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계절의 순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3월 29일 9:00 오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계절의 순환

겨울에 태어난 그의 이름에는 ‘봄’이 담겼다. 그래서인지 김봄소리는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립(驚蟄)의 3월과 잘 어우러진다. 1984년 3월, 모든 것이 태동하는 봄에 세상에 나온 ‘객석’이 3월의 표지로 김봄소리의 이야기를 담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따스한 봄기운에 새잎을 틔웠다. 이 시간을 위해 그 누구보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왔다. 뜨거운 여름과 무르익는 가을을 내다보고 있을 ‘봄’소리. 새봄을 맞은 김봄소리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장혜선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



봄, 새싹이 움트는 계절 

2014년 여름, 잠실의 한 스튜디오에서 김봄소리를 처음 만났다. 스물여섯의 그는 ‘객석’의 ‘라이징 스타’로 선정됐다. 스스로 ‘무대체질’이라 말하던 당찬 사람. 
당시 그는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 서울대 대학원까지 순차적으로 국내 교육만 받은 상황이었다. 대학 졸업 후 친구들은 하나씩 유학을 떠나고 있었는데, 그는 스승 김영욱에게 더 배우고자 서울대 대학원으로 진학한 때였다. 

‘김봄소리의 시작’부터 얘기해볼까요? 봄소리 씨를 처음 봤을 때 모범생 같았어요. 국내 교육만 받은, 이리도 반듯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죠. 
그런가요? 제가 모범생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장기적으로 무엇을 해야겠다고 치밀하게 계획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이런 점을 고치고 싶어서 프랭클린 플래너도 써보고, 장·단기 계획도 짜보고, 여러 가지를 수없이 해봤죠.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는 솔리스트가 목표였다면, 애초에 전략적으로 조기 유학을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요.
솔직히 말하면, 저에게 치밀한 전략가의 성향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장기 계획을 짜는 게 큰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봤어요. 지금 두드리고 있는 문이 안 열릴 때는 옆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것까지는 신의 영역 아닐까요?

이후 ARD 콩쿠르에 입상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프라임필·코리안심포니·서울바로크합주단(지금의 KCO)·부천필 등과 협연하며 국내 무대를 휩쓸었다. 짧은 기간 내에 모차르트·브루흐·차이콥스키 등 주요 레퍼토리를 바꿔가며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준비가 잘 되어있는, 모범적인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부터 쓰던 ‘음악일기’는 여전히 쓰나요? 어릴 때 적은 일기 내용 중 인상 깊은 구절을 언급해 주어도 좋고요.
예전 일기를 읽어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단 한 번도 무대에 나갈 준비가 충분하다고 안심하며 글을 쓴 적이 없더라고요.

예전에 ‘무대체질’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퍼즐의 한 조각을 못 찾다가 무대에서 그림을 완성하게 됩니다. 한 조각의 퍼즐은 무대 자체가 주는 기운이나 무대 위 다른 음악가, 청중이 주는 기운으로 만들어져요. 그 조각으로 인해 전체 그림이 바뀌는 경험도 많았고요. 그래도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지금 돌아보니 조금 아쉬웠던 것들?언젠가 ‘어릴 때부터 솔리스트를 목표로 달려왔다면 지금 이룬 것보다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요.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한국의 모든 스승님에게 피와 살이 되는 가르침을 받았거든요.

“특히 김영욱 선생님을 만난 건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이라는 김봄소리. 고등학교 때 한 마스터클래스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1948~)을 만났다. 김영욱 앞에서 비외탕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을 연주했는데, 반주자 없이 혼자 왔다고 호되게 혼났다고. 이후 서울대에 입학하며 김영욱과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김영욱은 처음 한 학기 동안 내내 개방현만 긋도록 시켰다. 지독했던 활 연습. 스승은 “오래도록 바이올린을 하기 위해선 자세부터 고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바이올린은 신체적으로 불편한 자세로 오랜 시간 연습해야 되는 악기다. 잘못된 자세가 잡히면 결국 몸을 망치기 일쑤. 수년 동안 길들인 자세를 고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대학 초반 1~2년 동안 김봄소리는 자신이 어떤 자세인지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고, 그것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원동력이 됐다.

스승 김영욱은 2017년 ‘객석’ 인터뷰에서 ‘한국 학생들만의 특징’을 두고 ‘모방 능력’을 꼽았어요. “(한국 학생들은) 남의 것을 흉내 내는 데에는 최고다. 그래서 어떤 학생은 밤낮 내 눈치만 보기도 한다.”고 언급했죠. 그럴 땐 딱 한마디를 던진다고 하더군요. “너 자신을 보고 연습하라!”
김영욱 선생님에겐 겸손함을 배웠습니다. 음악의 위대함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우리가 함부로 음악을 이용하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봄소리 씨의 연주엔 ‘김봄소리 만의 감성’이 있어요. 특히 느린악장에서의 호소력!
그것도 다 김영욱 선생님 덕분이에요. 언젠가 선생님께서 레슨 도중 노래를 불러주신 적이 있는데요.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의 뉘앙스를 설명하다가 갑자기 반주에 맞춰서 끝까지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귀한 연주를 아직까지도 들어보지 못했네요. 벅찬 마음에 눈물이 많이 났어요.

