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얍 판 츠베덴 & 홍콩 필하모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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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2월 24일 9:00 오전

INTERVIEW

홍콩 필하모닉 대표 베네딕트 포어

2019년은 홍콩 필 역사에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된 해다. 새로운 대표인 베네딕트 포어(Benedikt Fohr, 1963~)의 취임과 함께 ‘그라모폰’ 2019 올해의 오케스트라에도 선정되었으니 말이다. 앞서 8년 동안 홍콩 필을 이끈 미카엘 맥로드에 이어 2019년 4월 홍콩 필 대표로 취임한 베네딕트 포어는 유럽의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30여 년을 활동한 전문가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태어난 베네딕트 포어는 만하임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프라이부르크 르셰르쉬 앙상블을 통해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 업계에 들어섰고, 카메라타 잘츠부르크, 룩셈부르크 필하모닉을 거쳐 2006년부터 12년 동안 도이치방송교향악단(DRP) 대표를 역임했다. 2015년부터는 룩셈부르크 에히터나흐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겸하고 있다.

홍콩으로 오기까지

오케스트라 매니지먼트의 세계로 들어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음악적으로는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도 궁금하다.

독일에서 MBA를 공부하면서 앙상블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알고 지내던 음악가들이 공연 기획이나 녹음 작업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순전히 우연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연주했지만, 절대 프로의 영역은 아니다.

그동안 유럽을 주 무대로 활동하다 2019년에 돌연 홍콩으로 거처를 옮겼다. 무엇이 당신을 이곳으로 이끌었나?

독일,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 유럽 여러 나라의 음악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거의 30년 동안 활동했다. 홍콩 필이 내 문을 두드렸을 때 이곳이 바로 나의 다음 거처가 될 수 있겠다고 느꼈다. 훌륭한 오케스트라와 최고의 음악감독,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말이다. 홍콩 필은 오랜 기간의 오케스트라 매니지먼트 경험과 에이전트, 아티스트, 공연장, 페스티벌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을 찾고 있었다.

홍콩 필과 만나다

다른 단체와 비교해 홍콩 필만이 지닌 독특한 운영방식이나 분위기가 있다면.

나는 오로지 긍정적인 마음과 진실한 의지를 가진 적극적이고 의욕 있는 위해 일하길 원한다. 홍콩 필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요즘에는 음악가들이 전 세계에서 교육을 받고, 또 상호 간 교류도 활발하기 때문에 전문 오케스트라들의 운영 방식도 거의 같다. 물론 재정적인 지원이나 노동법, 레퍼토리에 대한 관객의 기대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일정을 계획하고 구성하는 업무 자체는 비슷하다.

국가와 지역적 차원에서 홍콩 필이 지니고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또한, 시위가 극심한 현시점에서 홍콩 필이 대처하고 있는 자세나 역할이 있는지 궁금하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잘 짜인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을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홍콩 사람들이 우리 오케스트라를 자랑스러워하면 좋겠다. 음악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마음에 큰 영향을 준다. 음악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배경이나 정치적 감정을 가진 때라도 사회적인 역량을 길러주며 함께 모일 수 있게 만든다. 홍콩 필은 홍콩문화센터(香港文化中心)라는 협력 공간과 함께 홍콩 정부는 물론, 원양해운·운송사를 소유한 스와이어 그룹 등에서 지원 받고 있다.

