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

연극계 살롱문화? 느슨한 연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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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9월 2일 9:31 오전

REVIEW

 

 

최근 연극계 제작방식에 변화가 보이고 있다. 젊은 연극인들의 단체 소개 명칭에 ‘극단’보다는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더 자주 보인다. 배우 손상규·양조아·양종욱과 연출가 박지혜로 구성된 양손프로젝트는 배우가 곧 창작자인 ‘배우 창작자’의 소규모 연극그룹으로, 이미 두터운 팬덤층을 형성하고 있다. 연출가 김정의 프로젝트 내친김에는 작가 고연옥, 음향 지미 세르, 움직임 권령은 등 지속적으로 함께 작업하는 아티스트들과 암묵적인(?) 결합체의 성격을 보이고 있다. 최근 서울문화재단 뉴스테이지 작품으로 올라간 ‘구멍을 살펴라’는 무협 장르를 패러디한 ‘병맛’ 코드의 공연으로, 젊은 관객층의 입소문이 돌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작가·연출가의 이름이 김풍년으로만 소개되고 있을 뿐 공연단체에 대한 정보는 자세하지 않았다. 공연이 올라간 아르코예술극장 홈페이지에서야, 이들이 작가 김상희와 안무 금배섭이 만든 창작집단 작당모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기존 연극 단체가 연출가 중심의 극단이라는 단일한 하나의 정체성을 지향하는 반면, 이들 젊은 아티스트 그룹은 개인 창작자의 개별성을 중시하면서 다양한 연대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개인 창작자들의 느슨한 연대의 공연들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와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이하 ‘미인도 위작 논란’)은 각각 프로젝트 그룹 사막별의 오로라와 곰곰의 작품이다. 사막별의 오로라는 ‘배우 창작자’인 김정과 황은후의 공연팀이다.

곰곰은 “연출가겸 극작가 황재헌, 공간연출가 김동훈, 의상디자이너 조상경, 작곡가 조용욱, 배우 나경민과 김소정을 중심으로 모인 직업 예술인들의 느슨한 연대”라고 한다. 황재헌은 ‘아트’ ‘빌리 엘리어트’ ‘그와 그녀의 목요일’의 연출가다.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공연의 ‘직업적’ 연출가이기도 하다. 개인 창작자들의 ‘느슨한 연대’의 방식은 젊은 그룹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최근 젊은 세대 문화로 인문학 토론, 러닝크루, 요가크루 등 소규모 취향 공동체인 소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17~18세기 프랑스에서 성행한 귀족과 문인들의 지적 사교모임인 ‘살롱문화’가 부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혼밥’과 ‘혼술’ 세대로 불리는 젊은 층에서 이전과는 다른 공동체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연극단체 곰곰이 다음처럼 자신들을 정의하는 방식을 곰곰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예술적인 직업인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직업적인 예술가로서 자신을 재무장시키는 공간이자 마음속에 잠시 유예시켜 놓았던 예술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다시 꺼내 서로 공유하는 단체입니다.”

예술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은 신생 실험단체이든, 직업적 예술가이든 결코 만만치 않은 하중을 견뎌야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가장 단순한 ‘돌직구’의 질문이기도 하다. 기존의 극단 형태에서 더 이상 묻지 않는 질문이 얼핏 ‘딴짓’으로 여겨지는 ‘느슨한 연대’의 모임에서 돌직구로 던져지고 있다는 점이 새롭다.

 

윤리적 주체의 드라마, 그리고 연기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는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정과 황은후가 공동구성ㆍ연출ㆍ출연하고 있다.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어떻게 여성의 몸을 강박증적 집착의 대상으로 만드는지, 그리고 뷰티산업의 자본주의적 기술들이 어떻게 여성들의 주머니를 마지막까지 탈탈 털어 가는지 진지한 코미디의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종의 ‘탈코르셋’ 주제이다. 미투 국면에서 이미 다루어진, 어떻게 보면 상품진열 기간이 지난 주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공연에서 무엇보다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매 장면마다 정확한 목표와 표현을 보여주고 있는 연기이다.

이 공연의 설정은 일종의 과장법이다. 어느날 갑자기 여성들이 실종되고 있고,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쇄 실종사건은 유행의 트렌드에 뒤떨어진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괴담으로 번지고, SNS에서는 이를 ‘하이드비하인드’ 괴물의 이름으로 명명하고 “하이드비하인드에 맞서 아름다워질 필요가 있다”는 대대적인 새뷰티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뉴뷰티 운동의 광신도적 분위기는 자칫 그 과장법으로 연기가 공허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무대는 두 배우의 움직임만으로도 꽉 찬다. 두 배우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말하는 데서 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두 명의 배우는 거리에 나선 여자 X와 Y, 새뷰티 운동 본부장과 운동원, 대국민 뷰티프로젝트 ‘나는 뷰티퀸이다’ 진행자와 참가자 등 일인다역을 맡고 있지만 자신의 연기를 객관화해서 보여주는 중립적인 태도의 중심 또한 분명하게 유지하고 있다. 평행대 위에서 균형 잡힌 체조를 보는 듯한 쾌감을 주는 연기였다.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미인도 위작 논란’는 배우들의 실험을 위한 공연은 아니다. 강훈구 작가 자신에 의한 초연은 2017년도에 올라갔다. 초연을 미처 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황재헌 각색ㆍ연출 공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조작사건에 가담한 일종의 부정적 인물인 학예사 윤예나가 어떻게 선한 인물에서 악인으로 변모해 가는가의 모습이 아니라 선과 악의 경계에 서있는 흔들리는 존재, 윤리적 주체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 강훈구는 자신이 태어난 1991년 같은 시기에 일어난 두 가지 사건, 즉 ‘미인도’ 위작 논란과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그리고 같은 시기 개봉한 ‘터미네이터 2’를 중첩시키면서 1991년과 지금 현재 시점을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구원하지 못한 과거의 모습으로 국가 폭력과 시스템에 복종하는 기계적인 개인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자신의 세대감각으로 선배들의 역사를 다시 쓰는, 작가로서 일정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다.

그런데 이번 황재헌 연출 공연은 국가 폭력과 시스템의 문제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주체로서 윤예나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일종의 언어적 조롱이 들어가 있는 윤예나라는 인물을 다루는 관점에서 작가와 연출가의 차이가 느껴진다. 한편으로 이는 작가와 연출가가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해석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연극계의 변화의 한 흐름으로도 읽힌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단지 국가 시스템과 개인의 대립으로 확연히 구분되지 않고 연극계 내부의 구체적인 인물들로 함께 엮여 있었던 상황이 보다 복잡한 윤리적 국면들을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대 위에서 인물과 연기가 예민하면서 동시에 선명해지고 있다.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사진 페미씨어터·곰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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