저는 사실 연주자에게 필요한 자질이 ‘고독함’보다는, ‘관심병’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어야지 무대에서 존재감이 빛나는 것 같거든요. 동료 음악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요.
종합대학이어서 누릴 수 있는 교양 수업, 동아리 활동, 타과 학생들과의 교류를 충분히 즐겼어요. 이제 와 생각해 보니 큰 괴로움이 없는 것이 저를 괴롭혔던 것 같기도 하네요. 다만 늘 품고 있는 의문은 있습니다. 내가 예술을 하기에 충분한 자질이 있는가.

예전부터 느낀 건데요.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봤을 때, 봄소리 씨가 스물여섯 살 때 말이에요. 그때부터 ‘김봄소리에게는 상대방을 잘 파악하는 기술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 심리학 서적을 많이 읽어요.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이론 중 하나가 ‘어떤 사람과 친해지고 싶으면 무엇이든 부탁하라’는 거예요. 부탁받은 사람은 부탁한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게 되죠. 신기한 건 이후 부탁받은 사람은 그게 무엇이 되었건 투자한 만큼, 시간을 쓴 만큼, 쏟아부은 만큼, 상대에게 애착이 생긴다는 거예요.  바이올린과도 심리전을 많이 하나요?바이올린과는 그 시작이 너무 어려웠어요. 소리를 쉽게 내주는 악기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더 많은 연습을 악기로부터 부탁받게 되었고, 저는 바이올린을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점점 더 단단히 엮이게 되어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사랑을 할애하는 존재가 됐죠.

 여름, 뜨거웠던 첫 기억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은 2016년, 김봄소리의 미국 유학 시절이었다. 센다이 콩쿠르(2010)를 시작으로 ARD 콩쿠르(2013),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2015), 차이콥스키 콩쿠르(2015) 등 다수의 해외 콩쿠르 입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봄소리는 그 누구보다 뜨겁고도 치열한 여름을 관통하고 있었다. 

첫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22세에 처음 도전했던 해외 콩쿠르죠. 2010년 일본 센다이 콩쿠르부터 짚어 볼까요?
처음 해외 무대에 섰던 순간이기도 해요! 그동안 일궈왔던 나의 음악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겁났습니다. 1차 무대에서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했는데요, 해외 악단과 함께 연주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설레더라고요.

그때 함께한 지휘자가 브장송 콩쿠르에서 우승한 카즈키 야마다(1979~)였습니다. 
맞아요. 야마다는 저를 콩쿠르 참가자가 아니라 한 명의 음악가로 존중해 주었어요. 콩쿠르 기억은 시간이 지나고 여행지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과 비슷해요. 한 달 정도를 센다이에 머물며 경연을 치렀는데, 일본을 가깝게 알게 되는 기회가 됐죠. 이 콩쿠르에서 최연소 입상과 청중상까지 받으며 일본에 저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2013년 뮌헨 ARD 콩쿠르 얘기도 빼놓을 수 없지요. 드디어 유럽 악단과의 협연을 이뤄냈는데요! 당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함께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ARD 콩쿠르에 출전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파이널 무대에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 콩쿠르는 의외로 현대곡 때문에 애를 먹었죠. 
콩쿠르를 위해 작곡된 엄청난 난이도, 복잡한 구성의 곡을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죠. 2차에서는 콩쿠르 초연곡 외에도 현대 작곡가 곡을 연주해야 했고요. 이탈리아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1925~2003)의 ‘세퀜차 VЩ(Sequenza VЩ)’를 골랐어요. 14분 동안 쉼 없이 비슷한 시퀀스를 반복하며 엄청난 텐션을 보여야 하는, 아주 힘든 모험이었습니다.

마침내 파이널리스트 세 명에게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협연하는 행운이 주어졌습니다.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독일 레퍼토리를 독일 악단과 맞춰 본 ‘첫 경험’이기도 했는데. 파이널 무대는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리허설부터 들떠있었죠. 더군다나 ‘독일스러운’ 소리로 브람스를 맞추니 짧은 리허설 중에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브람스 협주곡의 길고 긴 서주가 처음으로 짧게 느껴질 만큼 황홀했는데, 그걸 제가 이어받아서 연주하다니…!