재정적 지원은 단체 운영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이것이 오히려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들과의 상호작용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협력사와는 항상 섬세하게 소통한다. 어떤 전략으로 어떤 고객과 연령층을 마케팅 타깃으로 삼는지 등 그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들은 후 오케스트라의 운영방식과 계획, 그 목적과 이유를 설명한다. 협력사마다 파트너십에 대한 기대가 상이하다. 그들과 함께하기를 원한다면 이를 받아들여야만 하지만, 그 격차가 너무 크다면 함께할 수는 없다. 어떤 경우든 퀄리티에 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홍콩 정부와 문화센터는 다른데, 그들은 ‘법에 의한’ 파트너이다. 지원을 받기 위해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홍콩 필이 현재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은 무엇이고, 그중 가장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주로 45세 이상인 정기회원을 위해서는 주요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를 폭넓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레퍼토리와 협연자, 때로는 객원 지휘자가 누구인지도 눈여겨 본다. 젊은 관객과 새로운 관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한 시간 동안 진행하는 저녁 9시 콘서트나 영화와 라이브음악, 과학적·정치적 주제의 토크를 곁들인 프로그램들이다. 아주 어린 세대와 가족 관객을 위해서는 또 다른 콘셉트를 취하는데, 대부분 해설자와 함께하는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예산의 상당 부분은 유명 협연자와 지휘자, 때로는 합창단 등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사용된다.

유럽과 비교했을 때 아시아 오케스트라의 복지제도는 어떤 것 같나?

현재 중국과 마카오의 경우 외국인 단원에 대한 처우가 좋아 많은 연주자들이 관심을 보이는데. ‘비아시아인’을 기준으로 한다면, 현재 홍콩 필의 외국인 단원은 미국과 유럽, 러시아에서 온 연주자가 50%다. 아시아의 다른 오케스트라들이 어떤 복지나 처우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홍콩 필의 운영은 유럽의 일류 오케스트라들과 견줄만하다.

단원 채용에는 어떤 규정이 있는지 궁금하다.

‘최고의 지원자만이 단원이 될 수 있다’라는 오직 하나의 규칙만을 가진다.

함께 써 내려 갈 역사

현재 미국과 유럽의 많은 오케스트라가 저조한 관객 수와 고령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홍콩은 어떠한가?

홍콩의 관객 통계에 대해서는 아주 긍정적이다. 유럽과 비교했을 때 관객 연령층이 훨씬 젊다. 모든 공연이 매진되는 것은 아니고, 레퍼토리와 협연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홍콩에서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한두 가지의 악기를 배운다. 앞으로 우리가 육성해야 할 세대로, 이상적으로는 12~13세 이전에 공연장으로 이끌어야 한다. 이들을 위한 다양한 콘서트 외에도 우리는 ‘어린 관객 전략’을 위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공연 특별할인이 담긴 멤버십 카드가 있는 클럽으로 청소년을 위한 공개 리허설을 제공한다. 홍콩 필은 현재 홍콩문화센터를 협력 공간으로 한다.

한국의 대표적 오케스트라인 서울시향도 상주홀을 가져야 한다는 논의를 몇 년에 걸쳐 이어오고 있다. 오케스트라에 상주홀은 필수적이라 생각하나?

특정 수준의 전문 오케스트라는 리허설과 연주를 할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이 ‘집’이 오케스트라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관객들이 오케스트라를 그 장소와 연결 짓는다는 것도 중요하다. 콘세르트헤바우, 베를린 필하모니, LA 필의 월트 디즈니 홀을 생각해 봐라. 아이슬란드 심포니는 하르파 콘서트홀을 지녔고, 룩셈부르크는 그들의 오케스트라를 위해 공연장을 지었다. 오케스트라는 상주홀과 함께 성장하고 발전한다. 서울시향이 그들만의 콘서트홀을 갖게 되길 바란다. 홍콩 필 또한 현재 발전 중인 서주룽문화지구(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에 새로운 공연장을 가지길 희망하고 있다.

