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손혜수

낮은 목소리로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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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0월 30일 9:00 오전

INTERVIEW

귀국 후 세 번째 리사이틀을 갖는 손혜수. 그가 후배 성악가에게 전한 말

 

©SihoonKim

오는 11월, 베이스 손혜수를 둘러싼 이슈는 서울시오페라단 ‘돈 조반니’와 단독 리사이틀이다. 그는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모차르트 콩쿠르 등에서 우승, 12년간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과 비스바덴 국립극장 전속 가수로 활약했다. 경력에 비해 국내 언론과의 접촉은 유독 적었다. ‘객석’과의 인터뷰도 이번이 처음.

손혜수에게 성악을 시작한 계기부터 물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자라, 어린이 합창단에서부터 두각을 드러냈고,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기 위해 성악을 택했다는 다소 일반적인 이야기. 첫 답변을 마친 그가 조심스레 묻는다. 자신을 홍보할 만한 경력과 이슈보다는 독일 극장에 서게 된 과정을 중심으로 말해도 되겠냐고.

오전 인터뷰에 이어 오페라 리허설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 그에게 여유가 되냐 물으니, 라면 먹을 시간만 있으면 된단다. 그러면서 다음 세대의 과실에 밑거름이 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한다.

 

손혜수가 걸어온 길

손혜수는 서울대 음대를 졸업했다. 음대 졸업 후 모두가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향할 때, 그가 끊은 티켓은 독일 행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와 달리 독일은 학교와 극장이 연계돼 직업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었다. 독일 극장 오디션은 대부분 에이전시를 통해 진행되는데, 에이전시에서 유서 깊은 음악 학교로 학생들을 스카우트하러 온다는 것이다. 한 선배가 발성과 노래를 잘 배워놓았으니, 일하러 독일로 가라고 조언했다. 덕분에 베를린 음대와 드레스덴 음대에 수학하면서 언어를 체득하고 여러 마에스트로와 만날 수 있었다.”

결국 선배의 조언으로 인해 베를린으로 향한 그의 행보는 정확했다. 2003년부터 2년간 뉘른베르크 국립극장에서, 2005년부터 2014년까지 비스바덴 국립극장에서 활동했던 것도 대세를 따르지 않은(?) 그때의 결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결정만으로 그의 극장 인생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콩쿠르는 심사위원으로 온 극장장이 오디션을 제안하는 등 여러 커넥션이 형성되는 장이 된다. 그 역시 수많은 유학생처럼 극장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콩쿠르에 참가하면서 자신을 단련시켰다. “일본 애들은 돈으로 들이밀고, 중국 애들은 머릿수로 들이밀고, 한국은 맨땅에 헤딩하면서 콩쿠르에 나간다.”는 말이 유학생 사이에서 돌 만큼 경쟁은 치열했다. 노력한 결과 2001년부터 매해 마르세유 콩쿠르·모차르트 콩쿠르·마리아 칼라스 콩쿠르에서 차례로 우승했다.

“성악에서 콩쿠르는 기악처럼 도착점은 아니다. 우승 후 곧장 스타가 되거나, 유명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이뤄지진 않았다. 콩쿠르는 극장에 입성할 수 있는 출발선이 될 뿐이다. 학생 신분으로 콩쿠르에 참여하는 데 드는 항공료·숙박·식비가 부담됐지만, 부대비용을 제공해주는 콩쿠르도 있었다.”

겸손한 답변이었지만, 몇 분 뒤 손혜수는 웃으며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엔 내가 모차르트는 세상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결선에서 오페라 ‘돈 조반니’ 중 ‘카탈로그의 노래’를 불렀던 그는 실제로 2003년 뉘른베르크 극장에 올라 이 콩쿠르에서의 에너지를 쏟아 넣었다.

 

후배들을 위한 팁

지금도 많은 성악가가 꿈을 갖고 유럽 행 비행기를 타고 있다. 손혜수와 같은 길을 가고 싶은 것이다. 독일의 경우 소도시마다 극장이 있고 한 극장에서만 연중 400회 이상의 오페라 공연이 열린다. 이탈리아 오페라 시장마저 무너진 지 오래인 지금, 어쩌면 독일은 성악가들에게 최선의 선택지가 될 것이다.

