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교향악축제 21개 악단, 22명 악장 – 오케스트라의 균형추와 지팡이가 되는 사람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4월 19일 9:10 오전

COVER STORY
21개 악단, 22명 악장

2021 교향악축제 21개 악단, 22명 악장

오케스트라의 균형추와 지팡이가 되는 사람들

이번 교향악축제에서만큼은 악장을 주목해야 한다. 우선 참가 악단의 상당수 상임지휘자 자리가 공석이다. 지휘자가 없으니 악장의 활이 지휘봉이 되고, 객원지휘자의 언어는 악장의 활시위를 거쳐 비로소 악단의 소리로 풀이된다. 이른바 ‘악장 학교’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수많은 전·현직 악장을 배출한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도 처음 교향악축제 무대에 오른다. 올해 교향악축제는 3월 30일부터 4월 22일까지 진행된다. 근 한 달간 봄날의 풍경을 교향악으로 다채롭게 수놓을 21개 악단의 악장 22인을 조명했다.

글 객석 편집부

 

CONTENTS
2021 교향악축제 악장 22인 인터뷰

국내외 최장수 악장 라이너 퀴힐 & 김동현 인터뷰

악장들이 말하는 ‘악장의 생애’

악장 체제 변천사

교향악축제 일정

interview *공연 날짜순
성남시향 문수형 | 객원악장

창원시향 이리나 | 부악장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김민 | 음악감독

과천시향 유재원 | 상임악장

부천필 최지웅 | 제2악장

춘천시향 피호영 | 객원악장

인천시향 한수혜 | 제1바이올린 수석

경북도향 신상준 | 객원악장

진주시향 김준영 | 상임악장

부산시향 임홍균 | 상임악장

서울시향 웨인 린 | 부악장

코리안심포니 이정일 | 상임악장

코리안심포니 김민균 | 상임악장

대전시향 김필균 | 제1악장

수원시향 이석중 | 객원악장

강남심포니 이마리솔 | 상임악장

군포프라임필 김영기 | 상임악장

경기필 정하나 | 제1악장

원주시향 김현지 | 객원악장

광주시향 이종만 | 상임악장

포항시향 조가현 | 객원악장

KBS교향악단 최병호 | 부악장

 

interview

3.30 공연

성남시립교향악단  

문수형 객원악장

드러나지 않는 공백

성남시향이 멘델스존의 두 작품으로 교향악축제의 개막을 장식한다. 2015년부터 성남시립예술단 예술총감독이자 시향의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는 금난새와 함께한다. 독특하게도 멘델스존의 대표작인 바이올린 협주곡을 플루트 버전(협연 최나경)으로 선보이고,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를 연주한다.

멘델스존과 각별한 동료였던 슈만은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그 어떤 교향곡보다 악장(樂章)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전체를 이루고 있다.”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악장(樂長)’도 전 구성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몇 년간 악장이 공석인 성남시향에 조심스레 안부를 물으니, 수석 문수현이 그 공백을 충실히 메우고 있다고 답을 보내왔다. 성남시향의 연주에 신뢰가 더해진다.

박찬미 기자

악장의 오랜 공백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나? 2012년 9월, 수석으로 입단했을 때까지만 해도 악장이 있었는데 얼마 안 돼 공석이 됐다. 그 후로 채우지 않고 있다. 단원들은 지휘자와 악기별 수석 단원의 리드에 잘 따라가고 있다. 악장은 음악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중요한 자리다. 신중하게 등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악장의 역할을 대신하기까지 시행착오는 없었는지? 잠깐 함께했던 악장과의 몇 차례 공연이 내겐 ‘악장 트레이닝’이 된 셈이었다. 이후 다른 파트의 수석 단원들에게 조언도 많이 구했다. 오히려 내가 악장이 아니었기에 더 편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연주나 리허설에서 대행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 게 사실이지만, 악장이 공석일 경우 수석이 그 직무를 이어받는다는 내부 규정에 충실할 뿐이다. 객원악장이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체의 ‘악장’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다.

수석과 악장에게 각각 주어진 권한과 역할은 다를 텐데. 음악 외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바이올린부만 통솔한다. 행정 문제에 있어 단원 의견을 모으거나, 연주 순서 등 단체의 규칙을 정해야 할 때 등이다. 다른 악기 파트는 각각의 수석 단원이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객원악장이 오면 음악에 변화가 큰가? 객원이기 때문에 성남시향의 색채에 대해 모를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을 전달하는 것이 내 역할이기도 하다. 지휘자와 단원 사이 호흡이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객원악장이 무리 없이 이끌어가도록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 소리는 객원악장에 따라 많이 바뀔 수밖에 없다. 음색과 소리를 내는 타이밍은 저마다 다르지 않나. 리더의 소리에 영향을 많이 받는 건 당연한 오케스트라의 메커니즘이다.

국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단원, 그리고 상임악장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상임악장이 갖춰야 할 역량이나 자질은 무엇일까? 연주력은 말할 필요도 없고, 개성 있는 단원들이 모여 하나의 소리를 내는 곳이니 넓은 사고방식도 갖추면 좋을 것이다. 다만, 아무리 젊다 해도 오케스트라 경험이 풍부하여 단체 연주에서의 보잉과 핑거링의 기능을 잘 알아야 한다. 악장이 보잉과 핑거링을 결정하는데, 이는 현악부의 프레이즈 표현에 영향을 주고, 또 오케스트라의 전체 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악장 생활을 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도 “첫 리허설에서부터 보잉과 핑거링을 잘 준비해오는 것이 악장의 큰 임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 특히 단원 입장에서는 악장이 결정한 보잉과 핑거링이 불편해도 건의하거나 바꾸는 게 쉽지 않다. 단원들이 실수 없이 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악장의 책임이니,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의견도 적극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성남시향 2003년 창단 후, 초대 지휘자 주익성을 거쳐 2대 김봉, 3대 임평용 지휘자와 함께하며 기반을 다녔다. 이어 금난새가 예술총감독 및 상임지휘자로 2015년 부임해 현재까지 함께하고 있다. 성남아트센터 상주단체로서 정기연주회와 해설음악회 등 새로운 시도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연간 80여 회의 공연을 소화하고 있다.

