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연광철

그의 시야에 담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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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2월 3일 9:00 오전

HIS VOICE_글 이정은 기자 사진 황필주(studio79)

지난 6월 독일에서 궁정가수 칭호를 받아 또 하나의 영예를 얻은 그의 이야기

“외국인 동료들이 종종 제게 어디 사냐고 물어요. 그럴 땐 ‘비행기에서 산다’고 농담처럼 답하곤 합니다.(웃음)”

오스트리아 빈, 독일 베를린, 미국 뉴욕, 한국 서울. 연광철은 언제나 바쁘다. 2018년 그의 스케줄을 들여다보면, 1월과 2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의 페란도 역, 3월과 4월 빈 슈타츠오퍼에서 바그너 ‘파르지팔’의 구르네만츠 역, 4월과 5월에는 다시 메트로 넘어가 구노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랑 신부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지난 9월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베르디 ‘돈 카를로’의 필리포 2세 역으로 오랜만에 한국 오페라 무대를 밟았고, 곧바로 10월에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의 페란도 역을, 10월 말과 11월 초에는 빈 슈타츠오퍼에서 바그너 ‘로엔그린’에서 하인리히 왕 역을 맡았다.

바쁜 일정 가운데, 연광철은 지난 6월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궁정가수’를 뜻하는 캄머쟁어(Kammersaenger) 칭호를 받았다. 한국인으로는 2011년 함부르크에서 재독 소프라노 헬렌 권(권해선)이, 슈투트가르트에서 베이스 전승현이 받은 바 있고, 무용계에서는 2007년 강수진이 캄머탠저린(Kammertanzerin, 궁정무용수) 칭호를 받았다. 한국의 ‘무형문화재’와 비견할 수 있는 지위이기에,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인이 받는 일이 극히 드물다.

1년에 도합 3개월 정도만 한국에 들어온다고 하니, ‘비행기가 곧 집’이라는 그의 말이 그저 농담으로만 들리진 않는다. 12월 1일에 있을 가곡 무대를 앞두고 다시 한국으로 귀국한 그를 만났다.

 

연광철의 세계, 세계의 연광철

캄머쟁어 칭호를 받은 걸 축하드린다. 성악가에게 캄머쟁어가 됐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영광스럽고 감사하다. 캄머쟁어가 됐다고 해서 일상이 달라지거나 커다란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웃음)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더욱 모범이 되어야 하고, 모든 무대에 더욱 집중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은 든다. 나 자신도 슈타츠오퍼에 있던 시절 페터 슈라이어 등 캄머쟁어들을 보면서 느낀 바가 많았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캄머쟁어 칭호는 통상 극장의 전속가수로 있는 동안 받게 되는데, 나는 베를린 슈타츠오퍼를 떠난 지 15년이 지나서 받게 됐다.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인 다니엘 바렌보임의 영향도 컸다고 생각한다. 극장을 떠난 아티스트에게 캄머쟁어 칭호를 주는 사례가 많지 않지만, 바렌보임과 꾸준히 함께하면서 베를린 슈타츠오퍼와 이어진 인연을 기리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3년 전인 2015년에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는데, 극장 사정으로 당시에 진행되지 못하고 이번으로 미뤄졌다. 극장 건물이 7년 동안 공사 중이어서 다른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곤 했는데, 공사를 마치고 본래 건물로 다시 들어오게 된 올해에 캄머쟁어 칭호를 받게 되어 더욱 뜻깊다. 또한 이날 플라시도 도밍고도 함께 무대에서 노래해 의미가 더욱 남다르게 다가왔다(편집자주: 연광철은 1993년 도밍고 콩쿠르 우승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세계 유수의 무대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비결이 무엇인가. 비결이라기보다는 노력이라고 해야겠다. 오페라 가수는 야구선수와 비슷하다. 야구선수의 리포트 한 장에 연봉·성적·신체조건·경력·소속팀 등이 다 담긴다. 오페라 가수도 이와 마찬가지다. 예컨대 ‘로엔그린’의 하인리히 왕 배역에 맞는 가수를 찾는다면, 그 역을 맡을 만한 베이스 가수들의 후보군이 쭉 있다. 극장장은 그 안에서 최적의 조합을 결정한다. 마치 구단주가 팀에 필요한 선수를 영입하는 것처럼. 거기에 선택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로엔그린’의 하인리히 왕 역

동양인으로서 더욱 치열한 노력이 있었을 것 같다. ‘로엔그린’의 하인리히 왕이 아니라 한국의 ‘춘향전’ 속 변사또 배역을 캐스팅한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사람에게 역을 맡길 것인가? 악역이지만 한 고을의 지도자이니, 우린 당연히 백인도 동남아인도 아닌 한국인을 떠올릴 것이다. 해외 오페라극장들도 마찬가지다. 하인리히 왕의 이미지에 맞는 가수를 찾는 거다. 키도 크면 좋고, 머리도 금발이면 좋겠지. 그런 독일 왕 역할에 동양인이 나오면 관객들은 당연히 어색해할 수 있다. 그 어색함을 실력으로 뛰어넘어야 한다. 이게 만약 연극이라면 정말 어려웠겠지만, 오페라는 음악을 수단으로 삼아 그 역을 표현함으로써 ‘이 역에 얼마나 충실하게 노래하느냐’가 관건이다. 화성이 바뀔 때 음색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작곡가의 의도가 어떠한지 등 여러 요소들에 세밀하게 접근해야 그들이 나를 무대에 세우는 것에 적극적인 자세가 된다. 그런 것들이 내가 다양한 작품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닌가 하다.

