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곡, 제2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10월 12일 9:00 오전

한국가곡, 제2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한국 최초의 가곡으로 알려진 홍난파의 ‘봉선화’의 가사입니다. 이 작품은 1920년 기악곡으로 발표됐고, 4년 뒤인 1926년에 가사가 붙었습니다. 
가곡(歌曲)은 시에 선율을 붙인, 문학과 성악이 공존하는 음악의 한 장르입니다. 모국어로 된 시어를 노랫말로 사용한 노래로, 시대의 감성을 온전히 담아냅니다. 독일의 리트, 이탈리아의 칸초네, 프랑스의 샹송은 이러한 배경을 공통으로 하여 태어났습니다. 
한국가곡의 기원이 명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노래는 지금 100년의 시간을 품고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노래의 생산과 향유의 방식이 바뀌면서 가곡은 소수의 노래에서 대중으로 노래로, 무대에서 온라인 콘텐츠로 점점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이번 특집은 21세기 한국가곡을 준비하는 지면을 마련했습니다. 한국가곡에 대한 애정을 보여 온 중견 성악가 고성현과 홍혜란, 새로운 가곡 화성을 고민 중인 작곡가 윤학준·최진·이원주·김효근, 미래의 한국가곡을 책임질 차세대 성악가 이해원과 길병민을 만났습니다. 
8명의 사람을 만나니 8명의 사연에 음(音)이 더해집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까요?
글 장혜선 기자

바리톤 고성현
소프라노 홍혜란
작곡가 윤학준
작곡가 최진
작곡가 이원주
작곡가 김효근
소프라노 이해원
베이스바리톤 길병민

고성현(1962~)은 서울대와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푸치니 콩쿠르 1위를 하며 이름을 알렸고, 현재 한양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5년 첫 한국가곡 음반을 선보인 이후, 첫 디지털 싱글 ‘인생이란’ (2015), ‘시간에 기대어(2016/유니버설뮤직)’ 음반을 발매했다.


마음의 무게가 깊어질 때

바리톤 고성현

멀리 보이는 산등성은 낯익지만, 차마 그곳에 갈 수 없는 비통함. 가곡 ‘산아’에 담긴 마음의 무게는 얼마큼일까. 작곡가 신동수는 부친 신홍철이 고향 이북을 그리워하며 쓴 시에 음을 붙였다. 이 곡을 처음 부른 사람이 고성현이다. 그는 1983년 MBC ‘대학가곡제’에서 ‘산아’를 불러 대상을 받았다. 오페라에 버금가는 극적인 표현력이 필요한 이 곡은 현재 바리톤에 의해 많이 불리고 있다. 
젊은 시절, 고성현은 ‘대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푸치니 페스티벌에서 우렁찬 음량을 과시하며 얻은 별명이다. 유럽을 활보하다 한국에 들어온 그는 언젠가 “목소리를 키우는 것보다 드라마를 싣고, 서정을 싣고, 아름다움을 싣는 것이 몇 배는 더 고수라는 것을 알았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예순을 앞둔 고성현은 한국가곡에 담긴 섬세한 노랫말에 관심을 쏟고 있다. 산등성이 붉게 물들고 있는 초가을, 한양대 교정에서 고성현을 만났다. 그는 20대와 50대, 30년의 세월이 축적되며 ‘산아’를 부르는 마음의 무게가 달라졌다고 한다. 

우선 젊은 시절 얘기부터 해볼까. ‘대포’라고 불리던 고성현. 그리도 큰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큰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생활비가 필요해 노래 대신 여행 가이드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노래를 하러 이 먼 타국에 왔는지,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 왔는지 혼란이 오더라. 신께 “일용한 양식을 책임져 달라”고 기도한 뒤 그다음부터는 죽기 살기로 노래만 했다.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실력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큰 소리를 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대포’라는 별명까지 생기게 됐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큰 소리보다 작은 소리가 더 감동을 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부분 또래 중견들이 교직에 몸을 담고 안정을 찾고 있을 즈음, 해외에 나가 오페라 무대를 활보했다. 이후 국내 오페라 발전에 힘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한국가곡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보였는데. 
내 머릿속에 60여 권의 오페라 악보가 들어가 있다. 젊은 시절,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40대까지는 세계 최고 드라마틱 바리톤과 붙어도 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50대 초반에 우연히 내가 선 오페라 영상을 봤다. 왜 축구선수 손흥민이나 야구선수 류현진 같이 해외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보면 영웅적으로 보이지 않나? 그런데 서양인 사이에서 노래하는 내 모습이 과연 영웅적인지 의심이 들었다. ‘춘향전’ 무대에 서양인 이몽룡이 서 있는 느낌이랄까. 그 이후 한국어 노래에 관심이 생겼고, 작곡가들이 한국어로 노래를 많이 써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다. 이는 한국가곡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한국가곡을 주제로 한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때 우리 가곡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던 시기가 있었다. KBS FM의 ‘정다운 가곡’이나 ‘열린음악회’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가곡이 많이 노출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방송사에서 프로그램 구성에 한국가곡을 소외시키더라. 한국가곡이 친일 작곡가들과 깊은 연관이 있어서 그런 듯하다. 요새 새로운 가곡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한국가곡 백 주년을 맞아 다양한 매체에서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1980년대에 대학가에서 한국가곡이 많이 불렸나? 학교에서 한국가곡 정식 수업을 받은 적이 있는가?
나는 1981~1984년까지 서울대에서 공부했는데 당시 한국가곡 수업은 없었다. 서울대에서 커리큘럼을 짜면 다른 음대에서 많이 참고하는 편이다. 서울대에 한국가곡 과정이 없었다면 아마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가곡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알아서 공부하는 분위기였다. 당시에도 지금의 ‘팬텀싱어’와 같이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MBC ‘대학가곡제’가 있었다. 그 외 ‘강변가요제’ ‘대학가요제’처럼 젊은이들이 맑게 음악을 추구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았다. 
대학 시절, 서울대 선배인 작곡가 신동수의 제안으로 ‘대학가곡제’에 참여했다. 당시 소회가 궁금한데.
연습실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연습하는 사람들은 꼭 작곡과였다. 신동수 선배도 늦은 시각까지 연습하곤 했는데, 어느 날 옆방에 있는 나에게 자신이 쓴 ‘산아’ 악보를 건네며 ‘대학가곡제’에 나가자고 했다. “네 목소리가 바리톤인데도 높은 음이 가능하니 이 곡과 어울릴 것”이라며, “너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했다. 가곡제에서 상금을 받으면 라면 대신 삼겹살을 먹을 수 있다기에 참여했다.(웃음) 그때 1등을 해서 그 겨울에는 삼겹살을 많이 먹은 기억이 난다.
가곡에 어울리는 음색이 있을까? 바리톤에게 어울리는 가곡은?
신동수의 ‘산아’나 윤학준의 ‘마중’ 같은 곡들이 바리톤이 부르기에는 참 좋다. 몇몇 작곡가들은 소프라노나 테너를 대상으로 곡을 써서, 내가 부르고 싶어도 부르기 힘들더라. 가곡 작곡가들이 특정 성악가를 염두에 두고, 그 성악가의 특징을 분석해 곡을 쓰면 좋겠다. 이탈리아나 독일 가곡이 꽃을 피우던 시기에 유명 작곡가들 옆에는 꼭 유명 성악가가 있었다. 베르디나 푸치니, 슈베르트, 슈만 옆에는 늘 역량 있는 가수들이 함께했다. 성악가도 가곡 작곡가의 작품을 소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작곡가도 성악가들에 대한 공부를 한다면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룰 것이다.   
현재 한양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한국가곡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실정인가?
한양대에선 4학년이 되면 선택 과목으로 ‘한국가곡문헌’을 수강할 수 있다. 하지만 오페라 수업에 비하면 인기는 떨어진다.
학생들이 이탈리아나 독일 가곡 위주로 교육을 받는다면, 한국가곡을 접했을 때 어려움을 느끼겠다. 예를 들어 한국어 딕션에 관한 문제라든지.
이는 감각의 영역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 다 잘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작곡가가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라고 곡을 써도, 감각 있는 가수들은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라고 부른다. 
가곡은 연륜이 쌓여야 더 깊은 울림으로 부를 수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가곡에 담긴 노래 가사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면 세월이 좀 흘러야 된다. 최진 작곡가의 ‘시간에 기대어’에는 “연습이 없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러한 가사를 진정성 있게 부르려면 세월의 무게를 체험한 시간이 필요할 테다. 젊은 제자들이 나보고 ‘시간에 기대어’를 부르고 싶다고 하면, 차라리 ‘서툰 고백’을 부르라고 한다.
최근 ‘팬텀싱어’ 방송에 젊은 성악가들이 출연해 한국가곡을 열창하며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내 제자들도 그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했다. 노래도 잘하고 외모도 멋진 친구들이어서 방송에 나오면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의 인기가 40대, 50대에도 지속될 수 있는지는 스스로 신중히 생각해보길 바란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젊은 나이에는 정통 레퍼토리에 몰두해야 한다.
요즘은 성가 앨범 녹음에 힘을 쏟고 있던데, 성악가로서 앞으로의 비전은? 
어린 세대를 위한 비전이 있다. 차범근이나 박지성 같은 축구선수가 은퇴 후 ‘어린이 축구 교실’을 하는 것처럼, 나도 ‘어린이 성악 교실’을 열고 싶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노래를 부르며 성장한다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 같다. 대학로에 연극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처럼, 가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 ‘한국가곡홀’이 있어서 매일 다른 가수가 다른 가곡을 부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 장혜선 기자


