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의 죽음&까마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3월 2일 9:00 오전

REVIEW

 

김부장의 죽음 & 까마귀

오늘의 우리를 노래한, 창작 오페라

2월 5~8일 / 2월 7·8일

김부장의 죽음
총감독 허철, 작곡 오예승, 대본 신영선, 연출 홍민정, 지휘 정주현

오페라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옛 그리스의 성현들이 말하듯 예술의 목적이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오늘의 오페라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혹은 외면하고 있는 자신과 사회의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공간적 제약이 가혹한 오페라 무대에서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무대·미술·의상·음악·연기·연출 등 모든 분야가 의도하는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 이렇게 고도의 협업이 요구되는 오페라의 영역에 최근 신작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두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의 지원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풍자와 고뇌의 간극

오페라뱅크가 무대에 올린 ‘김부장의 죽음’(2.5~8/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번안한 이 작품은, ‘평범한 인물’ 이반 일리치를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가정을 이루며, 직장에서 승진하고자 줄을 대는 65년생 김영호로 바뀌었다. 그리고 한강뷰 아파트를 샀다는 설정에서, 부동산 공화국의 현실과 이상이 만나는 접점으로서 공감을 극대화한다.

‘김부장의 죽음’은 이러한 현실적인 장면들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풍자를 활용한다. 남편의 장례식에서 아내는 부의금과 직장 위로금에만 관심이 있고, 부부의 풋풋한 첫 만남의 장소는 시간을 거슬러 60~70년대의 다방을 연상시킨다. 남편은 가부장적이고, 아내는 바가지를 긁으며, 막내아들은 게임에만 빠져 있다. 이렇게 극단적이면서도 시대적인 불일치가 주는 부자연스러움은 분명 풍자적이다. 그리고 한강뷰 아파트에서 모든 갈등이 사라지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기뻐하는 모습은, 감정이 물질에 의해 좌우되는 오늘날의 씁쓸한 민낯을 드러낸다. 여기서 첫 도입이 직장인의 모습임에도 정작 직장에서의 장면이 적어, 이 극이 가질 수 있는 공감의 절반을 놓친 것은 아쉽다.

주인공이 커튼을 달다가 떨어져 허리를 다친 이후, 극의 주제는 죽음으로 전환된다. 주인공은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며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아내가 남편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간병인이 인생의 의미를 전하면서 성심껏 보살피는 장면들은 관객에게 주인공에게 임박한 죽음에 집중하게 한다.

여기서도 풍자는 이어진다. 의사들이 고통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면서 동의서만을 요구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풍자극이 모습을 보여준다. 최후에 목사의 기도 장면도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주인공이 맞은 상황과 주변 인물 성격 사이의 이질성은 죽음의 고통조차 풍자의 대상이 된 듯한 생각이 들게 하는데, 이는 작품의 메시지를 희석하고 만다. 현실의 풍자와 죽음의 고통의 병치는 더욱 섬세하고 노련하게 다루는 것이 좋다.

오예승(1976~)의 음악은 감각적인 리듬으로 풍자적인 특징을 표현하고, 감상적인 선율로 관객의 마음을 여는 등 극의 흐름에 동조한다. 그런데 후반부에서 주인공의 심리를 드러내는 데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감상적인 기조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극의 초점이 분명하지 않은 점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음악은 각 장면의 갈등과 상황을 충분히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실과 환상의 간극

라벨라 오페라단이 초연한 ‘까마귀’(2.7·8/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또한 현실의 모습을 담은 우리 시대의 오페라로,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뇌리에 자리하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한 기억을 다룬다. 놀이공원에서 아이를 버리고, 온 가족이 동반 자살을 시도한 비극은 당시를 겪은 세대라면 낯설지 않다. 이제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났고 과거는 서서히 잊히지만, 우리도 모르게 쌓인 고름이 터지고 말았다.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생생한 현실일 수도 있는 이 상황, 이를 어떻게 닦고 치유할 수 있을까? 이러한 주제를 다룬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제 상처를 치유할 때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까마귀’는 우리 시대가 마주해야 할 현실을 깨닫게 한다.

오페라 ‘까마귀’는 각 장면에서 인물들의 관계와 갈등을 집중적으로 다루어 관객이 주제에 집중하게 하고, 동선과 소품을 적절히 활용하여 정서적 이해에 도움을 줌으로써 공감과 상상이 균형을 이룬다. 또한 아픔을 감추고 있는 가족들과 어두운 진실을 이야기하는 합창의 대립도 과하지 않다. 2막 시작에서 두 세력의 상징적인 대립은 갈등을 최고조에 이르게 하는데, 이러한 상징성은 이 작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상징이 부분적으로 판타지에 가깝게 그려져 오히려 감상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막내의 검은 가죽 의상과 징 박힌 장갑은 편견에 가깝고, 이름조차 없는 ‘남자’와 ‘여자’는 코스프레처럼 보이는 비현실적 의상에서 마치 환영처럼 보인다. 이들은 거리의 사악한 무리일까? 아니면 막내가 어려울 때 보호해준 위장한 현자일까? 어쨌든 가족과 검은 무리들은 공존할 수 없는 두 세계로 규정된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는 이는 ‘엄마’다. 엄마는 처음부터 정신 착란 증세를 보였다. 가스를 피운 차에서 버린 막내의 환영을 보고, 가족이 흩어진 이후에 아기를 안은 자세로 자장가를 부른다. 그리고 마지막에 말쑥한 평상복을 입은 막내를 본다. 판타지는 이 마지막에서 최고조를 보인다. 갑자기 등장한 막내는 무대 안에서 비춘 빛을 따라 걷는다. 이러한 조명은 죽음을 상징하는 장치로 많이 사용되기에, 적지 않은 관객들이 막내의 죽음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엄마와 포옹도 하고 다시 돌아온다고 한 것으로 보아 실제일 수도 있다. 이 마지막 장면은 지금까지의 현실성 있는 전개에 비해 지나치게 상징적이고 감상적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극의 메시지를 불확실하게 만들고 만다.

공혜린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모두에게 익숙한 이디엄으로 구성되었으며, 극의 전개와 보조를 맞춘다. 서곡과 레치타티보, 아리아, 약간의 대사가 결합된 양식 또한 오페라 감상자에게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마지막 어절을 강조하는 이탈리아 레치타티보 양식은 우리말에서 ‘~요’와 같은 의미가 없는 어미를 강조하는 결과를 낳기에, 우리말에 맞는 양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한 화음의 갈등을 바로바로 해소하면서 극적인 고저를 이끌어가는 에너지를 축적하기에 부족함이 있다. 예를 들면 1막의 마지막, 세 인물의 오해와 갈등이 고조되는 장면에서 독창자들은 토로하듯이 강렬하게 부르는 반면, 음악은 그다지 고조되지 않아 극적 효과를 얻지 못한다. 선과 악이 나뉘고 옳고 그름이 분명하며 안정과 갈등의 굴곡이 있는 작품에서는 음악이 그 긴장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종합 예술을 생각하다

오페라가 종합 예술이라는 말은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짧은 시간 안에 명확한 극이 완성되어야 하고, 의상과 연출은 상황과 인물의 성격을 분명하게 반영해야 하며, 음악은 극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오페라 제작에 있어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적지 않겠지만,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많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까마귀
총감독 이강호, 작곡 공혜린, 대본 고연옥, 연출 이회수, 지휘 구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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