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오페라단 단장 이경재

이상과 현실, 한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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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0월 7일 11:12 오전

INTERVIEW

서울시오페라단 이경재 단장은 임기가 2년 연장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남아 있는 나날, 그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이상과 현실의 관계는 기묘하다. 이경재를 만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상을 좇으면 현실로, 현실을 좇으면 다시 이상을 꿈꾸게 되니 말이다.

이경재는 2017년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으로 임명됐다. 지난달 그의 임기가 2년 더 연장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예술단 단장에게 연임은 매우 중요하다. 신임 단장으로 부임해도 1년 동안은 미리 계획됐던 레퍼토리를 소화해야만 한다. 앞으로의 2년은 그가 품은 이상향을 마음껏 펼치는 나날이지 않을까. 그러니 조금은 들떠있지 않을까. 조금 들떠도 되지 않을까.

이경재와 마주 앉았다. 어렴풋했던 그의 눈빛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더 믿음직했다.

 

최근 국립오페라단은 단장 임기에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서울시오페라단 이경재 단장의 안정적인 임기 연장이 괜히 더 반갑다.

지난 2년은 학습의 시간이었다. 서울시오페라단의 특수성을 파악해야 했다. 우리 오페라단은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과 구조적으로 떼놓고 갈 수 없다. 최근 국립오페라단의 가장 큰 이슈는 제너럴 디렉터와 예술감독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소위 제너럴 디렉터로서 오페라단의 구조와 행정을 학습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예술감독으로는 서울시오페라단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것 같다.

정체성에 관한 답은 찾았나.

지난 박세원 단장과 이건용 단장은 그분들의 색이 분명했다. 박세원 단장은 베르디의 대형 작품을 많이 올리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고, 이건용 단장은 작은 프로덕션이어도 관객을 자주 만나고 창작 오페라를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을 지켰다. 사실 나는 지난 2년 동안 서울시오페라단에서 내가 해보고 싶었던 걸 많이 했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거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국내 오페라를 위해 서울시오페라단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의 2년이 진짜 하고 싶었던 것들을 보여주는 임기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다.

작품을 예술적으로 어떻게 개발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많은 관객이 있어야 원론적인 저변 확대가 가능하다. 실제 오페라 마니아는 정작 한국에서 오페라를 안 본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국립오페라단은 해외 인력을 많이 수입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국내 오페라 제작 시스템과 인력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래서 서울시오페라단은 가능하면 한국 아티스트 중심으로 작품을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을 국내 관객에게 많이 알리고 싶다. 2년 동안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와 같은 희귀한 작품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일반 대중이 오페라도 잘 모르는데, 낯선 오페라 작품을 선뜻 볼 수 있는 용기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임기 2년간 시도해보고 싶은 걸 해봤다고 하니, 지난 레퍼토리를 되짚어보고 싶다. 우선 2018년 4월에 올린 ‘투란도트’는 무대 구성을 중국이 아니라 미래로 설정해 인상 깊었다.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렸다. 오페라 애호가가 아닌 일반 관객은 어색하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오페라는 태생적인 단점을 안고 있다. 언어가 다르지 않은가. 자막이 있긴 하지만 한국 관객에게는 다른 나라의 언어가 첫 번째 벽이 된다. 그런데 작품의 배경까지 바꾸니 더욱 이질적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앞으로는 세종문화회관의 공간성을 활용해 작품을 올리고 싶다. 예를 들어 M씨어터와 S씨어터에는 오페라 미래 관객을 위한 어린이·청소년 프로그램을 올리려고 한다. 레지테아터를 지양하겠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전통적으로 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시대를 고증해 무대로 재현하는 일은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다.

2018년 연말에는 ‘현대오페라시리즈’를 올렸다. 보통 연말 오페라라고 하면 ‘라 보엠’을 떠올리는데, 메노티 작품을 선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라 보엠’은 크리스마스가 배경이어서 보통 연말에 많이 공연된다. 냉정하게 말하면 굳이 연말에 사람이 죽는 이야기를 봐야 할까 싶었다. 시즌 감수성을 풍요롭게 만드는 작품이길 바랐다. ‘아말과 동방박사들’은 예수 탄생을 소재로 만든 오페라인데, 메노티가 현대 작곡가여서 현대의 질감이 잘 느껴진다. 그 시즌을 투영해주는 아름다운 이야기. 연말에는 이런 작품이 레퍼토리화되어 전국에 퍼지면 좋겠다.

