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파가니니의 마법이 깃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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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2월 17일 9:00 오전

COVER STORY 이정은 기자 사진 김용호

2015년 3월 8일,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프레미오 파가니니 바이올린 콩쿠르는 9년 만에 우승자를 배출했다. 만 20세의 풋풋한 청년은 한국인 최초 우승자라는 기록과 함께, 청중상과 현대작품연주상을 거머쥐었다.

2018년 5월 3일, 서울 금호아트홀. 객석은 가득 찼지만, 무대에는 단 한 명만이 서 있었다. 양인모는 2시간 동안 파가니니 카프리스 24곡 전곡을 질주했다. 그날의 관객들은 ‘숨죽인 채로 그의 연주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고 추억했다.

2018년 11월 5일, 양인모의 데뷔 앨범이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발매됐다. 6개월 전 금호아트홀에서 있었던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의 실황 음반이다. 양인모는 앨범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청중이 완성한 공연이자 앨범’이라고 말했다.

기자간담회 다음날, 사진촬영과 인터뷰를 위해 양인모를 다시 만났다. 말쑥한 수트 차림이든, 편안한 청바치 차림이든, 만 스물셋의 청년이 가진 밝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촬영이 힘들진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재미있다, 음반 재킷과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보다는 훨씬 덜 고생스럽다”며 도리어 나를 안심시키는 대답을 건넸다.

 

양인모의 파가니니

자유롭고 인간적인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 이야기부터 해볼까 한다. 파가니니 콩쿠르에 참가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예전부터 파가니니 콩쿠르에 나가고 싶었다. 원래 2012년경 개최 예정이었는데, 재정문제로 취소됐다고 들었다. 콩쿠르 준비를 하다가 하는 수 없이 접었는데, 2015년 다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도전했다. 지금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나를 지도해주시는 미리암 프리드 선생님(1968년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주셨다. 다른 대회에 나갈 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 파가니니 때는 심리적으로 그다지 힘들지 않게 준비했다.

총 3번의 경연을 거쳤는데, 각 스테이지가 아직도 기억나나?

1차 예선 때 제일 떨렸다. 아주 아름답고 작은 방에 심사위원들이 밀집해서 앉아있었고, 그 앞에서 파가니니 카프리스 세 곡과 바흐를 연주해야 했다. 카프리스 1·9·24번을 연주했는데, 굉장히 긴장했다. 1차에서 떨어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했다. 오히려 그 이후에는 전처럼 긴장하지 않았다. 2차에서는 파가니니 카프리스 4·19번, 브람스 소나타 1번, 밀스타인 ‘파가니니아나’, 그리고 현대곡 한 작품을 연주했다. 현대곡은 통상 외우지 않고 악보를 보며 연주해도 무방한 곳이 많은데, 여기서는 꼭 외워서 연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일주일 만에 부랴부랴 외워서 준비했다. 다행히 통과했고, 결선에서는 시벨리우스 협주곡과 파가니니 협주곡을 연주했다.

좋은 기억으로 남은 콩쿠르인가?

물론이다. 제노바로 돌아갈 때마다 벅차다. 상장을 들고 성당 앞을 걸어간 기억도 나고.

양인모에게 파가니니는 어떤 의미인가?

파가니니는 어릴 때부터 내게 각별한 존재였다. 파가니니의 음악을 음반으로 처음 들었을 때의 희열이 콩쿠르 우승으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파가니니를 가리켜 ‘악마’ 같다고 말하는 등 그의 기교에 주목하지만, 파가니니의 음악에는 휘황찬란한 기교를 넘어서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나는 그 인간다움이 좋다. 파가니니와 나의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 같다. 작곡가가 의상디자이너라면, 연주자는 어떻게든 그 옷을 입어야 한다. 그 밸런스를 찾는 것이 해석자로서의 나의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가니니는 양인모의 몸에 잘 맞는 옷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옷 같지가 않고, 나보고 옷을 만들라고 재료를 준 것 같다. 악보에 적혀 있는 것만이 아닌, 그걸 바탕으로 연주자 스스로 음악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파가니니 카프리스는 어떤 연유로 작곡됐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청중 앞에서 연주했다는 기록도 없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아이디어를 여러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어떤 프레이즈에서 활을 위로 그을지 아래로 그을지, 그런 주법을 결정할 권한이 내게 있다고 느낀다. 여러 가지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를 끄집어내서 나만의 카프리스로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다.

그렇다면 매번 연주가 달라지는 건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시중에는 엄청나게 많은 파가니니 카프리스 음반이 나와 있다. 달라지지 않으면 굳이 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매 연주가 나름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음반은 특히 실황이어서, 내가 느꼈던 청중과의 긴장감, 소통하고자 하는 태도 등이 담긴 것 같아서 좋다. 청중이 완성한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콩쿠르에서 우승 후 ‘아, 나는 파가니니를 이렇게 연주할 수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는 의미가 크다. 어제 내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봤는데, 마음에 들었다. 내 음악적 결정에 스스로 확신이 있었다는 것이 느껴져서 좋았다.