“ 산아 사랑하는 내 고향의 산아
종내 너를 두고 나는 가누나
내 마음의 무게이고 
내 넋의 크낙한 날개여
두 팔로 내 목을 얼싸안고
안타까이 나를 울리는 사랑아
산아 내 고향의 산아 잘 있거라

내가 죽어서도 돌아올 보금자리여
어디메 묻혔다가도 되돌아와 묻힐
내 무덤이여

오 눈익은 묏부리 묏부리여
살뜰한 골짜기 골짜기여
언제 돌아온단 기약도 못한 채
종내 나는 떠나가누나
잘 있거라 잘 있거라 잘 있거라“
- ‘산아’ (신홍철 시, 신동수 작곡)

바리톤 고성현이 부르는 ‘산아’

 

홍혜란(1981~)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졸업과 동시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발탁되어 오페라 ‘맥베스’로 데뷔했다. 201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분 우승을 하며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2020년 첫 정규 앨범 ‘희망가’를 발매했다.

 

당신의 희망은 무엇인가요?

소프라노 홍혜란

‘희망가’는 100년간 잊히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 노래는 우리 음악사 처음으로 ‘대중가요’라고 지칭된 유행가다. 올해 1월, ‘희망가’는 소프라노 홍혜란의 1집 앨범에 담기며 한국가곡으로 명명되기에 이른다. 노래의 악곡은 미국의 찬송가 ‘When We Arrive at Home’에서 빌려왔지만, 노랫말을 음미하다 보면 우리 노래라는 걸 부정하긴 힘들다. 
‘희망가’에 담긴 무엇이 오랜 기간 대중의 마음을 흔든 걸까. 아마 가사에 담긴 먹먹함 때문일 테다. ‘희망가’는 청년을 향한 계몽가인데, 이상하게 거부감보다는 호소력이 느껴진다. 
홍혜란은 아버지가 흥얼거리는 ‘희망가’를 부르며 자랐다. 풍진 세상에 넘어져도 아버지는 희망을 놓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줄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을 때, 아버지는 곁을 떠났다. 
홍혜란은 사랑받았던 삶의 기억들을 ‘희망가’에 담아 불렀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는 다시금 희망이 되어 대중의 마음을 만졌다.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주요 음반 차트에서 판매 1위를 휩쓸었다. 많은 사람들의 성원으로 추가 CD를 제작하고, 한정판 LP까지 나오게 되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지쳐있던 무렵, SNS에선 클래식 음악가들 중심으로 ‘희망가 릴레이’가 펼쳐졌다. 홍혜란의 노래를 시작으로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 바이올리니스트 박진수, 피아니스트 문종인·정환호 등이 릴레이를 이어받아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성악가 홍혜란의 꿈은 간결하다. 노래로 희망을 전하는 것. 그는 “음악이 주는 힘을 신뢰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희망가 릴레이’에 관한 소감부터 들어보고 싶다.
‘희망가’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불러주던 곡이었다. 늘 나를 위로해 주던 곡이었는데, 이번 ‘희망가 릴레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위로받았다고 해서 감회가 새로웠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이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출신’이라는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국내 첫 정규앨범을 한국가곡으로 택한 이유는? 
개인적인 사연 때문이다. 부모님이 엄하신 편이어서 늘 얌전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마음에 있는 것들을 마음껏 표출하지 못해서 답답했는데, 노래하다 보면 다 표현이 되더라. 부모님을 향한 고마운 마음도 노래를 통해 전하고 싶었다. 이탈리아나 독일가곡은 아무래도 이러한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더라. 한국가곡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상해하던 시기에 남편(테너 최원휘)이 지금이 제일 빠른 시기라며 용기를 줬다. 
한국어가 가진 특유한 성질이 성악 발성할 때 힘들다던데.
각국의 언어 발음법이 성악에서는 조금 다르게 발전해왔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 ‘R’은 파열음이지만, 노래할 때는 발음을 굴려야 한다. 영어도 오페라·팝송·가곡에 따라 딕션이 다 다르다. 성악에서의 한국어 발음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노래할 때 가곡과 오페라의 차이는 무엇인가? 볼륨의 차이일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음악의 볼륨보다는 표현의 차이인 것 같다. 오페라는 대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과 함께 서야 한다. 그러다 보니 좀 더 과장되게 표현을 해야 된다. 가곡은 소규모 공연장에서 피아노와 함께 하니 섬세한 감성이 필요하고. 
오페라는 성악가 음역에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한정되어 있다. 반면 한국가곡은 전조를 할 수 있으니 음역에 대한 제한은 없다고 할 수 있나? 
내 앨범에 담긴 ‘산촌’이나 ‘희망가’의 경우도 남성에 의해 많이 불리던 노래였다. 가곡은 조성을 변경할 수 있으니 도전하고 싶은 노래는 거의 다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가사에 따라 남성적인 노래와 여성적인 노래가 분류되긴 한다. 
음반 ‘희망가’ 발매 이후 한국가곡에 대한 사명감이 더욱 높아졌다고 들었다. 앨범에 담긴 노래들을 영어로 번역하느라 힘든 과정을 거쳤다고.
미국에서 공부할 때부터 한국 가수이기 때문에 우리 음악을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김동진의 ‘신아리랑’을 불렀다. 그러다 보니 한국 가사에 담긴 매력을 잘 살릴 수 있는 영어 번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번 ‘희망가’ 앨범에 담긴 가사들을 번역하는데, 그 노랫말들을 그대로 옮길 영어 단어를 찾는 게 정말 어려웠다. 한국어에 담긴 정서를 매끄럽게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 
홍혜란의 노래 인생에서 가장 많이 부른 한국가곡은 김동진의 ‘신아리랑’이겠다.
맞다. 신기한 건 외국에서 아리랑을 불러도 다들 감동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곡이 끝나면 눈물을 흘린다. 아마 그들이 가사를 이해했다기보다는, 내가 노래하면서 그 가사에 온전히 감정 이입한 모습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앨범 편곡에 참여한 김택수, 오은철, 문종인, 민경아 작곡가와는 어떻게 연이 닿았나?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지인을 통해 김택수 작곡가를 소개받았다. 김택수 작곡가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있었다. 한국가곡에 대한 여러 견해가 나와 잘 맞았다. ‘희망가’ 앨범을 계획하며 김택수 작곡가가 오은철, 문종인, 민경아 작곡가를 추천해줬다. 현대 작곡가들이 가진 의외의 유연성에 놀랐다. 모두가 나의 음악적 스타일을 존중해주었고, 원활한 소통 과정을 거치며 앨범을 완성해갔다. 한국가곡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작곡가와 성악가가 열린 마음으로 교류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깨달았다. 
‘희망가’ 앨범에 수록된 곡들로 미주 투어를 준비 중인데.
아쉽게도 코로나19 때문에 투어 계획이 미뤄졌다. 전염병이 종식되면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희망가’ 독창회를 열고자 한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가곡이 필수 과정이라고.
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01학번이었는데 당시 우리 학교는 한국가곡 수업을 필수로 들어야 했다. 지금의 재학생들도 한국가곡을 필수적으로 수강하고 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몇몇 대학만 한국가곡 수업을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는 듯하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앞으로 한국가곡에 대한 체계적인 수업이 늘어나길 바란다.
줄리아드 음악원의 입학시험에서도 한국가곡을 불러야 한다고 들었다.
줄리아드 음악원은 꼭 자국의 노래를 부르도록 시킨다. 나 역시 입학할 때 한국가곡을 불렀다. 모국어로 된 언어를 부를 때 표현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보기 위해서다. 
서양가곡과 한국가곡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형식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그렇지만 한국가곡만의 특징은 있다. 무엇보다 가사에 우리 민중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민요의 음악적 색깔을 가져온 가곡도 많은 편이다. 한국의 가곡은 단순히 예술 작품이 아니라, 시대적 아픔과 공감하며 애국심을 고취하는 역할을 해온 것 같다. 한국가곡은 민족음악이다.
최근에 나온 가곡 작품들은 지나치게 선율 중심적이어서, 대중음악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확실히 동시대 가곡은 훨씬 더 선율적인 것 같긴 하다. 구조적으로는 조금 약하다는 생각도 들고. 한때는 지금 나오고 있는 가곡들이 영화 OST 같아서 가곡이라고 하기엔 애매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예술은 동시대 상황을 대변한다. 순수음악이 좀 더 대중과 친숙해지고 있는 시기인 듯하다. 위로의 음악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니까. 살펴보면 토스티나 에릭 사티의 가곡이 이와 비슷하다. 예술은 전통성도 중요하지만 다양성도 놓치면 안 된다.
한국가곡, 훗날 독일이나 이탈리아 가곡처럼 세계 음악계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발음에 대한 고민이다. 러시아가곡은 발음 기호가 달려서 나온다. 한국가곡에도 그러한 발음 기호가 있다면 서양인들이 부르기에 훨씬 좋을 것 같다. 또한 곡의 구조에 대한 연구도 면밀히 이뤄져야 한다. 연가곡처럼 예술성을 갖춘 작품이 나온다면 금방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다음 음반에 대한 계획은?
남편인 테너 최원휘와 함께 성가곡을 녹음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특별한 분과 함께 사랑을 주제로 한 동서양 가곡 음반을 발매하고자 한다. 특별한 분이 누구인지는 아직 비밀이다.
성악가로서 이루고 싶은 것들은?
소박하다. 노래를 통해 필요한 곳에 사랑과 위로를 전하고 싶다. 망상적인 비전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난 음악이 가진 힘을 신뢰한다.
‘한국가곡의 세계화’ 같은 거창한 계획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웃음)
그야 물론! 노력할 것이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스톰프 뮤직


