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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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2월 2일 9:23 오전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트리오 오원 10주년 기념 음악회

11월 18일 오후 8시 | 롯데콘서트홀

강산이 변하기도 하는 10년의 시간, 더구나 그 시간 동안 같은 음악적 가치를 추구하며 실내악 음악에 대한 열정과 비전을 공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트리오 오원이 창단 10주년을 맞아 음악회를 가졌다. 트리오 오원은 조선시대 화가 오원(吳圓) 장승업의 삶과 예술혼을 기리는 뜻으로 붙여졌다. 유럽과 한국에서 수차례 공연과 녹음 활동을 펼쳐왔고 유니버설 음반을 통해 드보르작 둠키 트리오, 슈베르트 트리오,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차이콥스키, 쇼스타코비치, 바인베르크 러시안 트리오 작품집을 발매해 온 오원은 유수 공연장에서의 무대 이외에도 부산 국제 영화제 초청, 옐로우 라운지 공연 등 색다른 무대에서도 특별한 감동을 선사해 왔다.

올리비에 샤를리에(바이올린), 양성원(첼로), 엠마뉘엘 슈트로세(피아노)로 구성된 트리오 오원의 이번 10주년 음악회는 그런 면에서 그들이 다져온 음악세계와 앞으로 펼쳐나갈 새로운 음악세계의 비전을 동시에 들려준 시간이었다.

1부는 프랑스 출신(양성원은 파리 음악원에서 유학했다)의 연주자들답게 프랑스 작곡가 레퍼토리로 구성된 작품들을 선보이며 섬세한 뉘앙스와 개성 넘치는 해석, 다양한 색채감을 선사했다. 특히 인상주의적인 색채감이 곳곳에 드러난 드뷔시 트리오에서는 프랑스적인 자유로운 감성이 묻어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라벨의 이국적이면서도 바스크풍의 민요적인 주제 역시 균형있게 이끌어 가면서 신선한 감동을 선사했다. 트리오 연주로 평소 자주 들을 수 없었던 레퍼토리인 만큼 소중한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2부에서는 차이콥스키 트리오 Op.50 속에 담긴 따뜻하고 부드러운 선율과 다이내믹한 율동감이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 선율에 실려 아름다운 음악 풍경을 선사했다. 서로가 서로의 어깨가 되었던 10년의 시간이 음악 속에 스며들어 갑자기 찾아온 초겨울 바람조차 따뜻하게 녹이고 있었다. 국지연

 

악기가 마법사라면

필름 콘서트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11월 16·17일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저음역의 소리가 심장 고동을 울리는 첼로는 위압적인 어둠의 마법사, 따뜻한 음색이 온몸을 감싸는 플루트는 사려 깊은 할머니 마법사, 미묘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높은 소리의 바이올린은 교묘한 술수에 능한 마법사. 해리 포터가 지팡이를 악기에 대고 마법이라도 부린 것일까. 필름 콘서트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각 악기는 저마다 특정한 캐릭터를 형상화하고 있었다. 악기의 음색과 특징을 영화 속 서사와 절묘하게 결합한 존 윌리엄스의 음악을 생생히 체감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필름 콘서트에서는 무대 위 스크린에 영화 전편을 상영하는 동안 오케스트라가 영화 스코어를 실연한다. 필름 콘서트 ‘해리 포터’ 시리즈는 전 세계 대표적인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월드투어 공연으로 영화 제작사 워너브라더스와 공연기획사인 시네콘서트가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다. 11월에만 미국 달라스·태국 땀본·독일 뮌헨 등의 콘서트홀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코리아쿱오케스트라가 70인조 편성으로 연주했다. 여러 차례 필름 콘서트를 이끈 바 있는 지휘자 시흥 영이 익숙하게 관객을 호그와트로 초대했다.

연주 시작 전 지휘자는 그리핀도르·슬리데린 등 기숙사를 차례로 호명하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했다. 악보가 올려진 보면대 옆으로 영상이 재생되는 전자기기가 놓였다. 영상 위로 음악의 시작점과 박자를 표시하는 기호가 흘러갔다. 영화 ‘해리 포터’의 대표적인 곡 ‘헤드위그의 테마’를 여는 신비로운 첼레스타 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정말 들려만 왔다. 스크린 상영을 위해 무대를 어둡게 해둔 탓에 오케스트라의 연주 모습을 잘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관객의 눈길은 스크린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관객이 공연장을 직접 찾은 이유는 익숙한 영화음악의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고 싶어서일 것,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필름 콘서트 ‘해리 포터’ 시리즈는 올해 세종문화회관 시즌 공연으로 기획됐다. 지난 6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첫선을 보였고,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팀의 최인영 씨는 “몇 해 전부터 국내외 매니지먼트사들로부터 지속적으로 필름 콘서트를 제안받았다. ‘해리 포터’는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영화 음악의 완성도가 워낙 높고, 원작 영화가 젊은 층의 독보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선택했다”고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공연기획자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공연장 로비는 들뜬 관객들로 붐볐다. 로비는 이들을 맞아 ‘해리 포터’의 테마파크처럼 단장됐다. 마법책·지팡이·양초 등 영화 속 소품들로 포토존을 꾸몄고, 기둥에는 호그와트 기숙사의 휘장을 둘렀다. 새로운 관객에 맞춰 여타 클래식 음악 공연과는 다른 분위기를 낸 것이다. 가족 단위 관객이 주를 이뤘고,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출간되길 기다리며 유년 시절을 보냈을 20·30대 젊은 관객도 눈에 띄었다.

