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다, 이상형 테너 문세훈 & 소프라노 김유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3월 15일 9:00 오전

HIGHLIGHT

테너 문세훈 & 소프라노 김유미

 

찾았다, 이상형
테너 문세훈 & 소프라노 김유미
서울시오페라단 ‘로미오와 줄리엣’의 두청춘

 

김유미는 예원학교·서울예고·서울대를 졸업하고, 파리 시립음악원·말메종 시립음악원·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수학했다. 독일가곡콩쿠르·신영옥 성악콩쿠르·레오폴드 벨랑 콩쿠르 등에서 입상했다.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 ‘이중섭’ ‘사랑의 묘약’ 등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문세훈은 단국대와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 아카데미,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을 졸업했다. 벨베데레 콩쿠르 2위·비오티 콩쿠르 3위·시즈오카 콩쿠르 1위 등에 올랐다. 베르디 극장에서 오페라 ‘팔스타프’로 데뷔했으며, 오페라 ‘사랑의 묘약’ ‘파우스트’ ‘장미의 기사’ 등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으로도, 희극으로도 꼽지 못할 만큼 절절하다. 그러나 프랑스 작곡가 구노(1818~1893)의 손에서 재탄생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분명 해피엔딩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달리, 줄리엣은 로미오가 죽기 직전 극적으로 깨어난다.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약속하며 노래 부르는 두 연인은 비극적 죽음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맞는다.

오는 봄, 서울시오페라단은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극장 문을 연다. 고난을 이겨내고 사랑을 회복하는 결말로 관객에게 희망을 전할 예정. 작품이 가진 대중성은 공감대 형성을 위한 무기지만, 동시에 상상 속 로미오와 줄리엣을 어떻게 선보일 것이냐 하는 숙제를 남겼다. 게다가 두 주역의 비중은 다른 어떤 작품과 비교해도 높다. 극 전체를 두 사람이 끌고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본적인 노래 실력 외에도 관객을 몰입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예술감독을 맡은 이경재 서울시오페라단장은 “잘생기고 예쁜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기대가 있다. 외적인 조건도 배제할 순 없지만, 소리를 잘 보여줄 가수를 찾는 데 더욱 집중했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낭만오페라의 라인을 살리는 건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것을 넘어서는 문제다. 시를 낭송하더라도 음성이나 성정, 감수성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때문에 이 단장은 “올리비아 핫세로 대표되는 마냥 아름답기만 한 줄리엣이 아니라, 그 이면에 단단함을 가진 줄리엣을 원했다”라고 설명했다. 심사숙고 끝에 로미오 역에 테너 강요셉·문세훈, 줄리엣 역에 박소영·김유미가 캐스팅됐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캐스팅 전략

오페라에서 더블 캐스팅은 일반적이지만, 서울시오페라단의 운용 방식은 자세히 살펴볼 만하다. 각 캐스팅의 기준을 달리 두어서 오페라 애호가들이 믿고 보는 성악가를 섭외하는 동시에, 국내 신진 성악가 발굴에도 앞장선다. 일단 작품이 선정되면, ‘새 얼굴’을 찾기 위해 섭외망을 가동한다. 채널은 다양하다. 내부적으로 구축해둔 데이터베이스를 검토하고, 직접 공연장을 찾고, 해외 각국의 오페라 관계자로부터 추천을 받는다. 최적의 후보를 찾기 위해서라면 단순무식한 방법도 불사한다. 56만 명이 넘는 성악가 데이터를 갖춘 오페라베이스(operabase.com)에 접속해 ‘Kim’ ‘Lee’ ‘Park’ 등 한국인 성씨를 검색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넓게 펼쳐놓은 섭외망 위에 실력은 기본, 배역에 걸맞은 이상적인 조건까지 더한 ‘핀셋 캐스팅’이 이뤄진다. 이를 거쳐 발탁된 로미오와 줄리엣이 테너 문세훈과 소프라노 김유미다. 유럽에서 활동 중인 문세훈은 이번이 한국 데뷔 무대다.