파가니니의 이름을 딴 ‘인모니니’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양인모-파가니니’로 연결되는 이미지가 강력하다. 앞으로의 레퍼토리 확장 등을 생각하면 이런 타이틀이 부담스럽진 않나?

부담은 없다. 도리어 감사하다. 젊은 연주자로서 나의 커리어는 이제 시작이고, 레퍼토리를 넓혀나가면서 계속해서 인정받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파가니니의 음악에는 휘황찬란한 기교를 넘어서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나는 그 인간다움이 좋다”

 

다채로운 팔레트를 손에 들고

 

올 한 해 동안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서 5번의 공연을 선보였다. (물론 5월에 파가니니 카프리스 무대도 있었지만,) 파가니니로 대중에게 각인된 이미지 이외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좋아하지만 못해본 곡들 위주로 꾸리고 싶었다. 특히 4번째 무대였던 9월에 클라리네티스트 김한과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함께한 트리오는 재즈적인 면도 많았고 더욱 새롭게 접근하려고 했다. 마지막 5번째 무대인 바이올리니스트 일리야 그린골츠와의 듀오 무대 역시 내겐 큰 의미가 있다. 어린 시절 음반으로 접하던 연주자와 나란히 한 무대에 선 뜻 깊은 무대였다.

1년 동안 진행된 5번을 공연 레퍼토리를 보고, 나는 이것이 ‘양인모의 도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스스로에게도 도전의 과정이었나?

물론이다. 나도 내 자신이 상주음악가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평소에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조합들을 선보이면서, 이런 걸 경험하면서 나 자신도 다시 한 번 성장한 것 같다. 물론 가장 큰 도전은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 연주였다. 콩쿠르 우승 이후 언젠가 전곡연주를 하겠거니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상주음악가 무대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 음반으로도 남기게 됐다. 상주음악가라는 타이틀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다. 금호에서 연주할 때마다 낯익은 관객들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내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상주음악가로 선보인 각 무대가 명확한 콘셉트가 있었다. 잘 구성된 프로그램을 통해 청중이 음악적 메시지를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프로그래밍은 무척 중요한데.

이 연주를 왜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모든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알 필요는 없지만, 연주자가 한 명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문할 필요는 있다. 미국에서 지내는 집이 소방서 바로 옆인데, 사이렌 소리를 하루에도 10번은 넘게 듣는다. 그럴 때마다 ‘밖에서는 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내가 하는 일은 사회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한다. 음악의 뒤에 깔린 메시지와 태도 등을 최대한 확고하게 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청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음악이 품는 의미가 더 풍성해진다.

세상에 넘쳐나는 엔터테인먼트 속에서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굳이 들어야 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음악만이 가지는 대체불가한 매력과 가치를 계속해서 음악으로 설득해나가야 하는 게 지금 시대의 연주자들, 특히 젊은 연주자들의 숙명이 아닌가 싶다.

젊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우버’(차량 공유 서비스)를 종종 이용하는데, 한국의 택시기사님들처럼 거기도 기사님들이 ‘학생이냐, 어느 학교 다니느냐’ 등등 말을 자주 건넨다. 음악을 한다고 하면 ‘밴드 멤버인 것이냐’고 묻는다.(웃음) 클래식 음악이라는 장르도, 오케스트라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상하거나 잘못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클래식 음악을 지지하고 싶다. 클래식 음악은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파가니니 이후 다음에 도전할 작곡가는?

슈만에게 끌린다. 마음이 힘들 때 슈만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위로가 많이 됐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나와 많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슈만 바이올린 작품이 많진 않지만, 구체적으로 공부해보고 싶다. 또, 기회가 된다면 슈만과 브람스를 나란히 연주하고 싶다.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3곡과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곡을 2~3일에 걸쳐 연주하고 싶다. 몇 년 전 사이먼 래틀/베를린 필하모닉이 슈만 교향곡과 브람스 교향곡을 시리즈로 구성해 함께 연주한 적이 있다. 예컨대 첫날은 슈만 1번과 브람스 4번을 연주하는 식이다. 두 작곡가는 워낙 긴밀한 관계이니, 음악적으로 잘 연결될 것 같다.

현대음악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현재 활동하는 작곡가들의 신작을 많이 연주하고 싶다. 이번에도 겨울에 미국에 돌아가면 학교 친구들과 간단한 비공식적인 녹음을 진행하려고 한다. 나 자신도 창작에 대한 욕구가 많고, 작곡가가 곡을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다.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어떤 곡들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왜 지금 이런 음악이 만들어지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곡가들은 경제적으로 힘들고 연주 기회도 많이 없는 등 힘든 상황에서 열심히 창작을 하고 있다. 힘들지만 분명 가치 있는 일이고, 인기가 없어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기회가 닿는 대로 다양한 현대작품을 연주할 예정이다.

