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사장 김성규

목적 없는 예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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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5월 6일 9:00 오전

숫자에서 예술로, 세종문화회관과 함께하는 그의 또 다른 계절

세상에는 수많은 리더가 존재하고, 그들의 리더십이 이슈가 된다. 누구나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리더와 리더십은 있지만, 거기에 정답은 없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다른 색깔을 입는 것이므로.

지난해 9월 27일, 세종문화회관의 새로운 수장으로 김성규 사장이 취임했다. 경영학도 출신의 회계사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후 오랜 시간 회계법인을 이끌어온 그는 1998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서울예술단 경영 컨설팅을 시작으로 문화예술경영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여러 문화예술단체의 회계·운영·자문을 맡으며 문화예술에 대한 기업의 협력과 메세나, 기부금 제도 등에 대한 연구도 이어왔다. 이러한 활동들을 인정받아 2007년과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고, 2018 산업정책연구원 주회 대한민국 CEO 명예의 전당 문화 콘텐츠 부문을 수상했다. 그가 세종문화회관에 새로 취임한 것이 지난 가을. 겨울에 취임 100일을 맞이하고 이제 봄이라는 새로운 계절을 지나고 있으니, 벌써 세종문화회관과 함께 세 개의 다른 계절을 보냈다. 변화와 소통, 그리고 이모셔널 세이프티(emotional safety)를 앞세운 김성규 사장의 리더십은 세종문화회관과 만나 과연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역사적 가치와 접근성, 외관이 주는 웅장한 분위기는 세종문화회관이 오랜 시간 쌓아온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한동안 예술 공간으로서의 이미지를 잃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죠. 이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사장으로 취임했는데,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세종문화회관의 상징성은 이미 많은 분이 알고 계실 겁니다. 지금의 세종이 다시 도약하기 위해 어떤 사람이 필요할까를 고민했고, 제 스스로가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공연 전문가는 아니지만, 변화가 필요하거나 조직 간의 갈등이 심해졌을 때는 예술계 내부 사람보다는 나와 같은 외부 사람이 오히려 더 필요할 것 같았죠. 심한 갈등을 조정하지 않으면, 변화도 없고 뒤처지게 되고 안주하게 되어버립니다. 이건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한 번쯤은 변화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임 후 첫 공식 자리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조직문화 개편에 대해 언급해오셨습니다. 조직문화라는 것이 단시간에 바뀔 문제는 아니지만, 그동안 보인 변화가 있나요.

처음 세종문화회관에 와서 느낀 것이 개개인의 능력에 비해 함께 내는 시너지가 빛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꺼냈던 이야기가 조직문화 개편에 관한 것이었죠. 조직문화는 눈에 보이는 것 아닙니다.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단시간에 되었다면 그건 착시현상에 지나지 않죠. 하지만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느낍니다.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직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려고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와 먹을까를 고민하다가 티켓 매니저, 하우스 매니저, 안내원 등 고객 접점 직원들과 함께하기로 했죠.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 사장실 옆 접견실에서 피자 파티를 하기로 하고 스케줄을 잡아 달라 했더니 기안을 작성해 결재를 올리더군요. 격식 없이 간단히 준비해서 편안하게 먹으려던 것이 오히려 일이 된 셈이죠. 지금은 메뉴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도 뮤지컬단과 점심을 먹었는데, 메뉴도 비밀로 하고 제 방으로 초대했어요. 이렇게 제 나름의 이벤트를 열고 있습니다.(웃음)

경영에 있어 자유로움을 추구하시는 것 같네요.

자유롭고 열린 편이지요. 회계법인에 있을 때는 직원들의 성향이나 스타일을 기억해두고 가끔 작은 선물을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소소한 이벤트를 좋아합니다.(웃음)

-‘이모셔널 세이프티라는 개념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요.

취임식을 앞두고 누구나 이야기 하는 ‘소통’과 ‘변화’ 외에 제가 추구하는 바를 또 다른 키워드로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민 끝에 찾은 단어가 ‘이모셔널 세이프티’입니다. 세종문화회관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부의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간에 대한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원 설문을 시행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고요.

설문 조사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직원들의 의견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조직 인사에 관련된 것이 많았습니다. 막연한 피해 의식이나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많았고요. 하지만 이것 또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현상입니다. 그렇게 불만 사항들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하고 리스트를 만들어 각 담당 부서를 정해 전달한 후, 언제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계획했습니다.

