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완

꿈꾸는 자의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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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3월 11일 9:00 오전

HE IS NOW

수석무용수의 자리에 서기까지 8년, 발레 안에서의 승부욕이 그를 움직인다

 

 

춘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기완이 처음 발레와 마주하게 된 계기는 작곡가인 어머니의 제안에서부터였다. 그렇게 열두 살의 나이에 아홉 살 동생과 함께 처음 발레 학원에 갔고, 자연스럽게 발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후 서울로 전학을 온 김기완은 예원학교 2학년에 편입을 했고, 서울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며 무용수로서 탄탄한 성장을 보였다. 좋은 학교에서 훌륭한 스승과 함께하고, 무용수로서 현재 국립발레단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를 보면 그저 순탄한 길을 걸어왔을 것 같지만, 그에게도 커다란 시련은 있었다. 한예종에 다니던 시절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입은 것. 무용수로서는 매우 치명적인 일이었고, 그로 인해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발레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김기완에게 더 큰 성장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정신적으로 강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사유하는 시간이 늘며 내면적으로도 크게 성장했다. 그렇게 특유의 승부욕으로 어려운 시간을 잘 이겨낸 그는 한예종을 졸업하고 2011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한다. 이듬해 정단원이 된 그는 일 년 만에 솔리스트로 승급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6년의 시간이 흐른 올해, 드디어 수석무용수의 자리에 올랐다.

 

국립발레단 입단 8년 만에 수석무용수가 되었다.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기분이 좋다. 처음 발레단에 들어와 주역을 목표로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수석무용수의 자리에 오르니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느낌이 든다. 무대 위 역할에 있어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없겠지만, 기분 좋은 부담감은 늘 것 같다.

솔리스트 승급은 굉장히 빨랐는데, 그에 비해 수석무용수에 오르기까지는 조금 오래 걸렸다. 물론 항상 기대는 했었다. 주연을 맡다 보니 욕심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항상 완벽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잘 해왔고 나에 대한 확신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에 많은 축하인사를 들으면서 너무 늦게 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지금의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걸렸는가보다는 이 자리에 올랐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있다.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자신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스스로 못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크게 돋보인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동생 김기민(마린스키 발레 수석무용수)의 경우에는 훌륭한 테크닉과 점프가 눈에 확 들어오는데, 나는 딱히 내세울 것이 없는 것 같다. 내 춤에 자신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김기완이 무엇을 내세울 수 있느냐 물었을 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동료들에게서 듣는 이야기라면, 나와 함께 했던 파트너에게 ‘파트너링할 때 편하다’라거나 ‘무대에서 믿음이 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래서인지 파드되(2인무)나 드라마 발레가 더 자신이 있고 편하다.

그동안 ‘지젤’ 알브레히트, ‘라 바야데르’ 솔로르, ‘스파르타쿠스’ 스파르타쿠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카라보스, ‘마타 하리’ 마슬로프, ‘말괄량이 길들이기’ 페트루키오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이중 가장 편하게 녹아들 수 있었던 작품은 어떤 것이었나? ‘말괄량이 길들이기’인 것 같다. 캐릭터의 성격과 색깔만 잘 잡아놓으면 크게 규제받지 않고 출 수 있는 동작이 많아 편했다. 대신 정확한 길 안에서 표현해야 하므로 작품 해석을 잘해야 한다.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의 마초적인 남성의 모습이 나와 닮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캐릭터일지 상상하며 나만의 색깔로 소화하는 것이 재밌었다. 가장 편했던 작품이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스파르타쿠스’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예전에 국립발레단에서 마이요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때는 신입단원이었을 때라 뒤에서 형들이 하는 모습을 보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두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에 음악도 포함된다고. 프로코피예프도 많이 듣지만, 차이콥스키나 하차투리안의 음악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장면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여러 오케스트라의 버전으로 들어본다. 같은 곡을 러시아 오케스트라나 뉴욕 필, 빈 필 등 다양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찾아보는 것이다. 똑같은 곡을 연주해도 단체마다 색깔이 다르고, 또 발레 작품 안에서 연주할 때와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연주할 때가 다르니 듣는 재미가 있다.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