 

‘베르테르’

올해 ‘베르테르’는 김광보 연출과의 협업으로 주목받았다. 연극연출가에게 오페라를 의뢰할 때는 무엇을 기대하나.

상당히 많은 작품이 오페라를 베이스로 시작했다. 연극 연출을 잘하면 당연히 오페라 연출도 잘한다는 말에는 이의가 있다. 오페라는 대사의 흐름이 음악적이기 때문에, 악보를 다 분석하지 못하면 힘들다. 작곡가는 대본을 읽고 그 느낌을 악보에 넣는다. 악보에 숨겨진 의미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면 오페라는 산으로 간다. 제일 필요한 건 훌륭한 오페라 전문 연출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텃밭킬러’

‘텃밭킬러’는 서사 구조가 단단해 재밌더라. 오페라에서도 동시대를 담은 창작 이야기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현재 세종 카메라타의 방향성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텃밭킬러’는 2년 전 워크숍을 통해 발표된 작품이다. 무대 위까지 오는데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창작 오페라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일반 오페라 관객에게 관심을 받기가 어렵다. 오페라는 자국의 역사와 문화, 언어를 배경으로 자체적으로 자신들의 문화로 발전시켜왔다. 얼마 전 일본에 오페라 심포지엄을 다녀왔는데 다들 한국 오페라가 보고 싶다고 하더라. 아직 대표할만한 한국 오페라가 없는 것 같다. 세종 카메라타 내부 구성원이 앞으로 어떻게 다음 단계로 갈지 의견을 수집할 필요가 있다. 생물이 성장하려면 능동적인 세포 분열이 있어야 한다.

서울시오페라단이 청중 개발을 위해 지속적으로 시도했던 ‘오페라 마티네’는 지난해 12월로 정리된 것인가.

완전히 정리한 건 아니다. 내년부터 다시 하고 싶다. 다음 마티네를 위해 쉬는 기간이 필요했다. 잠시 중단한 이유는 레퍼토리 때문이다. 그동안 30여 개의 오페라를 선보였는데, 계속 비슷한 레퍼토리가 반복되다 보니 관객에게 새로운 걸 보여주지 못한다는 미안함이 들었다. 관객 개발을 위해 전임 단장님과 오페라 마티네를 시작했다. 6개월 만에 전석 매진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 ‘오페라 마티네’ 관객이 대극장으로 소화가 안 되더라. 독특한 주제를 갖고 더 좋은 모양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나아가 고정 관객층 확보도 시급해 보인다.

오페라 관객의 타깃을 구체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서울 시내 학교에 홍보 자료를 보내고, 불특정 다수를 위해 육교에 홍보 현판을 설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효과적이지는 않다. 구체적인 관객 타기팅을 마련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관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자 애쓰고 있다.

현재 국내 성악가들이 해외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두드러지게 활약하고 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 저명한 콩쿠르에서도 지속적으로 입상 소식이 들린다. 지난 2년간 서울시오페라단에서 이러한 스타 캐스팅을 못 만나봤다는 아쉬움도 든다.

시도를 안 한 건 아니다. 젊은 성악가들은 이제 막 해외에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모두 서울시오페라단에 서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일정을 맞추기가 정말 어렵더라. 다들 2년 동안 스케줄이 꽉 차있다. 그런데 오페라단은 2년 뒤 일정을 지금 만들 수가 없으니 아쉽다.

오는 10월, ‘돈 조반니’의 연출을 맡는다. 이번 작품에서 관객은 무엇을 주목하면 좋을까.

일반 관객의 이해도를 돕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또한 고전적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 ‘돈 조반니’에는 삶을 살아가는 일곱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사람들이 집중되려면 무대를 비워야 한다. 그러면 인물들의 움직임이 더 효과적으로 보일 것이다. 1780년대 후반부터 수많은 ‘돈 조반니’가 있었을 텐데, 여태껏 ‘돈 조반니’가 존재하는 이유는 시대가 늘 변했기 때문이다. ‘돈 조반니’가 현대의 누구를 투영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번 공연에는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가 이끄는 경기필이 함께한다.

마시모 자네티가 한 인터뷰에서 “모차르트의 모든 음악은 기본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학습을 온전히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 인터뷰를 보고 모차르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돈 조반니’를 잘 이끌어나갈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장혜선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

 

서울시오페라단 ‘돈 조반니’

10월 30일~11월 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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