김봄소리는 2014년, ‘첫 유학지’를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으로 결정했다. 미국을 택한 이유는 간결하다. 뉴욕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다. 세계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뉴욕 필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설레는 마음으로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뉴욕은 정글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도시였다. 맨해튼 그 좁은 도시에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모여 있던지. 그렇지만 링컨센터와 카네기홀을 내 집처럼 들락거리면서 동시대 최고 연주자들을 원 없이 볼 수 있는 건 행복이었다. 그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앞 계단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것, 소호에 있는 휘트니 뮤지엄에 가는 걸 즐겼다고 한다.

그런데 짧은 시간 동안 갑자기 많은 걸 받아들이면 정체성에 혼란이 오지 않나요?
줄리아드 음악원에서는 실비아 로젠버그, 로날드 콥스와 공부했어요. 이외에도 많은 선생님들에게 실내악 지도를 받았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시기에 다양한 인풋이 한꺼번에 들어오면서 가장 많이 흔들렸던 것 같아요.

20대 초반의 김봄소리는 브람스나 차이콥스키 같은 낭만 곡이 어울리는 연주자였다. 그런데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실황 음반에 그가 연주한 미하엘 야렐(1958~)의 ‘…구름보다 가벼운…’이 담겨 있어 조금 놀란 기억이 난다. 작곡가 미하엘 야렐이 직접 김봄소리의 연주를 택한 것이다. 수많은 콩쿠르 경험이 그를 강렬히 흔들고 있다는 짐작이 섰다. 
2015년 5월, 김봄소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파이널에 진출, 6월에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5위에 이름을 올렸다. 비슷한 시기에 여러 콩쿠르를 준비해야 하니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상당히 힘들었을 테다. 그러나 여전히 씩씩했다. 콩쿠르 경력이 쌓이며 결과에 연연하는 마음은 내려놓은 듯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도 짧은 준비 기간에 비하면 괜찮은 결과를 얻은 거라고, 막심 벤게로프나 바딤 레핀과 같은 심사위원들과 친분이 생겼으니 좋은 경험이었다고 덤덤히 소회를 풀었다. 

2017년 워너 클래식스를 통해 발표한 첫 데뷔 음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습니다. 이 음반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죠. 2016년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출전 당시 중계방송의 평론가로 초청받은 그레고예 코토프와 폴란드 음악 관계자들, 일부 심사위원들까지 김봄소리의 2위라는 결과에 의문을 품고 인터뷰를 했어요. 그 바람에 일간지에 크게 소개가 되어 여론이 형성됐고, 덕분에 당시 1위를 한 연주자보다도 먼저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는 제가 마지막에 나간 콩쿠르예요. 폴란드가 엄청난 음악 강국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죠. 음악을 향한 청중의 관심이 높고, 국민들의 성향이 로맨틱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사실 저의 성향도 비슷한데요. 어쩌면 그래서 콩쿠르 당시 제 연주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은 것 같기도 해요.

하루아침에 폴란드의 유명인이 되었네요.
거리에 동양인이 많지 않아서 제가 악기를 매고 기차를 타면 사람들이 “당신이 봄소리 킴이냐?”고 물어봤어요.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었죠. 현재 매니저가 된 코토프와 바르샤바 필하모닉의 전폭적인 지지로 음반을 발매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특히 비에니아프스키 협주곡을 폴란드 바르샤바 오케스트라와 녹음으로 남기게 되어 의미가 깊어요.

가을, 무르익는 계절

2016년 가을에는 연주가 있어 잠시 한국에 들어온 김봄소리를 만났다. 그 사이 그는 또 콩쿠르에 참여한 모양이었다. 2016년 몬트리올 콩쿠르와 같은 해 앨리스 앤드 엘리노어 쇼언필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9월부터는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아티스트 디플로마(전문 연주자 과정)를 시작한다고도 말했다.

몇 달 전과 다르게 조금 숨차 보였다. 몬트리올 콩쿠르 결선을 준비하며 체력 소모가 컸다고 했다. 결선곡이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는데, 악장이 쉼 없이 넘어가는 곡이라 체력이 버텨지질 않았다고. 3악장 카덴차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몸이 완전히 소진되어 버렸고, 억지로 시간을 만들어 크로스핏과 사이클을 시작해 체력을 키우고 있었다.

해외 콩쿠르 사냥꾼’이라고 불리던 때가 있었죠. 대략 2015~2017년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지속적으로 해외 콩쿠르에 도전하는 이유가 궁금해 물었는데, “해외 연주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라고 답했어요.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그때 뿌린 씨앗들이 어떤 효과를 거두고 있나요.
흔히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잖아요. 저도 콩쿠르 당시에는 잘 몰랐어요. 그 과정이 얼마나 꼭 필요한 건지를요. 많은 이들이 콩쿠르 개념 자체가 예술과는 동떨어져있다고 하죠. 저 역시 콩쿠르의 역기능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많고요. 그렇지만 전문 연주자로 발을 디딜 때 콩쿠르로 인해 얻은 무대가 없었다면 저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많이 헤맸을 거예요. 무엇보다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죠.

