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의상의 운명, 찬란한 생명력을 품기까지(2)

한국무용·창극 의상 국립국악원 무용단 ‘무원’, 창극 ‘내이름은 사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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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0월 14일 9:00 오전

한국무용·창극 의상 국립국악원

무용단 ‘무원’, 창극 ‘내이름은 사방지’

작품별 파헤치기

‘무원’(2016)

국립국악원이 한국무용가 조흥동과 함께한 작품으로, 선유락·처용무·승무·산조춤 등 총 14개의 전통춤을 한 무대에서 선보였다. 의상디자이너 김지원은 조흥동의 안무 자체가 장식적인 기교를 배제한 춤이라는 점을 고려해, 담백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춤 고유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디자인을 구현했다. ‘자연’으로 접근해 색을 추출하고 의미를 담아낸 것. 1부는 바다·하늘·땅·인간 등 자연에서 색을 추출해 이미지를 가져왔고, 2부에서는 꽃·나무 등 자연물의 이미지와 색감을 차용했다. 예를 들어 1부 선유락 의상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무늬와 색감을 사용했다. 파문(波紋)을 새겨 넣은 지백색 원삼과 청벽색 치마를 지었다. 2부 장고춤에서는 다산을 상징하는 석류 이미지를 차용, 석류문을 새겨 넣은 뒤 석류 고유의 진홍색과 주홍색으로 치마, 저고리를 만들었다. 특히 2부 부채춤에서는 모란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담자색(엷은 자주색) 치마와 지백색(전통 한지의 색으로 누렇게 바랜 책에서 느낄 수 있는 백색의 하나) 당의를 디자인했다. 꽃분홍색 부채, 화려한 꽃술을 새겨 넣은 빨간 치마와 노랑 당의 등 부채춤 하면 고정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탈피한 것이다. 디자이너 김지원은 전통의 원색이 현대적인 미감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여, 동시대와 소통하고자 좀 더 세련된 톤의 색감을 사용했다. 이는 조흥동이 추구하는 춤 세계와도 조화를 이뤘으며, 모란의 고귀한 이미지와도 어우러졌다. 김지원이 이처럼 색감에 집중하여 작업하는 이유는 색의 고유한 성질이 캐릭터를 가장 뚜렷하게 부각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관객이 무대 위 캐릭터의 첫인상을 판단하는 첫 번째 근거가 색감이라는 것. 따라서 색감에서는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각 춤이 갖는 근원적인 라인은 배제하지 않았다. 부채춤의 경우 치마·당의, 장고춤에는 치마·저고리와 같은 전통 이미지는 고수하되, 길이나 소매의 넓이 등을 일부 조정함으로써 모던한 이미지를 함께 추구했다.

 

‘내이름은 사방지’(2019)

‘내이름은 사방지’는 남과 여가 한 몸으로 태어난 조선시대 실존 인물 사방지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다. 사방지 역할을 맡은 소리꾼 김준수가 남성과 여성을 함께 표현해야 했다. 먼저 남과 여를 보편적으로 상징하는 파랑과 빨강을 섞은, 보라색을 주로 사용했다. 다만 배우 자체가 남성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빨강보다는 청색에 가까운 청보랏빛을 근본적인 색감으로 둔 뒤,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줬다. 여성성을 부각하기 위해 레이스와 망사 소재를 사용했지만, 지나친 레이스가 주는 산만함을 누르고자 벨벳 역시 함께 활용했다. 사방지의 분신이자 완전한 여성 캐릭터인 미자의 경우는 사방지에게서 홍색만 빼내어 완벽한 여성의 모습을 구현했다. 사방지가 넘어설 수 없는 질투의 대상인 매란의 의상에는 노랑을 사용하여 매란을 눈부시고 아름다운 존재로 표현했다. 전체적인 실루엣으로는 엉덩이 쪽을 부풀려 강조했으며, 새틴 소재가 주는 부드러우면서도 섹시한 이미지를 더했다.

