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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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7월 1일 9:00 오전

 

나의 이야기를 찾아서

리처드 용재 오닐·제레미 덴크 듀오 리사이틀

6월 14일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들어도 저마다 느끼는 것은 다르다. 하나의 음악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가 피어날 수 있다는 것, 음악의 매력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올해로 열두 번째 시간을 맞은 디토페스티벌 ‘매직 오브 디토’가 리처드 용재 오닐과 피아니스트 제레미 덴크의 듀오 리사이틀로 첫 문을 열었다. 타이틀은 ‘환상곡(Fantasia)’. 형식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창작한 낭만적인 악곡이란 의미의 이 단어가 두 사람을 통해서는 어떤 모양으로 피어날지 궁금했다.

공연은 제레미 덴크의 바흐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BWV 903 솔로 연주로 시작됐다. 그야말로 요동치는 바흐였다. 몰아치다가 급격히 브레이크를 밟는 듯 멈춰서는 그의 제스처는 선명한 음색과 프레이징을 통해 불안감이 아닌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다가왔다. 고요한 가운데 끊임없이 움직였고, 요동치는 가운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느껴졌다. 목적지는 같으나 성부별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른 목소리로 나아가는 듯한 푸가도 그의 무대에 끝까지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후의 무대는 모두 두 사람이 함께 꾸몄다. 두 개의 슈만과 힌데미트 비올라 소나타 Op.11-4, 그리고 마지막 클라크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까지, 둘의 호흡은 거듭 무르익으며 더욱더 자유롭고 다채롭게 피어올랐다.

슈만 ‘세 개의 환상소곡집’ Op.73에서는 제레미 덴크의 리드가 돋보였다. 멀리서부터 스며드는 듯한 비올라 소리가 처음에는 다소 답답한 듯했으나, 두 연주자는 금세 서로 밸런스를 맞춰갔다. 비올라의 진가가, 그리고 두 사람의 호흡이 진정으로 빛을 발휘한 것은 힌데미트에서부터였다. 앞선 ‘세 개의 환상소곡집’과 달리 힌데미트 소나타와 슈만 ‘이야기 그림책’, 그리고 클라크 소나타는 모두 처음부터 비올라를 위해 작곡된 작품들이다. 그래서였을까, 이 세 개의 작품에서 리처드 용재 오닐의 비올라는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애써 작품과 연주 안에 숨은 의미나 매력을 찾으려는 노력 없이도, 들리는 소리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발끝으로 현 위를 가볍게 뛰노는 듯한 움직임과 또 어느새 현에 밀착되어 내는 진한 목소리는 비올라가 지닌 음색의 스펙트럼을 극대화했다.

똑같은 음악이라 할지라도 연주된 그 순간으로 사라지기도, 또 수많은 감정을 만들어 내며 나만의 이야기로 자리 잡기도 한다. 리처드 용재 오닐과 제레미 덴크의 무대는 후자였다. ‘디토’라는 이름 아래 마지막일 이번 무대에서 두 사람이 만들어 낸 이 날의 음악은 무대 위 연주자에게도,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도 저마다의 이야기로 그려졌으리라. 이미라

 

아파트를 감각하는 세 방식

두산인문극장 2019 ‘아파트’

4월 8일~7월 6일 |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이맘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두산아트센터를 찾게 된다. 매해 상반기 우리 곁을 찾아오는 두산인문극장이 어느덧 7회를 맞았다. 두산인문극장은 2013년 ‘빅히스토리: 빅뱅에서 빅데이터까지’를 시작으로 2014년 ‘불신시대’, 2015년 ‘예외’, 2016년 ‘모험’, 2017년 ‘갈등’, 2018년 ‘이타주의자’란 주제로 동시대 사회 현상을 주목해왔다. 그간 두산인문극장은 인간과 자연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탐색했다. 특히 어지러운 사회 문제를 엄숙한 학술 교류가 아닌, 예술로 공유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올해 두산인문극장은 ‘아파트’라는 주제로 4월부터 7월까지 세 달에 걸쳐 펼쳐졌다. 어느 때보다 기획 면에서 잘 구성된 느낌이었다. 이번 두산인문극장이 더욱 빛난 이유는 다른 극장의 부진도 한몫했다. 국립극단이나 남산예술센터가 발표한 시즌 레퍼토리를 살펴보면, 각 극장이 올해 무엇을 지향하는지, 시즌 프로그램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관한 명쾌한 주제를 찾을 수 없다. 국내 주요 국공립극장의 느슨한 기획은 여러모로 실망감을 안겨줬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7년째 이어진 두산인문극장은 좋은 귀감이 될 만하다.