필름 콘서트가 클래식 음악 공연의 외연을 확장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료티켓예매율만으로 집계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필름 콘서트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은 11월 18일 기준, 지난 1년간 가장 높은 예매율을 기록한 공연 2위에, 필름 콘서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15위에 올랐다. 재밌는 현상도 나타났다. 클래식 공연은 1층 VIP석부터 판매가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필름 콘서트 ‘해리 포터’ 시리즈의 경우 3층의 B석부터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매진되는 모습을 보였다. 20대 관객의 유입이 하나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에 세종문화회관은 내년에도 필름 콘서트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이어간다. 필름 콘서트가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도록 연출적인 보완을 더한다면, 관객에게 ‘콘서트’ 관람의 즐거움까지 제공하는 색다른 클래식 공연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박서정

 

내 삶은 내가 찾는 것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10월 15일~2020년 1월 1일 |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

진 웹스터의 동명 소설 ‘키다리 아저씨’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 편지글로 되어 있는 도서의 특성을 고스란히 무대로 옮겨 왔다. 키다리 아저씨(제르비스)와 고아 제루샤만이 등장하는 2인극으로, 제루샤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 낭송과 넘버가 적절하게 어우러진다. 대사와 넘버가 따로 노는 듯한 작품도 많으나, 이 작품의 경우 넘버가 시작될 무렵 편지의 배경음악처럼 넘버의 주요 멜로디가 깔리다 넘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편이라 이질감이 적고 극 자체에 쉽게 동화된다. 단 3개의 악기만으로 선보이는 클래식한 선율 역시 잔잔한 극과 조화를 이룬다.

작품 속 대다수의 대사가 제루샤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개인의 생각을 공유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관객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이 편지 형식의 큰 특징이자 장점이었다.

제루샤 역의 유주혜는 활발하지만 당돌하게, 강인하지만 사랑스럽게, 양면을 오가는 역할을 단도리 있게 해냈다. 특히 편지글의 낭독이 대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바, 발음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데, 그의 딕션은 정확하여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특히 제루샤가 작가를 지망하고 있고(실제 극 중에서도 여류작가로 성장한다), 제르비스가 그의 에세이에 흥미를 느꼈으며, 극 중 거의 모든 대사가 편지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편지글이 갖는 문학성 또한 제작진이 고려해야 할 부분이었을 것이다. 번역의 과정을 거치며, 그리고 소설을 무대 언어화하며 이 부분이 어색하게 변화하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작사가이자 번역가인 이희준의 재능은 여기서도 빛을 발하여, ‘온 세상이 흰 눈으로 쌓여있는데 제 어깨에는 슬픔만 쌓여있어요’ ‘호수의 요정처럼 거짓말 속에 길을 잃었네’와 같이 서정적이면서도 제루샤의 감정을 아름답게 전달하는 편지글을 선보였다.

‘누가 누구를 돕는 것인지’라는 대사처럼 다소 역설적인 극이었다. 흔히 제루샤라는 한 고아가 제르비스라는 후원자를 만나 성장해가는 스토리라고 생각하지만, 일방적인 성장이 아니다. 오히려 제르비스가 제루샤를 만나 인간적인 성장을 경험한다. 제목은 키다리 아저씨지만, 실제 주인공은 제루샤 에봇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극들이 많이 등장했고, 등장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주인공의 성별이 여자일 뿐, 여전히 약하고 의존성이 강하며 주도적이지 않은 주인공들을 내세운 작품들이 많아 아쉬움이 컸다. 이 작품은 달랐다. 제루샤는 제르비스를 변화시키고, 본인 또한 주도적으로 변화한다. 모든 것이 외부적인 환경에 흔들리기 쉬운 취약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만의 신념과 의지를 꼿꼿이 지켜나간다. 오늘날 우리가 원하는 여성 주인공은 제루샤 에봇의 모습이 아닐까.

물론 남성 후원자가 등장하고, 순종적이기를 강요하는(예를 들어, ‘넌 내 답장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키다리 아저씨의 대사와 같이), 시대적 배경에서 오는 불완전성은 분명 존재했지만,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기도 전인 1912년 출간된 작품에서 가능성을 엿보았다는 점은 희망적이었다. 권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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