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스승과 제자가 주고 받는 음반 30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5월 11일 9:00 오전

PART1 젊은 연주자 18인이 스승에게 바치는 음악

정리 객석 편집부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
헤르만 프레이(바리톤)/발터 클라이언(피아노)
Decca SXL 6069

피아니스트 신미정(신박 듀오) –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

악보에 쓰인 대로 연주하지 않거나, 한 음이라도 진심을 담아 연주하지 않으면 고함을 치던 호랑이 선생님. 아플 땐 잔소리하면서도 직접 병원을 예약해 동행해주던 따뜻한 정의의 소유자. 돌아가시기 며칠 전 전화로 졸업 시험은 잘 준비되고 있냐 물으시며 자신 없이도 잘 해내야 한다고 걱정하셨던 엄마 같은 분. 나의 스승 가브릴레 지마(1955~2016)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피아니스트이지만 가곡을 좋아해 바리톤인 남편 안민수와 슈베르트의 고장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남편의 오랜 스승인 가브릴레 지마를 만났고 그녀는 나에게도 좋은 스승이 되어주었다. 가브릴레 지마가 가장 즐겨 듣던 작품은 슈베르트의 가곡 ‘백조의 노래’ 중 ‘우편 비둘기’였다. 그녀는 매 학기 마지막 레슨 시간에 나와 남편이 함께 이 작품을 연주해주길 바라셨다. 선생님이 가장 좋아했던 가사는 ‘그리움’ ‘동경’을 뜻하는 ‘Sehnsucht’. 당시에는 사전적 의미로 이 단어를 이해했는데,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비둘기가 우리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달해주듯,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생각한다면 결국 전달될 것이라는 그 희망이 많은 위로를 준다.

 

 

백건우(피아노)
Deutsche Grammophon 481 8173

피아니스트 신창용 – 쇼팽 ‘녹턴’ 전곡집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2013년 이후 6년 만에 발매한 음반이다.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녹음한 것으로, 통상적으로 배치하는 작품번호 순서가 아닌 서사적 트랙 배치를 통해 완성했다. 기교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지 않지만, 내면으로 파고드는 강한 힘이 느껴지는 연주를 들려준다. 우아한 모습 속에 서려 있는 슬픈 감정들도 묻어나온다. 쇼팽과 백건우의 인생이 교차된 듯 들릴 정도로, 그 표현력이 놀라운 연주다. 이 음반을 들으면, 2011년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부터 사사하고 있는 로버트 맥도날드 교수님이 떠오른다. 교수님은 그의 색깔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인 학생들이 각자의 생각과 표현 방법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존중해주셨다. 또, 좋은 귀와 좋은 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 가장 강조하셨던 것은 “몸에 힘은 충분히 빼고 손끝을 이용해 섬세하면서도 강한 터치로 소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로버트 맥도날드 교수님이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에서도 섬세한 손끝의 터치가 느껴진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음악. 작은 음량에서도 큰 울림을 전하는 연주. 그의 가르침은 많은 음악가가 꿈꾸는 면모를 그리고 있었다.

 

 

피터 제르킨(피아노)
Musical Concepts MC 122

피아니스트 임윤찬 – 베토벤 후기 소나타 외

이 음반의 특별함은 과거의 연주 방식과 음색을 느낄 수 있는 당대연주라는 데서 나온다. 피터 제르킨(1947~2020)은 연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20세기, 포르테피아노를 실험한 피아니스트였다. 특별히 제르킨에 큰 관심을 두고 있는 이유는, 시대악기로 고전 시대의 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실험했다는 것에 있다. 처음 그의 음악을 알게 된 것은 손민수 선생님의 추천 덕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르치면서도 무대에 올라 연주도 완벽하게 해내는, 나의 롤모델이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를 기념하기 위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진행하고 계신데, 소나타 29번 ‘함머 클라이버’를 연습하던 선생님이 제르킨의 연주를 소개해주셨다.
음반에는 베토벤 후기 소나타 27번부터 32번까지의 6개 작품과 론도 2개 작품이 수록되었다. 그의 음반과 실황 연주 영상은 마치 ‘함머 클라비어’의 정신이 피터 제르킨에 의해 발현되는 듯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불러왔다. 손민수 선생님의 베토벤 프로젝트가 후기 소나타 3개를 남겨두고 있다. 의미 있는 걸음을 꾸준히 내디디고 계신 선생님께, 가장 선물하고 싶은 음반이다.

 

 

라두 루푸(피아노)
Decca 440 496-2

피아니스트 최형록 – 슈만 ‘어린이 정경’ 외

음반에는 슈만의 대표적인 피아노곡 세 작품이 수록돼 있다. 라두 루푸의 진중하고 깊은 감성과 특히 잘 어우러지는 슈만의 음악을 만끽할 수 있다. 그중 ‘유머레스크’ op.20은, 대학교 1학년 주희성 교수님과 처음 함께 공부한 곡이라 더욱 의미 있다. 처음 들었던 순간부터 꼭 배워서 직접 연주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좋아하는 곡이었지만, 막상 연습하기 시작하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던 무렵, 아늑한 연구실에서 레슨을 받는 날이었다. 교수님께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감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 후, 그를 몸소 보여주셨다. 그날의 느낌은 여전히 생생하다. 당시 18세였던 나는 슈만의 무궁무진한 감정의 세계를 표현하기에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스승의 연주를 눈앞에서 마주하고 비로소 한 걸음을 내디딘 듯한 느낌이었다. 교수님이 보여주셨던 것처럼 내가 느낀 감정을 자연스럽게 연주에 적용하도록 했고, 이듬해 이 곡을 중앙음악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연주해 1위라는 결과도 얻었다. 교수님과 함께한 대학 시절은 한층 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다. 내 음악 인생에 있어 절대적인 영향을 주신 주희성 교수님께 이 음반을 헌정하고 싶다.