다양한 무대에 오르고 있고, 특히 바그너 전문 가수로 각광받고 있다. 동양인에게 더욱 높은 문턱이라고 알려져 있지 않나. 바그너는 독일어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언어적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독일어를 모르면 그냥 음정과 박자에 맞춰서 가사를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에서 오는 뉘앙스가 바그너 작품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바그너의 고향인 작센 지방 사투리가 작품에 종종 대사로 등장한다. 예컨대 ‘여기’를 뜻하는 표준어 ‘hier’ 대신 ‘hie’라고 쓰는 경우도 많다.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지만 바그너의 습관인 것이다. 그 사람의 문법과 줄임말 등을 알아야 노래를 부를 때 더욱 풍부한 뉘앙스를 낼 수 있다. 특히 바그너는 작품의 음악과 대본을 다 썼기 때문에 문학적으로도 주목해야 한다.

바그너 작품, 특히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무대에서는 폭발적인 성량이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사실 바이로이트 극장에서는 성량보다는 정교한 테크닉과 딕션이 필요하다. 흔히 생각하는 큰 소리만으로 노래할 수는 없는 곳이다. 오케스트라가 위에 있기 때문에 큰 소리보다는 명료한 소리, 포커스가 잘 맞춰진 소리여야 홀을 울릴 수 있다.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철저한 공부가 필요하다. ‘로엔그린’을 작곡할 때와 ‘니벨룽의 반지’를 작곡할 때의 바그너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접근해야 한다.

 

한국에서 만나는 그의 음악

오는 12월 무대에서 슈베르트와 슈만, R. 슈트라우스 등 독일가곡을 전면에 배치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함께 ‘독일가곡의 밤’이라는 타이틀로 슈베르트, 브람스, 볼프의 가곡을 들려줬는데. JCC아트센터는 관객과 굉장히 가까이서 호흡할 수 있는 홀이다. 관객의 얼굴까지도 보이는 거리여서, 지난해 예술의전당 공연보다 더 가볍고 자연스러울 것이다. 지금까지 무대에서 보여줬던 것과는 조금 다른 가볍고 유쾌한 레퍼토리들로 준비했다. 바그너 가수로서의 모습과는 또 다른, 인간적이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드릴 예정이다. 독일에서는 보통 객석의 조명을 끄지 않고 프로그램북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밝게 유지해서, 무대에 선 사람도 관객의 얼굴 표정을 보면서 눈을 마주칠 수 있다. 이번 무대도 그렇게 진행하려고 한다.

프로그램 후반부에는 한국가곡 세 편을 들려준다. 이번에 부를 한국 가곡들을 보면, 작곡가들이 음률에 신경을 많이 썼다. 보통 우리나라 가곡들이 선율은 아름답지만 성악적로나 음성학적으로 어렵게 세팅된 가사들이 너무 많다. 이번 곡들은 음률도 듣기 좋고 부르기 좋은 편안한 곡들이다. 언젠가 한국가곡만으로도 공연을 하고 싶다.

2011년 11월 서울대 음대 교수로 특별채용되어 재직하다가 지난해 초 교수직을 사임했다. 임용도 빅뉴스였고, 사임도 빅뉴스였다. 내 업은 노래인데, 교수라는 직책을 얻음으로써 업을 등한시할 수 없다는 마음이 컸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아직은 무대에 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수로서 무대에서 살아남는 것이 어느 순간 한계가 오면 자연스럽게 교단을 바라보게 되지만, 결국에는 가르치는 것과 연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교수직은 성악가로서 전성기가 지나고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대신 한국에 올 때마다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후학들과 마주한다.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을 때와는 또 다른 교육현장인데. 배움에 대한 갈망이 많은데 마땅히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학교를 떠났거나, 잘못된 습관이 배는 등 도움이 필요한 경우를 많이 만난다. 다음 세대와 대화할 수 있고, 그들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보게 되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그들이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지 도와주고 싶다.

‘파르지팔’의 구르네만츠 역 ©Enrico Nawrath

내년의 주요 일정을 알려달라. 1~3월 베를린에서 ‘마술피리’, 3월 빈에서 ‘시몬 보카네그라’, 4월에 베를린에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5월 함부르크에서 ‘파르지팔’까지 마치면 5월 말 한국에 귀국해서 2개월쯤 쉴 것 같다. 8월부터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으로 투어 공연을 다니고, 9월에 뉴욕에 갔다가 10월 말 베를린에서 ‘삼손과 델릴라’를 공연한 뒤 12월에 바르셀로나에 가서 2020년 2월까지 있을 예정이다. 상황이 허락하면 한국에서도 무대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한곳에 도통 오래 머무를 수가 없는 삶이다. 연광철의 ‘집’은 어디인가? 이렇게 말하면 너무 닭살 돋을지 모르겠지만, 노래하는 곳이 집인 것 같다.(웃음)

 

 

베이스 연광철 리사이틀

12월 1일 오후 3시 JCC아트센터

슈베르트 ‘송어’, 슈만 ‘헌정’, 김순애 ‘그대 있음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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