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김두민,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지난해 베토벤에 이어 슈만과 슈베르트, 브람스의 낭만을 전한 그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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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2월 11일 9:00 오전

INTERVIEW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아무도 그대가 준 만큼의 자유를 내게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대 앞에 서면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될 수 있는 까닭입니다.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대 아닌 누구에게서도 그토록 나 자신을 깊이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시인 율리히 피셔의 이 시 구절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김두민이 연주하는 첼로가, 그 첼로를 통해 나오는 음악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것은 김두민이 음악에 전하는 고백이기도 했고, 그의 첼로가 자신을 연주하는 김두민에게 전하는 고백처럼 들리기도 했다. 지난 1월 17일, 금호아트홀에서 슈만과 슈베르트, 브람스를 연주한 첼리스트 김두민과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이렇게 또 한 번의 진한 여운을 남겼다.

연주를 며칠 앞두고 첼리스트 김두민을 만났다. 독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지 3일도 채 되지 않아 시차 적응에 피곤할 만도 한데, 오랜만의 촬영에 설레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긴 시간이 쌓여

“오늘도 베토벤과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해 5월,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를 마친 그가 전한 인사다. 이 말처럼 그에겐 언제나 자신보다 음악이 먼저였다. 손가락 부상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원학교 시절 여러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낸 김두민은 15세의 나이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정명화를 사사했다. 이후 스승과 함께 전국투어를 하는 것을 물론, 독주와 협연으로 여러 무대에 오르며 주목받는 연주자로 성장했다. 그러던 1997년, 뉴질랜드에서 개최된 콩쿠르에 나간 그는 손가락 부상을 당하고 만다. 너무 많은 연습 탓이었다. 신경 손상. 주목받던 젊은 연주자에게 너무나 큰 시련임이 분명했지만, 김두민은 이듬해인 1998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상할 정도로 당시에는 부상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첼로는 제게 운명 같은 존재였고, 그렇기 때문에 멈춰 서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만 16세의 나이에 한예종을 졸업했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했는데도 말이죠. 어린 시절부터 만나고 경험해온 좋은 음악들을 갑자기 못하게 되어버리면 그 상실감이 너무 클 것 같았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첼로를 연주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첼로를 통해 나오는 음악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계속 달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상으로 인해 신경 하나를 전혀 쓰지 못하게 되었지만, 김두민은 갖가지 치료와 함께 다양한 연주 방법을 연구해나갔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하노버국립음대에서 디플롬 과정을, 쾰른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수료했다.

“연주자로서 저의 전환점을 어느 한 지점으로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굉장히 긴 시간이기 때문이죠. 부상을 당하고 재활하고, 회복해서 오케스트라에 입단해 활동하기까지의 긴 시간이 전부 제게 터닝포인트입니다. 부상 전과 이후의 연주법도 완전히 달라졌고요. 모든 돌다리를 두드려보며 건너왔던 그 시간이 쌓였고, 나름의 길을 찾아 지금의 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2000년, 안네 소피 무터 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된 것은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재단은 그에게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연주하고 있는 첼로 ‘장 밥티스트 뷔욤’도 후원해 주었다. 2002년 파울로 첼로 콩쿠르에서 상위 입상하며 더욱 연주에 대한 자신감을 쌓아가던 그는 2년 뒤인 2004년 뒤셀도르프 심포니에 입단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첼로 수석으로 뒤셀도르프 심포니와 긴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보았을 때 15년이라는 시간은 긴 세월처럼 보이지만, 사실 배움에 있어서는 아주 짧게 느껴집니다. 그동안 배운 것도 많지만, 아직 배워가야 할 것이 더 많기 때문이지요. 오케스트라를 화합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아이디어를 수집해가고 있고, 수석 연주자의 자리에서 팀을 리드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알아갈 때 기쁨을 느낍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경험을 쌓다 보면 음악적으로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화합을 향해가는 과정 중에 고난도 있고 역경의 시간도 있습니다만, 이것에 도전하고 극복해 가는 것 또한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지휘자 아담 피셔가 이끄는 뒤셀도르프 심포니는 말러 교향곡 전곡 녹음과 함께 투어 공연을 펼치고 있다. 향후 베토벤과 슈베르트 전곡 시리즈도 선보일 예정. 이처럼 지휘자가 가진 포부와 계획에 맞춰 오케스트라가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연주자와 각 파트를 이끄는 수석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

“한 악기 안에서는 물론이고 전체 안에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얼마나 읽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와 더불어 내 생각 또한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죠. 들으면서 동시에 이야기하는 조화가 필요합니다. 물론 음악적으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마음을 읽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건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실내악 연주에서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고요 속 평안함

어릴 적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책과 함께 보내서일까. 그는 책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감정을 배웠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삶에 스며들어 음악적 영감으로 피어났다.

“작가가 자신의 감정을 글로 전하듯 작곡가들도 음악을 통해 말합니다. 그 스타일은 굉장히 다양하죠. 베토벤이 고백과 외침으로 대화한다면, 슈베르트와 브람스는 그와는 또 다른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저마다 말하는 방법이 다른 것처럼 좋아하는 것도 다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죠. 그렇기 때문에 작곡가가 좋아했던 것을 이해할 때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곡을 세세하게 분석하기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거죠. 연주를 잘하고 싶다고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놓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잘하고 싶어서 노력은 하는데, 무엇이 중요한지 왜 하는지 모르고 무작정 노력만 하는 거죠. 바로 ‘듣는 것’보다 ‘하는 것’이 주가 되는 경우입니다. 하는 것에 바빠서 나조차 내 음악을 들으면서 좋다고 느낄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을까요. 음악은 솔직합니다. 내가 이것을 통해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기쁨은 관객에게 전달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신 안에 가장 깊게 자리한 감정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평안’이라 답했다. 뒤셀도르프 심포니의 첼로 수석이자 무터 비르투오지 앙상블 멤버이고, 수많은 무대에 초청되는 솔리스트임과 동시에 아버지로서의 역할까지, 바쁜 삶 속에서도 그는 “마음이 고요하다”고 말한다. 부상보다 더 큰 아픔이 몇 차례 삶을 덮쳤으나, 그는 오히려 그 고통을 담담히 드러내고 고백한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 놓인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기 위해서.

“아이들이 잘 크는 것, 모든 일이 평범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면 행복합니다. 사실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원하는 것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쟁취하려고 집요하게 노력했던 것에서 점점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랄까요. 평안함 안에서의 도전을 즐기고 있습니다.”

음악으로 전하는 그의 고백은 교향악축제와 평창대관령음악제, 그리고 부산시향과의 협연 무대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사람들과 나누고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이 소중하다고 말하는 김두민. 음악가로서의 삶에 감사하며 매 순간을 한결같이 살아가는 그에게서 깊은 예술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심규태(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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