앞으로 7년 정도 더 걸릴 일이겠지만. 그동안 맡아온 단체들 대부분이 한 단계 도약하는 성과를 이루었는데, 아시아 지역의 오케스트라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협력사들의 신뢰를 얻으려 노력하고, 조직에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길을 모색하며, 많이 듣고자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오케스트라 대표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사회, 음악감독, 시니어 직원들과 함께 오케스트라의 향후 예술적 전략을 수립한다. 다른 부서들과 의사소통하며 재정적인 안정과 예술적인 계획을 책임진다. 또한, 최고 인사권자이면서 외부적으로 오케스트라를 대표한다. 이러한 다양한 업무들 이외에도 개인적으로는 투어를 통해 오케스트라의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이는 것과 홍콩의 관객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글 이미라 기자

REVIEW

츠베덴/홍콩 필 협연 랑랑

불안을 잠재운 음악의 힘

1월 16일 홍콩문화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 리뷰

 

지도 속 홍콩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최근 시위가 계속되며 홍콩 전 지역에 대한 여행경보가 ‘2단계(여행자제)’에 올랐던 것. 걱정을 한가득 안고 도착한 홍콩의 모습은 생각보다 고요했다. 그러나 곳곳에 보이는 시위의 흔적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다를 오가는 배들, 그 위를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왠지 모를 긴장감을 조성했고, 도심 한가운데에서 쿵쾅대며 울리는 공사 소음들은 머리를 어지럽혔다. 눈앞의 어지러운 광경을 잠재워 준 것은 다름 아닌 츠베덴과 홍콩 필의 음악이었다. 홍콩 필은 올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며 베토벤 시리즈 공연을 준비했다. 베토벤 교향곡과 오페라 ‘피델리오’(NAXOS 녹음 예정) 등 베토벤의 주요 작품들을 2020/21시즌에 걸쳐 선보일 예정이다. 시리즈의 막은 1월 16일, 홍콩문화센터에서 올랐다. 피아니스트 랑랑과 함께한 이 무대에서 홍콩 필은 ‘에그몬트 서곡’과 피아노 협주곡 5번, 교향곡 1번을 차례로 연주했다. 빈야드 스타일의 콘서트홀에서 기자가 앉은 자리는 발코니석. 지휘자의 왼쪽 얼굴과 제스처가 생생하게 보이는 곳이었다.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큰 박수갈채 속에 츠베덴이 등장했다. 첫 곡은 ‘에그몬트 서곡’. 큰 숨소리와 함께 곧바로 지휘를 시작한 그는 금세 공간에 묵직한 진동을 만들어냈다. 깊게 들어간 그의 눈만큼이나 따뜻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음색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응집력이 만드는 파장은 굉장했다. 단 9분의 시간이었으나, 그들이 가진 소리는 충분히 전달됐다. 이곳에서도 랑랑의 인기는 대단했다. 등장만으로 이미 환호가 쏟아졌다. 오케스트라의 긴 서주 후 랑랑의 반짝이는 질주가 시작됐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밀고 당기는 자유로운 박자감은 이번 무대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의 진가는 차분하게 흐르는 느린 악장에서 더 빛났다. 특히 피아노의 오른손 멜로디와 오케스트라가 번갈아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섬세하다’는 표현을 뛰어넘는 말을 찾아야만 했다. 그 여운이 채 가시기 전 반전된 분위기의 3악장이 튀어나왔다. 리드미컬한 달리기 속에서 그는 정확히 포인트를 짚어갔다. 이것이 과연 베토벤의 의도에 가까운 연주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랑랑의 연주에는 언제나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그것도 꽤 설득력 있는. 마지막 교향곡 1번은 공간 안의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무대였다. 츠베덴의 지휘가 만들어 내는 유려한 프레이즈들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흘렀고, 작품 속에 담긴 베토벤의 유머도 위트있게 전해졌다. 홍콩 필의 음색은 안정감 있는 관악기 파트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특히 오보에와 플루트가 만드는 색채는 굉장히 입체적이었다. 츠베덴의 음악적 해석은 오케스트라와 바로 마주 닿아 있었다. 홍콩 필과 츠베덴 사이를 오가는 티키타카는 서로에게 얼마만큼이나 집중하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곡의 절정에 이르러서는 마치 그들이 ‘연주자’가 아닌 ‘음표’처럼 느껴졌고, 그 음표들은 하나의 음악이 되어 흘렀다. 16일과 18일, 두 번에 걸쳐 선보인 3개의 프로그램은 베토벤 시리즈의 첫 시작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젊은 오케스트라의 생기와 열정, 그리고 지휘자의 무게감은 건물 밖 불안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RECORD REVIEW