지난 4월, 경남 진주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방화·흉기 난동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임대 아파트 혐오가 가시화됐다. ‘임대 아파트 거주자들은 피해망상이 있다’, ‘집 주위에 임대 아파트가 들어오면 반대해야 한다’라는 여러 누리꾼의 댓글은 임대 아파트 혐오를 더욱 부추겼다. 해방 후 한국에 아파트 문화가 정착하고, 현재 한국의 아파트는 부와 신분의 상징이다. 주거 복지 정책으로 임대 아파트가 마련됐지만, 분양 아파트 주민은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 사이에 철망을 설치하며 경계를 더욱 견고히 했다.

두산인문극장 ‘아파트’의 첫 공연인 ‘철가방추적작전(4월 9일~5월 4일)’은 이러한 경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배경은 답십리의 오래된 골목. 담벼락을 경계로 아파트 단지와 빌라촌이 분리돼 있다.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에 따라 아이들은 그룹을 나눠 친해진다. 어려운 형편의 정훈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며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학생들은 정훈이 무단결석하는 이유가 친구의 아이패드를 훔쳤기 때문이라고 몰아간다. 은연중에 교사들도 그렇게 추측한다. 정훈이 그린 벽화가 고급 아파트 입주민에 의해 엉망이 되어도 다들 정훈이 그랬다며 손가락질한다. 이 작품은 우리 안에 내재된 적대심을 살펴보도록 했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5월 15일~6월 8일)’는 이른바 ‘86세대’의 이야기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달려온 중년의 준식이 주인공이다. 작품은 아파트 건설 공사장 바닥에 깔려 있는 질펀한 똥처럼, 평온한 삶에 감춰진 문제들을 하나씩 꺼냈다. 특히 한국의 도시화 과정에서 생긴 개인의 상실감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철가방추적작전’

이번 두산인문극장의 마지막을 장식한 ‘포스트 아파트(6월 18일~7월 6일)’는 안무가 정영두, 건축가 정이삭, 작곡가 카입, 영화감독 백종관이 협업했다. 다양한 창작자들의 협업인 만큼, 작품은 여러 감각으로 아파트를 느끼게 했다. 무대는 동시대 아파트에 숨겨진 구조를 체감하도록 만들었다. 인공적인 물과 흙, 풀이 존재하고, 관객은 무대를 돌아다니며 마치 전시를 보듯 공연을 즐긴다. 여기서 관객은 무대 위 하나의 오브제로 작동한다. 무엇보다 작곡가 카입의 사운드 구성이 매우 흥미로웠다. 카입은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하는 24시간의 소리를 채집하여 그곳만의 소리 패턴을 만들었다. 공연 중 관객에게 안대를 착용해 소리에만 집중하도록 하는데, 이는 삶에 치여서 놓치고 살던 감각을 일깨웠다.

세 작품 모두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아파트를 둘러싼 문제를 전달했다. 이중 연극 ‘철가방추적작전’과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재창작했다. 2002년에 발표한 소설가 김윤영의 ‘철가방추적작전’과 1992년 발표한 이창동의 ‘녹천에는 똥이 많다’가 2019년과도 밀접하게 닿아있으니 흥미롭다. 한편으로는 동시대 문제를 담은 한국 희곡 발굴이 이리도 어려운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장혜선

 

음악과 열정이면 충분하다!