자신만의 색깔과 영역을 구축한 무용수로 성장하기까지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내 삶의 원동력은 ‘발레’다. 내 목표가 춤을 더 잘 추고, 무대를 더 잘하는 것이기 때문에 발레 그 자체에서 원동력을 얻는다. 어린 시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이원국 선생님이다. 춤 외에도 남자 주역무용수가 갖추어야 할 자세, 어떻게 연습을 하고 어떻게 작품에 임해야 하는 지를 배웠다. 최근의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동생 김기민과 마뉴엘 레그리를 꼽을 수 있다. 먼저 가장 가까이에서 여러 영감을 주는 기민이는 이미 월드 클래스로 통하는 무용수다. 엄청난 예술가가 바로 옆에 있으니 정신적으로도 큰 힘이 된다. 마뉴엘 레그리와는 지난해 일본 시부야에서 만났다. 파리 오페라 발레 수석무용수 출신으로 현재 빈 국립 발레를 이끄는 그는 전설로 통하는 무용수다. 이미 은퇴를 했고, 5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무대 위 그의 움직임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평범한 차림에서도 뿜어져 나오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멋있는 예술가의 모습에 마냥 넋을 놓고 바라봤던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속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생 김기민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가 소속된 단체나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눌 것 같은데. 국립발레단도 큰 단체이지만 마린스키 발레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규모나 역사 면에서 훨씬 더 큰 단체라 배울 점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시스템을 무조건 따라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도 있고. 하지만 발레 학교는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중, 예고, 한예종처럼 예술학교는 존재하지만, 무용만을 위한 학교는 아직 없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한국 발레가 세계 무대에 많은 수상자와 주역 무용수를 배출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용수들을 꾸준히 훈련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해외 진출에 대한 꿈은 없는가. 사실 예전에 몇 번 제안을 받았던 적은 있다. 부상 때문에 이루어지진 않았으나 막연히 꿈꾸기도 했었다. 하지만 복귀할 당시, 내게는 춤을 출 수 있는 곳이 가장 필요했다. 그것이 국내든 해외든 상관없었고, 더 빨리 주역으로 서고 싶은 마음이 컸다. 설 수 있는 무대에 더 포커스를 두고 고민하던 중 동생과 함께 국립발레단의 ‘지젤’을 보게 되었다. 똑같은 자리에서 전 회차를 다 보았던 기억이 난다. 공연이 너무나 마음에 와닿아 국립발레단에 원서를 넣었고, 다행히 그해 데뷔를 했다. 지금까지도 그때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앞으로의 행보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목표했던 수석의 자리에 오른 만큼 이 자리에서 조금 더 무대에 집중하고 싶다.

김기완이 생각하는 좋은 무용수에 대한 정의도 궁금하다. 요즘 시대에 테크닉이 필수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부분은 작품이 요구하는 수준만 채울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작품을 해석하고 그것을 얼마나 세련되게 표현하느냐이다. 실수의 여부를 떠나 그 사람의 움직임이 캐릭터 자체가 되는 것, 결국 ‘단 하나(only one)’의 무용수가 되는 것은 예술성에 있다. 마뉴엘 레그리나 바리시니코프, 바실리예프는 모두 전설적인 무용수다. 하지만 서로의 춤은 흉내 낼 수 없다. 각자가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 사람만이 지닌 예술성,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그들처럼 될 수는 없더라도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김기완을 보며 무용수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왕이면 나 말고 더 큰 예술가를 바라보며 꿈꾸기를! 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다고 하지 않나.(웃음) 또 주변과 경쟁하려 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더 집중할 것. 예술가의 길은 쉽지 않고 어느 정도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결코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각오를 품고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다. 꿈은 누구나 꾼다. 하지만 누가 더 오래 꾸느냐가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꿈을 더 오래 꾸고 지속해 나간다면 그 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미라 기자 사진 심규태(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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