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카를로 발레 수석무용수 안재용

다름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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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6월 3일 9:00 오전

INTERVIEW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무용수 안재용이 꿈꾸는 세상이다

 

©김윤식

 

12시가 다가오자 그녀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가득하다. 오랜만에 예쁜 드레스에 화장을 하고, 투명하게 빛나는 구두까지 신었건만, 무심히 흐르는 시간은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듯하다. 멋진 이와의 춤은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준다. 그러나 이윽고 울린 12시 종소리는 그녀가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12시면 풀리는 마법. 그녀는 다급히 뛰쳐나오다 그만 구두 한쪽을 잃어버린다.

자, 여기까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신데렐라’ 이야기다. 세상엔 다양한 버전의 신데렐라가 존재한다. 하나의 단어, 작은 물건 하나도 누구와 어떤 만남을 이루느냐에 따라 다른 모양을 띠듯이, 하나의 이야기도 누구의 시선으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모양을 갖는다.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를 만난 신데렐라도 그렇게 새로운 몸짓으로 피어났다.

바로 이 ‘신데렐라’를 가지고 몬테카를로 발레가 14년 만에 내한한다. 맨발의 신데렐라, 찢어진 튀튀. 자유롭고 파격적인 무대는 그대로지만, 이전과 달라진 점 하나를 찾는다면 바로 수석무용수 안재용의 존재다.

 

맨발의 신데렐라

몬테카를로 발레는 디아길레프의 죽음으로 해산한 발레 뤼스의 뒤를 이어 만들어졌다. 이후 우여곡절 많은 분열과 해체의 역사를 거쳤고, 1985년 모나코의 캐럴라인 공주에 의해 왕립발레단으로 부활했다. 발레단이 빠른 성장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면서부터다. 마이요는 당대 유명 안무가들을 초청해 레퍼토리를 확장했고, 공연과 전시, 워크숍 등을 통해 세계 유수 발레단·안무가·무용수가 교류하는 모나코 댄스 포럼을 창설했다.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단체 중 하나인 몬테카를로 발레, 안재용은 바로 이곳에 2016년 코르 드 발레로 입단했다. 입단한 해부터 마이요의 눈에 띄며 주요 배역을 잇달한 연기한 그는 이듬해 세컨드 솔리스트로, 그리고 또다시 일 년 만에 두 계단을 더 오르며 수석무용수가 됐다.

첫 입단부터 수석무용수의 자리까지, 단 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룬 성과다. 내가 가지고 있던 춤의 스타일이 몬테카를로 발레가 추구하는 예술의 방향과 잘 맞아 좋은 시너지를 일으킨 것 같다. 입단해서부터 마이요 감독님이 주역의 기회를 많이 주셨고, 그로 인해 더 자신감 있게 내 끼를 펼칠 수 있었다. 승급 직후에는 마냥 기쁘기보다는 많은 책임감과 중압감이 먼저 다가왔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니 오히려 춤을 포함한 여러 가지 면에서 여유가 생겼다. 요즘은 단순히 춤을 잘 추어야겠다는 생각을 넘어 내가 추는 춤과 예술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예술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몬테카를로 발레와의 첫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클래식 발레는 물론 네오클래식이나 모던발레에도 관심이 많았다. 해외 발레단 작품을 찾아보며 자유롭고 드라마적인 표현 방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당시 몬테카를로 발레를 실제로 본 적은 없었지만, 발레단의 레퍼토리인 ‘신데렐라’를 국립발레단을 통해 보게 되었다. 그때 받은 문화충격은 굉장히 강렬했다.

