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25주년 세종솔로이스츠

세종을 통한 문화적 뿌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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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0월 2일 9:28 오전

INTERVIEW

이신우 ‘여민락교향시’ 세계초연으로 세종의 뜻을 되새겨보는 10월

 

연주는 작품이라는 씨앗을 실어 나르는 바람과도 같다. 바람이 정착한 곳에 씨앗이 내려앉고 싹을 틔운다. 1994년 창단하여 올해 25주년을 맞은 세종솔로이스츠는 꾸준히 그 씨앗을 실어 나른 바람 같은 존재이다.

악착같이 챙겨가는 동시대성이라고 해야 할까. 세종솔로이스츠는 오늘날에 태어난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 그들만의 강령이라도 되듯 공연마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지난 7월 2일 공연(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도 이들은 어김없었다. 매년 이어가고 있는 ‘힉엣눙크!’ 시리즈의 일환으로 선보인 ‘트랜스-시베리안 아트 페스티벌 인 서울’ 공연은 패르트, 마스네, 차이콥스키, 라벨의 작품과 함께 알렉스 이구데스만(1973~)의 ‘코베리아 판타지’를 선보였다. 코베리아(Koberia)란 ‘코리아’와 ‘시베리아’의 합성어.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가 시베리아를 지나 차이콥스키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경유하여 에스토니아(패르트), 프랑스(라벨)로 향하는 여행을 상징한다는 것이었다. 협연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과 클라라 주미 강이 함께 했다.

창단 25주년을 맞은 세종솔로이스츠는 올해도 세계초연을 통해 그간의 시간을 되새겨본다. 10월 세계 초연으로 이신우(1969~) 서울대 교수가 작곡한 ‘여민락교향시’를 선보이는 것.

여민락(與民樂)이란 “백성과 더불어 즐기자”라는 뜻의 음악으로, 세종이 창제했다. 세종은 1418년부터 1450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한글을 비롯한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등을 만든 음악의 왕이기도 했다. ‘여민락’은 세종조의 모든 기록이 수록된 ‘세종실록’을 통해 전해내려오고 있으며, 궁중음악을 전승하는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무대에 올리곤 한다.

 

세종솔로이스츠가 그리는 세종

‘여민락교향시’는 세종시의 문화정체성 확립을 위해 세종대왕의 문화적 성취를 재조명하자는 세종시문화재단 기획과 위촉으로 탄생한 곡이다. 창단 당시 “한국의 정통성을 세계에 선언하고, 세계화 시대에 맞춰 한국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세종’이라는 이름을 지은 강효 예술감독의 포부와 꿈은 이번 공연을 통해 또 하나의 물꼬를 튼 셈이다.

현악기들과 플루트·오보에· 클라리넷이 함께 하며 13분 분량의 단악장 구성이다. 세종솔로이스츠는 10월 4일 세종문화예술회관(세종시 소재)에 오르는 ‘세종대왕에 대한 오마주’ 공연에서 세계초연으로 선보인 뒤, 5일 세종축제 개막 연주로 이어나간다. 그리고 6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콘서트 시리오소’ 공연에서 초연의 감동을 서울의 관객과 함께 나눈다.

‘여민락’의 첫 부분은 현악 앙상블과 목관 악기들이 국악 특유의 여유로운 박자를 유지하며 시작한다. “원곡 고유의 특성을 차용하면서도, 관객이 감상에 어렵지 않도록 했고, 3박자로 구성된 리듬이 호흡에 내재되어 여유로운 템포 속에서도 운동감을 주도록 했습니다.(이신우)”

작곡가가 작업 시 내심 신경 썼던 것은 “세종대왕이 견뎌야 했던 고뇌의 시간”이었다. “당시 중국성리학 중심의 세계관 속에 추진되었던 훈민정음 창제, 당연시되던 중국아악의 연주 풍토에서 피어난 우리 고유의 향악. 이 위대한 업적 이면에는 세종대왕이 직면했던 엄청났던 반대와 절망, 실패와 이를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가 담았습니다.” 작곡가의 상상력을 통해 세종의 고뇌를 비춰본 대목은 현악기 특유의 투명한 음색으로 고음역을 향해 점점 상승하는 방식을 취한다. 고난을 딛고 한 걸음씩 이루어 나가는 세종의 고요하고 신중한 행보. 그 발걸음은 곡의 끝자락에 인용된 여민락의 선율과 만나 곡은 종결된다.

 

작품은 연주를 통해 시대와 공생

세종솔로이스츠의 초연 무대는 언제나 그렇듯이 전략적이다. 지금 이곳에서 태어난 작품을 고전으로 명명된 작품 사이에 배치하고, 새 작품은 그 곡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세종솔로이스츠를 이끌어온 강효 예술감독이 2006년 제3회 평창대관령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으로도 활약하던 때에 세계초연한 강석희(1934~)의 ‘평창의 사계’는 좋은 예이다. ‘평창의 사계’는 14명의 현악주자와 바이올리니스트 1명이 연주하는 16분 남짓의 협주곡이다. 계절별로 2개 악장씩 총 8개 악장으로 구성됐다. 이 곡은 비발디, 차이콥스키, 피아솔라의 ‘사계’와 함께 연주되며 21세기에 태어난 ‘사계’로서의 의미를 획득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 울려 퍼진 작품은 세종솔로이스츠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타고 파리 살 가보, 런던 카도간 홀, 베이징 세기극원, 뉴욕 카네기홀 등에도 올려졌다. 길 샤함, 장영주 등이 협연자로 함께 하기도 했다. 하나의 연주단체가 지닌 탄탄한 국제적 네트워크가 작품의 향방과 생명력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세종솔로이스츠는 몸소 보여주었던 것이다.

10월 6일, ‘여민락교향시’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다. ‘골드베르트 변주곡’은 드미트리 시트베스키(1954~)의 현악 3중주 편곡 버전이다. 진지한 공연이라는 뜻의 ‘콘서트 시리오소’를 공연명으로 내세운 이번 무대에서 ‘여민락교향시’와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어떻게 보면 ‘안녕’이라는 코드로 만나는 듯하다. 여민락에는 백성의 안녕을 위한 세종의 마음이 담겼고,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흐가 불면증에 시달린 카이저링크 백작을 위해 작곡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여민락교향시’ 역시 세종솔로이스츠가 개척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로 퍼질 예정이다. 11월 21일 뉴욕 카네기홀이 그 첫 번째 무대이다. 작곡가, 작품, 연주단체의 ‘상생’이 한국창작곡의 ‘영생’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세종솔로이스츠는 올해도 좋은 사례를 보여줄 것이다.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세종솔로이스츠

 

세종솔로이스츠 ‘여민락교향시’

10월 4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예술회관(세종시) 이신우 ‘여민락교향시’ 세계초연

10월 5일 오후 7시 세종호수공원

10월 6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콘서트 시리오소’ ‘여민락교향시’, 골드베르크 변주곡

11월 21일 오후 7시 30분 뉴욕 카네기홀 갈라 콘서트 ‘여민락교향시’ 미국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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