 

 

디아나 담라우(소프라노)/도이치 헬무트(피아노)/
마리스 얀손스(지휘)/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Erato 9029530346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 R. –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마리스 얀손스는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 많은 가르침을 준 큰 음악인이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자신을 높이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에 헌신했다. 수많은 연주자에게 따뜻한 스승이 되어주기도 했다. 어린 연주자들에게는 서두르지 말고 스스로 부끄럼 없도록 항상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노력하다 보면 좋은 길이 분명 열릴 것이라고 언제나 격려해 주었다. 그와 함께 연습하고 연주하고 여행하던 시간은 나에게도 엄청난 양분이 되었다. 이 음반은 마리스 얀손스(1943~2019)와 작업한 마지막 음반이다. 음반 녹음은 작년 10월, 마지막이 된 얀손스와의 오케스트라 투어를 시작하기 직전에 했다. 수록곡인 R.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내 인생 마지막 여정에 꼭 듣고 싶은, 소중한 작품이다. 그런 곡을 존경했던 마에스트로와 연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굉장히 큰 의미를 남겼다. 이 음반이 발매되기도 전에 떠나신 게 가슴이 아프다. 이별이 벌써 5개월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난 그의 열정과 사랑, 따뜻함이 매 무대마다 그립다. 그리운 만큼 더 소중하고 귀한 음악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할 것이다. 고맙습니다. 마에스트로!

 

 

타베아 치머만(비올라)
Myrios Classcis LC 19355

비올리스트 박경민 – 솔로

지금 활약하는 비올리스트 대부분은, 어려서 바이올린을 배우다 비올라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만난 스승, 타베아 치머만은 3세 때부터 비올라를 시작했다. 베를린 필과 협연하고, 비올라 소나타를 초연하고, 바이올린과 첼로 곡을 편곡해 연주하고, 아르칸토 4중주단으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후학을 기르는 모습은, 현존하는 가장 이상적인 비올리스트 상이 아닐까 싶다. 치머만의 수업은 비올라라는 악기가 사람을 얼마나 강하게 끌어들이는지, 악기로 표현 가능한 세계가 얼마나 깊고 풍요로운지 알게 된, 놀라운 시간이었다. 어느 날 레슨이 끝나고 스승의 음반을 들었다. 레거의 무반주 비올라를 위한 세 개의 모음곡이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2번 편곡과 함께 실린 음반이었다. 특히 레거의 모음곡은 테크닉적으로 상당한 노력이 요구되어서 듣기에는 쉬울 수 있어도, 어느 비올리스트에게나 도전적인 곡이다. 타베아 치머만이 이 곡을 테크닉적인 어려움을 뛰어넘어 노래하듯이 자연스럽게 음악을 표현하는 것에 정말 감동을 받았다. 비올리스트로서의 기술을 전하는 교사가 아니라, 음악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으로 모범을 보인 은인이다.

 

 

성민제(더블베이스)/루벤 가자리안(지휘)/
뷔르템베르크 체임버 오케스트라
Deutsche Grammophon DG7566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 더블베이스의 비행

내 생애 첫 앨범이라는 것을 넘어, 더블베이스 역사상 세계 최초로 도이치 그라모폰 라벨을 단 앨범이라는 점에서 뿌듯하다. 클라우스 트럼프 교수님께 이 앨범을 바친다. 뮌헨 국립음대 유학 시절 나를 이끌어주신 스승이다. 사실 더블베이스라는 악기는 독주곡도 적고 반주악기에 가까워, 연주자로 활동하려면 미리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베이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오는데, 나는 독일에서 만난 여러 선생님을 보며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전곡을 클래식 음악으로 구성해 교수님께 레슨 받은 작품도 여럿 수록돼 있다. 학교 연습실과 교수님 댁을 가리지 않고 매일 같이 레슨을 받았다. 사실 유학을 하러 가기 전부터 한국에서 클라우스 트럼프판 악보로 협주곡부터 소품까지 연주해왔다. 이렇듯 내게 작품에 대한 음악적인 영감을 주신 것은 물론이고, 60여 년간 더블베이스 연주자로 외길을 걸어오신 삶 자체가 내게 큰 귀감이 되었다. 레슨이 끝나면 교수님의 배를 타고 짧은 여행을 떠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신 교수님을 믿고 따랐기에 자신감 있게 연주할 수 있었고, 콩쿠르에서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미셸 드보스트(플루트)/프랑수아 자비에 로트(지휘)/
오케스트라 심포니크 드 미슈콜츠
Skarbo DSK 3042