굵직한 콩쿠르를 통해 맺은 인연들, 직접 소개해 주시겠어요.
2016년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를 통해 만난 매니지먼트 리우 코토프(LIU KOTOW), 가까운 음악 동지가 된 라파우 블레하츠(1985~)가 먼저 생각나네요.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쇼스타코비치 협주곡을 맞췄던 지휘자 장칼로 게레로(1969~)와는 저의 새로운 음반을 함께 녹음했습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ARD 콩쿠르에서 호흡을 맞췄던 피아니스트 토마스 호페(1971~)와도 유럽에서 여러 연주를 같이 하고 있어요.

콩쿠르 심사위원들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이었던 막심 벤게로프(1974~)와 러시아와 벨기에를 다니며 연주했습니다. 
가까이서 본 그의 삶은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2017년이었는데요. 당시 연주 횟수를 많이 줄여서 1년에 200회 정도를 하고 있다고 해요. 처음에는 제가 숫자를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200회라니… 거의 1년 내내 매일 연주하는 일정이네요. 벨기에에서 대기실을 같이 썼는데 쉬지 않고 연습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날 연주하는 곡이 아니었어요! 다음 날, 또 몇 달 뒤에 연주할 곡을 끊임없이 공부하는 거예요. 열정에 탄복할 수밖에. 20대 창창한 연주자들보다 훨씬 더 뜨거웠어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1973~)와도 인연이 깊다고요.
호프는 참 재밌는 사람이죠. 팬데믹으로 모든 공연계가 침체되어 있는 이 시기에 누구보다 활발히 활동하는 음악가입니다. ‘호프 앳 홈(Hope at Home)’ 시리즈로 유럽 방송국과 함께 처음에는 자신의 집에서, 후에는 미국과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온라인 공연계를 주름잡고 있죠. 호프와는 도이치 그라모폰 120주년 기념 연주를 호프와 함께했는데요.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할 때에는 정말 다른 세상의 음악가 같았어요. 바로크 시대에서 날아온 비르투오소와 함께 연주하는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허를 찌르는 즉흥 연주가 놀라웠습니다.

‘콩쿠르 사냥꾼’이라 불리던 김봄소리의 다음 행보가 늘 궁금했다. 콩쿠르에 입상했다고 이름이 계속 회자되는 시대가 아니니까. 그 기회를 통해 무엇을 얻느냐가 중요하다. 콩쿠르 입상 후 솔리스트로 주가를 올리던 바이올리니스트가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악장이나 수석으로 입단하기도 한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이지윤,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의 김수연, 라디오 프랑스 필의 박지윤 등이 그러했다. 김봄소리 역시 이러한 행보를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솔리스트가 아닌 다른 길을 고민해 본 적은 없어요? 
저는 오케스트라나 실내악 주자보다는 솔리스트와 더 잘 맞아요.

유럽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게 된 건 매니지먼트 리우 코토프의 역할이 크지요. 아, 이번 봄소리 씨 커버 인터뷰를 진행하는 데에도 매니저인 코토프가 많은 도움을 줬어요. 메일 답장 속도가 엄청나던데요. 시차를 초월해요! 
여러모로 운이 좋았어요. 제가 ‘제대로 준비된 시점’에 좋은 제너럴 매니저를 만났죠. 해외 무대에 발을 내디딜 젊은 아티스트를 키우는 건 둘러싼 여러 사람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현재 저는 독일의 제너럴 매니지먼트 리우 코토프와 미국·스페인·베네룩스·이탈리아·일본 등에 로컬 매니지먼트를 두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봄소리 씨의 장점은 ‘폭넓은 레퍼토리 소화력’에 있는 것 같습니다. 바흐부터 현대음악까지, 모든 레퍼토리를 수월하게 소화하죠. 요즘 국내의 젊은 연주자들에게 여러 별칭이 붙더라고요.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두고 ‘쵸팽(조성진+쇼팽)’,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를 두고 ‘인모니니(양인모+파가니니)’라고 부르던데. 혹시 불리고 싶은 별칭이 있어요? 
아직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별칭도 조심스럽네요. 이름과 국적, 성별만으로도 선입견이 생기는데 또 다른 수식어로 포장하는 게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요.