“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세상 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 ‘희망가’ (작사 미상, 오은철 편곡)

홍혜란이 부르는 ‘희망가’

 

윤학준은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음악교육과 석사 졸업, 박사 수료했다. 현재 충청북도교육문화원 교육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제8회 ‘화천비목콩쿠르’에서 창작가곡 부문 1위를 수상하며 다수의 가곡을 발표했다. 대표곡으로는 가곡 ‘마중’ ‘잔향’ 등이 있다.

 

사랑이 멀어 올 수 없다면

작곡가 윤학준

윤학준이 작곡한 ‘마중’을 듣고는, 솟구치는 그리움에 마음이 달떴다. 어찌 된 감정인가. 가사를 찬찬히 살펴보니 아름다운 시어(詩語)다. 
사실 윤학준은 동요 작곡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 그의 동요에 담긴 화성이 세련된 탓인지 어른이 부르면 어느새 가곡으로 다가온다. 그중 ‘마중’은 그에게 ‘가곡 작곡가’로 명성을 안겨준 노래다. 허림의 시에 음(音)을 붙인 ‘마중’은 제8회 ‘화천비목콩쿠르’(2014)에서 창작가곡 부문 1위를 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팬텀싱어2’에 출연한 바리톤 박상규가 ‘마중’을 부르며 다시금 대중의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그는 자신의 가곡에는 그리움의 정서가 녹아있다고 한다. 허림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도 연연한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장학사로 일하면서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가이면서도 교육자여서 특히 예술교육에 대한 포부가 깊어 보인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음악을 영위하는 삶을 즐기길 바란다고. 앞으로는 젊은 층이 공감하는 가곡을 쓰고 싶다고 마음을 전했다. 

충북 지역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처음 동요 작곡을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부임했는데 아이들이 동요가 아니라 가요를 흥얼거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로 동요(반가)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더라. 이후 지인 소개로 여러 곳에서 열리는 ‘창작동요제’를 알게 됐고, 창작동요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동요를 몰라서 안 부르는 거지, 안다면 누구나 좋아할 곡들이 많았다. 이후 여러 동요제에서 입상하면서 본격적으로 동요 작곡가로 활동했다. 
현재는 동요와 합창, 가곡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특히 합창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어릴 적부터 내 꿈은 작곡가였다. 교직 활동을 하면서도 합창 작곡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2011년 중앙아트에서 개최하는 ‘창작합창곡 공모전’에 두 곡을 공모했는데, 두 곡 모두 선정됐다. 2013년에는 ‘안동합창음악창작페스티벌’에서 ‘진달래꽃’이 전체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합창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한국가곡과는 어떻게 연이 닿았나?
동요를 작곡할 때 풍부한 화성에 신경 쓰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어른이 부르면 가곡 같다는 말을 들었다. ‘나만의 별’이라는 곡을 여러 ‘창작동요제’에 응모했는데 자꾸 떨어지더라. 마지막으로 ‘용인창작가곡제’에 공모했는데 당선됐다. 이후 ‘화천비목콩쿠르’에 ‘마중’이 1위 하며 유명세를 탔다. 
‘마중’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사실 ‘마중’을 처음 썼을 때 만족스럽진 않았다. 담백하면서도 너무 단순한 건 아닌가 해서 대중이 사랑해 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예상외로 ‘마중’이 인기를 끌어서 나도 놀랍다. 작곡가의 의도와 대중의 반응은 다르다는 걸 느낀 계기가 됐다. 앞으로 가곡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곡이다.
길병민, 이해원 등 20대의 성악가들이 최근 이 곡을 불러 다시금 화제를 모았다. ‘팬텀싱어2’에서 바리톤 박상규도 ‘마중’을 불렀다. 방송에서 불린 작품들이 인기가 더 많은가?
예전에 동요 관련해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는 엠넷에서 시도한 동요 서바이벌 프로그램 ‘위키드’에서 송유진이라는 친구가 ‘꼭 안아줄래요’를 불러 화제를 모았는데, 방송을 통해 가곡이나 동요가 알려지는 현상에는 매우 긍정적이라는 내용이다. 최근 트로트가 서바이벌 프로그램 덕에 다시 인기를 얻은 것처럼, 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다루는 방송이 나오길 바란다.  
‘마중’을 노래한 가수 중 유독 마음에 닿은 사람은?
요즘은 많은 훌륭한 성악가들이 노래한 ‘마중’이 유튜브에 있더라. 작곡가로서 뿌듯하고 감사하다. 성악가별로 느낌도 다 다르다. 소프라노 서선영이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마중’을 부르는 영상을 봤다. 서선영의 소리도 참 좋았고, 오케스트라 편곡도 훌륭했다. 피아노 버전으로는 이 곡을 처음 노래한 바리톤 송기창 버전이 좋다. 
현재 동요와 합창 작품에 비해, 가곡 작업 수는 적은 편인데.
그동안 동요는 ‘창작동요제’에 내기 위해 많이 썼고, 앞으로도 아이들의 감성교육을 위해 계속 쓸 계획이다. 합창은 합창단에게 보통 위촉을 받았다. 그런데 가곡은 위촉을 받거나 공모에 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요즘은 젊은 성악가들이 가곡을 많이 부르면서 가곡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젊은 세대 뿐 아니라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가곡을 많이 쓸 계획이다. 또한 합창곡을 쓸 때에도 솔리스트가 부르면 가곡이 될 수 있도록 염두에 두고 곡을 쓰려고 한다. 최근 바리톤 김주택이 부른 ‘나 하나 꽃 피어’가 그런 곡이다. 청주시립합창단 위촉으로 작곡된 곡을 가곡 버전으로 다시 공개했다. 
한국가곡만의 중요한 음악적 형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한국가곡에 담긴 시어에는 외국어로는 표현 못 하는 말들이 있다. 한국어 특징을 음악적으로 살리는 게 중요하다. 또한 작곡가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클라이맥스에서 감성을 자극할 뭔가가 있어야 한다. ‘마중’도 이 부분을 염두에 뒀다. 서양에서는 바로크부터 낭만시대에 이르기까지 음악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을 즐겨왔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삶의 애환을 노래했다. 서양과 우리나라의 음악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음악을 즐기는 국민들의 취향도 다른 듯하다.
한국가곡에는 애틋하면서도 애처로운 가사들이 녹아있다. 역시 한국가곡의 힘은 노랫말일까?
최근 젊은 성악가들이 한국가곡을 자주 부른다. 이원주의 ‘연’, 최진의 ‘시간에 기대어’ 같은 곡들을 많이 부르더라. ‘마중’이 젊은 사람들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꽃으로 서 있을게”와 같은 아름다운 시어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젊은 사람들도 공감할 만한 가사의 곡이 나와야 될 시기다. 물론 음악적으로도 공감되어야 하고 세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좋아하는 한국 시인이 있는지도 궁금한데.
‘마중’을 작곡하며 허림 시인과 연을 맺었다. 허림의 시에 담긴 그리움에 대한 정서가 나와 통한다. 국립합창단에서 발표한 합창곡 ‘아련’도 허림의 시에 음을 붙인 것이다. 그의 시를 읽으며 작업하다 보면 종종 눈물이 나곤 한다. ‘아련’도 쓰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최근 블로그에 인터넷에 엉망으로 편곡된 악보들이 돌아다니고, 사람들이 그 악보로 노래를 불러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교육청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자신이 반주자인데 의아해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마중’의 두 번째 마디 끝부분이 왜 b♭이냐고 묻더라. 그런데 내가 쓴 오리지널 악보에는 A로 표기되어 있다. 대학에서 ‘마중’ 반주를 많이 하는데, 다들 잘못된 악보로 연주한다고 해서 혼란스러웠다. 알고 보니 누군가 악보의 음을 틀리게 기재하여 배포한 것이다. 악보가 올라가있던 블로그에 연락해 그 악보를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내 악보는 ‘악보나라’에만 원작으로 올리도록 제공하고 있다. 
이는 가곡 작곡가들의 저작권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대중음악과 순수음악의 가장 큰 차이를 생각해봤다. 대중음악은 가수 중심이고, 순수음악은 작곡가 중심이다. 대중음악은 BTS의 ‘봄날’이라고 소개하지만, 순수음악은 윤학준의 ‘마중’이라고 소개하지 않나. 대중음악은 음원으로 먼저 발표되지만, 순수음악은 악보로 세상에 나온다. 악보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편곡자들이 내 음악을 듣고 마음대로 개작하여 올리곤 한다. 순수음악 작곡가들의 음악적 가치를 지켜줄 수 있는 최초의 결과물이 악보인데, 원작자의 허락 없이 바꾸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악보가 변형되어 배포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끝으로, ‘윤학준의 가곡’을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한다면?
그리움. 내 음악적 코드에는 그리움이 많이 담겼다. 슬픈 곡인데 아름답다고도 한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 특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저 보고 싶은 사람 등….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곡을 쓰다 보니 그리운 감정이 가득 담겼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이 있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글 장혜선 기자