플루티스트 조성현 – 플루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파노라마

미국으로 처음 유학을 가서 미셸 드보스트를 만났다. 이후 그는 내 음악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이 되었다. 드보스트와의 만남을 앞두고 그의 연주를 찾아보던 중 이 음반을 발견했다. 지금 생각해볼 때 이 음반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그와 함께 작업한 이가 바로 프랑수아 자비에 로트라는 것이다. 그는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독일 쾰른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현재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는 또 한 명의 좋은 스승이다.
플루트의 음색은 목가적이고, 이 악기를 위한 레퍼토리는 한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음반은 그 울타리를 넘어 플루트의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준다. 샤미나데부터 불레즈까지 자주 연주되지 않는 색다른 플루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때때로 화려한 기교를 요하기도 하고, 현대적이며 강렬한 카리스마도 전한다. 이런 특성을 가진 19~20세기 미국과 프랑스의 플루트 작품들이 수록곡의 전반을 이룬다. 드보스트는 플루트의 드라마틱하고 다양한 면모를 만나게 해주었다. 테크닉을 연마하는 것보다도 음악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 큰 배움을 얻기도 했다. 미셸 드보스트는 호흡으로 연주하는 악기를 가르치는데 가장 어울리는 분이 아니었을까.

 

 

 

레이첼 포저(바이올린)
Channel Classics CCS SEL 2498

 오보이스트 함경 –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바흐 음악이 음악가에게는 성경과 같은 존재이다. 바흐 음악에 있어서 바이올리니스트 레이첼 포저는 음악가로서 닮고 싶은 연주자다. 그녀는 꾸밈없이 기본에 충실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음악가의 소리를 들려준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그런 꾸밈없는 소리와 연주다. 그래서 나 역시 그런 마음가짐을 되새기고 싶을 때마다 이 음반을 찾는다.
이 음반을 베를린에서 같이 공부한 도미닉 볼렌베버 스승님께 헌정하고 싶다. 내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제일 영향을 주신 분이다. 여전히 나의 가장 큰 롤모델이고. 지독할 정도로 인간적이고 솔직하고, 음악을 다룰 때는 물론 일상 속에서도 감정과 이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분이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인생의 고민거리가 있을 때 가장 먼저 연락하게 된다.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았던 적도 나빴던 적도 없다.” 단순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말을 음악가로서 특히 연주에 임할 때 항상 되새기곤 한다. 선생님께서 지금처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어주셨으면 한다. 그 자체로 내겐 힘이 되는 분이니까.

 

 

 

 

볼프강 마이어(클라리넷)/
페터 레엘(소프라노·테너색소폰, 베이스클라리넷)/
울 뫼크(피아노)/미니 슐츠(베이스)/마르쿠스 팔러(타악기)
Finetone FTM 8021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 볼레로

독일의 작은 도시 뤼벡, 그곳에서 나는 클라리네티스트 자비네 마이어와 함께 공부했다. 선생님과 제자들은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 수업이 끝나면 다 함께 선생님 댁에서 자그마한 파티를 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자비네 마이어는 음악을 대할 땐 누구보다 프로페셔널 했고, 그 외의 시간은 제자들을 아들, 딸처럼 대해주신 따뜻한 분이다.
이 음반은 자비네 마이어와 남매지간인 클라리네티스트 볼프강 마이어(1954~2019)가 참여한 것이다. 라틴 재즈풍의 곡들로 채워져 있다. 색소폰·피아노·베이스와 타악기가 독일 정통 클라리넷을 만나 특별한 음향을 자아낸다. 이 음반의 가장 큰 매력이다.
2010년 일본의 한 음악 축제에서 볼프강 마이어와 함께 연주한 적이 있다. 당시 그가 이 음반을 내게 선물로 주었다. 중학생이던 내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볼프강 마이어는 작년 3월 세상을 떠났다. 자비네 마이어가 이 음반에 나오는 볼프강 특유의 음색을 들으며 좋은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좋을 것 같다. 또 요즘과 같이 힘든 시기에 눈을 감고 편하게 들으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음반이다.

 

 

 

 

벨체아 콰르텟
Alpha 469 (8CD)

 바움 콰르텟 – 베토벤 현악 4중주 전곡

전설적인 현악 4중주단 알반 베르크 콰르텟의 리더이자 바이올리니스트 귄터 피힐러 선생님께 음반을 헌정한다. 카잘스 콰르텟·아르테미스 콰르텟·벨체아 콰르텟… 마치 같은 비를 맞고 각기 다른 꽃을 피워내는 초목처럼, 피힐러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여러 개성의 콰르텟이 탄생했다. 선생님께서는 특히 벨체아 콰르텟에 큰 애정과 자부심을 보이셨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 닳도록 들었던 앨범이다. 벨체아 콰르텟의 연주를 ‘민주적’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할까. 획일적인 테크닉으로 각자의 음악적 표현을 희생하지 않고도, 큰 틀 안에서 개성을 살린 소리로 완벽한 밸런스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특별함은 베토벤 전곡집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문득, 선생님 앞에서 선보였던 첫 연주가 떠오른다. 여든이 넘으신 연세에도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 음악으로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에 바들바들 떨면서 무대에 올랐다. 연주가 끝난 뒤 한걸음에 무대 뒤편으로 달려오신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한 명 한 명 꼭 안아주셨다. 언젠가는 바움 콰르텟이 녹음한 베토벤 전곡 음반을 스승께 헌정하는 날이 오기를. (바움 콰르텟은 바이올린 신선·김온유, 비올라 한대규, 첼로 조항오로 구성됐다.)