이러한 현상은 ‘어느 작곡가의 스페셜리스트’라는 말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여 드리는 질문입니다.
저는 아직 연주 인생의 출발선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무한으로 열어놓고 싶습니다! 어느 날 라파우 블레하츠와 대화하다가 무심코 “너는 정말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이런 점이 비슷하다! 젊은 크리스티안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물론 좋은 의미로요. 블레하츠가 말하더군요. 자기는 “라파우 블레하츠”이고 싶다고. 다른 사람이 얘기했으면 약간 민망하고 웃겼을 것 같은데 그 친구가 얘기하니까 수긍이 갔어요. 저 역시 나중에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겨울, 혹독한 시간을 넘어 

2019년에는 얼떨떨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김봄소리는 뉴욕 필을 시작으로 유럽 주요 페스티벌에 데뷔했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와 라인가우, 스위스 그슈타트 등 여러 페스티벌에서 연주를 선보였고, 함께한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재초청을 받았다. 
벅찬 마음으로 다음 일정을 준비하던 중 코로나로 인해 손발이 묶였다. 그 난리통에도 3월까지 이탈리아와 스페인 투어를 했고, 5월에는 한국 공연, 여름에는 모든 축제가 취소된 와중에 라인가우 페스티벌과 유럽의 최대 통신사 텔레콤의 음악 플랫폼 ‘마젠타’에서 진행한 ‘모차르트의 모든 것’ 촬영을 마쳤다. 이어서 도이치 그라모폰 자체 플랫폼인 DG 스테이지 ‘뮤지컬 모먼트’ 시리즈를 온라인 공연으로 선보이는 등 주어진 상황에 맞춰서 꾸준히 활동을 선보였다. 
어느덧 그는 어깨에는 바이올린 케이스, 손에는 여행가방을 짊어지고 낯선 도시를 누비는 여행자가 되어 있다. 

현재 국내보다는 해외 체류 기간이 더 많을 텐데요.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을 만났을 때 움츠러들진 않나요.
요즘은 낯선 도시를 가는 게 그립네요. 낯선 환경을 좋아해요. 터키 이스탄불이나 스페인에 가면 이국적인 느낌이 신기해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죠. 스페인 음식을 좋아하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스페인 투어를 갔어요. 첫 도시가 일명 ‘소 달리기 축제’로 유명한 팜플로나였습니다. 투우의 나라인 스페인에선 담력을 키우려는 목적으로 수많은 남자들이 소와 함께 질주해요. 처음 책으로 봤을 때는 저런 일에 목숨 거는 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실제 그 도시에 가보니 이해가 돼요. 신기하죠?

저는 봄소리 씨야 말로 ‘담력이 강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소와 함께 거침없이 질주하는 모습과 겹쳐져요.
그런 것 같긴 해요. 스페인 도시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타파스 가게가 숙소 근처에 있어서 들뜬 마음으로 찾아갔어요. 주문을 하는데 뒤에서 누가 “봄소리?”라고 부르더군요. ‘이 낯선 곳에서 도대체 누구지?’하고 뒤돌아봤는데 카르멘 솔러, 저의 스페인 로컬 매니저였어요. 메일만 주고받던 사이여서 이렇게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솔러도 이 지방에 사는 친구의 추천으로 제일 맛있다는 타파스 집을 찾아왔던 거예요! 사이좋게 타파스와 하몽을 먹었죠. 저에게 “로컬만 안다는 맛집에, 그것도 오늘 저녁 연주할 동양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와있다니! 못 말린다”고 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뉴욕에서 있었을 때는 크로스핏이나 사이클로 체력을 키운다고 했잖아요. 요즘은 무슨 운동해요?
집중이 안 될 때는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수련했던 태극권을 하기도 합니다. 몸을 단련하는 요가와 같은 체조이기도 하면서 무술, 궁극적으로는 명상을 바탕으로 한 수행이에요. 단전호흡은 무대에서 모든 기를 발산하는 연주자가 수행하면 더욱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것 같아요.

다독가로 알고 있는데 소설가와 연주자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어릴 때부터 소설가나 극작가를 동경했어요. 상상과 공상만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결국에는 우리 음악가들이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생각을 바탕으로 내 생각을 만들고,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에서 만든 생각을 차용하는 거죠. 재해석과 자기화 과정을 거치는 것까지도 음악가들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봄소리 씨도 이야기꾼이에요?
저도 이야기를 맛있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 작고한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브리 기틀리스(1922~2020)와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기틀리스는 실로 대단한 이야기꾼이었죠.

기틀리스가 이야기꾼이었던가요? 되게 차가워 보였는데…. 사실 저는 그를 잘 몰라요. 기틀리스가 최근에는 노령으로 인해 외부 활동을 하지 않기도 했고,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극소수의 음반만 녹음했으니까요.
벨기에에서 열린 한 페스티벌에서 연주가 끝나면 이브리 기틀리스, 막심 벤게로프, 니콜라스 안겔리치 등 여러 음악가들이 모여 밤을 새우며 이야기꽃을 피웠어요. 모두가 귀 기울여 기틀리스의 이야기를 들었죠.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기틀리스 연주를 들을 때마다 왜 이렇게 절로 집중되나 싶었는데, 그가 실제로도 굉장한 이야기꾼이었기에 음악에서도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지 않았나 싶어요.