 

의상 제작 과정

무용 의상 제작의 첫 단계는 대본과 함께 동선을 숙지하는 것이다. 특히 컨템퍼러리 무용의 경우 동작의 진행 과정을 알아야만 치마 한쪽을 터준다거나, 지나치게 넓은 폭 사용을 배제할 수 있다. 이후 리허설을 거치며 의상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시각적으로 디자이너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완벽하게 구현한 의상이라고 하더라도 퍼포머가 착용했을 때 불편함을 느낀다면 빠르게 수정하는 순발력 또한 필요하다. 특히 춤의 움직임은 소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지원이 주로 실크 소재를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가벼우면서도 조명에 잘 반응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무용은 옷도 신체의 일부가 되어 같이 춤을 춰야 한다. 소매가 굉장히 긴 한량무 의상은 마치 무용수의 팔이 멀리 연장된 것과 같다. 최대한 공중에 부유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소재여야만 소매가 뿌려졌을 때 멀리까지 아름다운 형상으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일반 한복과는 다른 무대의상으로서의 한복 제작 공식 또한 존재한다. 일반 한복은 안에 입는 옷에서부터 외투로 갈수록 점점 여유분이 늘어난다. 이처럼 겹겹이 공기를 품고 있기 때문에 한복을 ‘바람의 옷’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러나 무대의상에 일반 한복 공식을 적용하면 부피가 지나치게 커질 뿐 아니라 한 쪽 팔을 들어 올렸을 때 안의 소매들이 모두 딸려 올라가게 된다. 따라서 무대의상으로서의 한복은 가장 겉에 입는 옷, 예를 들어 쾌자(군복의 하나로 왕 이하 서민·하급군속·조례가 겉옷 위에 덧입는 옷)와 같은 의상의 소매를 타이트하게 만들어 팔을 들어 올려도 소매를 붙잡고 있을 수 있도록 제작한다. 또한, 앞뒤로 모두 여유분이 있는 한복과 달리 무대의상으로서의 한복은 등허리가 딱 붙을 수 있도록 앞쪽으로만 여유분을 주어 실루엣을 드러낸다.

글 권하영 기자 사진 국립국악원·김지원

 

뮤지컬 의상 

뮤지컬 ‘스위니 토드’ ‘지킬 앤 하이드’

 

작품별 의상 파헤치기

‘스위니 토드’(2019)

뮤지컬 ‘스위니 토드’ 10월 2일~2020년 1월 27일 샤롯데씨어터

통상적인 뮤지컬 장르에 예술적 실험을 감행한 스티븐 손드하임의 대표작으로,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콘셉트와 예측할 수 없는 음악, 그리고 비극으로 치닫는 스토리 전개가 돋보인다. 복수에 혈안인 비운의 이발사 토드와 파이 가게를 운영하는 극성스러운 아줌마 러빗이 주요 인물. 이발 과정에서 살인을 서슴지 않는 토드, 그리고 식인 파이를 만들어 판매하는 러빗 부인은 괴기스럽기 짝이 없다. 의상 역시 그들의 괴기스러움을 극대화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의상디자이너 조문수는 욕망의 끝이 주는 고통과 아픔을 표현하고자 했다. 캐릭터들의 죽음·상처·아픔을 통해 현대인의 상처를 위로하는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스위니 토드’의 의상 콘셉트는 보라색이다. 상처를 입고 난 이후의 멍 색깔에서 가져왔다. 극의 가장 처음 등장하는 토드는 보라색 롱코트를 입고 있다. 한 마디로 멍 덩어리다. 보라색 코트 속 조끼 역시 보랏빛이다. 러빗 부인의 경우, 얼핏 보면 붉은색 의상이 전부인 것 같지만 붉은 의상 안의 속치마는 보라색이다. 아픈 남자를 사랑하는 또 다른 아픈 여자를 표현했다. 붉은색을 통해서는 섹시함을 표현함과 동시에 토드를 사랑하는 무섭고도 귀여운 마음을 드러냈다. 소재 측면에서도 인물들의 상처를 표현하고자 가죽과 거즈를 사용했다. 가죽 원단을 사용한 이유는 피부와 가장 인접해 있는, 원시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원단이기 때문이다. 거즈 천은 상처를 감싸주는 거즈에서 차용했다. 가죽을 이용하여 만든 등장인물의 의상 모두를 일일이 스크래치내고 찢은 이후, 또 다른 가죽과 거즈를 사용해 꿰매는 작업을 거쳤다. 러빗 부인은 물론, 앙상블의 뷔스티에(브래지어와 코르셋이 연결된 형태의 여성용 상의)까지 모두 가죽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것이다. 소품 역시 가죽이 빠지지 않는다. 러빗 부인이 소지한 행주뿐 아니라 가면무도회에서 앙상블이 착용한 가면 역시 가죽이 흘러내리도록 하는 작업을 거쳐 만들었다. 코트를 벗는 것을 제외하고는 의상 체인지가 없는 토드와는 달리 러빗 부인의 의상은 1막과 2막이 다르다. 1막의 기워진 옷보다 2막에서는 한결 화려해진 옷과 머리 모양을 통해 “쟤 돈 좀 벌었네?”하고 관객이 느끼도록 함과 동시에 사랑하는 남자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러빗 부인의 심리를 표현했다.