츠베덴/홍콩 필 ‘니벨룽의 반지’ 실황

청각을 위한 모범적 해석

4년에 걸쳐 녹음한 홍콩 필 최고의 음반 소개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실황 (2019년 발매·총 14CD) NAXOS 8501403 라인의 황금 (2CD·2015) 마티아스 괴르네(보탄) 미셸 드영(프리카) 페테르 시드홈(알베리히) 연광철(파졸트) 발퀴레(4CD·2016) 마티아스 괴르네(보탄) 미셸 드영(프리카) 하이디 멜톤(지클린데) 페트라 랑(브륀힐데) 지크프리트(4CD·2017) 사이먼 오닐(지크프리트) 마티아스 괴르네(보탄) 데이비드 캔젤로시(미메) 신들의 황혼(4CD·2018) 쿤 브릿 바크민(브륀힐데) 다니엘 브레나(지그문트) 에릭 할프바슨(하겐)

오늘날에는 공연을 기획하면서 녹음과 녹화를 사전에 고려하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오직 실제 공연만이 최종 목표였다. OST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은 물론이고, 우아한 아리아를 작곡하더라도 타이틀과 같은 개념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고전 작품을 음반으로 상품화하는 데 애로사항이 되곤 한다. 특히 ‘니벨룽의 반지’와 같이 넘버로 나누어지지 않을뿐더러 연극적인 성격이 강한 바그너의 작품들은 더욱 그러하다. 움직임이 거의 없이 정적으로 대화만을 나누는 장면도 상당히 많은데, 무대에서는 시각적으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청각 의존도가 높은 경우에는 집중하여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콘서트로 연주하거나 음반으로 녹음될 때에는 오페라 무대에서와는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즉, 시각으로 보완되는 부분들이 청각적 표현에 적절히 반영되어야 한다. 저술가 윌리엄 영렌이 바그너 작품을 오페라 무대에서 연주할 때와 노래 없이 콘서트 무대에서 연주할 때는 서로 해석이 달라야 함을 인지했던 것은 이와 연관이 있다.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인 얍 판 츠베덴과 홍콩 필하모닉이 연주한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녹음이 주목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콘서트 무대에서 이루어진 이 연주는 철저히 청각적 이해를 위해 해석되었으며, 오페라 무대에서 지나치기 쉬운 세밀한 표현을 놓치지 않는다. 인물과 물건, 상황 등을 상징하는 유도동기를 활용하는 바그너의 음악에서는 이러한 해석이 매우 유의미하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마티아스 괴르네·헤르미네 헤젤뵈크·연광철 등 노련한 바그너 가수면서 리트에도 능숙한 독창자들의 열렬한 연주 또한 여기에 부응한다. “전율을 일으키는 극에 대한 감각”이라는 런던 ‘선데이 타임스’지의 호평은 이러한 바탕에서 얻어진 것이다. ‘라인의 황금’(2015년 실황)에서는 곡 전체를 종횡무진으로 등장하며 최고의 희열부터 바닥의 쓴맛까지 맛보는 알베리히 역의 활약이 단연 돋보인다. 단단하면서도 추진력 있는 에너지로 움직이는 페테르 시드홈의 음성은 장면의 상황과 알베리히의 성격을 담고 있다. 보탄 역을 맡은 마티아스 괴르네의 중후한 음성은 음악 전체에 안정감을 주며, 파졸트 역의 연광철은 보탄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무게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발퀴레’(2016년 실황)의 시작을 알리는 지클린데 역의 하이디 멜톤은 무력하고 연약한 이미지를 진정성 있게 전달하며, 이 작품부터 헤로인으로 등장하는 브륀힐데 역의 페트라 랑은 힘이 넘치는 여전사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크프리트’(2017년 실황)에서 지크프리트 역을 맡은 사이먼 오닐은 거칠 것 없는 호탕한 목소리로 인물의 성격을 직관적으로 표현하며, 미메 역의 데이비드 캔젤로시는 다양한 어조에 그의 기구한 삶이 녹아있다. ‘신들의 황혼’(2018년 실황)의 ‘키맨’인 하겐 역의 에릭 할프바슨은 두터우면서도 안으로 삭히는 음성으로 자신만의 은밀한 계략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렇게 츠베덴과 홍콩필이 완성한 이 음반은 관현악단의 직설적인 표현이 다소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장면의 상황을 그리는 꼼꼼하고 섬세한 해석은 매우 감각적이다. 여기에 인물의 성격과 가사의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는 노래가 더해져, 콘서트로서의 오페라 공연, 그리고 음반으로서의 오페라 녹음이 갖추어야 할 모범을 제시한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Culture of Hong Kong

