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4월 5일 9:00 오전

EDITORS’S NOTE
기자 공연수첩

 

생(生)의 찬란함

관부연락선

3월 1일~5월 9일 대학로자유극장

관부연락선

한 사람의 사(死)를 두고 어찌 찬미(讚美)를 입에 담아 왔을까. 우리가 한 여인의 개인사(死)를 얼마나 왜곡해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연극은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이야기를 다룬다. 역사 속 그는 ‘사(死)의 찬미(讚美)’를 부른 세기의 명가수로 남아 있다. 1897년 평양에서 태어난 윤심덕은 1926년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에서 ‘사망’한 걸로 알려져 있다. 바로잡자면 ‘실종’이다. 그는 연인 김우진(1897~1926)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다음날 두 사람의 정사(情死)는 조선과 일본 언론에 대서특필 됐다. 죽음의 목격자가 없기에 모든 것은 의문투성이다.

연극학자 유민영은 저서 ‘윤심덕과 김우진 비운의 선구자’(2009, 새문사)에서 둘을 둘러싼 후일담을 정리했다. 그중 ‘이탈리아 생존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이 죽음을 가장하고 유럽으로 도피했다는 것. 실제로 ‘이탈리아에서 둘을 본 것 같다’는 목격담이 나오기도 했다. ‘관부연락선’(작 이희준·연출 이기쁨)은 ‘윤심덕이 살아있다’는 상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1926년 8월 4일,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 안에서 연극은 시작한다. 무대는 배의 화물칸으로 세팅되어 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뒤쪽엔 작은 모형 배가 지나간다. 기발한 연출이다. 시모노세키항에서 출발한 선박이 부산항을 향해 도달하기까지의 시간 흐름을 모형 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가상 인물인 주인공 홍석주는 관부연락선 화물칸에서 밀항 중이다. 바람을 쐬러 갑판에 나온 석주는 윤심덕과 김우진이 바다로 뛰어드는 걸 목격한다. 놀란 석주는 심덕을 구한다. 무게감 있는 실화를 각색했는데도 두 인물의 대화는 유쾌하다. 자신을 왜 살렸느냐며 “우진 씨 곁으로 가겠다”며 통곡하는 윤심덕에게, “유부남의 제2부인이 되기 싫어서 홧김에 죽었냐”고 홍석주는 돌직구를 날린다.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판치던 세상, 서양식 모던에로를 비웃는 홍석주의 대사가 명랑하다.

이 사건은 그간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됐다. 영화 ‘윤심덕’(1969)은 이룰 수 없는 둘의 사랑에 주목했다. 가장 최근에 화제 됐던 SBS 드라마 ‘사의찬미’(2018)는 자유를 빼앗긴 세상에 분노하는 김우진에게 초점을 뒀다. 반면 연극 ‘관부연락선’은 오롯이 ‘윤심덕’에게만 몰입해 의미가 깊다. “바다에 뛰어든 순간 후회했다”고 말하는 윤심덕의 진심을 듣고 있으니, 생(生)이란 참 찬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탄탄대로

 

 

모니터의 벽은 높았다

신데렐라

3월 13일 네이버TV LG아트센터 채널

신데렐라

세계적인 엔터테이너 매튜 본(1971~)도 모니터의 벽 앞에선 맥을 못 췄다. 특유의 도발적인 해석, 재기 넘치는 연출과 안무, 화려한 무대장치도 러닝타임 110분간 모니터 너머의 관객을 줄곧 잡아두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면, 객석 1열에서도 보기 힘든 무용수의 표정 연기를 빠짐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은 공연 영상의 최대 강점이었다. LG아트센터는 지난 3월 한 달 동안 ‘매튜 본 컬렉션’을 선보였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영국 안무가 매튜 본의 국내 미공개작 4편을 네이버TV를 통해 유료로 중계했다. 코로나로 내한 공연이 무산된 ‘레드 슈즈’(2016)와 뉴 어드벤처스의 최신작 ‘로미오와 줄리엣’(2019)부터 초창기 레퍼토리로 초연된 지 20년 넘은 ‘신데렐라’(1997)와 ‘카 맨’(2000)이 상영 목록에 올랐다. 모두 국내에 실연은 물론, DVD·블루레이로도 수입된 적 없는 작품들이다. 공개된 4편은 2015~2019년 사이에 런던 새들러스 웰스 극장에서 열린 공연 실황이다. 그중 기자는 3월 13일 오후 3시에 중계된 ‘신데렐라’를 노트북으로 관람했다. ‘레드 슈즈’에 관심이 갔으나, 정해진 일자와 시간에만 영상을 공개하는 이번 중계의 특성상 일정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다.

