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적로’

두 예술가의 혼이 서린 음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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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2월 10일 9:00 오전

HOT STAGE_글 이미라 기자 사진 서울돈화문국악당

‘적로’, 이 안에는 방울지어 떨어지는 이슬(滴露)과 악기를 통해 흘러나온 입김에 의한 물방울(笛露), 그리고 예술가의 혼이 서린 악기 끝의 핏방울(赤露)이 담겨있다. 이 모든 중의적 의미를 담아 두 예술가의 삶과 예술을 그린 음악극 ‘적로’가 오는 12월, 다시 한번 서울돈화문국악당 무대에 오른다. 초연 이후 일 년이 흐른 지금, 작품 속 두 예술가의 혼이 서린 음악과 삶은 우리에게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일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전통문화 지역인 창덕궁 일대의 정체성 회복과 전통문화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2016년 9월에 개관한 국악 전문 공연장이다. 그 의미를 살려 한옥과 현대 건축 양식을 혼합한 모양을 띠고 있으며, 자연음향을 기본으로 한 실내 공연장과 야외 공연을 위한 국악 마당을 갖추고 있다.

음악극 ‘적로(부제: 이슬의 노래)’는 서울돈화문국악당이 지난해 11월, 첫 번째 브랜드 공연으로 제작해 선보인 작품이다. 초연 당시 음향적인 부분에 있어 아쉬운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탄탄한 구성과 연출, 다양한 음악으로 많은 관심 속에서 첫 무대를 열었다.

‘적로’의 극작은 맛깔스러운 대사로 호평받는 배삼식 작가가 맡았다. 아랍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시 ‘모든 낮과 밤, 희미한 갈대 소리, 그 음악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진다’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는 빛나는 순간을 찾아 한평생을 헤매는 예술가의 삶을 그려냈다. 음악은 작곡가 최우정이 함께했다. 현대음악전문연주단체 TIMF앙상블의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인 그는 우리의 전통적인 소리와 더불어 당시 유행했던 스윙재즈와 현대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클라리넷과 대금, 아쟁, 타악, 건반이라는 독특한 악기 편성으로 녹여냈다. 배삼식의 아름다운 필체, 최우정의 실험적인 음악은 정영두의 연출로 더욱 완성도 있게 피어났다. 그는 무용·연극·뮤지컬 등 다양한 무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배우들의 움직임과 표현, 동선에 섬세함을 입혔다.

오는 12월,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재공연 되는 ‘적로’에서 볼 수 있는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새로운 배우들의 합류에 있다. 초연에 참여했던 안이호, 정윤형, 하윤주와 더불어 소리꾼 이상화와 조정규, 여창가객 조의선이 각각 ‘박종기’와 ‘김계선’ ‘산월’ 역에 새로이 이름을 올렸다. 배우들이 직접 작창(作唱)에 참여하여 만드는 작품인 만큼, 저마다의 개성 있는 소리와 연기가 각기 새로운 느낌의 작품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덧없어라 인생, 영원하라 음악!

‘적로’의 이야기는 1941년 초가을 경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늦은 밤, 청계천변 돌다리 위에 선 중늙은이 두 사람이 서 있다. 박종기와 김계선, 바로 젓대(대금) 연주로 명성이 자자한 두 사람이다. 건강을 이유로 그간의 경성살이를 작파하고 고향으로 내려갈 참인 종기와 그의 귀향을 만류하는 계선이 한창 실랑이를 하고 있던 차에 난데없이 인력거 하나가 나타나 두 사람을 모셔가겠다 한다. 종기와 계선은 이유도 목적지도 알 지 못한 채 인력거에 올라타고,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십수 년 전 불현듯 사라진 기생 산월이 꿈처럼 나타난다.

일제강점기 시절, 돈화문 일대는 많은 국악 예술가들의 무대였다. ‘적로’는 그중 두 명의 명인 박종기와 김계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대금 산조를 창시한 박종기는 우리가 즐겨 부르는 ‘진도아리랑’의 작곡자이기도 하다. 당시 조선성악연구회에서 당대 최고의 명인·명창들과 함께 활동하며 창극의 전성기를 만들었던 그는 죽는 순간까지 악기를 연주하다 각혈했을 정도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던 타고난 예인이었다.

누구보다도 그의 소리를 잘 알아주었던 박종기의 동료 김계선 또한 이왕직아악부(일제강점기의 장악원이자 현 국립국악원의 전신)의 간판스타였다. ‘김계선 전에 김계선 없고, 김계선 후에 김계선 없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연주를 선보였던 그는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합주를 뜻하는 한양합주의 원조로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을 보였다. 두 예술가의 자취는 지금까지도 많은 예인에 의해 기억되고 전해진다. 불멸의 소리를 찾아 한평생을 살아간 사람들, 그 끝에 여울져 맺힌 그들의 예술혼은 소리라는 흔적으로 남아있다.

 

음악극 ‘적로: 이슬의 노래’

12월 7~30일 서울돈화문국악당

극작 배삼식

연출 정영두

음악 최우정

출연 안이호·이상화·정윤형·조정규·하윤주·조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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