1차 조건은 프랑스 낭만주의 오페라를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느냐였다. 이 점에서 소프라노 김유미는 적임자였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6세에 볼로냐 시립음악원에서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을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는 나의 음악적 고향”이라고 말한다. 테너 문세훈은 구노의 또 다른 오페라 ‘파우스트’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호평받았다. 이탈리아에서 수학한 문세훈이 도전한 첫 프랑스 레퍼토리였다. 당시 프랑스인 지휘자로부터 “프랑스 레퍼토리에 어울리는 목소리”라며,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또 함께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여기에 이상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나기 위한 까다로운 조건이 덧붙었다. 줄리엣은 천진난만함 뒤에 강단을 지녀야 한다, 로미오의 목소리에는 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해야 한다 등등. 그리하여 모든 어려움을 뚫고 마침내 만난 두 사람. 입을 모아 “이렇게 합이 잘 맞을 수 없다”고 말한다. 아직은 겨울바람이 차갑던 2월 초, 세종문화회관 오페라단 연습실에서 문세훈과 김유미를 만났다.

목소리 합은 만점

두 분 모두 프랑스 오페라와 인연이 깊은 듯합니다.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서울시오페라단에 합류한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김유미 ‘로미오와 줄리엣’은 많은 프랑스인이 사랑하는, 가장 상징적인 프랑스 오페라입니다.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 줄리엣의 아리아를 공부하겠다고 하면, 선생님들이 다른 아리아를 권유하곤 했어요. 아마 그들에게는 지극히, 너무나 프랑스적인 레퍼토리여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제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언젠가 꼭 줄리엣으로 서고 싶었어요. 생각보다 일찍 기회가 찾아와서 기쁜 마음입니다.

문세훈 선율적인 오페라를 좋아해요. 그런데 폴란드 포즈난 극장에서 구노 ‘파우스트’를 하게 됐을 땐 한편으로 염려됐어요. 이탈리아에서 유학해서 아무래도 다른 언어, 특히 프랑스어에 대한 부담이 있었거든요.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했어요.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았고, 프랑스 레퍼토리를 늘리고 싶던 차에 캐스팅 제의를 받았습니다. 테너로서 강요셉 선생님과 같은 배역으로 서게 되어 영광이죠.
지금 이탈리아 밀라노에 거주한다고 들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는 베로나가 근처에 있잖아요. 가본 적 있나요?문세훈 네, 가본 적 있어요. 오페라 보려고요.(웃음) 그 유명한 줄리엣의 집은 못 가봤네요. 오히려 가까이 있으면 잘 안 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도시의 정취가 이번 작품의 배경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김유미 줄리엣의 집, 저는 다녀왔어요.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의 촬영지라 꼭 가보고 싶었거든요. 그땐 줄리엣을 노래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지만요.두 주인공이 노래하는 비중도 높고, 총 5막의 오페라에서 네 번의 2중창이 등장하죠. 음악 연습 현장을 잠깐 지켜봤는데도, 두 분의 목소리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김유미 리허설에서 한 소절을 마치자마자 안심했어요. 목소리 합이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피아노 코치 선생님도 그러시더군요. 함께 편안하게 노래할 수 있는 가수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행운이죠.

문세훈 줄리엣에 가장 어울리는 소프라노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저 역시 크게 힘들이지 않고 노래하고 연기하고 있어요.

젊은 사랑 이야기

첫 만남부터 극적인 이별까지, 막이 바뀔 때마다 감정의 변화가 큰 작품이기도 합니다. 맡은 역할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묻고 싶어요.

문세훈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고, 이제는 클리셰가 된 역할이잖아요. 최대한 원작에 충실히 하려고 해요. 같은 사랑 앞에서 줄리엣은 걱정이 많지만, 로미오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들어요. 남자는, 또 테너 역할은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오랜만에 불같았던 사랑의 감정을 떠올려보고 있어요.

김유미 원작에서 줄리엣이 열네 살이에요. 그 나이대의 제 모습을 돌이켜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감정에 솔직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했던 것 같아요. 그런 모습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다양한 감정을 음악에 녹여내서 관객이 지루할 틈이 없게끔 노력 중입니다.

쥘 바르비에와 미셸 카레의 대본은 셰익스피어의 문체를 잘 살렸다고 평가됩니다. 각자 관객이 소중하게 간직했으면 하는 명대사나 가사를 꼽아주세요.

