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국제음악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3월 15일 9:00 오전

SPECIAL PREVIEW
통영국제음악제

잃어버린 세상을 찾는 소리

통영국제음악제 3.26~4.4

3월 통영국제음악당에 오르는 작품과 아티스트 미리보기

©KSH

수차례의 난관을 지나서야 윤이상의 음악은 숨을 얻었다. 1962년 쓰인 실내악 ‘로양’은 공모와 현대음악제에서 냉대를 받았다. 그러나 네 번의 시도 끝에 작품은 하노버에서 빛을 봤고, 다음 날 독일신문에 난 비평은 ‘로양’의 대성공을 전했다.
지난해 통영국제음악제도 여러 번 난항을 겪었다. ‘현실(Reality)’을 축제 주제로 삼아, 음악과 소리를 통해 동시대 현실을 돌아보는 작품들을 대거 올릴 예정이었지만, 팬데믹 선언과 맞물려 스러지고 말았다. 확산세가 주춤했던 초여름, 축제는 다시 한번 기회를 잡았다.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등 자가격리를 감안하고 내한을 약속한 몇몇 아티스트와 함께 축소된 형태로 ‘새로운 현실(New Reality)’을 준비했다.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맞이한 일상의 변화를 포착하고, 모두를 덮친 불안을 쓸어내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변덕스러운 확산세에 취소 수순을 밟았다.
2021년, 축제는 다시 한번 일어설 준비를 마쳤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게 된 지난 한 해의 변화를 고찰하며 더 깊은 의미의 현실을 탐구하는 ‘변화하는 현실(Changing Reality)’로 돌아온다. 윤이상의 ‘로양’이 이뤘던 그 칠전팔기의 정신이, 오늘 통영국제음악제를 관통하고 있다.

통영의 봄을 깨울 시간
올해 축제는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클래식 음악은 물론, 무용과 극을 아우른 종합예술, 현대식 전통음악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개막공연(3월 26일)에는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음악교육 시스템인 ‘엘 시스테마’ 출신의 지휘자 크리스티안 베라케스/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협연 루카시 본드라체크)가 올라 윤이상과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연주한다. 개막공연과 더불어 독주회(3월 29일)로 관객을 만나는 본드라체크는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의 발탁으로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이후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연주자다.
또 한 명의 주목할 만한 해외 아티스트는, 처음 한국 관객과 만나는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1988~)다. 최근 파리의 박물관 등에서 촬영한 연주영상 시리즈를 통해 주목받은 인물로, 본지 2021년 2월호에 인터뷰가 나간 바 있다. 토마는 피아니스트 박종해와의 리사이틀(3월 27일)에서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중 첼로 독주인 ‘예수님의 영원성을 찬양함’과 프랑크의 첼로 소나타 등으로 진한 프랑스식 인사를 건넬 예정이다. 바스케스/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3월 28일)와는 토마에게 헌정된 파질 세이의 첼로 협주곡 ‘네버 기브 업’을 아시아 초연한다.

TIMF앙상블

국내 아티스트 라인업도 출중하다. 피아니스트 김태형·김다솔·박종해·윤홍천(3월 27일)으로 이어지는 마라톤 콘서트에서는 각 연주자의 개성이 담긴 슈만·슈베르트·헨델·브람스의 작품들을 만난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3월 28·30일)는 두 번의 무대를 통해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완파한다.
김유빈(플루트)·백주영(바이올린)·이강호(첼로)·김태형(피아노)은 독일에서 내한하는 잉고 고리츠키(오보에)와 함께 특별한 프로그램(3월 29일)을 선보인다. 드뷔시의 ‘영상’과 윤이상의 ‘영상’을 병치한 신선함으로 관객을 끌어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앙상블에 함께하는 잉고 고리츠키(1939~)는 1980년대 스위스의 한 초청연주회에서 윤이상을 만나 그와 오랜 우정을 쌓아온 인물이다. 윤이상은 생전 세 편의 작품을 그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통영에 힘을 싣기 위해 최수열/부산시향(3월 31일)도 움직인다. 2019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의 우승자인 임윤찬이 동행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선보이고, 부산시향이 작곡가 김택수에 위촉한 ‘짠!!’을 세계초연한다. 이 밖에 피아니스트 김다솔과 아벨콰르텟의 실내악 앙상블(4월 1일), 백주영·이진상의 듀오 리사이틀(4월 3일)이 이어지고, 윤이상의 창작 정신을 잇는 TIMF앙상블은 비올리스트 겸 지휘자 이승원과 만나 아시아 작곡가 쇼케이스(4월 3일)를 연다.
앙상블 아인스(4월 4일)는 윤이상과 그의 제자인 작곡가 강석희의 작품들로 꽉 채운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농’, 플루트와 현악 4중주를 위한 ‘메타모르포젠’ 등 자주 연주되지 않는 강석희의 음악을 경험할 기회다.
한편, 통영국제음악제는 당대 작곡가·연주가·성악가·안무가·연출가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동시대 정서를 담아내는 음악극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올해는, 최근 종합예술 창작 분야에 확실한 뿌리를 내린 김주원을 예술감독으로 한 ‘디어 루나’(3월 26~28일)가 오른다. 작곡가 김택수가 음악감독으로 활약하고, 최근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영화 ‘미나리’의 배우 한예리가 특별출연할 예정이다.