 

앙드레 반데누트(지휘)/
호세 반 담/디나 브라이언트 외
Carrere 96671

바리톤 이응광 – 가면 속의 아리아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가면 속의 아리아’(1989) 삽입곡으로 이루어진 앨범이다. 세계적인 성악가 호세 반 담이 영화에 음악 선생으로 출연했다. 그가 스승으로서 본분을 지키다 결국 숨을 거둔다는 줄거리이다. 영화 속 삽입곡을 듣노라면 어린 날 느꼈던 공기가 되살아나며 그간 사사했던 스승들이 떠오른다. 성악을 시작한 고교 시절 강종영 선생님, 학부 시절 독일 가곡의 아름다움을 선사해주신 박흥우 선생님, 대학원 조교 시절 유럽으로의 유학을 이끌어주신 김성길 선생님, 베를린 유학 시절 국제 콩쿠르에 이어 극장가수의 길로 인도해주신 안넬리제 프리트 선생님, 15년간 조건 없는 가르침을 주시는 인생의 멘토 연광철 선생님. 더하여 2002년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만난 또 한 분의 스승이 있다. 낯선 유럽 땅에서 아침저녁으로 레슨을 받으며 소피아에서의 시간에 익숙해져갔다. “훗날 제자를 가르친다면 우리가 함께했던 작업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던 스승은 몇 년 전 고인이 되셨다. 며칠을 이 음반의 엔딩곡인 뤼케르트 시의 말러 곡 ‘나는 세상으로부터 잊혔네(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를 들으며 스승님과의 추억을 되새겼다. 스토얀 포포프 선생님은 내 가슴속에 따뜻함으로 남아있다.

 

안네 소피 폰 오터(메조소프라노)/
벵트 포스버그(피아노)
Deutsche Grammophon 4458812

소프라노 황수미 – 슈만 ‘여인의 사랑과 생애’ 외 

2019년 10월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와의 리사이틀 프로그램은 슈만의 가곡집 ‘여인의 사랑과 생애’로 정했다. 수많은 가수의 음반을 들었는데 스웨덴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가 부른 음반이 가장 진한 여운을 주었다. 섬세한 가사 전달력과 뉘앙스의 표현력, 그리고 자연스럽고 따뜻한 발성에서 묻어나는 담백한 음성은 눈앞에 부르는 이의 표정이 보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대학원 재학 시절, 같은 곡을 윤현주 교수님께서 서초동 모차르트홀에서 부르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 여인이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청혼을 받고, 결혼하여 사랑하는 이를 닮은 아이를 낳아 젖을 먹이며 기뻐하는 엄마로서의 모습. 이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그와의 추억을 회상하듯이 끝맺는 이 작품을 예순이 지난 선생님의 목소리로 들으니 더욱 진솔하게 와닿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감사하리만큼 선생님 복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성악은 성별과 음역대가 확실하게 구분이 되는 분야라 독일 유학 시절 테너 선생님을 제외하면 모두 여자 선생님께 성악을 배웠다. 한 분 한 분 모두 넘치는 사랑과 관심으로 가르쳐 주신 덕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그분들께 이 음반을 헌정하고 싶다.

 

라두 루푸(피아노)
Decca 4117112

 지휘자 이규서 – 슈베르트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즉흥곡

바렌보임의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추모 연주(D935)를 들은 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 곡을 다시 찾게 되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사람의 기억을 정돈하고 보듬어준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늑해지는 추억이 담긴 사진 앨범처럼. 연주에서는 음악가가 보이기 마련인데, 라두 루푸는 마치 순수하고 선명한 추억을 좇아가는 여행자 같다. 그의 슈베르트 즉흥곡이 꼭 그렇기 때문이다. 나의 오랜 스승 임헌정 선생님께 음반을 들려드리고 싶다. 기분이 좋으실 때면 옛 추억에 얽힌, 동요처럼 단순한 노래를 흥얼거리시던 선생님께서 분명 좋아하실 것 같다. 대학 시절 선생님께서 내 연주를 보러 오신 적이 있다. 평소 부담을 드릴까봐 연주 소식을 잘 알려드리지 않았기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적한 지하 로비에서 두런두런 한참을 얘기하는데, 공연 시간이 가까워져도 계속 나를 보내주지 않으시는 거다.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걸 아실 텐데도! 연주 십 분 전 먼저 일어나 바삐 대기실로 향하는데, 그제야 코끝이 찡해졌다. 당신 눈에는 아직 아이인 내가 큰 무대에 서며 긴장할까 봐 끝까지 같이 있어 주시려던 것이었다(맞죠, 선생님?). “잘하더라” 다음날 무심하게 건네신 한마디가 아직도 나를 붙든다.

 

김준희(해금)/정지영(가야금)/원일(지휘)/
청소년국악관현악단 외
서울레코드 SRCD 1621

지휘자 장태평 – 김대성 작품집 ‘다랑쉬’  