 다시 봄, 새로운 희망 

김봄소리는 틈틈이 좋은 소식을 전했다. 2017년 바르샤바 필하모닉과 함께 워너 클래식스에서 데뷔음반(PWCD0078)을 발매했고, 2019년에는 도이치 그라모폰(DG)에서 2005년 쇼팽 콩쿠르 우승의 주역인 라파우 블레하츠와 음반(4836467)을 냈다. 2016년 10월 폴란드에서 열린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 출전한 김봄소리의 연주를 듣고 블레하츠가 직접 메일로 ‘러브콜’을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그리고 마침내 김봄소리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아티스트 계약을 이뤄냈다. 지난 2020년 가을에 정식 계약을 맺었고, 오는 3월에 도이치 그라모폰은 공식 발표했다. 도이치 그라모폰은 그야말로 세계 굴지의 음악가 일가(一家).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다니엘 바렌보임,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빌헬름 캠프·마우리치오 폴리니,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등이 DG 소속 아티스트로 활약해왔다.

축하해요. 마침내 정상급 아티스트 라인에 합류하게 된 건데요. 주옥같은 DG 아티스트 리스트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현재 도이치 그라모폰에 전속 계약된 아티스트는 모든 분야를 통틀어 40~50명이라고 하네요.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아티스트 리스트를 보고 있으면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제 큰일 났구나!’ ‘앞으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쉼 없이 달려야겠구나!’

전속 계약을 맺기까지 어떠한 노력이 있었는지요. 블레하츠와 듀오 음반을 발매했을 때부터 조금 예상하고는 있었는데요.그러셨나요?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저와 블레하츠의 음반이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블레하츠와 음반을 낸 뒤 활동 반경이 넓어졌어요. 계약을 위해 제가 한 노력을 꼽자면… 그저 앞에 놓인 문들을 조바심 내지 않고 차근차근 열었던 것 같습니다.

도이치 그라모폰의 회장인 클레멘스 트라우트만이 ‘객석’으로 좋은 소식을 전했어요. 봄소리 씨의 DG 데뷔 솔로 음반이 곧 나온다고요! 이번 신보에 대한 소개 좀 해주세요. 
전속 계약하고 발표하는 첫 음반인 만큼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길 바랐어요.


김봄소리의 정체성이라…. 본질에 대한 고민만큼 심란한 것도 없는데, 찾은 답은 무엇인가요?

사실 음악의 시작은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을 노래하고 싶은 욕구라고 봐요. 요즘 유튜브에서 ‘먹방’이 ‘핫’하잖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계속 ‘먹방’을 본다고? 그 현상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분명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제가 생각했을 때 먹방 유튜버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도구로 삼습니다. 오직 먹는 행위에만 집중하고, 어마어마한 양을 먹어 치우죠. 그것을 보는 시청자들은 자신의 욕구를 대리만족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먹방’ 같은 음반을 기대하고 있으면 되겠군요!
‘먹방’이 시청자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이번 음반에 음악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건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구노의 ‘파우스트의 주제로 한 환상곡’, 생상스의 ‘삼손과 델릴라’,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등 오페라에 관련된 레퍼토리를 담았습니다. 그 외에도 바이올린으로 가장 강렬하게 ‘노래’할 수 있는 레퍼토리를 택했고요. 아, 그거 아시나요? 사실 저 어릴 때 오페라 가수가 꿈이었어요.

이번 인터뷰 소식을 들은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은 ‘객석’에게 메시지를 전해왔다. 클레멘스 트라우트만 사장은 “봄소리를 옐로우 라벨로 환영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전했다. “그의 특별한 비르투오시티는 바이올린으로 하여금 노래하게 한다. 우리는 연주하는 그 순간에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는 그녀의 방식과 가슴을 울리는 시적인 연주를 사랑한다. 봄소리의 DG 데뷔 솔로 앨범은 그녀의 예술성을 보여주는 엄청난 쇼케이스이며 앞으로 그녀와 함께 더 많은 음반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DG의 수석 프로듀서이자 A&R 담당 안겔리카 마이스너는 “봄소리의 연주에는 지극히 그녀만의 것이 있다”라고 밝혔다. “그녀의 해석은 장대한 힘과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앨범 ‘바이올린 온 스테이지(Violin on Stage)’는 왜 그녀가 동료 뮤지션과 주요 비평가들로부터 오늘날의 스타 연주자로 여겨지는지 그 이유를 보여준다”고 소감을 더했다.

오는 6월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도이치 그라모폰 솔로 음반 발매 기념 리사이틀을 갖습니다. 2년 만의 단독 리사이틀로 한국을 찾을 예정인데요. 실황 연주를 기다리고 있던 국내 팬들에게 한 마디 건넨다면?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은 처음이어서 설레요. 얼마 전 정경화·김선욱 듀오 리사이틀을 롯데콘서트홀에서 직관했는데요. 객석까지 생생히 전달되던 울림이 참 좋았어요. 6월 21일부터 30일까지는 한국 투어 기간으로, 서울뿐 아니라 대구 등 여러 지방에서도 연주를 선보일 계획입니다!

