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포저 &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시적 감수성과 상상 가득한 ‘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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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7월 1일 9:00 오전

REVIEW

6월 12일 LG아트센터

지난 6월 12일 LG아트센터에서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첼 포저와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이 열렸다. 바로크 시대 연주의 대가 레이첼 포저의 10년 만의 내한이어서 공연 전부터 화제가 됐다. 1부에서는 코렐리의 합주 협주곡 c단조, Op.6 No.3을 시작으로 만프레디니 합주 협주곡 G장조, Op.3 No.7, 제미니아니 합주 협주곡 g단조, Op.3 No.2, 바흐의 하프시코드 협주곡 A장조, BWV 1055가 연주되었다.

바흐를 제외한 모든 작품이 이탈리아 협주곡 레퍼토리로 구성된 흥미로운 프로그램이었다. 이날 공연에서 무게를 실을 ‘사계’에 앞서 18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협주곡의 다양한 면면이 펼쳐졌다. 1부의 마지막 곡 바흐 협주곡에서는 깃털처럼 경쾌하고 민첩한 하프시코드가 오케스트라와 조화롭게 어우러져 수준 높은 앙상블을 선보였다.

2부는 비발디의 ‘화성과 창의에의 시도’ Op.8 중 ‘사계(The Four Seasons)’만으로 채워졌다. 지난 2017년 브레콘 바로크와 녹음한 ‘사계’에서는 각 파트별로 연주자 한 명씩만 내세워 세밀하고 촘촘한 짜임을 중시했다면, 이번 공연에서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와 13인조로 선보인 협연에서는 더욱 풍성한 묘사를 위한 다이내믹에 초점을 맞췄다.

각 계절의 문을 열기에 앞서 오케스트라 단원 중 한 사람이 앞에 나와 이 작품의 기초가 된 소네트를 낭송했다. 비발디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소네트는 사계절의 풍경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어 이어진 연주의 감흥을 배가시켰다.

오랫동안 ‘사계’ 연주로 사랑받아온 ‘이 무지치’의 해석은 파비오 비온디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의 ‘사계’와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포저와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그 둘 사이의 절충주의 노선을 택하고 있었다.

이무지치와 비교할 때 현대적인 템포,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몰아치는 템포와 강렬한 다이내믹에 비해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고 서정적인 묘사에 주력하는 호연이었다. 한편, ‘겨울’ 1악장에서 보여준 극도로 날카롭고 사나운 바람의 묘사만큼은 그간의 어떤 ‘사계’보다 더 파격적이었다.

각 곡에서 포저의 솔로는 자유로운 상상을 더한 즉흥연주와 노련한 리드로 빛났고, 명실공히 바로크 바이올린 스페셜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포저와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의 ‘사계’는 주로 맨체스터 필사본의 해석을 따랐으며, 간혹 암스테르담 판본을 근거로 연주했다. 음악적 효과를 확장하기 위해 하나의 판본을 고집하지 않는 유연함은 그들이 목표로 한 다채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학구적 고민 끝에 빚어낸 연주라는 데에 신뢰를 더했다.

‘사계’의 매력을 재발견하게 해준 레이첼 포저와 계몽시대 오케스트라는 몇 번의 커튼콜 끝에 비발디의 ‘라 스트라바간자’ 중 12번 2악장 ‘라르고’를 들려주었다. 이번 연주에 앞서 포저가 직접 ‘가장 사랑하는 곡 중 하나’라고 소개한 이 작품에서 오랜 세월 협업해온 객원 리더 레이첼 포저와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의 따뜻한 호흡이 돋보였다.

새로운 ‘사계’로 신선한 영감을 불러일으킨 레이첼 포저와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이날 그들이 들려준 순도 높은 바로크 음악은 시적 감수성과 상상 가득한 밤을 선사했다.

배인혜(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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