작곡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스무 살. 함께 고민하던 친구가 상기된 얼굴로 한 음반을 들고 뛰어왔다. 작곡가 김대성의 작품 모음집이었다. 피아노 독주곡부터 합창곡, 가야금과 첼로를 위한 2중주, 국악관현악을 위한 작품까지 수록되어 그의 넓고 깊이 있는 음악 세계를 감상할 수 있었다. 또한, 작곡가가 스스로 부여한 역사적 사명과 치열한 고민을 동시대 청중과 나누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그중 제주 4·3 사건의 유적지인 다랑쉬 동굴에서 벌어진 사건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위로하는 해금과 25현을 위한 ‘다랑쉬’, 시대를 앞서간 국악관현악의 전환기적 걸작 ‘열반(涅般-NIRVANA)’, 피아노와 서양 오케스트라 협주곡임에도 한국적인 정서를 전하는 시공간을 관통하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내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김대성 선생님과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닿았다. 함께 전국을 여행 다닌 지 벌써 10년이다. 선생님은 소위 ‘안내자’ 같은 친절한 스승과는 거리가 멀다. 당신이 직접 발품, 손품 팔아 민요를 채보하러 전국의 땅을 밟아 왔듯이, 음악에 대한 성실함을 곁에서 겪으며 배운다. 스승의 곧은 정신과 변함없는 열정은 언제나 감동을 주고 귀감이 된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Melodiya MELCD 1001513

작곡가·지휘자 최재혁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외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사사한 마티아스 핀처 교수님과는 사제지간에서, 이제는 작곡가 겸 지휘자라는 같은 길을 걷는 동료 음악가 사이가 되었다. 교수님은 교수실이나 학교가 아니라,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레슨하시기를 즐겼다. 술잔과 악보를 나란히 펼쳐놓고는 음악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다. 작곡과 지휘를 통한 음악적 이상의 합일이라는 것이 어렵지만 새삼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이 음반이 상기해준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과 1969년 모스크바에서 연주할 때 객석에는 쇼스타코비치가 있었다. 연주가 끝난 후 쇼스타코비치는 카라얀에게 가장 완벽한 교향곡 10번이었다는 극찬을 전했다. 당대 최고의 지휘자와 최고의 작곡가가 만나 음악으로 하나 되는 경험을 만들어낸 것이다. 머릿속이 에너지 넘치는 소리로 꽉 찬 작곡가의 상상력과 다른 이가 써 내려간 악보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동기 부여가 저절로 된다. 특히 요즘처럼 답답한 시기에 마음을 뻥 뚫어줄 정도로 압도적인 2악장을 추천한다. 실황녹음인 만큼 쇼스타코비치가 현장에서 직접 들었던 공기의 소리까지 음반에 녹아있다. 책과 음반으로만 알던 쇼스타코비치와 카라얀을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원일(태평소)/민영치(장고)/
김웅식(장고·구음)장재효(판소리)
예전미디어 CMICD-1005

피리연주자 진윤경 – 이동(移動)

고등학교 시절 피리와 타악에 관심이 많았다. 참신한 사운드의 피리와 타악기 창작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어느새 내게 다가왔다. 전통악기와 장단 등 한국적인 요소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엮어냈다. 수록곡 중 특히 ‘間(사이 간)’은 내게 피리와 음악, 인생의 따스함을 일깨워주신 정재국 선생님을 떠올리게 한다. 선생님은 피리 정악의 대부로 알려지신 분이다. 하지만 제자에게 정악만을 강요하신 적은 없다. 이 음악의 제목처럼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사이’ 어딘가에서 새로움을 향해 도전하는 제자들을 늘 응원해주셨다. 내게는 스승과 아버지, 그사이에 계신 분이다. 선생님 연구실에서 함께 연주했던 한 곡, 한 곡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음악은 꽃잎이 흩날리던 창가에서 전수받았던 ‘일승월항지곡’.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는 피리 선율이 선생님의 따스한 숨결에 얼마나 아름답게 춤추던지…. 그 놀라운 추억의 순간들이 삶의 굴곡에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27세,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울고 있던 내게 달려와 보듬어 주신 스승님. 그에게 배운 선율은 내가 만든 첫 곡 ‘꽃잎이 춤추던 날’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배삼식(작사)/한승석(노래)/정재일(피아노)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 
CMDC 10303

소리꾼 김준수 – 바리 어밴던드

한승석·정재일·배삼식의 조합으로 발매 전부터  이 음반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한국적인 판소리와 서양 악기인 피아노가 빚어내는 조화가 참 아름답다. 아버지로부터 버려졌지만, 결국 아비의 병을 치유하는 약을 구하러 산천을 떠도는 바리공주 설화를 담아낸 가사에서 뜨거운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 바리가 여정을 떠나 갖은 풍파를 겪은 것처럼 내게도 힘든 순간이 있었다. 음반은 그때마다 한없이 나를 품어주시고, 바른길로 인도해주신 선생님을 생각나게 한다. 큰 위안을 얻은 음반인 만큼, 감사한 선생님께 헌정하고 싶다. 신효순 선생님은 판소리를 시작하게끔 용기를 주신 분이다. 선생님의 권유로 나간 대회에서 민요 한 자락을 불렀는데, 그때 다른 참가자가 부른 ‘춘향가’의 ‘갈까부다’를 듣고 판소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출연자의 그 소리가 참 애절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당시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는데, 선생님께서 내게 소질이 있다며 설득해주시기도 했다. “앞으로 소리를 하려면 소리북이 필요할 것”이라며 작은 용돈과 손편지를 건네주신 순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PART2 스승이 제자에게 추천하는 음악

 

러셀 셔먼(피아노)
Avie Records AV 2262 (2CD)