극장 운영을 시작하며 국내외 사례 중 본보기로 삼았던 곳이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우리 조직에 맞는 스타일은 여기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모델을 가지고 가는 순간 실패한다고 생각하고요. 지금 당장 세계 일류 극장의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보다는 세종문화회관이 앞으로 변화하는 데에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일까를 냉철하게 생각해야지요. 이 문제는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공연장의 좋은 모델이 지금 단계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향후 공연기획이나 레퍼토리 시스템 구축에서는 외부의 좋은 사례들도 살펴봐야겠죠.

세종문화회관의 길을 걷다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큰 규모의 공연장으로 세종문화회관이 손꼽히는데, 그만큼 그 역할과 책임감도 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공공 공연장과 복합문화공간이 가지고 있는 미션은 다양합니다. 세종문화회관의 경우에는 최고의 작품을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작품이 세종문화회관에 오른다’는 자긍심을 위해 여러 부분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공공 공연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볼 수 없지요. 그래서 이번에 S씨어터를 개관해 더욱 실험적이고 새로운 작품을 시도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최고’와 ‘창작’을 중심으로 가져가는 거죠. 또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시민들이 잘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공간 조성을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세종문화회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요.

다른 곳과 비교해 우리가 추가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제작’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콘텐츠가 있다는 거죠. 여기에 자부심도 있고요. 창작·제작을 한다는 것 자체는 그 장르 안에서 제 역할을 하고 영향력을 갖는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하지만 공급자만이 만족하는 공연은 의미가 없습니다. 완성도 높은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 관객이 계속해서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죠.

예술의 가치마저 돈으로 평가하는 지금, “수익성을 가지고 우수 공연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정체성과 전략에 얼마나 부합하는가가 중요하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하는지’ 뚜렷한 목적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티켓을 팔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팔리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겠죠. 하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새로운 시도를 위한 작품을 만든 것이라면, 수입의 결과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인지, 돈을 벌려고 만든 것인지,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예술계에 어떤 기여를 하기 위한 것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저는 예술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제작은 단체들의 몫이라고 말하고 관여하지 않습니다. 다만 “왜?”라는 질문에 정확한 대답이 나와야 하고,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당당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작 단계에서 분명한 의미를 두고 시작했다면 말이죠.

해외의 경우, 어떤 공연장들은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세종문화회관이 위치한 광화문도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인데요, 이를 위한 전략이나 시스템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문화공간이지 관광지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외국인들이 찾아왔을 때 공간 이용에 있어 불편하지 않게끔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관광객을 위한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션을 가지고 공연을 하고, 관광객들이 그것을 찾아오게끔 해야죠. 무용, 연극, 뮤지컬 등 공연의 장르와 내용은 다르지만, ‘이곳에 가면 대한민국 최고의 공연을 볼 수 있어’라는 인식을 주는 것이 저희의 미션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세종문화회관에 다양한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8~9월 정도로 다른 공연장에 비해 다소 늦었던 대관 공지 시기를 올해는 3월로 앞당겼습니다. 이를 통해 해외 유명 단체나 아티스트의 공연을 더 선보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S씨어터의 개관도 있었습니다. 이 공간은 ‘누가 하느냐’ 보다 ‘무엇을 하느냐’에 더 초점을 둔 공간입니다. 요즘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장 핫한 곳은 단연 무용단인데요, 정혜진 단장님이 새로 오신 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단장님께서 솔선수범하며 단원들과 함께 트레이닝에 참여하시다 보니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아직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합니다. 라바 캐릭터로 공연장 이용 안내 영상을 만들어본다거나 S씨어터에 캔맥주를 들고 들어갈 수 있게 해보는 것, 점심시간 30분을 활용해 직장인들이 즐길 수 있는 ‘정오의 스낵 톡톡’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에서 문화예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문화예술계에 도움을 준다거나, 이 분야에 계신 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주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돌아보니 오히려 제가 문화예술에 많은 도움을 받았더군요. 문화가 일상이 되며 만나는 사람도 달라지고, 삶을 즐기는 방식에도 조금씩 변화가 왔습니다. 제가 예술계를 도와주었다고 자만했었는데, 사실은 많은 신세를 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죠.(웃음) 그래서 내가 예술계에 더 기여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업적을 쌓고 싶다는 욕심은 없습니다. 다만 세종문화회관이 저로 인해 조금 더 발전하는 모습, 그래서 그 혜택을 서울시민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공헌이라 생각합니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황필주(studio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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