‘매튜 본 컬렉션’ 각 작품의 관람료는 1만 원으로 책정됐다. 네이버TV 후원 링크에 접속하니, 3월 13일 기준으로 2,197명이 ‘매튜 본 컬렉션’을 후원(유료 관람)했음을 알 수 있었다. 1,103석 규모의 LG아트센터를 두 번 꽉 채울 정도의 인원이다. 그만큼 코로나 이후 온라인 공연의 유료화는 빠르게 관람 문화로 정착했다. 국내에서는 ‘후원하기’라는 네이버TV의 시스템이 역할을 했다. 처음엔 이름대로 관람료를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방식이었으나, 최근엔 관람료를 지급해야 볼 수 있는 온라인 공연에 ‘후원 라이브’라는 이름을 붙여 무료 영상과 구분하는 추세다. ‘신데렐라’ 결제를 마치자 ‘LG아트센터가 준비한 공연 영상을 예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공연장에서 직접 관람할 수는 없지만, 영상을 통해서라도 함께 감동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두어 번의 버퍼링이 있었지만 무리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총 3막으로 구성된 매튜 본의 ‘신데렐라’는 원작 동화보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에서 더 많은 부분을 빌려온 작품이다. 작품 속 신데렐라는 왕자 대신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영국 공군 조종사와 런던 대공습으로 폐허가 된 무도회장에서 춤춘다. 이러한 설정의 출발점이 된 것이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음악 ‘신데렐라’(1944)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중 작곡된 곡으로 매튜 본은 음악에서 “떨어지는 폭탄 소리”와 “당대 사람들이 가졌을 희망과 현실도피의 감정”을 느끼고 이를 작품에 반영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신데렐라에게 주어진 마법 같은 시간은 전쟁 피해자에게 허용된 시한부의 행복처럼 그려진다.

전반적으로 다소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의 작품에서 관객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은 무용수의 연기였다. 다름 아닌 음악을 연기한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군무에서도 풀 쇼트 사용을 자제하고 인물을 가깝게 잡은 덕에 음악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동작과 표정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매튜 본 또한 해당 캐스트에 대해 “무용단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모든 배역이 수준 높은 연기를 한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다만 110분의 긴 러닝타임은 온라인 상영에 적절하진 않았다. 절반 정도 지났을 무렵부터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이번 상영작은 최신작일수록 러닝타임이 줄어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이 91분으로 가장 짧았는데, 공연 영상화까지 고려한다면 앞으로 이러한 경향이 강화되리라 예상된다.

LG아트센터와의 협력뿐만 아니라, 매튜 본은 온라인을 무대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뉴 어드벤처스 공식홈페이지(new-adventures.net)에서 ‘릴 어드벤처스’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영상을 제공한다. ‘릴(REEL)’은 ‘필름 감는 얼레’와 ‘빠른 춤곡’을 뜻하는 중의적 용어. 현재 ‘백조의 호수’ ‘로미오와 줄리엣’ ‘카 맨’ ‘신데렐라’의 최신 프로덕션을 감상할 수 있다. 대여는 5.99파운드(약 9,500원), 다운로드는 9.99파운드(약 16,000원)이다. 공연 실황영상뿐 아니라 매튜 본이 직접 연출한 비하인드 영상, 무용단원들의 온라인 클래스, 뉴 어드벤처스의 아카이브 영상도 볼 수 있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LG아트센터

 

 

새로운 발견, 새로울 발굴

울릴 굉轟

2월 26~28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울릴 굉(轟) ©하지영

전통은 변화한다. 변화한 전통에서 누군가는 과거의 조각을 만나고, 다른 이는 또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꿈꾼다.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으로 선정돼 지난 2월 말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 오른다. 임용주의 ‘울릴 굉(轟)’은 과거와 미래, 서로 다른 관객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키는 작품이었다.

극장 가운데 위치한 원형무대 주위로 관객을 위한 간이 의자들이 놓였다. 발을 조금만 뻗으면 무대에 닿는 거리. 무대 위 악기들과 이를 연주하는 연주자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전통음악에서 늘 맨 뒤에 숨어 있어 그 모습을 보기 어려웠던 편경의 고아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왔다. ‘율·속·정·례·합’ 다섯 개 곡이 끊임없이 흘러가는 작품은 ‘편경’에 주목했다. 돌에서 비롯된 청아한 소리는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각 곡의 기둥으로 세워졌다. ‘절대적인 표준’을 상징했던 이 악기의 가치와 역할이 매 순간마다 빛났다.

임용주가 다룬 모듈러 신시사이저는 대금·거문고·태평소 선율에 현대적인 감각을 입혔다. 이를 주도하는 임용주의 모습은 수많은 조작 버튼을 누르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와 같았다. 그의 지휘(연출)에 음정과 소리의 질감이 미세하게 변화하고 소리가 분쇄돼 공간에 퍼져나갔다. 신시사이저에 의해 길게 늘어진 악기의 소리는, 현대가 전통을 업고 나르는 모습마저 연상시켰다.

무대와 객석이 원형으로 설치된 건, 입체음향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신시사이저와 그 연장선에 있는 서라운드 시스템으로 앞뒤, 좌우에서 발생하는 소리의 감각을 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기자가 공연을 관람한 26일에는 소리의 출력이 고르지 못했고, 입체음향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채우지는 못했다. 괄목했던 것은, 온라인(네이버 TV/3월 9일)으로 중계된 같은 공연을 이어폰을 착용하고 들으니 그 공간감이 생생히 구현됐다는 것이다. 온라인 공연이 라이브의 감각을 대체할 수 없다는 믿음은 전자음향과 음악에는 적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울릴 굉(轟)’은 농악과 사물놀이를 공부하고 현재 월드뮤직그룹 공명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임용주의 작품을, 대금연주자 오병옥, 거문고연주자 이재하, 타악주자 신원영이 함께 구현한 공연이다. 전통음악과 악기의 실험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의 여정, 그 다음 행선지에 호기심이 인다.

글 박찬미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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