아니스트 손민수 – 쇼팽 ‘마주르카’ 전곡집

내가 피아니스트라는 사실을 망각할 만큼 누군가의 연주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그중 하나가 내 오랜 스승인 러셀 셔먼의 쇼팽 ‘마주르카’ 음반을 들었을 때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짜릿한 느낌이 들며 음반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녹음한 선생님의 쇼팽은 독창적이다. 쇼팽 음악의 정수가 담겼다 일컬어지는 마주르카를 이전에는 보지 못한 매우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이야기로 풀어냈다. 세상의 기준, 유행에 따르기보다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아 나가며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랄까. 최근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고 한 말과도 통할 것 같다. 시대와 유행은 변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중심을 가지고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개성을 지키는 것이 예술의 중요한 가치이다. 현재 아흔이 넘은 나이. 러셀 셔먼 선생님은 항상 명성과 유행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하셨고, 음악에 완전히 헌신한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다. 그 헌신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고 진리와 용기, 지혜가 담긴 음악에 있었다. “Follow your bliss.” 오로지 내 자아 속에 들어 있는 기쁨을 찾아가라는 말이다. 그 과정이 바로 음악가의 삶이 아니겠는가.

 

글렌 굴드(피아노)
Sony Classical 88725411822

피아니스트 임효선 –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서울예고 첫 학기 실기곡으로 모차르트 소나타를 준비하던 중, 친구가 빌려준 글렌 굴드(1932~1982)의 모차르트 소나타 음반을 듣고 큰 쇼크를 받았다. ‘음악이 말을 할 수 있다니!’ 며칠 내내 음반에 빠져 살았다. 이후 그의 생애, 음반, 비디오 등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용돈을 모아 골드베르크 음반을 샀다. 유학 시절에는 매일 아침 이 곡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음악이란 궁극적으로 자신의 말과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다. 한 음 한 음 생명력을 담아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고. 이 음반은 내가 생각하는 음악의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굴드는 1955년과 1981년, 두 차례 이 곡을 녹음했다. 각각 그의 데뷔 음반이자 별세 1년 전 녹음한 마지막 음반이다. 첫 앨범의 연주 시간은 약 35분, 마지막 앨범은 50분 가량으로, 같은 곡을 다른 템포로 재해석했다. 파격적이면서도 여전히 감동을 준다는 것이 놀랍다. 요즘은 클릭만 하면, 현재 가장 핫한 아티스트들의 연주를 바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전설적인 음반을 찾아 듣는 것도 중요하다. 제자들 모두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고, 음악을 통해 삶을 배우고 치유 받으며, 평생 친구가 되어 아름다운 음악을 계속 만들어 나아갔으면 한다.

 

바버라 웨스트팰(비올라)
Bridge 9094A/B

비올리스트 김상진 –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비올라 버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비올라에서도 필수적인 레퍼토리다. 대개 이 곡은 당대연주를 선호한다. 최근 들어 바흐 무반주 소나타를 낭만적으로 연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마 학생들 입장에선 어떠한 연주 방식을 취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바흐 무반주 소나타는 첼로 연주자들에게는 구약성서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비올라 악기는 현대에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사용하는 현과 활의 형태는 바로크 시대와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 당대연주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바버라 웨스트팰은 이 곡을 현대악기로 연주하는 방식을 택했다. 고음악을 연주할 때는 보통 튜닝을 반음 낮추는데, 웨스트팰은 동시대에서 사용하는 442~443Hz 조율에 맞췄다. 반면 연주는 당대 스타일로 한다. 학생들이 당대연주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음반이다. 연주는 사람이 말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언어는 발음만 정확하면 음의 높낮이가 없어도 뜻이 전해진다. 연주도 동일하다. 학생들이 프레이징 만드는 방법을 좀 더 고민하기 바란다. 음정과 리듬이 정확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프레이징을 만드는 핵심은 화성을 이해하고 화음을 들으려는 노력에 달려있다.

 

크리슈토퍼 파크닝(기타)
EMI/Angel Records CDC 7 47191 2

첼리스트 주연선 – 파크닝 플레이스 바흐

린 하렐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된 앨범이다. 선생님은 음악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첼로 외의 다양한 음악을 들으라고 조언해주셨다. 이 음반은 선생님과 바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추천받았다. 바흐의 음악은 첼로 레퍼토리 중 빠질 수 없는 작곡가이다. 그만큼 가장 중요하고 신중하게 배워야 할 음악이다. 첼로 음반도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아너르 빌스마(1934~2019), 파블로 카살스(1876~1973)처럼 반드시 들어야 하는 첼로 음반도 있다. 하지만 바흐를 공부한다면 첼로를 넘어 반드시 여러 악기의 음반을 듣도록 권유한다. 더블베이시스트 에드가 마이어나 기타리스트 파크닝의 음반에서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처음 이 음반을 들었을 때 너무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첼로와는 또 다른 소리와 해석으로 연주했는데, 정말 아름답다. 기타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스승으로서 제자의 고민이 나의 고민이 되고, 함께 노력해서 원하는 성과를 이뤘을 때도 물론 뿌듯하지만, 음악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마음을 나눌 때가 더 기쁘다.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음악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뿌듯하달까. “마음을 다해 연주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음악인이 되길!”