이번에 선보일 작품 역시 ‘신데렐라’다.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재안무 버전으로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한다. 무대 의상은 제롬 플랑이 맡았다. 처음 이 무대를 보고 충격받았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의상이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클래식한 튀튀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한쪽이 잘려있는 등의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이처럼 어떤 의상이나 무대장치들은 동화적인 느낌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또 어떤 것들은 굉장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맡은 역할은 어떤 캐릭터인가? 이 작품은 왕자가 아닌 신데렐라의 엄마(생모)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죽은 후 요정으로 다시 나타난 엄마가 신데렐라를 도와주며 왕자와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역할은 ‘왕자’와 ‘아빠’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다 저마다의 드라마를 담고 있다. 왕자에게는 세상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친구와 보이는 장난스러운 모습도,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찾아 나서는 용기 있는 모습도 담겨있다. 또 다른 캐릭터인 ‘아빠’는 뒤에서는 온갖 남자다운 척을 다 하지만, 나약한 모습도 많이 담고 있다. 죽은 아내, 신데렐라와 함께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잊지 못하면서도 계모에게 빠져 신데렐라가 괴롭힘당하는 것을 외면한다.

작품 속에서 가장 몰입이 되는 장면이 있다면. 아빠와 생모가 함께 추는 마지막 파드되. 살아생전 아내가 입었던 드레스를 안고 생각에 잠긴 그에게 죽은 아내가 나타나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다. 실제로는 드레스를 안고 춤을 추는 것이지만,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그 자신은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는 모습이다. 짠한 감동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신데렐라 하면 떠오르는 ‘유리구두’도 이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작품 속에서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황금가루가 묻은 빛나는 발로 표현된다. 마이요의 작품에는 항상 키워드가 존재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백조의 호수’에서 손과 손짓이 중요했다면, 여기서는 ‘발’이 가장 중요하다. 무용수에게 손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발이다. 있는 그대로의 발을 보여주고 거기에 직접적인 변화를 주니, 유리구두라는 매개체를 통하는 것보다 그 의미가 더 강조되는 느낌이다. 여기에 의미를 두고 작품을 보면, 전막 전체가 달라져 보일 것이다.

 

모두가 예술가가 되는 세상을 꿈꾸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내가 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면 그것을 더 잘하기 위해 온 마음을 쏟게 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온 마음과 온몸으로, 온 힘을 다해 살게 된다. 그렇게 사랑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안재용의 삶에도 이 ‘사랑’이 가장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춤과 사람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그의 예술세계를 더욱 성숙한 색깔로 물들이고 있다.

무용수로서의 움직임과 표현에 있어 영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음악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라는 단어도 중요하게 다가온다. ‘로미오와 줄리엣’ 속에서 같은 아라베스크 동작을 보더라도 로미오가 하는 것과 티볼트의 것은 다르지 않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동작도 확연히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그로 인해 간단한 인사말조차도 모두 다르게 들리는 것처럼. 춤을 출 때도 각각의 캐릭터에 맞게 다른 옷을 입으려고 노력한다.

다양한 감정을 이해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그래서 연습이나 공연 외의 시간에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려 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발레단에서 해외 투어를 갈 때면 꼭 그 도시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러본다. 음악을 듣거나 음악회에 가는 것도 좋아한다. 무용에 집중하는 것만큼 다른 장르를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전 지식이 없어도 상관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았을 때 오는 느낌과 알고 보았을 때의 느낌은 또 다르지 않나. 그 차이에서 오는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이 즐겁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내 춤의 깊이와 폭을 넓혀주는 것 같다.

예술가로서 어떤 꿈을 꾸고 있나. 언젠가 어떤 그림을 보고 난 후 무작정 물감과 붓을 사서 손이 가는 데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다. 그것을 따라 그리고 싶었다거나 잘 그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그 순간,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떠올랐던 느낌이나 표현들을 충동적으로 나타내본 거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내 춤을 보고서 굳이 춤이 방식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모두가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세상을 살아간다면, 조금 더 아름답고 멋진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내 춤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이 되고, 예술의 불씨를 틔워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라 기자 사진 마스트미디어

 

몬테카를로 발레 ‘신데렐라’

6월 8·9일 대구오페라하우스

6월 12~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6월 18·19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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