“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말 한마디 그리운 저녁
얼굴 마주하고 앉아
그대 꿈 가만가만 들어주고
내 사랑 들려주며
그립다는 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가 아닐까
사는 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꽃으로 서 있을게”
- ‘마중’ (허림 시, 윤학준 작곡)

바리톤 송기창이 부르는 ‘마중’

최진(1976~)은 동아방송예술대학교·한서대학교·킹스턴 대학교에서 영상음악을 전공했다. 다수의 광고음악을 작·편곡했다. 그룹 루바틱(rubatic)으로 싱글 및 정규앨범을 발매했으며, 현재 수원여자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곡으로는 ‘시간에 기대어’ ‘서툰 고백’ 등의 한국가곡이 있다.

쉬이 떨어지지는 말자

작곡가 최진

저 언덕을 넘고,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그곳에 사랑했던 우리가 아스라이 남아있다. 서러움과 후회는 어느덧 시간에 풍화되었는지 흩어져 없어지고. 그 시간에 기대어 오늘 하루도 추억을 산다. 
최진이 가사를 짓고 작곡한 ‘시간에 기대어’를 들으면, 어느 노부부의 젊은 사랑 이야기가 떠오른다. 마치 그 긴긴 세월을 그린 영화 한 편 본 것 같다. 우연은 아니다. 
영상음악을 공부한 최진은 영화나 광고, 게임에 쓰이는 음악을 눈에 보이는 이미지와 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왔다.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그에게 가곡의 좋은 소재가 된다.
첫 가곡 작품 ‘시간에 기대어’는 바리톤 고성현이 2016년 발매한 동명의 음반(유니버설뮤직)에 처음 수록됐다. 이후 바리톤 송기창과 소프라노 이해원도 이 곡을 녹음했다. 연주회 레퍼토리로도 사랑받는다. 바리톤 김주택, 베이스바리톤 길병민 등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유명 성악가를 비롯해 2017년 내한한 세계적인 베이스 르네 파페도 ‘시간에 기대어’를 선택했다. 
궁금했다. 이른바 실용음악 분야에서 활동하던 작곡가가 어떻게 단숨에 가장 사랑받는 한국가곡 작곡가가 되었을까. 최진의 단출하지만 아늑한 작업실을 찾았다. 현재 수원여자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젊은 세대와 한국가곡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해왔다.

실용음악은 가곡과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원래부터 한국가곡에도 관심을 두었나?
부끄럽지만 ‘가곡’ 자체를 잘 몰랐다. 시에 음을 붙인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무지했다. 어릴 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얼굴’ ‘비목’ 등의 한국가곡을 즐겨 부르곤 했지만. 
그런데 다시 가곡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팝페라 가수로 알려진 조시 그로반(1981~)의 앨범 ‘Closer’(2003/Reprise)를 듣고 가곡에 매력을 느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포스터(1949~)가 기획한 이 음반을 통해 조시 그로반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팝음악 스타일에 성악 발성이 더해지니 참 좋더라. 마침 같은 학교에 재직 중인 음악과의 동료 교수가 김효근 작곡가의 음반 ‘사랑해’(2012)를 들려주며, 가곡 작업을 권유했다.
처음부터 가곡 작곡가로 대성할 싹이 보였던 걸까?(웃음)
전에는 가사 있는 곡을 작업한 적이 없었는데, 나의 성향을 다시 한번 살펴본 계기가 된 것 같다. 평소 글쓰기와 독서를 즐긴다. 내가 만드는 영상음악도 서정성이 짙다. 아무쪼록 덕분에 가곡의 ‘시장성’도 발견하게 됐다. 
이전엔 가사 있는 곡 작업은 하지 않았나?
안 한 게 아니라, 거의 못 했다. 시장 구조상 가사 있는 곡, 즉 가요를 작곡해 발표하기란 쉽지 않다.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이상, 기획사에 곡을 팔거나 유명한 가수가 불러줘야만 노래의 가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차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가사 있는 곡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다.
직접 작사·작곡한 첫 가곡 ‘시간에 기대어’가 큰 반향을 얻었다. 그에 힘입어 이후 ‘그리움 녹아내려’ ‘서툰 고백’ ‘기억은 겨울을 써 내려간다’ 등을 만들었다.
운이 좋게도 그 악보가 바리톤 고성현에게 전달되었고, 앨범으로 만들어졌다. 곡이 널리 알려진 데는 대중매체의 힘이 컸다. JTBC ‘팬텀싱어1’에서 바리톤 박상돈이 불러 젊은 층에도 알려졌다. TV와 라디오에서 내 노래가 흘러나오니 당황스러우면서도 행복했다. 
성악계의 반응도 궁금하다. 여태까지 가곡과 다른 점이 무엇이라고 하던가?
보통 가곡은 독창회에서 피아노 한 대만으로 불린다. 피아노가 화려하고, 목소리와 함께 많은 부분을 채운다. 이에 비해 내가 주력하는 실용음악에서 피아노의 활용은 보다 단순하다. 다른 악기가 들어올 여지를 많이 남긴다. 그래서 내 기준에서 여러 가지 악기를 많이 활용해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주부가 심심하다는 평을 듣곤 한다.
많은 작곡가가 가곡을 지을 적에 대개 기존 시에 선율을 붙이기도 하는데, 여기서 오는 제약 같은 것은 없나? 
보통 악상을 먼저 떠올리는데, 말이 안 되더라도 일단 가사를 불러가며 만든다. 가사와 멜로디에도 궁합이 있다. 그런데 정해진 시나 가사에 음을 붙이려면 제한이 생긴다. 세상에 먼저 나온 시를 바꿀 수 없으니까. 딱 한 번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에 음을 붙이는 작업을 해봤는데 익숙지 않아 어렵더라. 
가요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묻고 싶다.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가곡이 형식적으로 더 보수적인 편이다. 가요는 김범수의 ‘나타나’처럼 후렴구로 시작하는 곡도 있고, 클라이맥스 없이 전체적으로 무난한 곡도 있다. 그런데 가곡은 대체로 기승전결이 뚜렷하다. 성악가의 기량을 보일 수 있는 곡이 선호되기 때문이다. 가사 측면에서는 가곡이 가요보다 함축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이 많다. 분명한 점은 현재 가곡의 중심이 가요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는가?
대중에게서 멀어진 음악일지라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존재의 가치는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존재 자체가 흔들리기도 한다. 일례로 지금 전문대에 있던 클래식 음악과가 거의 없어졌다. 대한민국의 작은 음악 시장에서 팝이라고 불리는 주류 음악을 제외하고는, 대중으로부터 소외된 음악이 된 것이다. 가곡에 발을 들였기에, 전 세대를 어우르는 음악을 만드는 어려운 여정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싶다.
멀어진 대중과 한국가곡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클래식 음악’이냐 ‘크로스오버 음악’이냐는 구분 짓기가 오히려 대중에게 선입견을 심어준다고 생각한다. 경계를 허물어야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대중의 선택지를 넓히는 기획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시장의 추세만 따를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진취적으로 선보여야 한다. 여기에 좋은 음악과 공연을 찾아 듣는 성숙한 대중이 더해질 때, 긍정적인 순환이 이뤄지리라 믿는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달라.
우선 다작에 대한 욕심을 내고 싶다. 개인 악보집 출간도 오랫동안 고민해오고 있다. 교육자로서는 학생들의 한정된 시야를 넓혀주려고 한다. 사실 예술은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창작자로서 무엇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글 박서정 기자