문세훈 사랑에 대한 가사는 뺄 게 없을 정도로 다 좋아요. 그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당신 앞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계신 신께 맹세해요”입니다.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줄리엣의 긴 이야기 뒤에 이렇게 딱 두 마디로 대답해요. 사랑에 빠진 로미오를 잘 보여주는 대사죠.

김유미 “당신을 위해 이 약을 마실게요.” 줄리엣이 깊은 잠에 빠지는 약을 먹기 전에 하는 대사예요. 1막에서 항상 꿈꾸듯이 즐겁게 살고 싶다던 줄리엣의 아리아 ‘꿈속에 살고 싶어라’와 대조되어 더 비장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작품 이후 일정을 말씀해주세요.

김유미 코로나로 작년에 계획했던 귀국 독창회가 오는 4월로 미뤄졌어요. 역시 프랑스 레퍼토리로 구상 중인데요, 오페라 공연을 마치자마자 바로 독창회 준비에 돌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세훈 내년 말 즈음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얼마 전 공연한 스웨덴 말뫼 극장에 다시 오르게 됐어요. 한번 들으면 또 찾게 되는 테너가 되고 싶습니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서울시오페라단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작 소설에 바탕한 오페라 세 편
아름답고 애틋한 두 어린 연인의 이야기를 처음 쓴 사람은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이탈리아 작가 루이지 다 포르토(1485~1529)가 쓴 ‘새로이 발견된 두 고귀한 연인 이야기’(1531)라는 소설이 그 기원으로 여겨진다. 작가 사후에 익명으로 출간됐고, 나폴리 악파의 대표 주자이자 거의 마지막 주자로 여겨지던 니콜로 안토니오 징가렐리(1752~ 1837)에 의해 ‘줄리에타와 로메오’라는 제목의 오페라로 부활했다. 단 8일 만에 작곡됐지만 징가렐리의 대표작으로 여겨진다. 1796년 1월 30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니콜라 바카이(1790~1848)의 ‘줄리에타와 로메오’와 빈첸초 벨리니(1801~1835)의 ‘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는 5년 간격으로 탄생했다. 두 작품 다 셰익스피어가 아닌 포르토의 원작을 바탕으로 대본이 쓰였다. 당대 최고의 대본가였던 펠리체 로마니(1788~1865)가 두 작품의 가사를 썼다. 로마니의 대본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우리가 익히 아는 셰익스피어의 두 청소년과는 사뭇 다르다. 셰익스피어가 줄리엣 아버지의 입을 빌려서 “조용하고 훌륭한 청년”으로 로미오를 묘사한 반면, 로마니의 로미오는 적을 공포에 떨게 하는 무자비한 전사의 모습에다 줄리엣에게 야반도주를 강하게 요구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에 대응하는 줄리엣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로미오를 사랑하지만 가족과 조국을 쉽게 져버릴 수 없다며 로미오를 달래는 이중창을 부르는데, 셰익스피어의 줄리엣이 보여줬던 금방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약속하는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현재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한 오페라는 프랑스 작곡가 샤를 구노의 작품이다. 구노는 1841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로마니의 대본을 가지고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오페라를 쓰고자 간단한 스케치를 썼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24년이 지난 후 쥘 바르비에(1825~1901)와 미셸 카레(1822~1872)의 대본으로 작곡을 재개한 구노는 몇 달 만에 작업을 마쳤다. 1867년 4월 27일 파리에서 초연됐으며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이 오페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셰익스피어의 버전을 바탕으로 작곡됐고, 구노 특유의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과 화려한 색채 덕분에 프랑스 낭만오페라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오페라로 접하고 싶다면 구노의 작품으로 입문을 한 후, 벨리니·바카이·징가렐리 순으로 감상을 권한다.(‘객석’ 2021년 1월호 ‘오페라 속 여인의 삶과 사랑 4’ 중 발췌·요약)

 

서울시오페라단 ‘로미오와 줄리엣’
3월 25~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이경재(예술감독), 홍석원(지휘), 이혜영(연출), 로미오(강요셉·문세훈), 줄리엣(박소영·김유미), 코리아쿱오케스트라(연주), 서울시합창단·노이오페라합창단(출연) 외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