안이호

한편, 이날치 밴드의 소리꾼 안이호가 영상작품으로 먼저 선을 보인 그의 판 드라마(판소리극) ‘야드’(3월 31일·4월 1일)를 무대화한다. 영상은 영국 사우샘프턴 필름위크(SFW)에서 베스트 아티스트 필름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의 도전을 지지하기라도 하듯, 이날치 밴드(4월 2일)가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 올라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범 내려온다’ 등을 선보인다.
폐막공연(4월 4일)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지휘자 사샤 괴첼이 이끈다. 베토벤의 교향곡 8번의 낭랑함으로 막을 열고, 임선혜(소프라노)·김선정(메조소프라노)·파벨 콜가틴(테너)·박종민(베이스)와 함께 하는 모차르트 ‘레퀴엠’으로 팬데믹을 이겨낼 결속의 메시지를 전한다.

 

글 박찬미 기자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INTERVIEW

지휘자 크리스티안 바스케스

축제의 개막을 알리는 지휘봉

두 번째 만남은 소중하다. 우연히 이뤄진 첫 번째 만남에서, 좋은 기억과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을 얻었다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리스티안 바스케스(1984~)가 통영을 찾는다는 소식은 더욱 반가웠다.
“2019년 서울시향과의 공연으로 처음 한국 관객을 만났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청중이 절 만나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 순간에 늘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친절하고, 클래식 음악에 열성적인 한국의 청중을 기억하기에, 이번 공연을 결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크리스티안 바스케스는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접한 후 청소년 음악교육 시스템인 ‘엘 시스테마’를 통해 지휘에 입문했다. 프로그램의 설립자이자 지휘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에게서 직접 배웠다.
“마에스트로 아브레우와 함께 공부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의 수많은 가르침 중 늘 되새기는 하나가 있는데요, 바로 음악과 어린이, 우리나라(베네수엘라)와 우리 문화를 향한 사랑입니다.”
이 베네수엘라의 인재는 유럽으로 뻗어 나갔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빈 방송교향악단·카메라타 잘츠부르크·로테르담 필하모닉 등 유럽 중심부의 악단부터·도쿄 필하모닉·싱가포르 심포니와 LA 필하모닉, 뉴저지 심포니까지 국제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2013/14 시즌부터는 노르웨이의 주요 악단 중 한 곳인 스타방에르 심포니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스타방에르를 포함한 북유럽의 악단의 특징은 꼼꼼한 조직력입니다. 그리고 젊은 지휘학도가 여러 경험과 학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습니다. 훌륭한 솔리스트들과 교류하며 많은 작품을 지휘해볼 수 있습니다.”
바스케스는 윤이상의 ‘서주와 추상’(1979)으로 통영국제음악제의 시작을 알린다. “호세 아브레우로부터 내 나라와 문화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는 그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내 문화를 진정 사랑할 줄 아는 것은, 다른 문화를 존중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지휘할 윤이상의 음악에 더욱 신뢰가 간다.
“윤이상의 작품을 지휘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의 음악은 여러 감정과 색, 효과로 가득 차 있어요. 음표 하나하나에 그의 목소리가 반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윤이상의 ‘바라’(1960)와 ‘유동’(1964), ‘무악’(1978)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윤이상의 작품으로 오랜 잠에서 깰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3월 26일)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협연 루카시 본드라체크)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으로 이어진다. 바스케스의 두 번째 공연에서는 터키와 체코의 문화적 뉘앙스를 품은 곡들이 연주된다. 터키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파질 세이의 첼로 협주곡 ‘네버 기브 업’(협연 카미유 토마)이 아시아 초연되고, 보헤미아의 민족적 정서가 짙은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도 만난다.
“두 번의 공연을 통해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만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각자의 나라와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작곡가들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갈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윤이상을 포함해서 말이죠.”
올해 크리스티안 바스케스는 노르웨이·폴란드·슬로바키아·스페인·콜롬비아·베네수엘라 등에서 무대를 이어간다. 바쁜 일정에 맞춰 그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음악을 향한 그의 신념이다.
“엘 시스테마에서 배웠던 것처럼, 음악으로 평화와 희망,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곧 한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입니다. 자가격리 기간에 쌓인 답답함은 통영의 명물이라는 스카이라인 루지로 날려볼까 합니다.(웃음)” 글 박찬미 기자