“ 저 언덕 넘어 어딘가
그대가 살고 있을까
계절이 수놓은 시간이란 덤 위에
너와 난 나약한 사람

바람이 닿는 여기 어딘가
우리는 남아있을까
연습이 없는 세월의 무게만큼 더
너와 난 외로운 사람

설움이 닿는 여기 어딘가
우리는 살아있을까
후회투성인 살아온 세월만큼 더
너와 난 외로운 사람

난 기억하오 난 추억하오
소원해져버린 우리의 관계도
사랑하오 변해버린 그대 모습
그리워하고 또 잊어야하는
그 시간에 기댄 우리”
- ‘시간에 기대어’ (최진 작사·작곡)

베이스 르네 파페가 부르는 ‘시간에 기대어’

 

이원주(1979~)는 한양대 서양음악 작곡과 학사·석사를 졸업했다. ‘화천비목콩쿠르(2007)’와 ‘세일가곡콩쿠르(2009)’
에서 1위를 했다. 가곡 앨범 ‘이화우, 배꽃이 떨어진다’(2013/유니버설뮤직)를 발매했고, 수문당을 통해 악보집으로 출간했다. 대표곡으로는 ‘연’ ‘배틀 노래’ ‘이화우’ 등이 있다.

노래에 마음을 놓다

작곡가 이원주

피아노 위로 얹어진 아쟁 소리가 참 애달프다. 한국적 정서란 이런 것일까. 이원주가 작곡한 ‘이화우’를 처음 들었을 때, 마음 저 아래부터 요동치던 깊은 울림이 위로는 잔잔하게 피어나는 것 같았다.   
‘이화우’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2013년에 유니버설뮤직에서 발매한 가곡 앨범 ‘이화우, 배꽃이 떨어진다···’에는 ‘바리톤-아쟁-피아노’와 ‘소프라노-첼로-피아노’, 두 가지 버전이 수록됐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가지 버전을 듣고 있자니 참 신기했다. 아쟁의 자리를 다른 서양악기, 예컨대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대신해도 아쟁 소리를 통해 느낄법한 한국적 정서에는 변함이 없었다. 애초에 “우리 악기와 음악의 매력이 서양악기로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된 것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테다. 
이원주는 한양대에서 학사와 석사 모두 서양음악 작곡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의 관심사는 클래식 음악에만 머물지 않았다. 특히 한국전통음악에 깊은 관심을 두고 서양음악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한국음악의 고유성이 나타나는 작·편곡에 집중했다. 피아노와 소프라노, 해금으로 구성된 실내악 팀 ‘트리오 향(Trio Hyang)’을 만든 것도 그의 다양한 시도를 뒷받침해주었다. 그런 그가 가곡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화천비목콩쿠르’(2007) 우승을 시작으로, ‘CBS 창작가곡제’(2007·2008), ‘세일가곡콩쿠르’(2009)에서 연달아 입상하면서부터다. 한국전통음악의 재료를 대중적이면서도 세련되게 표현하는 그의 음악은 무언가 특별한 여운을 남긴다.  

대학원까지 서양음악 작곡을 전공했는데, 특별히 한국가곡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 
대학 입학 후 내 앞에 갑작스럽게 펼쳐진 현대음악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대세를 따라 곡을 써보긴 했지만 흉내내는 것 같이 느껴졌고,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렇게 방황이 시작됐고, 학교생활보다 꽃·요리·발레·탱고 등의 취미활동에 빠졌다. 전공실기에서 F학점을 받고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하는 지경이 되어서야 제대로 졸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걸 하기로 마음먹었다. 현대음악을 써야한다는 의무감을 덜어내고 조성으로 작곡한 곡들을 제출했다. 음의 재료만 흔할 뿐, 탄탄하게 잘 짜인 곡이라면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나만의 중심이 생기니 내 음악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보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간 콩쿠르가 ‘화천비목콩쿠르’(2007)였다. 여기서 ‘연’으로 1위에 오르며 본격적인 가곡 작곡을 시작했다. 
‘연’을 비롯해 ‘이화우’ ‘베틀노래’(제1회 ‘세일한국가곡콩쿠르’ 1위 수상곡) 등이 애창곡으로 자리 잡았다. 한 곡을 위해 적어도 천 번 이상은 직접 노래를 불러 본다고 들었는데.
한국어 특성상 소리가 닫히는 발음들이 있어서 그걸 고려하지 않으면 노래 부르기가 힘들다. 고음과 저음에서 발음이 잘 붙어 나오도록 하고 싶어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불러보곤 한다. 음악의 흐름을 기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직접 불러보는 것 외에도 본인만의 작업 방식이 있다면?   
우선 마음에 드는 시를 찾는다. 그 시를 소리 내어 많이 읽어보고, 또 종이 위에 연필로 써본다. 길을 찾는 과정 중 하나다. 산을 넘을 방법은 많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아름답고 좋은 길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또, 전체적인 분위기와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렇게 좋은 길을 찾으면, 나만의 컬러로 채색한다. 
아름다운 가사를 찾기 위해서는 한국 문학에도 관심을 두어야 할 것 같다. 
고려가요부터 시조, 한시, 근·현대문학까지 모두 좋아한다. 특히 시조를 보면, 자연을 노래한 시가 이렇게 세련될 수 있구나, 조상들의 연애편지에 은근한 멋이 있구나 싶다. 요즘은 고정희 시인(1948~1991)의 작품이 마음에 들어온다. 부산 여행 중 우연히 들린 헌책방에서 초판 시집을 발견했는데, 뜨겁고 아름다운 시들이 육아의 피로로 느슨해진 내 마음에 작은 불씨가 됐다. 
앞으로 ‘음(音)’을 붙여보고 싶은 시가 있다면.     
박팔양(1905~1988)의 ‘향수’. 같은 시대를 산 한용운, 김소월, 정지용처럼 누구나 알만한 애송시를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의 작품엔 근대 한국의 정취가 담뿍 담겨있다. 그의 시를 보고 있자면 누렇게 바랜 추억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내 음악을 통해 그분의 작품이 재조명된다면 얼마나 기쁠까.
시대에 따라 변해온 한국가곡의 트렌드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아무래도 화성적 어법이나 가사의 내용에서 조금 더 캐주얼해졌다. 예를 들면, 오랜 세월 애창되는 가곡 중엔 우리나라의 풍경을 노래하는 작품들이 꽤 있었는데, 요즘엔 사랑과 추억에 대한 노래가 주류를 이루는 것 같다. 가사만 바뀔 뿐 모두 같은 선율로 된 유절형식도 있지만, 이야기하듯 전개되는 곡이 많다. 그래서 곡 전체를 좌우하는 모티브(motive)가 중요하고 완성도를 좌우하는 것 같다.
가곡 앨범 ‘이화우, 배꽃이 떨어진다’(2013/유니버설뮤직)는 악보집으로도 출판됐다. 그중 일부는 미국의 음악전문 출판사(classical vocal reprints)에서도 출판되었는데.
미국 악보에는 그들도 한국어로 부를 수 있게끔 발음기호를 표기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노래 반주를 많이 해주었는데, 이탈리아 가곡집에 한국어로 ‘오 쏠레 미오’라고 한글로 적혀있던 것이 기억난다.(웃음) 그 반대의 상황이 되니 신기했다.
한국가곡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 
내 가곡을 부르고 싶다는 이메일은 많이 받고 있다. 내 곡으로 논문을 쓰고 싶다거나 졸업 연주회에서 부르고 싶다는 유학생들의 연락도 받았다. 해외 극장에서 활약 중인 한국 성악가들이 외교 행사에서 부르고 싶다며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뿌듯하고  감사한 일이다. 이제까지는 우리 음악가들이 적당한 기회에 한국가곡을 소개해왔다면, 앞으로는 외국 성악가들이 더욱 능동적으로 한국가곡을 찾아 연주하는 날이 왔으면 한다. 외국에서 절찬리에 판매되는 ‘한국가곡집’이라니, 생각만 해도 즐겁다!
한국가곡과 관련된 또 다른 계획이 있는가?  
2013년 첫 음반을 발매한 이후에 새롭게 작곡한 가곡으로 두 번째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전통음악 중 궁중음악인 ‘정악’을 새롭게 해석해보려 한다. 신비로우면서도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 있는 정악의 품격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 이 과정을 해내고 나면 내 안에 한국음악이 조금 더 응축될 텐데, 이로 인해 내 가곡에 또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하다. 
글 이미라 기자    