‘지킬 앤 하이드’(2018~2019)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한 인간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캐릭터다. 한 배우가 이성을 갖춘 최고의 신사인 지킬 박사와 내면의 악마적인 요소를 최대치로 끌어낸 하이드를 함께 표현해야 한다. 배우의 목소리나 연기 톤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의상을 통해서도 이들의 차이를 극대화했다. 정갈하게 묶은 머리의 지킬은 최고급의 정장을 착용해 럭셔리함을 더했다면, 하이드는 머리를 지저분하게 풀어 헤쳤을 뿐 아니라 코트 위에 케이프를 덧입어 거대한 실루엣을 구현했다. 악이 더욱 커져가는 상황을 암시하기 위해서다. 특히 지킬과 하이드가 직접 대면하는 절정의 넘버 ‘컨프론테이션(Confrontation)’에서는 한쪽은 소매를 걷지 않은 깔끔한 흰색 셔츠를, 반대쪽은 소매를 걷어붙였을 뿐 아니라 핏자국이 얼룩진 셔츠를 표현함으로써 선과 악의 대립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의상 운용 과정

더블 캐스팅이나 트리플 캐스팅이 일반적인 뮤지컬에서는 배우별로 의상 콘셉트가 다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 조문수는 배역에 따른 기본 콘셉트는 바꾸지 않는다. 신체적인 구조에 따라 디자인을 조정하는 것 정도가 전부다. 재공연의 경우, 가능한 이전 제작된 의상을 재사용하나 주역들의 의상은 새롭게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연출가가 변경되어 전체적인 콘셉트가 바뀐 경우에는 조연이나 앙상블 의상도 새롭게 제작한다. 오는 10월 공연되는 ‘스위니 토드’의 경우, 토드의 딸인 조안나의 의상이 공주풍의 의상에서 좀 더 자연스러운 의상으로 바뀔 예정. 공연이 끝난 이후 작품 의상은 각 컴퍼니에서 직접 관리한다. 레플리카·논레플리카 여부에 따라 의상 디자이너의 역할 또한 달라진다. 논레플리카의 경우 디자이너가 자율적으로 의상을 디자인하지만, 레플리카는 원 디자이너의 의상을 그대로 들여오는 경우도 있다. 뮤지컬 ‘위키드’나 ‘오페라의 유령’ 내한공연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제작 레플리카의 경우, 소재나 소품 등을 디자이너가 직접 마련하여 원 디자인과 최대한 가까운 의상을 제작해야 한다. 뮤지컬 ‘킹키 부츠’의 의상디자인을 맡았던 조문수는 미국 현지에서 소품과 소재를 직접 구입해 원작과의 싱크로율을 높였다. 그가 제작한 ‘미스 사이공’의 레플리카 의상 역시 오늘날 해외 프로덕션에서 활용되고 있다.

글 권하영 기자 사진 오디컴퍼니·조문수


BACKSTAGE   뮤지컬 ‘헤드윅’

올해로 한국 공연만 15년째인 뮤지컬 ‘헤드윅’. 화려한 가발과 의상을 착용한 트랜스젠더 록 가수 헤드윅은 자극적이면서도 아름답다. 반짝거림 뒤 얼핏 비치는 슬픔은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헤드윅’은 모든 배우의 개성을 살려 각기 다른 의상과 소품을 제작한다. 초연부터 뮤지컬 ‘헤드윅’의 의상을 담당해 온 디자이너 안현주와 함께 뮤지컬 ‘헤드윅’의 백스테이지를 꼼꼼하게 돌아봤다

