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THE ARTIST 지휘자 루이 랑그레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11월 30일 9:00 오전

 

플루티스트 최나경이 만난 세계의 음악인 ④

지휘자 루이 랑그레

천천히, 그러나 깊이 있게

한동안 루이 랑그레와의 인연은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내가 6년간 몸담았던 신시내티 심포니를 떠난 지 불과 몇 주 뒤 그가 이곳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했고, 빈 심포니에 재직 중이던 시절에는 하필 그가 객원 지휘를 하러 왔을 때 핀란드에서 협연이 있어 자리를 비웠었다. 그러다 5년 전부터 그와 다시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링컨센터의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MMF)의 수석을 맡으면서 박자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상임지휘자이기도 했던 랑그레는 미국과 오스트리아가 버무려진 내 음악적 언어에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이후 매년 여름 뉴욕에서 5주간 20회의 공연을 함께하고 있으며, 요즘도 “우린 결국 만나게 되어 있었다”며 웃곤 한다.
영상으로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와 그의 아내 아메 랑그레(프랑스 방송작가)는 노트북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신시내티 자택 구석구석은 물론, 단풍이 져 가을 느낌 물씬한 앞마당과 뒷마당을 보여주었다. 언젠가 꼭 놀러 오라는 말과 함께. 신시내티에서 십 대를 보낸 딸 셀레스트와 아들 앙투완이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부모님과 떨어져서도 잘 지낸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랑그레를 아는 사람이라면 항상 느끼겠지만, 그가 풍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에 때때로 그가 이 시대 최고의 지휘자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삶이라는 무대를 열린 마음으로 즐겼던 모차르트처럼, 그의 음악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랑그레 역시 삶이 주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코로나로 어려운 지금 이 시기마저도 그에게는 음악을 조금 더 창의적인 경로로 나눌 수 있는 긍정의 전환점이 되고 있다.

귀를 열게 한 ‘미션 임파서블’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의 무대는 무엇이었나?

당시 코로나가 이렇게 커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꽉 찬 청중이 있었던 마지막 라이브 연주는 뉴욕 필과 함께했다. 드뷔시, 라벨, 스크랴빈을 연주했는데 정말 특별하고 파워풀한 공연이었다.

이후 뉴욕 필을 비롯한 많은 미국의 오케스트라들은 시즌 전체를 취소했지만, 신시내티 심포니만은 공연을 계속 이어왔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뉴욕은 공연장 문을 닫도록 법적인 제재를 내렸지만, 신시내티는 관객이 300명 이하일 경우에 한해 공연을 허락했다. 예전엔 당연하다고 여겼던 라이브 공연이 지금은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이 되었다. 음악은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계속되어야 한다. 지난 9월부터는 더 많은 관객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대체하고 있다. (QR코드 참조)

음악에 목마른 요즘 신시내티 심포니가 음악가의 사명을 다하고 있어 고맙다.

처음엔 각자 멀리 떨어져 연주하는 것이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 같았지만, 신기하게도 이제 적응이 되었다. 또한, 서로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더욱 긴밀한 앙상블이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관계 역시 서로에게 귀를 열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서로 듣지 않고 자기주장 하기에만 급급한가!

 

 

 

프랑스 태생의 지휘자 루이 랑그레(1961~)는 현재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2013~)와 뉴욕 링컨센터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2003~)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으며, 오스트리아 카메라타 잘츠부르크, 프랑스 리옹 오페라 등에서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모차르트 해석의 대가로 불리며, 프랑스 정부로부터 슈발리에 문화예술공로훈장 및 레지옹 도뇌르 슈빌리에 훈장을 수여받았다.

 

 

 

모든 것이 녹아있는 모차르트

최근에 새롭게 시도한 ‘팡파르 프로젝트(Fanfare Project)’가 정말 인상 깊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신시내티 심포니의 음악감독이었던 유진 구슨스(1893~1962)는 전쟁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팡파르 프로젝트’를 만들어 많은 작곡가에게 곡을 위촉했다. 덕분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코플랜드의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Fanfare for the Common Man)’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코로나 상황을 버티고 있는 현재의 우리를 위해 이 프로젝트를 재현하기로 했는데, 같이 연주하는 것이 금지되는 바람에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독주 팡파르’를 각 작곡가에게 위촉했다. 신시내티 심포니의 사이트에 가면 각 영상은 물론이고 악보까지 무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QR코드 참조.)

모차르트 해석의 대가로 불린다. 당신이 생각하는 모차르트의 음악이란 무엇인가?

모차르트의 음악은 세속적·종교적·연극적 요소는 물론, 실내악과 교향곡의 요소 또한 동시에 지니고 있다. 종교음악에 쓰

이는 푸가가 교향곡 41번 ‘주피터’나 오페라 ‘돈 조반니’에 나오기도 하고, c단조 미사에 나오는 ‘성령으로 잉태하시고(Et Incarnatus Est)’에서는 플루트·오보에·바순·성악, 이렇게 네 성부가 등장해 동등하게 균형을 이룬다. 신성한 교회음악이지만 관능적인 느낌도 들어 그 경계가 모호하다. 고정관념을 깨고 어떤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이 모차르트의 음악이고,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녹아있다.

 

함께 고민하는 리더

여러 단체를 자주 옮겨 다니기보다는 한 곳에서 재계약을 거듭하며 그들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지휘자로 알려져 있

다.

신시내티 심포니(2013~)와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2003~)의 음악감독은 여러 번의 재계약을 거쳐 각각 10주년, 20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더 이상 오케스트라에 기여하지 못하게 되는 때가 온다면 추억과 감사를 안고 떠나야 할 테지만, 이는 그저 모든 것에 때가 있는 것일 뿐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다음 재계약 시기에도 서로에게 나누어 줄 것이 남아 있다면, 기꺼이 다시 함께할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지휘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오케스트라를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것을 창조해낼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다. 리더십이 포디엄에서부터 온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진정한 리더십은 오케스트라 단원과 함께할 때 이루어진다. 한쪽으로만 치우친 리더십은 올바른 리더십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월간객석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클래식 음악 강국’ 중에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두 곳이 있는데, 바로 러시아와 한국이다. 프랑스인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정명훈을 배출해낸 나라이기에 항상 관심이 가고, 한국과 프랑스가 음악적으로 닮은 면도 많다고 생각한다. 조만간 여러분들을 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화려한 직업이나 경력 등을 좇아 세상이 아등바등하는 사이에서 랑그레는 천천히, 그러나 깊이 있게 음악을 파고들고 진심으로 삶을 끌어안으며 오늘을 살고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그의 말처럼, 언젠가 때가 되면 루이 랑그레가 선사하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음악을 한국에서도 접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글 최나경
플루티스트 최나경은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커티스 음악원·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했다. 신시내티 심포니 부수석, 빈 심포니 수석을 역임했으며, 현재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에 머물며 솔리스트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유튜브 채널 ‘플루트 최나경’를 비롯해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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