“ 젖은 배꽃이 흩날릴 제 
눈물 비 되어 떨어지네 

배꽃이 떨어진다 비가 되어 
그대가 멀어진다
사랑에 눈이 멀어진다

그리움 때문일까
가을바람에 흩어지는 잎을 보며
그대 날 생각할까

멀리 저 멀리 외로운 그대만이
꿈에 꿈엔들 보일까

비가 눈물이 되고 한숨 꽃바람 되어
내 맘에 그대가 지네
꽃비 속에서 우리 다시 만날까 꿈에

젖은 배꽃은 비 되어 흩날리고
바람 속에 흩어진다
그대 꽃이 되어”
- ‘이화우’ (매창 시, 이원주 작곡)

소프라노 이혜지가 부르는 ‘이화우’

 

김효근은 서울대 경제학사·경영학석사를 받았다. 이후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경영학박사를 받았다. 이화여대 공연예술대학원 원장(2018~2020),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이사(2018~현재)를 역임했으며, 현재 이화여대 경영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1981 제1회 MBC ‘대학가곡제’ 대상을 받았다.

당신의 하루에 바치는 노래

작곡가 김효근

1970~80년대. 동네 이발소, 슈퍼, 식당에는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고이 담은 액자가 걸려 있었다. 한국의 근대화를 이룬 평범한 소시민들을, 러시아에서 건너온 이 시가 위로해주곤 했다. 김효근은 늘 곁에 있던 시구를 되뇌며, 언젠가 여기에 음(音)을 붙이겠노라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동명의 가곡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의 고된 하루 끝에 위안이 되고 있다.
김효근은 자신에게 위로가 된 시로 가곡을 작곡한다. 듣는 이도 그 감정에 공감할 거라는 믿음에서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내 영혼 바람 되어’도 외롭고 힘들었던 시절, 지인이 팩스로 보내준 영문 시에 큰 위로를 받아 작곡한 것이다.
그는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음악을 만들고자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한다. 그런 그의 전업이 경영학자라는 사실은 다소 놀랍다. 서울대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92년부터 이화여대 교단에 서기 시작해 현재 경영대학원 학장을 맡고 있다. 경영학자와 작곡가, 두 선로를 오가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신촌으로 향했다. 그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가곡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전공지식도 얼마든지 활용하고 있었다.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시절의 이야기부터 들어보고 싶다.
학창 시절 내내 합창단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음악과 가까이 지냈다. 피아노 연주나 작곡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세계 명가곡이나 영화음악, 팝송 등을 피아노와 기타로 연주하면서 화성학을 몸으로 익혔다. 조를 바꿔가면서 연습하곤 했는데 일종의 화성학 훈련이 된 셈이다.  
창작에 대한 열망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음악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대학교 1학년 때부터다. 1981년 제1회 MBC 대학가곡제에서 ‘눈’으로 대상을 받은 것이 작곡가로서의 첫 경력이다. 90년대에는 KBS ‘FM 신작가곡’이라는 프로그램으로부터 정식으로 위촉받아, 최근 자주 연주되는 ‘가을의 노래’와 ‘그리움’ 두 곡을 작곡해 KBS교향악단과 초연했다.
특히 가곡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무엇이었나?
시 쓰는 걸 좋아한다. 작품을 출품해 상도 꽤 탔다. 좋아하는 두 분야를 결합할 수 있는 형태가 가곡이었다. 
가곡을 바라보는 경영학자의 시선이 궁금하다. 
2007년, 가곡 향유층을 분석해볼 기회가 있었다. 50대 이상의 일부에서 선호도가 높았고, 40대 미만은 비선호 성향이 강했다. 문제는, 가곡의 존재조차 모르는 신세대가 많았다는 것이다. 조만간 가곡이 기성세대의 추억 속 장르가 될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내렸다.
가곡과 신세대를 가로막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대중음악과 재즈, 뉴에이지 등은 점점 다양해지는 음악적 어법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이에 익숙해진 대중은 고전어법을 고집하는 가곡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전문 작곡가의 가곡 중 현대음악의 어법이 지배적이라 다가가기 어려운 작품도 많았다. 이런 흐름이 2010년대까지 이어졌다. 같은 시기, 타 장르의 표현방식은 훨씬 풍성하다보니 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일까. ‘아트팝’이라는 가곡의 새로운 길을 고안하기도 했다. 
‘아트(예술)’과 ‘팝(가요)’의 합성어다. 전통 가곡의 예술성은 지키되, 대중성을 높이는 것이다.
아트팝의 음악적 특성은 무엇인가?
변화하는 음악의 흐름을 빠르게 적용한다. 가곡을 피아노 하나로만 반주할 필요도 없다. 필요에 따라 현악 앙상블이나 기타, 심지어 드럼도 반주 악기로 구성할 수 있다.
아트팝의 또 한 가지 특징은 가사가 굉장히 잘 들린다는 것이다. 
가사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많은 연구와 실험을 진행했다. 한국어는 의미어와 조사 같은 비의미어 구분이 뚜렷하다. 음악이 ‘강약약 중간약약’의 흐름으로 진행된다고 가정해보자. 의미가 전달되어야 하는 단어의 첫 음가가 약박자에 걸리면 잘 안 들린다. 그래서 악보에 적힌 셈여림 그대로 노래하기보다, 한 단계 음량을 높여서 불러야 그 소리가 또렷이 들린다. 성악이 이탈리아어를 기반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이탈리안 벨칸토’를 ‘코리안 벨칸토’로 변환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푸시킨의 동명 시를 가사로 한다. 국내에 이 시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지 말라”로 번역돼 있는 반면, 가곡에서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화내지 마”로 노래된다. 노랫말을 수정한 이유가 있나?
원시가 가진 뉘앙스를 가능한 한 지키되, 한국 청중에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하지 말라”라는 말은 70대 이상이 쓰는 말이다. 젊은 사람들도 이 음악에 같이 공감하길 바랐다. 그래서 “화내지마”처럼 구어체로 수정했다.
1998년,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가 한국가곡을 담은 음반 ‘자화상(Portrait)’(Decca)을 발매해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눈’도 실렸다.
바바라 보니가 한국가곡으로 구성된 음반을 낼 계획이라며 데카 레이블의 국내 배급을 관장하던 성음 레이블에 곡 추천을 의뢰했다. 이에 서른 곡쯤을 후보로 보냈다. 그가 하나하나 노래해본 뒤 ‘눈’과 윤이상의 ‘편지’, 김구환 ‘님이 오시는지’ 등 다섯 곡을 선택해,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반주로 녹음했다. 당시는 한국의 저작권 관행이 아주 열악하던 때인데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서류 작업과 저작권료 지급이 이루어졌다.
이후 해외에서 한국가곡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을 것 같다.
특히 해외 유학생들이 졸업 연주나 리사이틀 곡으로 한국가곡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베이스바리톤 박종민이 영국 위그모어홀 데뷔 리사이틀 중 ‘눈’을 노래했는데, 반응이 정말 뜨거웠다고 한다. 그는 이 작품을 분석한 석사 학위 논문을 쓰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가곡은 어떤 입지에 있다고 보나.
나는 한국가곡의 전성기를 목격한 증인이다. 1980년대 MBC ‘가을맞이 가곡의 밤’은 한국의 가장 큰 음악 축제였다. 9시 뉴스 앞뒤로 최정상 성악가들의 가곡 뮤직비디오가 방송되기도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영광은 사그라드는 추세였다. 그런데 ‘팬텀싱어’ 시리즈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가곡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젊은 성악가들의 관심도 높아진 것 같다.
테너 이재욱, 바리톤 송기창 등의 50대 성악가부터 소프라노 김순영, 바리톤 이응광 등의 40대, 그리고 테너 김승직, 소프라노 이해원 등의 20~30대까지 전 연령대의 성악가들이 가곡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다양한 연령대의 대중이 화답하고 있다.
한국가곡은 대중이 직접 연주하거나 노래할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온라인에서 악보를 저렴하게 구매해 사용하는 경우가 흔한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최근 주 상품을 무료로 사용하도록 하되, 파생 수입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활성화됐다. 음악으로 수입을 창출하는 방법에도 조금 변화가 생겼다. 예를 들면, 유튜브에서 무료로 음원을 들을 수 있지만 여기에 광고를 붙여 수입을 얻는 것이다. 누구나 악보를 저렴하게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게 하되, 이를 바탕으로 연주를 하면 저작권료를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원작자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편곡된 악보가 불법 배포되고 있는 건 문제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다.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기대된다. 계획하고 있는 일들을 소개해달라.
최근 음악·미술·무용·미디어 분야 아티스트가 직접 대중과 소통하는 플랫폼 ‘아트링커’(artslinker.com)의 베타버전을 출시했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채널을 운영하면서 공연이나 전시를 홍보하거나, 레슨이나 원데이클래스 등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이 플랫폼을 활성화하는 데 힘을 기울일 예정이다. 또, 아트팝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아트팝 창작 오페라를 올해 말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초연한다. 기존 오페라 공연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작품을 만드는 데 오랜 열망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작품을 감상하고 나서, 청중의 기억 속에 여러 아리아가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글 박찬미 기자