8월에는 츠베덴/홍콩 필과 함께 세종문화회관에서 협연 무대를 선보이고요. 츠베덴은 뉴욕 필의 예술감독이기도 합니다. 좀… 까칠하기로(?) 소문난 지휘자인데요.
츠베덴은 무섭기로 유명하죠. 2012년 그는 홍콩 필을 맡았고, 2019년에 홍콩 필은 영국 ‘그라모폰’지가 선정한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츠베덴에게 특유의 리더십이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제가 함께했던 츠베덴은 예상했던 것보다 음악적으로 많은 부분에 가능성을 열어두는 사람이에요.

츠베덴은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의 최연소 악장이었죠.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지휘자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지휘할 때는 좀 다르나요?
RCO 악장을 오래 했던 만큼 뚜렷한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솔리스트가 무대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자유로울 수 있을지 배려하는 지휘자였어요. 2018년, 한국에서 츠베덴/경기필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그의 배려가 특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2019년, 뉴욕 필의 연례 갈라 행사의 솔리스트, 이어서 홍콩 필 협연자로 초대받았어요.

2014년이었나요. 서울대 대학원에 다닐 때 ‘객석’ 첫 인터뷰를 한 것 같은데, 어느새 단골 인터뷰이가 되었습니다. ‘객석’도 1984년 3월, 그러니까 ‘봄’에 태어났어요. 
단골 인터뷰이라고 해주시니 영광입니다! 37년 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양질의 기사로 소개해 주어서 대한민국 음악가로 늘 자랑스럽습니다. 음악가들은 청중이 있기에 존재하는데요. ‘객석’도 독자들이 있기에 긴 시간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가졌던 거겠죠? 더욱 다채로운 소식을 들려드리도록 저는 아티스트의 자리에서 열심히 움직이겠습니다.

김봄소리는 꽃샘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봄 채비를 마쳤다. 올해는 라인가우 뮤직 페스티벌의 상주 음악가로 선정되어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와 4회에 걸쳐 다섯 개의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한다. 영국의 테네브레 콰이어와 함께하는 바흐 프로젝트, 피아니스트 파비앙 뮐러와 첼리스트 막시밀리안 호눙과 함께하는 체임버 콘서트, 바실리 페트렌코/로열 필하모닉과 함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보인다. 스위스의 그슈타트 메뉴힌 페스티벌에서는 ‘메뉴힌 헤리티지 아티스트’로 선정되어 앞으로 5년간 활동할 예정이다. 

끝으로 ‘봄소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음악에 대한 ‘좋은 선입견’이 생겨요. 싱그러운 소리를 기대하게 돼요.
‘봄소리’는 할아버지께서 붙여주신 이름이에요. 추운 겨울에 태어난 손녀가 봄이 오는 소리처럼, 세상에 희망을 전파하라며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김봄소리는 바이올린을 처음 만난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다섯 살의 나이, 조그만 손으로 활을 움켜쥐던 그날. 팔을 들어 개방현을 긋는데 이상하게 아무 소리가 나질 않았다. 먼저 배우던 피아노와는 조금 다른 느낌. 어린 봄소리는 깜짝 놀랐다. 날카로운 첫 만남 이후 꽤 오랫동안 바이올린에선 거슬리는 소리만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소리를 허락지 않던 바이올린에서 마침내 맑은 소리가 터졌다. 다사로운 봄 햇살처럼 어린 봄소리의 마음도 따스해졌다. 
그때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앞으로 난 무얼 하든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겠구나. 사실 음악과 관련된 건 뭐든 좋았다. 노래 부르는 것, 악기를 통해 노래하는 것. 그것은 그가 지닌 기본적인, 그러나 가장 강렬한 욕구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식욕이나 수면욕을 넘어선 것이었다. 음악을 향한 어린잎이 마음을 뚫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말로 ‘소리로 가득한 삶’이 되어버렸네요. 소리를 전하는 삶을 살게 된 딸에게 부모님은 뭐라고 하세요?
부모님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을 때마다 한 번도 이래라저래라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 과정에서 배우길 원하셨죠. 두 동생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를 온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저의 가장 열렬한 팬입니다. 믿어주는 가족이 있으니,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어요.

봄에 돋아나는 새싹은 태양열이 상승하는 여름, 열매를 거두는 가을을 지나, 모진 겨울 추위를 견딘다. 그러다 따스한 봄기운에 기운을 차려 새잎을 틔운다. 그렇게 사계절이 지날 때마다 그의 뿌리는 더욱 강인해진다. 아, 계절의 순환은 이리도 귀한 것이다. 


