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주름이 많은 소녀’

류장현은 공옥진을 ‘주름이 많은 소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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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2월 31일 9:00 오전

REVIEW  ‘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2018년 12월 6~30일 정동극장

공옥진의 춤을 다룬 공연 두 편이 연속해서 올라갔다. 지난 10월 남산예술센터의 ‘이야기의 방식, 춤의 방식-공옥진의 병신춤 편’(이하 ‘이야기의 방식’)과 12월 정동극장의 ‘주름이 많은 소녀’가 그것이다. 극단 그린피그의 ‘이야기의 방식’(연출 윤한솔)에는 공옥진의 수제자로 설정된 여배우 일곱 명이 출연해서 공옥진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인 병신춤을 재연했다. 현대무용 프로젝트 그룹 류장현과 친구들의 ‘주름이 많은 소녀’(연출 류장현, 음악감독 이자람)에는 남자 무용수 다섯 명이 출연해서 공옥진의 병신춤과 동물춤을 새롭게 재해석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연극과 무용으로,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나는 공옥진 춤의 공연들이다. 새삼 공옥진 춤의 현대적인 가치를 발견하는 기회였다.
공옥진 춤은 1980~1990년대에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었다. 텔레비전 방송에서, 대학로 공연장에서, 혹은 대학가 집회현장에서 어김없이 사람들을 모여들게 했고 다 함께 웃고 울게 했다. 온몸을 비틀고 어긋난 관절을 표현하는 병신춤, 천연덕스럽게 원숭이 흉내를 내며 관객들의 웃음을 뽑아내던 동물춤은 해학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었다. 공옥진 춤은 병들고 늙은 몸을 표현한다. 예술은 ‘미와 추(美醜)’를 다루는 세계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가 예술에서 주로 보아온 것은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공옥진 춤은 고통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 병들고 늙고 고통스러움 앞에 자유롭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러면서 병듦과 죽음에 주눅 들지 않고 웃음으로 툭툭 털고 일어서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주름은 냉소적이면 안 생긴다. 웃거나 울어야 생기는 것이 주름이다.” 류장현이 덧붙이는 공옥진 춤의 새로운 해석에 크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름이 많은 소녀’는 빈 무대에서 시작된다. 공옥진이 무대에 설 때 주로 입었던 하얀 무명 치마저고리처럼 하얀 무대이다. 공연은 소리를 사랑한 장노인과 유노인의 오프닝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천당에서도 판을 벌이고 소리를 하고 싶어 그곳에도 판이 있는지 궁금해서 서로에게 약속을 한다. 둘 중에 먼저 죽는 사람이 천당에 갔다가 보고 와서 꿈속에 나타나서 알려주기로. 마침내 장노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유노인의 꿈속에 찾아와 말한다. 그곳에도 판이 있다고. 그런데 내일 판에 나오기로 한 손님이 바로 자네라고. 이어서 거리의 사람들, 아이들 소리, 바람소리, 겨울 칼바람 소리가 들리고, 흰 무명옷 입은 소리꾼 하나가 걸어 나온다. 소리꾼 이나래다. 추운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인사말을 한다. 유노인의 저승길을 열며 방금 불렀던 노래가 공옥진이 잘 불렀다는 ‘심청가’의 한 대목인 ‘범피중류’라는 것도 알려준다. 심청이가 인당수 바다 한복판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설명이다. 다섯 명의 무용수들은 심청이를 바다로 실어 나르는 배가 되었다가, 오방색의 쫄쫄이 원피스를 입고 개구리와 메뚜기와 늑대와 닭의 몸짓을 흉내 내기도 한다. 알 수 없는 외계생명체와 같은 모습을 흉내 내기도 한다. 공옥진이 잘 추었다는 동물춤을 새롭게 표현한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춤으로 표현한 공옥진의 익살과 해학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런가 하면 병신춤과 동물춤의 모티브는 무용수들의 일상의 이야기로도 중요하게 변환되어 이야기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고통스럽고 외롭고 무거운 짐을 진 채 구부러진 몸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사진 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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