“ 삶이 그대를 차마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마 
절망의 날 그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꼭 올 거야 
마음은 미래를 꿈꾸니 
슬픈 오늘은 곧 지나버리네 
걱정 근심 모두 사라지고 
내일은 기쁨의 날 맞으라”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르 푸시킨 시, 김효근 작곡)

바리톤 김주택이 부르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해원(1994~)은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를 졸업한 후, 현재 독일 한스아이슬러 음대에서 공부 중이다. 이화경향콩쿠르(2012)·이대웅콩쿠르(2016)·대구성악콩쿠르(2018) 등 국내 다수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 한국가곡 음반 ‘흔들리는 꽃’을 발매했다.

이른 봄 마주한 꽃처럼

소프라노 이해원

첫 한국가곡은 ‘님이 오시는지’였다. 10대의 이해원에게는 조금 어려운 가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노랫말의 모든 감정이 마음 깊숙이 내려앉았다. 그때였던 것 같다. 한국가곡을 사랑하게 된 것이.  
이해원은 현재 독일 한스아이슬러 음대에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 교육을 받아 온 그녀는 독일의 모든 풍경이 생경했다. ‘님이 오시는지’의 노랫말처럼 “내 맘은 외로워 한없이 떠돌고”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그리움이 더해가던 시기, 그녀는 신보 ‘흔들리는 꽃(Swaying Flower)’을 발표했다. 그 안에는 여섯 명의 한국 작곡가의 가곡을 담았다. 먼 곳에서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는 그 마음을 음악으로나마 풀어놓았다. 
혹자는 어린 나이에 한국가곡 음반을 발매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아직 삶의 깊이를 전부다 체감한 시기는 아니니까. 가사에 담긴 애달픔을 오롯이 공감할 수 없지 않을까? 이러한 걱정이 들기도 하겠다. 
하지만 ‘흔들리는 꽃’ 이해원은 진솔하다. 음반을 듣고 있으면 봄날에 마주한, 때 이른 꽃에 미소가 지어지던 기분이다. 어떠한 바람이 괴롭힌 데도 마침내 활짝 만개하기를 온 맘으로 응원하고 싶다. 

한국가곡 교육을 받은 적 있나?
학교 안에서 공부한 기억은 없다. 고등학교에서는 이탈리아·독일 가곡을 배웠고,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한국가곡을 세 곡 정도 불러봤다. 대학에서 한국가곡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관심이 있는 친구들끼리 수업을 함께 수강했다.
생애 첫 한국가곡이 궁금하다.  
김규환의 ‘님이 오시는지’이다. 은사님께서 아름다운 이 가곡을 공부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모국어로 된 한국어 가곡을 부르니 이해가 쉬웠고, 그다음부터 한국가곡을 좋아하게 됐다. 어린 나이에 모든 가사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말로 부른 첫 한국가곡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노래를 부르며 처음 접한 가곡은 아마 이탈리아 가곡이었을 것 같다. 이후 한국가곡을 불렀을 때 음악적으로 어려웠던 부분이 있나?
이탈리아 가곡은 성악적인 발성을 익히기에 수월하다. 그래서인지 한국가곡은 성악이 익숙해진 시기에 공부하게 되는 시스템인 것 같다. 나는 한국가곡에 담긴 정서를 이해하는 건 다른 가곡에 비해 훨씬 쉬웠다. 하지만 더 정교하게 불러야 한다는 점, 가사 전달이 어렵다는 걸 느꼈다.
한국가곡만의 특징이 있나? 예컨대 프랑스 가곡은 낭송조가 중요한 것처럼.
외국가곡에 비해 형식이 많이 벗어나거나, 새로운 틀을 가진 한국가곡이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리고 슈베르트나 슈만의 연가곡처럼 가곡 앞뒤에 스토리 연관성을 가진 작품도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 한국가곡의 가장 큰 특징은 ‘한’이 아닐까 싶다. 외국가곡의 주제는 대부분 사랑과 이별, 자연 등이 많은데, 한국가곡은 우리나라 고유 정서인 한이 잘 드러난다. 뭐랄까. 이별은 이별인데, 같은 색깔의 이별이 아닌, 마음 한구석이 찡해지는 이별이라고나 할까….
‘흔들리는 꽃’ 디스크립션에는 “이방인의 영역 속 한국인으로 노래하는 성악가. 이 분명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이 리코딩을 완성한 것”이라고 적혀있다.
사실 새내기 유학생이어서 깊게 얘기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로 노래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방인의 영역을 느꼈다. 외국인이 우리 언어를 말할 때 어색한 것처럼, 그들이 보기에는 내 발음도 어색하겠지. 언어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앞으로 내가 채워야 하는 부분이다.
음반 얘기를 더 해볼까. ‘흔들리는 꽃’에는 여섯 작곡가의 노래가 담겼다. 선정 기준이 궁금하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곡이 무엇인지 주목해 일차적으로 리스트를 뽑았다. 그중 내가 잘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또 내가 좋아하는 가곡들을 골라 이번 앨범에 담았다.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가곡들을 담았다’가 되겠다.(웃음)
과거와 현재의 한국가곡의 차이점이 있을까?
과거의 한국가곡은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고 정갈했다. 지금은 좀 더 다양한 형식의 가곡이 존재하는 것 같다. 딱딱한 가사보다는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가곡도 있고, 조성이 없는 자유로운 형식의 현대가곡도 있다. 
한국가곡을 부를 때 음악적으로 영감을 준 성악가가 있는지? 
은사(황혜숙)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늘 모든 가곡을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들려주셨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천천히 자세히 알려주셨다. 소녀 감성을 가지고 계신 그분이 불러주신 가곡들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을 테다.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도 있는 편인가? 
부끄럽지만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크진 않다. 가사를 쓴 시인이나 시조는 꼭 살펴본다. 단어의 뜻이 잘 이해가 안 될 때에는 나만의 이해 가능한 언어로 풀어서 적어 놓는 편이다.
현재 독일 유학 중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매일매일 고민하고 있다. 나름대로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우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베를린으로 돌아가 석사 과정을 열심히 공부하고, 도전할 수 있는 콩쿠르와 오디션을 차근차근 준비하고자 한다. 좋아하는 이 길을 계속 걷다 보면 한 계단 씩 올라가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현재 유튜브와 SNS로 적극 소통하고 있다. 
공연 정보나 재밌는 작업들을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어서 유용하다.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 생각이다. 다양한 댓글이 많이 달리는데 하나하나 다 인상 깊고 감사하다. 인상적인 댓글은 사진첩에 담아두고 오래 보곤 한다. 
한국가곡 외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장르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만의 색깔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장르라면 즐겁게 해볼 것 같다.
글 장혜선 기자 