 

바바라 보니(소프라노)/호칸 하게고드(바리톤)/ 세이지 오자와(지휘)/ 보스턴 심포니탱글우드 페스티벌 합창단 RCA Victor Red Seal 09026 68659 2

플루티스트 이예린 – 포레 ‘레퀴엠’

리옹음악원 졸업을 1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그동안 받아온 수많은 혜택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그러던 중 학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정기연주회에서 연주한 포레 ‘레퀴엠’을 들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음악에 온몸에 전율이 오는 순간이었다. 마치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성스럽게 비치는 듯했다.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길로 바로 음반 가게로 달려가 이 음반을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이젠 나도 스승이 되어 아이들의 고민 상담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앞으로의 진로와 생활에 대한 고민을 많이 듣는다. 20대 초반, 여러 고민과 갈등을 안고 있는 그들에게 이 음악을 통해 받은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다. 오자와의 ‘레퀴엠’은 무겁거나 과장되지 않고 프랑스적 색채가 잘 표현되었다. 풍성하고 정교한 사운드도 돋보인다. 음반에는 바바라 보니와 하게고드가 부른 프랑스 가곡도 수록되어 있다. 플루티스트에게 중요한 작곡가 중 하나인 포레의 다양한 선율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서 음악으로 교감할 때 참 행복함을 느낀다. 그들이 음악을 통해서 받은 위로를 세상에 다시 전할 수 있는 음악가가 되기를 응원한다.

 

데니스 브레인(트럼펫)/ 카라얀(지휘)/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His Master’s Voice ASD1140

호르니스트 김영률 –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1985년 경 미국 유학 시절, 뉴욕 로체스터의 한 레코드 가게에서 이 음반을 발견했다. 빨간 배경에 어우러지는 금색 호른 커버. 심플한 디자인이 멋있어서 첫눈에 눈길이 갔다. 마침 할인을 하기에 바로 구입했다. 그해 가을, 스승인 베른 레이놀즈(1926~2011)와 이스트만 음대에서 데니스 브레인(1921~1957)과 이 음반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지휘자 카라얀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협업으로 탄생한 음반인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의 결정적인 녹음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 시기의 나도 모차르트 협주곡을 배우고 있었다. 레이놀즈는 나에게 데니스 브레인처럼 모든 음역의 소리를 자연스럽게 내라고 했다. 그날 대화를 마치고 선생님도 근처 레코드 가게에서 이 음반을 사겠다고 한 기억이 난다. 새삼 레슨 때마다 선생님과 나누던 수많은 음악가와 음반 얘기가 떠오른다. 오랜만에 음반을 꺼내 보았는데, 새빨간 커버가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마치 호른을 처음 배웠을 때처럼 말이다. 현재는 다양한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 녹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 음반은 호른을 배우는 학생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한다. ‘모차르트다운’ 호른 소리를 내고 싶다면 말이다.

 

 

마리스 얀손스(지휘)/ 오슬로 필하모닉 Chandos CHAN 8351

호르니스트 김홍박 –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오슬로 필을 지금의 명성으로 이끈 지휘자는 단연 얀손스(1943~2019)일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한 이 음반은 단체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역할을 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은 2악장 호른 솔로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래서 학생 시절 여러 음반을 찾아 들었는데, 그때 이 앨범을 접하며 오슬로 필도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오케스트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는데 지금 이곳에 몸담고 있다니, 우연이 굉장한 인연이 된 것 같다. 음반에서는 젊은 얀손스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열정적이면서도 잘 정돈되어있고, 깔끔하면서도 자연스럽다. 그는 단원들의 악보에 직접 표기를 남길 정도로 섬세한 사람이었는데, 이곳에 남은 그의 여러 흔적을 보며 이런 섬세함으로 단체를 따뜻하게 이끌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게 이 음반은 오슬로 필을 알게 해주었고, 결국 이곳에 도전하고 싶게 만들었다. 연주자로서 동기부여가 된 셈이다. 당시에는 그저 스쳐 가는 작은 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이 모여 지금 내 삶의 큰 의미가 됐다. 이처럼 여러 순간이 당장은 의미 없어 보일 순 있지만, 그것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작은 순간도 소중히 생각하기를, 그리고 느려도 좋으니 기다림을 즐기며 음악을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장 드니 미샤(색소폰)
jdmichat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 – 다크 사이드

리옹음악원에서 스승인 장 드니 미샤를 만났다. 리옹으로 유학을 결정한 이유는 오로지 미샤에게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 음반은 그가 직접 작곡·편곡한 음악을 담았다. 동시대 작곡가들이 색소폰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 많은 색소포니스트는 직접 작곡과 편곡을 시도하는 편이다. 나 역시 유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작곡을 배웠다. 이 음반은 내가 미샤와 공부하던 시기에 발매됐다. 음반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색소폰은 다채로운 음색을 낼 수 있는 악기이다. 목관악기의 세심함과 금관악기의 웅장함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 따라서 폭넓은 표현이 가능하다. 미샤는 ‘색소폰처럼’ 연주하는 걸 지양한다. 성악이나 현악의 느낌을 살리는 연주가 특징이다. 음반에서는 알토색소폰과 오케스트라가 협연한 ‘Shams’라는 곡을 귀 기울여 듣길 바란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볼 때와 같은 묘한 감정을 불러오는 이 곡은 해외 콩쿠르의 최종결선에서 연주될 만큼 유명하다. 색소폰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대다수가 진로에 대해 고민한다. 색소폰은 오케스트라에 입단할 수도 없으니 더 막막할 테다.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조언해 주는데, 나 역시 그 길을 먼저 걷고 있는 선배이니 책임감이 든다.

