 발했다. 의상은 요란하지만 정작 얼굴은 천으로 가린 군무가 객석을 누비며 누군가를 집중적으로 쳐다보는 해프닝이 익명성의 용기를 강조한다. 요란한 굉음, 규칙적 박자, 손가락을 던지는 리듬감, 반복적인 행진, 상처를 주고받는 이미지 등이 줄곧 ‘보기(look)’를 강조한다. 전 출연진이 중앙에 모여 질주할 때 관객은 그들 가운데 자신의 모습을 대입시키고, 땀에 젖은 얼굴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에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안무가의 고민을 나눠 갖는다. 신창호의 ‘노 코멘트’는 전쟁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2002년에 초연하여 가장 많은 초청공연을 기록했다. LDP의 특징을 확정한 작품으로 남성 출연진 10명에게 폭발적인 에너지를 요구하고 그 탁월함을 즐긴다. 군무가 발을 구르고, 물구나무서기로 이동하고, 격렬하게 몸을 치고 흔들며 전진과 후진을 반복한다. 분위기를 누르는 암전과 다시 절정을 향하는 몸짓의 활력이 충돌하는 구도다. 전 출연진이 객석을 활보할 때 관객의 호응도가 절정에 달하며, 이번에도 같은 광경을 연출했다.
전미숙의 ‘바우’는 영국·독일·한국·스위스 등지에서 여러 차례 개작을 거쳤다. 이번 축제에서는 67분간 단독 공연했는데, 안무가의 섬세하고 전문적인 재능이 돋보였다. 서양 노인의 모습이 연상되는 가면을 착용한 출연자가 돗자리 앞에서 절을 하고, 잔걸음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소녀가 그와 대무한다. 차를 마시고, 돗자리를 굴려 접거나 펴고, 두 손 모아 공손히 인사하고,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부채를 활짝 펼치며 날고, 걷다가 살짝 뛰어 앉으면 큰절 자세가 만들어진다. 제사·혼례·사교, 심지어는 인생이나 죽음에 대한 상념까지도 불러일으키는 동작의 이미지가 무용 예술의 힘을 느끼게 만든다.
아크람 칸 무용단에서 다년간 활동한 김성훈의 ‘노 필름’은 독재자 이야기다. 무대 색감을 흑백영화처럼 단순화시키고, 히틀러의 육성과 환호하는 민중의 반응을 그대로 들려주며 과거의 한순간에 집중한다. 하지만 안무자는 그 장면이 현실일 수 있다는데 방점을 두었다. 한 남자의 폭력을 강조하고, 군무가 일상복이나 군복으로 등장해 순응과 항거 분위기를 전개 시킨다. 흰 바닥에 검정 물감을 쏟아 그 위에서 고통을 겪는 패배한 독재자의 모습으로 마무리하며 ‘노 필름’으로 명명했다. 드라마와 절도 있는 기교가 균형을 이룬 전개다.

 

룩 룩 ©BAKI, 노 코멘트 ©Sinae Kim

바우 ©BAKI, 노 필름 ©BAKI

파스빈더에서 펼쳐진 두 개의 이야기
중극장 파스빈더에서는 같은 기간에 두 개의 공연이 있었다. 솔로 ‘나’는 기억이다(‘I’ Is Memory)’를 공연한 루이즈 르카발리에는 아마도 올 축제에서 가장 주목받은 무용가 중 하나일 것이다. 캐나다 무용단 ‘라라라 휴먼 스텝스’ 영상으로 한국에 널리 알려진 그녀가 환갑을 맞이해 등장한 무대는 경이로움과 감동의 대상이었다. 18세에 직업단체에 입단한, 아마존의 여전사를 연상시키던 그녀의 공중 도약은 전무후무한 활력을 과시했었다. 이번 작품은 브누아 라샹브르와 루이즈 르카발리에가 2006년 공동 안무했다. 한 평론가는 “내면의 충동이 뼈·근육·장기·관절 같은 신체 전체를 움직인다. 변형으로 가득한 준명상적인 춤”이라고 묘사했다. 2006년 현대무용단 푸 글로리외(Fou Glorieux)를 창단해 현재까지 깊이 있는 움직임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자 하나와 그 뒤에 놓인 바를 활용한 느리고 집요한 동작 전개는 그녀의 몸이 곧 기억임을, 몸과 함께 생존하는 예술이 곧 무용임을 설명했다. 그녀의 최근 수상 경력이 화려해 놀랐고, 극장을 찾은 캐나다 공무원들의 공개적 축사에 더욱 놀랐다. 또 다른 안무가 안토니오 몬타닐은 카롤린 칼송의 격려로 안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하며, 아카데믹한 기교보다는 일상적이고 충동적인 움직임을 구사했다. ‘빔비(Bimb(y)i)’는 인간처럼 변해가는 부엌 로봇을 연상시키는 희극적 작품이고, ‘세도 알루사르미(Cedo all’usarmi)’는 조명과 인체의 접촉과정을 강조했다.


세계 공연계의 길을 찾아서
밀라놀트레는 이탈리아 정부, 밀라노시 등 여러 곳에서 후원받고 있는데, 올해는 주이탈리아 한국문화원과 주 밀라노 한국영사관에서도 후원했다. 로마에서 온 조민경 실무관의 통역으로 예술감독 리노 데 파체(Rino De Pace)를 만날 수 있었다. 2010년 부임한 리노 데 파체는 축제가 시작된 1986년부터 실무를 담당해 온 전문가다. 첫 회 초청단체는 장 끌로드 갈로타, 빌티 존스와 아니 제인, 라라라 휴먼 스텝스 등이었고, 다음 해에는 머레디스 멍크, 안느 테레사 드 캐르스마커, 트리샤 브라운 등이 참가했다. LDP를 초청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십여 년 전부터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LDP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축제의 예술적 목표는 ‘전통이 아닌 것’이며, ‘만남’ ‘상호교환’ ‘접촉’ ‘교차’ ‘관점’이라는 다섯 주제로 국제 공연세계의 길을 찾는다고 했다. 한국 무용단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묻자, 전미숙의 ‘바우’에 대한 호평을 특히 강조했다. 여러 관객이 자신을 찾아와 좋은 작품에 감사함을 전했다고 했다. LDP는 해외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무용단 중 하나다. 수차례의 아시아 및 유럽공연, 특히 2011년의 미국 ‘제이콥스 필로우 댄스 페스티벌’ 공식참가로 국제적 명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 최근에는 전략적인 공연팀 운영 방안을 생각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고, 밀라놀트레의 초청 역시 중요한 경력으로 기록될 것이다. 일정 수준에 이른 각국의 무용예술가들은 보호받는 측면이 있다. LDP 무용가들도 루이즈 르카발리에처럼 오랜 기간 노력하며 존중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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