‘돈 조반니’(2015)

“오디션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빅3’가 있다. 극장장, 음악감독, 상주 연출가다. 이들이 추구하는 바에 따라 극장에 올라가는 작품도, 필요한 가수도 달라진다. 노래는 물론이고, 연출가로부터 합격점을 받으려면 연기력이 중요하다. 극장이 한국 성악가들과 재계약을 거부할 때 자주 기재하는 사유가 연기력 부족이다. 오페라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무대에서 몸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극장 전속 가수가 되면 월급을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여름엔 40일의 유급휴가도 주어진다. 손혜수는 2003년 뉘른베르크 국립극장에서 스타터(Anfänger·극장에서 조·단역을 맡는 전속 가수의 첫 단계)로 경력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주인공을 시키더라. 적은 월급의 스타터를 주역으로 쓰면서 극장 예산을 아끼는 거다. 일 년에 오페라 30여 편을 올리는 비스바덴 국립극장에도 10년간 있었으니, 웬만한 오페라의 베이스 주역은 다 해봤다. 레퍼토리를 공부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는 주역가수로 빠듯한 극장 스케줄을 소화하는 한편, 국내 작품도 병행했다. 국립오페라단 ‘피가로의 결혼’(2008), ‘룰루’(2010)를 비롯해 2009년엔 정명훈의 지휘로 서울시향 신년음악회에서 협연했다. 전속 가수의 외부 활동을 꺼리는 극장과 갈등은 없었을까.

“내가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한국에서 작품을 하기 위해 극장에 자주 했던 말이 있다. “지금 나는 겨우 간장에 밥만 먹는데, 한국에 가야 거기서 고기도 좀 먹고 하지 않겠나!” 양국 무대를 병행하려면 인간적인 어필과 현실적인 어필 모두 필요하다. 극장에서 확실히 결정되지 않은 프로덕션을 이유로 거절하면 “나를 빼고 동료를 넣어라. 대신 두 번 공연 중에 한 번은 내가 페이를 지불하겠다”며 거래를 시도했다.”

 

새로운 발걸음

2015년부터는 극장에서 독립해 프리랜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 무엇이 더 나은지 들었다.

“프리랜서는 4, 5년치의 미래 계약서를 가지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거다. 프리랜서로 세계 곳곳에서 연주하려면 1년 내내 출장을 다녀야 한다. 때문에 수면장애가 있는 동료도 많다. 평생 하긴 어려운 일이다. 가능하다면 소속 극장을 두고, 계약을 갱신할 때 일정 기간 다른 곳에 머물며 노래할 수 있는 조건을 반영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그래서 요나스 카우프만처럼 유명한 성악가도 독일의 작은 극장에 6, 7년간 전속 가수로 있었다.”

‘돈키호테’(2006)

20여 년의 독일 생활을 마치고, 현재 손혜수는 국내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오페라 이후 리사이틀과 콘체르탄테로 이어지는 무리한 스케줄이지만 무척 즐겁다고 했다. 이달 있을 리사이틀은 지난 두 번과 달리 슈베르트·슈만·모차르트 등이 작곡한 독일 가곡으로만 구성했다.

“연습하면서 동료들과 “우리는 원로 성악가”라고 농담한다. 그만큼 귀국 후 전문 연주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지고 있다. 공연이 없으니 좋은 인재가 한국에 들어와도 금세 노래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연이은 공연에 피곤하긴 해도 감각과 기량을 유지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번 리사이틀은 독일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독일 가곡을 선곡했다. 독일 문화 특유의 절제된 감성을 음악으로 전하고자 한다. 리사이틀은 오페라처럼 오케스트라나 배역, 분장이 없어 벌거벗은 느낌이 든다. 본연의 모습으로 모든 기량을 보여줘야 한다. 목소리만으로 관객과 호흡할 때 느껴지는 기분 좋은 긴장감을 기대 중이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서울시오페라단 ‘돈 조반니’

10월 30일~11월 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베이스 손혜수 리사이틀

11월 2일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마시모 자네티/경기필 ‘돈 조반니’ 콘체르탄테

11월 3일 오후 5시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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