글 권하영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

의상 퀵체인지

총 7~8번의 퀵체인지가 일어나는 의상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헤드윅이 거대한 망토와 핫팬츠를 입고 등장하는 첫 부분(1)과 원피스로 갈아입은 이후의 부분(2)이다. 극 초반에는 중성적이면서도 발랄한 이미지를 주고자 핫팬츠나 바지와 같은 활동성 있는 의상을 활용한다. 반면 원피스를 입고 나서부터는 헤드윅의 여성성과 드라마가 강조된다. 특히 짧은 원피스를 입는 이유는 라인을 드러내기 위한 것도 있지만, 기능적인 비밀도 숨어 있다. 클라이맥스에서 헤드윅이 혼자서 옷을 뜯어낼 수 있도록 원피스에 똑딱이 단추를 부착하는데, 기장이 너무 길면 옷을 쉽게 벗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배우별 의상 특징

오만석은 완숙한 여인의 이미지다. 다소 어두운 피부톤에 어울리는 블랙 앤 화이트를 믹스매치했다. 정문성에게는 깡마른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섹시함을 표현했다. 웬만한 여성도 소화하기 힘든 싸이하이 부츠를 신고서 무대를 활보한다. 전동석은 아름다우면서도 세련된 뉴요커 느낌의 여성이다. 그의 신발들은 모두 발레리나 콘셉트로 제작했다. 가장 어린 윤소호는 풋풋한 여성의 느낌을 살리고자 베이비 핑크를 활용했다. 이처럼 배우별로 각기 다른 의상을 제작하는 이유는 배우가 추구하는 헤드윅 느낌에 맞는 의상을 구현해야 하기 때문. 의상디자이너 안현주는 이들과 끊임없는 상의 과정을 거친다.

❶ 망토 원작과 초연에서 활용된 망토는 미국 성조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디자인으로, 망토 안쪽에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번 시즌 활용되는 망토는 ‘뉴메이크업’ 시즌(2016)부터 변경된 것으로, 서양 르네상스 느낌을 표현했다. 자가드 원단을 사용하여 드레시한 느낌을 줬고, 이전 성조기 망토보다 부드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구현했다. 직접 착용해 본 기자는 엄청난 무게감에 놀랐고, 팔을 끼운 뒤 느껴지는 의외의 안정감에 다시 한번 놀랐다.

 

❷ 진 소재 2002년 국내 초연에서는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의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면, 최근에는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과감한 시도도 감행한다. 공연의상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핫팬츠나 진 소재 등 파티에서 시도해 볼 만한 실용적인 디테일을 많이 사용한다. 다만 배우들이 어떤 옷을 입든 여성으로 변화하는 느낌은 놓치지 않는다.

❸ 언밸런스·비대칭 ‘하나가 되기 위해선 양쪽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헤드윅을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헤드윅이라는 캐릭터의 원칙은 언밸런스, 비대칭, 자유분방함이다. 이를 표현하고자 일일이 수작업한 스톤도 대칭을 맞추지 않고 흩뿌리듯이 붙였다. 재킷에도 한쪽에만 술을 달았다. 배우 오만석이 신는 신발 역시 양쪽 색깔이 다르다.

 

❹ 속옷 여성의 옷맵시를 표현하고자 패드가 들어간 특수 브래지어를 제작한다. 헤드윅이 토마토를 짓이기는 클라이맥스 장면을 위해선 그전에 백스테이지에서 브래지어 속 패드를 토마토로 바꾸는 찰나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은 배우들이 핫팬츠를 입은 모양새를 위해 엉덩이에 착용하는 패드를 만들어달라고 한 적도 있지만, 안현주는 극구 말렸다. 인위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헤드윅이 우스꽝스러워지는 순간 메시지는 힘을 잃는다는 생각 때문.

 

❺ 수선 디자이너 안현주는 배우의 만족도를 최우선으로 둔다. 배우가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스스로 안정감이 있어야 하기 때문. 의상팀은 공연 3시간 전부터 백스테이지에 도착해 의상을 세팅하고, 공연 이후 세탁 작업을 완료하고서 가장 늦게 귀가한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은 ‘헤드윅’에는 현재 1명의 의상팀이 상주하고 있다.

 

뮤지컬 ‘헤드윅’ 8월 16일~11월 3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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