어린 시절
다섯 살에 처음 바이올린을 잡은 양인모는 곧 출중한 재능을 드러냈다. 사진은 2003년 예술의전당 어린이날 공연 무대(좌, 8세)와 2007년(12세)의 연주 장면(우, 12세)

 

양인모의 20대
양인모는 다양한 음악적 관심을 실현하고 있다. 2018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양인모는 총 5회의 공연 동안 다양한 조합의 무대를 시도했다. 지난 6월 문태국·벤 킴과 함께한 트리오 공연 리허설(좌)과 11월 일리야 그린골츠와의 바이올린 듀오 공연의 리허설(우)

 

지금, 양인모의 20대

 

바이올린을 처음 손에 쥔 것은 언제인가?

만 5세였다. 어머니가 바이올린 과외 광고를 보고 내게 악기를 시키셨다. 집에 음반이 많아서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었다. 아빠가 사놓은 ‘클래식 명곡 100선’ 등도 자주 들었다.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서 바이올린을 닮고 싶어 했다. 바이올린을 하면서 지금의 성격이,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것 같다.

바이올린을 닮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바이올린이 항상 변덕스러운 악기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연출이 가능한 악기인 것 같다. 바이올린을 안했으면 난 훨씬 더 내성적인 성격이 됐을 것 같다.

악기와 연주자와의 상호작용이라는 건 분명 있는 것 같다.

맞다. 내가 연주하는 것에 따라 악기 소리도 변하고, 내 연주도 악기에 따라 변한다. 둘 사이의 상호작용은 분명히 있다. 우울한 일이 있으면 바이올린을 켜곤 한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자아도취인가.(웃음) 바이올린은 이미 내 삶의 굉장히 큰 부분이 됐다. 바이올린으로부터 위로받을 때도 많다. 바이올린은 늘 항상 그 자리에 있다. 그게 너무 좋다. 가끔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직업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바이올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종의 불가항력이라고 느낀다. 마치 연인과의 연애도 불가항력인 것처럼.

너무너무 사랑하는 존재인가, 바이올린이?

사랑… 음, 사랑한다. 그런데 난, 완벽한 사랑은 없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사랑이 가능할거라는 희망에 희열을 느끼는 거지.(웃음) 아무튼, 악기를 대하는 것이 사람을 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정말 그 속을 알 수 없다. 비 오는 날 소리가 잘 안 나면 ‘얘가 왜 이럴까’ 하면서 달래주기도 하고, 어떨 땐 악기가 내게 너무나 잘 맞춰주기도 한다. 그래서 악기를 바꿔야 할 때가 오면 친한 사람이 떠나는 것 같아서 너무나 슬프다. 지금 이 악기(1714년 스트라디바리우스 ‘요아힘-마’, 뉴잉글랜드 음악원 후원)도 내년 12월에 반납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너무 아쉽다. 이별의 순간을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사랑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관계인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작곡가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가’가 클래식 음악의 관건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팝이나 재즈, 대중음악을 들으면서 도움을 받는다. 로우파이 장르에 관심이 많다. 또 취미로 작곡을 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은 아니다. 연주자는 작곡가의 작품을 해석하는 입장이지 않나. 그러다 보니 나도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더라.

(기자가 궁금해 하자, 그는 휴대전화를 켜고 저스틴 비버의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의 리믹스를 들려줬다. 산뜻하고 감각적인 비트가 인상적이었다. 3주 전에 작업했다고 한다.)

곧 있을 주요한 일정은?

내년 1월 파리에서 에마뉴엘 크리빈/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와 생상스 협주곡을 협연한다. 2월에는 잠시 귀국해 오스모 밴스케/서울시향과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연주한다. 내년 12월까지는 뉴잉글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을 밟는다.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다면?

음악적으로는, 같이 지속적으로 연주하는 파트너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다. 여러 연주자들을 만나지만, 리허설 한 두 번 맞추고 공연한 뒤 금방 헤어지는 게 늘 아쉽다. 피아니스트는 물론이고 다양한 악기들이 모여 실내악 앙상블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고, 원전악기 연주자들과도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한 작곡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면 좋겠다. 나만의 곡들도 많이 만들고 싶다. 인간적으로는, 열린 마음으로 관대한 사람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 시련도 많이 겪고 앞으로 닥칠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축제 같은 20대를 보내고 싶다.

 

10년 후를 상상해보자고 했지만, 10년 후에도 이 사람은 ‘아직’ 서른다섯이라는 걸 떠올리니 질문이 다소 무색해졌다. 이 젊은 연주자가 보여줄 광활한 스펙트럼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객석’ 차세대 유망주로 선정된 양인모가 당시 남긴 글에는, 그가 지향하는 바가 이미 드러나 있다.

“음악만큼 순간만 존재하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또 있을까요? 음악의 모든 순간을 즐기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헤어·메이크업 도도아카데미 청량리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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