홍콩문화센터와 문화지구

홍콩문화센터를 중심으로

주룽반도 남쪽 끝에 있는 침사추이는 홍콩 최대 번화가 중 하나다. 고급 호텔과 쇼핑센터가 모여있고, 골목 사이사이로는 작은 상점들이 즐비해 관광객으로 붐빈다. 빅토리아 하버를 끼고 있어 근사한 야경은 물론, 스타페리를 타면 센트럴 지역까지 십분 내외에 이동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연극·무용 등을 올리는 홍콩문화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대를 관통하는 작품을 전시해 놓은 홍콩예술관, 우주 박물관, 시계탑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홍콩문화센터 香港文化中心, Hong Kong Cultural Centre www.hkculturalcentre.gov.hk

홍콩 최대의 쇼핑명소이자 번화가인 침사추이는 건너편으로 보이는 마천루들의 야경 때문에 여행객이라면 무조건 들리게 되는 장소다. 이곳에서 한국 관광객들의 집합 장소로 이용되는 시계탑은 예전 주룽반도와 캔턴을 잇는 철도역이 있던 구룡역의 일부였다. 1978년 침사추이 동쪽에 새로운 역이 들어서면서 구룡역은 철거되었고 현재의 시계탑만 남겨지게 되었다. 이 시계탑 뒤로 특이한 곡선의 베이지색 건물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홍콩문화센터로, 맞은편의 홍콩 센트럴 지역이 수많은 마천루 건물과 시청 등의 관청·영사관·호텔이 들어차 있어 일찍부터 발전한 반면, 주룽 지역은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딘 곳이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복합 문화지구 건설사업의 일환으로 1970년대 초부터 홍콩 당국에 의해 추진된 건물이 홍콩문화센터다. 하지만 늘어나는 예산 문제 때문에 여러 번 사업이 좌절되다가 1989년 완성됐다. 입구를 통해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보면 앞으로 있을 연주회나 오페라와 연극 공연 등을 알리는 포스터들이 로비 곳곳에 걸려 있다. 그중에서도 얍 판 츠베덴이 이끄는 홍콩 필하모닉의 다채로운 공연들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홍콩문화센터는 건립 이래로 지금까지 홍콩 필하모닉의 협력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홍콩문화센터는 크게 네 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있다. 8,000여 개의 파이프관이 설치된 콘서트홀(2,020석)과 오페라·발레·뮤지컬이 오르는 그랜드 시어터(1,734석), 무용·연극 등 다목적 공간으로 쓰이는 스튜디오 시어터(가변좌석 포함 496석), 그리고 전시 갤러리다. 다양한 공간을 갖춘 만큼 홍콩 필 외에도 홍콩 차이니스 오케스트라, 홍콩 발레단, 그리고 실험극 단체인 주니 이코사헤드론이 협력 예술단으로 함께하고 있다. 올 한 해 홍콩문화센터를 찾는 예술가도 다양하다. 루돌프 부흐빈더·르네 플레밍·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외에도 안드리스 넬손스/보스턴 심포니, 미도리와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몬테카를로 발레단 등이 홍콩 아트 페스티벌(2월 13일~3월 14일)을 통해 방문할 예정이다.    송준규

