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해 피아노 독주회

거침없이 즐기는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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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2월 4일 9:00 오전

REVIEW

1월 10일 금호아트홀

시시포스의 산은 어떻게 놀이터가 되었는가? 피아니스트 박종해는 2005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 후 수많은 국내외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경력을 쌓아왔다. 2012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올라가는 길은 한참이지만 내려오는 길은 순간인 언덕을 끊임없이 넘고 있는 기분입니다. 잠깐의 기쁨을 맛본 뒤 고개를 들면 또 다른 언덕이 기다리더라고요. 하지만 이런 저를 위로할 수 있는 것 또한 음악이니 계속 해나가는 것이죠.” 음악 세계에서 경쟁은 끝이 없고 애써 오른 정상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연주 기회도 많지 않았던 작년에 그는 연주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감에도 깊이 빠졌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작년에 게자 안다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하면서 그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를 비롯해 유럽에서 많은 연주가 잡혀있고, 국내에서는 2019년 금호아트홀의 상주음악가로 선정됐다.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된 박종해는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총 5번의 독주회 부제를 ‘플레이그라운드’로 선택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듯 무대 위에서 제대로 놀아보겠다는 의미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결국 계속 이기는 길은 즐기는 법을 터득하는 일일 것이다.

박종해의 첫 무대는 우아한 인사로 시작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첫 작품은 레오폴드 고도프스키 ‘피아노를 위한 르네상스 모음곡’ 1권 중 장 필립 라모의 작품에 기초한 1번 사라반드, 3번 미뉴에트, 6번 탕부랭 등 세 곡이었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고도프스키가 자유롭게 편곡한 이 작품이 즉흥 연주에도 남다른 재능을 가진 박종해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살아났다. 부드럽고 편안하게 거니는 왼손의 진행 위로 장식음들이 음표들 사이에서 섬세하게 피어났으며, 날렵한 리듬은 끊임없이 생기를 불어넣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C단조 D958은 비장했다. 이 소나타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928년, 31세의 나이로 죽음을 예감하고 써 내려간 작품이다. 박종해는 느린 악장에서는 충분히 음미하며 노래했지만, 빠른 악장에서는 다소 급할 정도로 격렬하게 연주했다. 떨쳐내려 해도 떨쳐지지 않는 압박감과 투쟁하듯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비록 그가 이 작품에서 연주를 온전히 즐길 수 없었을지라도 도전에 따르는 부담감을 기꺼이 감수하는 용기가 돋보였다. 이른 완성보다 새로운 기회가 축복일 젊음이다.

프로코피예프의 작품만으로 이루어진 2부는 박종해가 피아노에서 한껏 놀 수 있는 터가 됐다. ‘로미오와 줄리엣’ Op.75 중 다섯 곡을 발췌한 연주에서는 오케스트라를 연상시키는 다채롭고 풍성한 음색과 재기 넘치는 표현력으로 매혹적인 이야기를 펼쳐갔다. 환상적인 세계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도발하듯 마지막 작품이 시작됐다. ‘전쟁 소나타’라는 별명의 소나타 7번에서 박종해는 이 전쟁의 규칙에 통달한 듯 했다. 그의 냉철하고 완벽한 통제 아래 음들은 흔들림 없이 열을 맞추었으며, 화음들은 폭격같이 무시무시하게 건반에 내리꽂혔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가차 없는 리듬으로 밀고 나가다 고압선에 감전된 듯 강렬하게 끝냈다. 즐길 수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다. 이미 이긴 싸움이라면 전쟁터도 놀이터가 된다. 반복적인 도전 속에서 즐기는 법을 찾아낸 이 젊고 대담한 피아니스트의 새로운 시작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기대된다.

글 서주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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