 

축제에서 만나는 윤이상의 작품들

3월 26일 콘서트홀
서주와 추상(1979)
크리스티안 바스케스/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관현악을 위한 ‘서주와 추상’은 독일 뮌스터 오케스트라의 창립 60주년을 기념하며 위촉된 곡으로,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된 당대 정치적 상황을 규탄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도입부의 트럼펫 팡파르는 종말을 경고하는 듯 장렬하다.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라는 새 이름으로 시작된 축제의 첫 무대를 장식한 작품이기도 하다.

3월 29일 콘서트홀
영상(1968)
잉고 고리츠키(오보에)·김유빈(플루트)·백주영(바이올린)·이강호(첼로)
1963년 윤이상은 고구려의 강서대묘 벽화를 보기 위해 방북했다가, 동베를린 간첩사건에 연루돼 수감됐다. 옥중에서도 창작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그곳에서 ‘영상’이 탄생했다.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은 강서대묘 사신도의 현무·청룡·주작·백호는 플루트·바이올린·오보에·첼로로 치환돼 조화로운 합일을 향해 나아간다.

잉고 고리츠키

피리(1971)
잉고 고리츠키(오보에)
고국 땅을 마음껏 밟지 못한 윤이상은 전통악기 소리를 그리워하며, 이와 음색이 비슷한 서양악기로 연주곡을 쓰곤 했다. 오보에는 그 구조와 음색에 있어 피리와 유사해 그가 자주 활용했다. 오보에 또는 클라리넷 독주를 위한 작품 ‘피리’는 30여 년간 밤베르크 심포니의 오보이스트로 활약했던 게오르그 메르바인이 초연했다.

4월 4일 콘서트홀
오보에·바이올린·비올라·첼로를 위한 4중주(1994)
앙상블 아인스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1939~)에 헌정된 곡으로, 작곡가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994년에 완성되었다. 홀리거는 1995년에 이 곡을 초연한 이후 토마스 체헤트마이어(바이올린)와 함께 이 4중주곡을 녹음해 ECM 레이블을 통해 발매했고, 2003년 통영국제음악제에 내한해 아투리아가 현악 4중주단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통영국제음악당

다큐멘터리로 만나는 윤이상

하늘에 새긴 선율

하늘에 새긴 선율(2006) MBC경남
윤이상은 현대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정작 한국에서 연주되는 일은 드물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음대 교수인 하인츠 홀리거는 영상 속 인터뷰에서 “헝가리인들이 버르토크의 곡을 연주하고 러시아인들이 쇼스타코비치 음악을 즐겨 듣는 것과는 대조적”이라며 한국 대중이 윤이상의 곡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의아해했다.
윤이상 서거 10주기를 맞아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영상’(1968)의 영감을 얻기 위해 북한의 강서대묘를 방문한 사건을 계기로 반한예술가로 오명을 얻은 윤이상의 삶을 재조명한다. 그리고 이념과 언어를 뛰어넘는 예술의 역할에 대해 질문한다. “나의 음악은 악을 배척하고, 삶의 승리를 구가하고 슬픈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인류 사회에 희망을 주고자 하는 의욕이 담겨 있습니다.” 윤이상이 마지막 육성으로 남긴 메시지다.

 

 

 

윤이상, 나비의 꿈

윤이상, 나비의 꿈(2013) MBC경남
‘나비의 꿈’은 윤이상이 동베를린 사건으로 사형을 구형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완성한 오페라다. 그 제목은 마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작곡가 자신의 자유를 염원하는 듯 들린다. 다큐멘터리 ‘윤이상, 나비의 꿈’은 현대음악사 흐름 위에 새겨진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윤이상은 이념으로 찢긴 조국에서 예술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의 질문을 따라, 다큐멘터리는 ‘그의 음악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향하는가?’를 축으로 흘러간다. 도쿄 음대 교수인 니시무라 아키라는 “윤이상은 동아시아인, 무엇보다 한국인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그 어법으로 작곡했다”고 증언한다. 플루트·오보에·첼로는 음색과 연주법이 국악기와 비슷해 그가 자주 소재 삼은 악기들이었다. 동서양을 가르며 윤이상이 확립한 음악어법의 정체성은 언제나 조국에 닿아있었다.

글 임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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