 

홍콩예술관 香港藝術館, Hong Kong Museum of Art hk.art.museum 1962년에 설립된 홍콩예술박물관(HKMoA)은 도시의 첫 번째 공공 미술관으로, 홍콩문화센터· 홍콩스페이스뮤지엄 등과 함께 이 침사추이의 문화지구를 이룬다.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를 만날 수 있다. 과거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회화·설치 등 1만 7,000여 점의 예술품을 통해 홍콩의 독특한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서주룽문화지구 西九文化區,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www.westkowloon.hk

그동안 문화적으로 소외되었던 지역의 탈바꿈을 시도하며 홍콩 정부에서 조성 중인 문화예술단지다. 주룽반도 서쪽, 빅토리아 하버 앞바다에 놓인 약 40만 제곱미터의 매립지 위에 미술관·대공연장·오페라극장·현대무용 전용홀 등 다양한 문화공간을 만들고 있다. 시취 센터, M+, 프리스페이스, 아트 공원 등에서 경험하는 다채로운 예술을 통해 삶의 여유를 느낀다.

시취 센터 戲曲中心, Xiqu Centre

2019년 1월 개관했다. 서주룽문화지구의 동쪽 끝에 위치한 8층 규모의 시취 센터는 중국 전통문화예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특히 광둥 지역의 전통문화이자 중국 전통 예술인 시취와 월극을 선보인다. 레버리 아키텍처와 로널드 루 & 파트너스가 디자인한 건물은 중국 전통 등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됐다. 관객과의 장벽을 낮춘다는 의미를 담아 극장과 도로 사이에 출입구를 두지 않았다. 1,000석 규모의 대공연장에는 엄선된 중국 최고의 전통공연작이 오르고, 200석의 소공연장인 ‘티하우스’에서는 공연 관람 시 차와 간단한 딤섬 세트가 무료로 제공된다. 현대미술관 M+ 중국과 홍콩을 기반으로 아시아 지역의 시각 미술을 다룬다. 디자인·비주얼 아트·건축·순수미술 등 모든 영역을 소화하며, 특히 20세기와 21세기 예술에 집중한다. M+ 파빌리온은 지난 2016년 9월 오픈했고, M+는 오는 3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건물 설계는 헤르초크 & 드 뫼롱이 맡았다.

 

프리스페이스 Freespace

컨템퍼러리 퍼포먼스를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 아트파크의 중심에 있다. 다양한 장르의 퍼포먼스와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통해 공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글 이미라 기자