20여 년간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한 그레고예 코토프(현 김봄소리 매니저)는 2009년 섀넌 리우와 함께 인터내셔널 매니지먼트 ‘리우 코토프’를 설립했다. 현재 유럽 주요 축제에서 예술감독과 자문위원으로 활동, 여러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2016년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김봄소리의 연주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특히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할 때 자신의 목소리에 확신을 갖고 악단과 호흡하는, 음악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

수상 발표를 기다리고 있던 김봄소리에게 먼저 찾아가 “앞으로의 커리어를 우리와 함께 쌓아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보통 콩쿠르 우승자와의 계약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김봄소리는 예외였다고. 코토프가 젊은 음악가들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를 공개한다.

 

Dear 젊은 음악가들
오늘 나는 문득, 학생 시절 카네기홀 복도에서 실내악을 연습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리허설 동안 우리는 연주를 듣고 있던 아이작 스턴(1920~2001)을 눈치채지 못했다. 연주를 멈추자 그는 유명한 문장을 반복해 말했다. 
“연습, 연습, 또 연습입니다. 그게 바로 카네기홀에서 연주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로부터 1년 뒤 우리는 카네기홀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다. 런던의 위그모어홀이나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바우 같은 큰 규모의 공연장에서도 연주를 하게 됐다. 이미 성공한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커리어의 종착점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줄 에이전시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는 에이전시와 계약을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런던·파리·베를린에서 공연할 때 몇몇 매니저들이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젊은 예술가의 경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홀로 명성을 쌓아야 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내가 속한 현악 4중주단을 직접 관리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든 듯하다. 
현재 우리는 이전과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새로 등장한 미디어는 음악 시장을 바꿔 놓았고, 젊은 음악가도 앨범을 녹음하며 전문적인 프로필을 구축해 나갈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은 환경은 젊은 세대에게 빠른 성취감을 안겨주지만, 안타깝게도 진짜는 아니다.
미디어 혁명이 한창인 오늘날에도 나는 중요한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진정한 음악가는 무대 위에서 나타나며 수년의 시간을 들여 이를 구축해야 한다. 관객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거쳐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찾기를. 결국 관객을 완전하게 사로잡는 건 음악이다. 나와 같은 매니저들은 여러 기회를 제공하며 지원할 뿐이고.
예술가가 상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리코딩 산업과 세일즈 분야에서는 종종 ‘예술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잘못 이해한다. 머리 스타일이나 외모, 성격을 무슨 레시피 마냥 뚝딱 바꾸라는 조언을 들었다는 젊은 음악가들. 안타깝지만 이런 것들은 장기적으로 아무 소용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예술가 본인이 진실 되어야 한다는 것. 그 진실성으로 관객은 무대 위 연주자를 기억할 것이다.
음악 산업의 트렌드는 젊은 예술가에게 항상 좋은 길이 되어주진 않는다. ‘남성 음악가가 잘 팔린다’는 식의 조언을 최근 몇 년간 들어왔지만 이는 공연 시장에 대해 완벽하게 잘못 접근한 것이다. 음악 산업 그 이상을 볼 수 있는 올바른 리더를 찾는 일이 젊은 음악가에게 중요하다. 성공하면 할수록 말을 얹는 이들 또한 많아지기에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다. 
요즈음 수많은 음악가들이 조언을 구하기 위해 나에게 연락을 하는데, 그럼 나는 즐겁게 젊은 시절의 실수담을 들려주곤 한다. 근래에 쏟아져 나오는 많은 젊은 인재들을 보며 나의 과업은 이들을 발굴하는 것뿐만 아니라, 힘겨운 순간으로 가득한 긴 여정에 동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표현법을 탐구하기를 멈추지 말길. 관객과 자신의 음악을 통해 대화하길 바란다. 여러분의 음악은 이 세상을 훨씬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From 그레고예 코토프


김봄소리 도이치 그라모폰 솔로 음반 발매 기념 리사이틀
6월 26일 롯데콘서트홀

얍 판 츠베덴/홍콩 필하모닉 협연 김봄소리
8월 2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DISCOGRAPHY

Warner Classics PWCD0078
김봄소리는 정경화·장영주·임지영에 이어 워너 클래식스 레이블로 앨범을 발매한 네 번째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2016년 10월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2위 수상과 함께 평론가상 등 9개의 특별상을 휩쓸었다. 우승자인 베리코 춤브리체보다도 빠르게 메이저 레이블에서 데뷔 앨범을 발매하며, 1위 보다 유명한 2위로서의 행보를 보여주었다. 야체크 카스프치크가 지휘하는 폴란드 바르샤바 필하모닉과 함께했다.

DG 4836467
200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라파우 블레하츠와 함께 실내악 음반을 발매해 화제를 모았다. 실내악 녹음을 위해 현악주자를 찾고 있던 블레하츠는 김봄소리의 연주에 매료되어 직접 연락을 취해 함께 실내악 프로젝트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앨범에는 포레·드뷔시·시마노프스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가 담겼으며, 쇼팽의 녹턴 20번이 듀오 버전으로 편곡되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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