“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먼 길 님이 오시는가 
갈숲에 이는 바람 그대 발자췰까” 
- ‘님이 오시는지’ (박문호 시, 김규환 작곡)

소프라노 이해원 ‘흔들리는 꽃’ 앨범 전곡 듣기

 

길병민(1994~)은 선화예중·고와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툴루즈 콩쿠르(2016)·몬테카를로 콩쿠르(2017)·오페라 크라운 콩쿠르(2018)·갈리나 비슈네프스카야 오페라 콩쿠르(2019) 등에서 우승했다. 2019년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활동했고, ‘팬텀싱어’ 시즌 3에서 ‘레떼아모르’ 팀으로 3위를 차지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베이스바리톤 길병민

낮은 목소리가 주는 특별한 울림이 있다. 모든 음이 사라진 후에 남는 여운, 낮은 목소리가 남기는 그 여운 속에서 수만 가지의 이야기가 다시 피고 진다.  
길병민(1994~)과 처음 만났던 것은 지난해 4월, 그가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영아티스트 프로그램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에게는 삶이라는 꽃을 피워가는 상처가 있었고, 그것을 담담하게 마주 보는 힘이 있었으며,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무한히 늘고 싶은 간절함으로 가득했다. “삶은 유한합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유한한 시간 앞에 어떤 길이 놓여있을지 모르겠지만, 무한한 꿈을 꿀 수 있는 때가 지금이라면, 열심히 해야죠.” 그는 그렇게 런던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꿈의 장소였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길병민에게 또 다른 꿈의 갈래가 펼쳐졌다. 런던으로 떠난 그해 겨울, 팬텀싱어 시즌3의 글로벌 오디션 소식을 듣고 도전의 연장으로 ‘팬텀싱어3’를 선택한 것. 누군가는 그의 이러한 선택이 무모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낯선 장소, 낯선 관객 앞에서 노래하던 그에게 ‘팬텀싱어’는 경험해야 할 또 하나의 낯선 무대일 뿐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이 이 무대에 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8개월의 여정을 마치고, 길병민은 또 다른 길 앞에 서 있다. ‘한국가곡’, 이 또한 그가 지닌 여러 갈래의 꿈 중 하나였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갈래의 꿈을 지나온 그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궁금했다. 

한국가곡에 대한 애정은 이전 활동에서부터 느껴진다. 등용문이었던 조선일보 신인음악회(2017)에서 윤학준의 ‘마중’을 불렀고, 지난해 개최한 ‘봄내음 콘서트’의 절반도 한국가곡으로 채웠다. 평소 앙코르로 즐겨 부르기도 하고. 
정확하게는 ‘고전적인’ 한국가곡과 ‘신작’ 가곡에 대한 애정이 조금 다르다. 고전 가곡에는 1960~70년대의 향수가 짙게 서려 있어 마치 브람스나 슈베르트의 가곡을 부를 때처럼 그 시절의 문화를 향유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최근에 만들어진 곡들에는 지금의 내 삶이 대입된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이자 청년기의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시구에 담겨 클래식한 음악의 결로 표현된다. 나를 노래 속 화자로 완전히 녹여내어 더 자연스럽게 노래할 수 있는 것 같다. 
앞서 ‘고전가곡’이란 표현을 썼는데, 그렇다면 한국가곡의 시기를 구분하는 시점이 있는 것인가?
그건 듣는 사람의 느낌에 맡겨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느낀 작은 차이 중 하나를 말한다면, 오래된 가곡에는 한자어나 고어(古語)가 쓰인 가사가 많다. 요즘에 쓰인 가곡은 옆 사람에게 나지막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대화 같고. 요즘 시대에 맞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랄까.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 가곡들도 예스럽게 느껴질지도.
‘마중’이나 ‘서툰 고백’ ‘별을 캐는 밤’ 등을 듣다 보면 ‘발라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반대로 싱어송라이터 노영심이 작사·작곡한 ‘시소 타기’는 많은 성악가가 부르며 가곡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발표된 한국가곡에서는 가요와의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데. 
내가 이해한 한국가곡이란 시적인 한국어 가사에 서양악의 반주와 악기가 접목되고, 그것을 성악가가 불렀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장르는 늘 열려있고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부르느냐에 있는 것 같다. 어떤 악기로, 어떤 테크닉(창법)으로 부르냐에 따라 차이가 생기지만, 굳이 구분 지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처음 마음에 와닿았던 한국어로 된 노래는 무엇이었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동요를 배우던 대여섯 살 즈음이었는데, ‘시켜서’ 부른 노래가 아니라 ‘마음에 와닿아서’ 불렀던 노래다.  
독일 가곡·이탈리아 가곡 등 각 나라 가곡의 가장 큰 차이는 아무래도 ‘언어’일 테다. 
이탈리아 가곡에서는 발음 전달을 위해 자음을 확실히 강조하고, 오페라틱하게 부른다. 그런데 우리말은 전달보다 정서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삼키는 발음이나 어두운 발음도 많고. 그래서 처음 들어오는 자음, 어두와 어미의 뉘앙스를 최대한 평소 말하듯이 표현하려 노력한다. 하나를 표현하는 수만 가지 단어가 있는 우리말은 어떤 온도로 구사하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전체 흐름과 맥락에 맞는 연기를 하며 이야기를 잘 읊어나가야 한다. 
오는 10월 6일, 한국가곡으로만 채운 앨범 ‘꽃 때’가 발매된다. 소속사인 클라이스클래식의 자체 레이블로 나오는 첫 데뷔 음반이다.
지금의 기획사(크라이스클래식)를 만나고, 피아니스트 김정원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다. 이전의 고전 한국가곡이 아닌, 근래에 만들어진 새로운 한국가곡을 담았다. 한국가곡이 한 장르이자 음악의 한 부류로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랐고, 대중과의 벽도 허물고 싶었다. 한국어로 부르는 노래, 마음 깊이 우려낼 수 있는 언어가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앨범에는 작곡가 노영심과 박종화, 이병률 시인이 함께한 신곡도 담겼다. 
노영심 작곡가와 타이틀 곡인 ‘꽃 때’를, 박종화 작곡가와 ‘호수’를 작업했다. 두 곡을 위한 시는 모두 이병률 시인이 썼다. ‘꽃 때’와 ‘호수’ 모두에는 내 삶과 정서가 녹아 있다. 곡 작업에 앞서 내 삶의 이야기를 나눴고, 그 이야기 속에서 저마다 다른 느낌을 떠올렸다. 이후 몇 차례의 만남을 통해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이야기들의 교집합을 만들었다. 
‘꽃 때’와 ‘호수’에는 각각 어떤 이야기가 담겼나? 
‘호수’는 호수 위 떠 있는 작은 배 안의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잔잔한 반주가 호수를 연상시키고, “작은 배 하나, 마주 앉은 둘” “차오르는 숨결, 떨리는 물빛” 같은 표현이 저 멀리서 바라본 두 사람의 모습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낸다. ‘꽃 때’에는 꽃이 계속해서 피고 지듯, 아픔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시간이 돌아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담겼다. 가사에 “언제 꽃 피면 꽃 보자던 그때, 난 기다리네”라는 구절이 있다. 꽃이 지는 지금 들으면 굉장히 아득해지는 노랫말이다. 계속 눈물이 나는 바람에 녹음하면서 감정컨트롤을 하느라 애를 먹었다.  
최근, 가장 아름답게 다가왔던 ‘말’이 있는지. 
늘 ‘삶의 이유’와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유한한 삶에서 가장 큰 의미를 남기는 것은 사랑인 것 같다. 보이지도 않고, 표현의 깊이도 다 다르지만, 사랑은 삶을 소생시키기도 하고, 행복을 주고, 또 아프게도 하며 삶을 만들어가지 않나. 사랑은 보이진 않지만 명확해서 좋다. 앞으로도 삶의 이유와 사랑을 되뇌며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을 좇아가려 한다. 장르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고 싶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크라이스클래식 

“ 나 떨리는 입술로
나 서툰 고백을 하오”
- ‘서툰 고백’ (최진 작사·작곡)


공연정보
베이스바리톤 길병민 리사이틀 
‘A Time to Blossom’ 
10월 27일 오후 8시 | 롯데콘서트홀
11월 10일 오후 7시 30분 |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11월 12일 오후 8시 |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베이스바리톤 길병민이 부르는 ‘서툰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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