PROGRAM PREVIEW

츠베덴/홍콩 필 내한 공연 레퍼토리

인류를 위한 위대한 찬가

베토벤 교향곡 5번 &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

고대 그리스 비극과 신화가 인문학 운동 르네상스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이 옛 작품들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린 고전으로서 읽혔던 것과 관계가 있다. 인간의 모습이 신으로 대변된 것은 흥미로운데, 신화의 신들이 단편적인 특징으로부터 상징화된 형태로 그려진 것을 보면 인간의 속성들이 개체화되어 ‘신’으로 포장된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인간의 표본을 신으로 형상화한 것은 아직 중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기에 나타난 과도기적 현상일 수 있다. 그리고 곧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고대 그리스극 등에서 신이나 자연 등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해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는 수법)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름을 노래하는 시기를 맞게 된다. 베토벤이 세 번째 교향곡(1802~1804)에 직접 ‘영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찬미한 것은 상징적이며, 교향곡 5번(1808)에 이르러 영웅의 자리를 차지한 인간을 위한 승리의 도그마를 완성했다. 이 교향곡은 곡의 시작과 함께 압도하는 유명한 첫 주제에 대해 베토벤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고 말했다는 일화에서 ‘운명’ 교향곡이라고 불리지만, 이보다는 운명을 극복한 계몽된 인간의 승리를 그렸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각각 운명이 엄습하는 1악장, 굴하지 않고 희망을 노래하는 2악장,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3악장, 승리를 쟁취하는 4악장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즉, 어둠과 비통함으로부터 밝고 웅장하게 변모하는 과정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이다. 운명의 주제가 4악장 전체에서 끊임없이 변모하면서 등장하고, 결국 승리의 팡파르로 승화되는 과정을 그렸다. 이후 낭만 시대의 교향곡은 이러한 시나리오를 표준으로 삼았고, 각 작곡가가 추구하는 영웅의 모습을 그렸다. 이렇게 인간적 영웅을 그린 작품들은 이후에도 많이 등장하지만, 교향곡 중에서 꼽자면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1944)은 단연 돋보인다. 후배 작곡가 아람 하차투리안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과 번호가 동일한 이 작품을 ‘영웅’ 교향곡이라고 불렀다. 나치와의 전쟁이 치열한 막바지에 이르렀던 당시, 프로코피예프는 이 교향곡에서 전쟁의 영웅들과 그 승리를 그린 것일까? 작곡가가 지휘자로 오른 초연 무대에서(이 공연은 그가 포디움에 선 마지막 공연이었다.) 소련의 승전보와 이를 기념한 예포가 있었기에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51년에 기고한 한 글에서 교향곡 5번을 언급하며 ‘전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5번은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표현한 교향곡이다. 자유롭고 행복한 인류, 그 강력하고 순수하며 고귀한 영혼에 바치는 찬가이다.” 위대한 인간의 조용한 탄생과 긴장을 늦추지 않는 삶의 역경, 그의 발레를 연상시키는 비극적인 장면들, 그리고 토카타 스타일로 쉼 없이 내달리는 영웅적인 투쟁! 이를 위해 사용된 그의 음악 언어는 명쾌했다. 첫 교향곡인 ‘고전’ 교향곡(1916)에서부터 강하게 드러낸 고전에 대한 존중이 바탕을 이루며, 여기에 시대적인 모더니즘 스타일을 더했다. 그리고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작곡 원칙을 세웠다. “나는 언제나 두 가지 원칙을 지키며 작곡한다. 내 생각을 명료하게 표현한다는 것과, 불필요한 것들을 피하고 필요한 것만 간결하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련으로 영구 귀국한 이후, 그는 모더니즘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의 음악은 점차 단순하고 가벼워져 갔으며, 메시지는 힘을 잃었다. 그러나 교향곡 5번은 탄탄한 고전미와 모더니즘으로 무장된 생명력, 그리고 명쾌한 전달력을 갖추고 있다. 한창 전쟁으로 권력이 예술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덕분이다. 그래서 프로코피예프가 직접 말했듯이, 이 작품은 “나의 창작 기간 중 최고의 정점”이 되었다. 운명을 이겨낸 인간을 그린 칸트적 작품인 베토벤 교향곡 5번과 인류의 정신을 찬미한 헤겔적 작품인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 이 두 개의 영웅적 교향곡을 츠베덴과 홍콩 필이 한 무대에서 들려준다. 이 자리는 예술을 통해 인류의 위대함을 자각하는 현장이 될 것이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얍 판 츠베덴/홍콩 필 내한 공연 베토벤 교향곡 5번·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

3월 10일 오후 7시 30분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3월 1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월 12일 오후 7시 30분 춘천문화예술회관 대극장

3월 13일 오후 7시 30분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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