뮤지컬 ‘스쿨 오브 락’

6월 8일~8월 25일 | 샤롯데씨어터

뮤지컬이 대중예술의 꽃이라지만, 많은 작품을 접할수록 좋은 뮤지컬을 찾기란 어떤 예술 장르보다 어렵다. 노래·텍스트·무대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란 쉽지 않고, 이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어설프게 보이기 마련이다. 요즘 추세를 보면 대극장 뮤지컬은 화려한 무대와 극강의 고음을 구사하는 넘버를 통해 스토리나 텍스트의 어설픔을 감추고, 소극장 뮤지컬은 보다 텍스트에 충실하려고 하나 소재적인 참신함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은 ‘뮤지컬의 토대는 연극이 아니라 오페라’라는 말이 적극 와닿는 작품이었다. 음악적인 측면은 오히려 고전적인 오페라와는 거리가 멀다. 작품 초반 명문 사립학교 호레이스 그린에서 엄숙하면서도 고전적인 음악들이 흘러나오긴 하나, 작품 전반을 꿰뚫는 음악은 록 음악이다. 그런데도 마치 토대가 오페라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 까닭은 뮤지컬에서 음악이 갖는 힘이 얼마나 큰지를 체험하기 해주기 때문이다. 작품은 코미디언 겸 배우 잭 블랙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를 통해 이미 알려진 스토리를 토대로 하며, 음악영화의 전형이라고 느껴질 만큼 참신함은 없다. 관객을 흡입하는 가장 큰 요소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음악이었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으로 알려진 뮤지컬계의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영화 ‘스쿨 오브 락’(2003)을 관람한 후 성공을 확신했고, 7년간의 협상 끝에 ‘파라마운트 픽처스(Paramount Pictures)’로부터 뮤지컬 제작 권리를 획득했다.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은 1971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이후 44년 만에 웨스트엔드가 아닌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웨버의 작품이란 점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2015년 브로드웨이 초연, 2016년 웨스트엔드에서 공연되며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거머쥐었다. 이후 미국·호주 투어를 거쳐 최초의 월드투어를 확정한 ‘스쿨 오브 락’은 중국에 이어 6월, 한국을 찾았다.

뮤지컬에는 ‘스쿨 오브 락(School of Rock)’ 등 영화에 사용된 3곡에 웨버가 새롭게 작곡한 14곡이 추가됐다. ‘스틱 잇 투 더 맨(Stick It to the Man)’ ‘유아 인 더 밴드(You’re in the Band)’와 같은 곡은 처음 들었지만, 중독성이 꽤 강하다. 사실 웨버는 록 뮤지컬의 표본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와 댄스에 특화된 뮤지컬 ‘송 & 댄스’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뮤지컬 작곡가의 힘은 곡을 잘 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음악이 텍스트와 얼마나 잘 녹아드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권력자에게 맞서라’고 번역한 ‘스틱 잇 투 더 맨’이 주는 쾌감은 짜릿하다. 키보드·베이스·드럼 등을 직접 연주하며 함께 외치는 스쿨밴드 학생들이 주는 전율은 깊숙이 자리한 로큰롤 스피릿을 일깨운다. 순진한 아이들을 꾀어내 록 밴드 경연대회에 나가게 한다는, 듀이의 치기가 기성세대로서 혹시 거슬린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철없던 때를 기억하며 웃고 넘어가기에 충분하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결국 작품의 메시지는 ‘나 자신을 찾는 것’이다. 아이들은 록 음악을 통해 부모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법을 배우고, 호레이스 그린의 교장 로잘리와 듀이의 친구들은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을 되찾는다. 최근 여러 매체에서 다수 등장하는 메시지이지만, 흥겨운 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뮤지컬이 그동안 가장 잘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열연 또한 인상 깊었다. 기본적인 발성은 말할 것도 없으며, 시종일관 무대를 뛰어다니며 관객에게 록 스피릿을 전염시킨 듀이 역의 코너 존 글룰리는 한 마디로 무대를 장악했다. 사실 우리가 뮤지컬 배우에게 기대하는 것은 멋짐도, 완벽한 가창력도 아닌, 무대 위 에너지와 열정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무대였다. 권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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