 

 

마르셀 그랑자니(하프)
Capitol PAO 8420

하피스트 곽정 – 하프를 위한 음악

대학교 1학년 때, 전 세계에 있는 하프 음반을 수집하곤 했다. 그때 이 음반을 처음 만났다. 마르셀 그랑자니(1891~1975)는 20세기에 활약하던 하피스트다. 그랑자니가 작곡한 작품은 해외 콩쿠르에 항상 나오는 단골 레퍼토리가 됐다. 피아노로 치면 쇼팽 같은 존재랄까. 그랑자니의 곡을 연주하지 않고는 결코 하프를 전공할 수 없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담백하다. 언젠가 그랑자니는 “하프 소리는 연주자의 골격에 따라서 다르게 나온다”고 말했다. 여성 연주자들의 소리는 대부분 날카롭고 직설적인데, 남성인 그랑자니의 연주는 부드럽고 포용력이 있다. 젊은 연주자들은 갈수록 빠른 속도로 연주하는 걸 즐기는 듯하다. 이들이 그랑자니의 따뜻한 음색을 참고하면 좋겠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대부분 대가의 LP를 수집해 감상하곤 했다. 요즘은 대부분 이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다. 성장 중인 연주자들이 유튜브로 음악을 접하면 무의식적으로 잘못된 주법을 습득할 수 있다. 시각적인 것에 매료되기보다는, 들리는 소리에 좀 더 귀 기울여 연습하길 바란다. 자신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한다면 좋은 음색을 갖게 될 것이다.

 

 

 

프리츠 분덜리히(테너)
Deutsche Grammophon 4497472

바리톤 정록기 – 슈만 ‘시인의 사랑’ 외

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해서 처음 구입한 LP이다. 소중한 경험이어서 오랫동안 애착을 갖고 들었다. 프리츠 분덜리히(1930~1966)의 스승인 폰 빈터펠트는 시각장애를 가진 성악가였다. 학창 시절 의욕을 잃고 방황하던 분덜리히를 어머니처럼 훈육하면서 가르친 은사이다.
이 음반은 요절한 분덜리히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 34세의 나이에 녹음됐다. 젊은 나이인데도 곡 해석의 깊이가 믿기 힘들 정도로 뛰어나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다. 독일 가곡을 노래할 때에는 시에 대한 해석, 표현, 이를 위한 발성 능력이 중요하다. 이 음반이야말로 그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젊은 성악가들을 보면 꾸준히 한 길로 가다가 여러 유혹을 만나는 것 같다. 사실 분덜리히가 살아있을 때에 독일 상황도 비슷했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그는 돈벌이를 찾아서 군대와 밤무대 행사를 다니며 유행가를 불렀다. 당시 녹음된 분덜리히의 노래를 들어보면 어떤 장르를 불러도 수준이 높다. 점점 크로스오버에 도전하는 성악가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자신의 분야에서 기본을 쌓아야지만 다른 음악을 할 때에도 설득력이 생길 것이다. 분덜리히를 귀감으로 삼길 바란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Deutsche Grammophon 4690002

지휘자 정치용 – 베토벤 교향곡 전곡

지휘자에게 베토벤 교향곡은 항상 연구하고 꾸준히 공부해야 하는 작품이다. 여러 음반을 접했지만, 그중 아바도(1933~2014)가 2000년에 선보인 전곡집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음악적 해석 방향이 카라얀, 번스타인, 푸르트벵글러 등 이전 시대 대가들의 녹음에 비해 훨씬 더 세련되게 느껴졌다. 너무 무겁고, 중후하고, 에너지를 소비하는 식의 연주가 아니고, 아르농쿠르 등 원전 악기를 가지고 베토벤을 녹음했던 사람들을 많이 연구한 느낌이다. 악보에 충실하게 연주했고, 쓸데없이 무겁게 들릴 수 있는 군더더기들을 전부 다 들어냈다.
20년 전의 음반이라 지금은 그다지 신선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연주 방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한 용기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공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악을 공부하는 데 있어 음반 활용은 중요하다. 그러나 여러 음반을 비교해 들어야 하고, 듣는 것에 그치지 말고 반드시 사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항상 악보와 함께 듣기를 권한다. 악보를 통해 음악의 핵심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음반은 그야말로 참고일 뿐.

 

 

 

정농악회
신나라 NSSRCD009

가야금연주자 이지영 – 영산회상

정농악회의 영산회상이 10년 만에 CD로 발매됐다. 국악계 최고의 연주자로 구성된 정농악회는 1982년 영산회상 전집을 LP로 녹음한 바 있다. 그리고 10년 만에 신나라 레코드가 CD로 복각했다.
CD는 총 네 개(현악영산회상·관악영산회상·평조회상·별곡)로 구성되어 있다. 해금의 김천흥, 대금의 김성진, 단소의 봉해룡, 장고의 이석재·김태섭, 거문고의 김선한, 가야금의 김정자, 양금의 양연섭, 세피리의 서한범 등 국악계 최고 원로들이 연주했기에 더없이 귀한 음반이다. 이러한 음반은 과거에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제작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야말로 정악 음반의 명반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대학 시절 한창 정악을 익힐 때, 정농악회의 영산회상을 LP로 들으며 공부했다. 젊은 시절의 추억이 서려 있는 음반이기도 하다. 이후 제자들에게 정악을 가르칠 때면 이 음반은 무조건 참고하라고 재차 강조한다.
정악을 배우는 학생, 혹은 정악이 궁금한 독자들이라면 꼭 들어보길 권한다. 정악은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다. 영산회상을 통해 정악의 정수를 느낄 수 있을 테다. 음반을 들으며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안식을 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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