 

3.31 창원시립교향악단  

이리나 부악장

희망의 메신저

이리나는 지난해 코로나 때문에 봄에 열리던 교향악축제가 여름으로 변경된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번 교향악축제에서 김대진과 창원시향은 코플란드 ‘애팔레치아의 봄’과 소프라노 서선영이 함께하는 모차르트 ‘환호하라, 기뻐하라’ K165, 닐센 교향곡 4번 ‘불멸’을 선보인다. ‘인간은 위대하여 이 어려운 시기를 꿋꿋이 이겨내고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기 위해 ‘불멸’을 택한 것이다. 닐센 교향곡은 흔히 연주되는 작품은 아니기에 이리나는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듯 새롭게 공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불어 “창원시향도 좋은 연주를 보여드리기 위해 열심히 준비 중”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장혜선 기자

기억 속에 깊게 각인된 악장의 모습이 있다면? 연주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았던 뉴욕 필의 악장 글렌 딕테로우(1948~)가 떠오른다. 여러 마스터클래스와 워크숍에서 딕테로우에게 배움의 기회를 얻었다. 강하면서도 온화한 모습의 그가 뉴욕 필을 이끄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종종 뉴욕 필의 무대 리허설을 관람하곤 했는데, 그는 객석에 앉아있는 학생에게도 고갯짓으로 인사를 건네곤 했다.

솔리스트가 아닌, 악장을 업으로 삼은 이유는?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오케스트라를 접했다. 처음에는 그저 여러 악기와 함께 교향곡을 연주하는 게 마냥 신기했다. 대학과 대학원을 거치며 좀 더 구체적으로 오케스트라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 어떨까라는 로망이 생긴 것 같다.

악장으로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재단에 속해있는 오케스트라, 민간 오케스트라 그리고 시에 속해있는 오케스트라가 있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경우는 시에 속해있는 교향악단이어서 행정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 창원시와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악장 또한 교향악단에서 연주하는 일원이기에 우선순위는 당연히 연주에 두어야 한다. 악장으로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 간의 음악적 소통을 정확히 전달해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악장을 선발할 때 스카우트(초청)나 오디션 중 어떤 방식이 더 적합하다고 보는지? 두 방법 모두 장점이 있다. 조금 우려되는 것은 오케스트라 생활에는 ‘앙상블 능력’이 중요시된다. 단체 음색에 잘 흡수되는지도 중요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과 연륜도 무시 못 한다. 아쉽게도 오디션에선 이런 면모를 보여줄 수 없는 게 단점이다.

지휘자가 본인만의 음악적 스타일을 강하게 요구할 때는 유연히 따르는 편인가? 음악에는 정답이 없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지휘자가 요구하는 스타일에 맞추었을 때 성과가 좋았다.

간혹 악장들의 독주가 나오는 교향곡도 있다. 식은땀을 흘리게 했던, 곤란하게 만든 독주를 꼽는다면? R.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아마 많은 악장이 가장 어려운 독주로 손꼽지 않을까!

교향악축제에 처음 올랐던 때는 언제였나? 2009년에 입단해서 2010년에 교향악축제에 섰던 기억이 난다. 연주 전날에도 다른 악단의 연주를 관람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축제에 참여했다는 자체가 영광이었다. 음악계에 다양한 축제들이 더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향악축제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아무래도 타이트한 일정 때문에 다른 출연진과 섞일 수 없는 아쉬움은 있다. 또한, 단지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 속해있는 악단이라는 이유만으로 편견을 갖고 바라볼 때가 있다. 이러한 편견이 앞으로는 조금씩 없어지길 바란다.

창원시립교향악단 창원시·마산시·진해시 3개 도시가 통합 창원시로 출범함에 따라 2012년 구 마산시향과 창원시향이 통합해 재탄생했다. 통합 이후 정치용, 박태영이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교향악축제·전주세계소리축제·남현대음악제 등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으며 통영현대음악제 주관단체로 참가하여 초연곡을 선보이는 등 도전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작곡가 윤이상·펜데르츠키·루토슬라브스키 등의 현대곡을 국내 초연했으며 특히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 초연은 한국음악사의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으로 찬사를 받았다. 현재 130여 명의 상임단원이 함께하고 있다.

 

4.1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김민 음악감독

체임버 악단의 정수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이하 KCO)가 처음으로 교향악축제에 참가한다. 원래 예정되어 있던 코바체프/대구시향이 내부 사정으로 축제에 함께할 수 없다고 통보함에 따라 KCO로 변경된 것이다. 차세대 마에스트로로 주목받는 정민이 지휘봉을 들 예정이다.

1965년 ‘서울바로크합주단’이라는 이름으로 창단 때부터 단원으로, 또 음악감독으로 오랜 기간 KCO를 이끌어온 김민은 “교향악축제 33년 만에 처음으로 참가하게 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KCO는 대중에게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특성을 각인시킬 수 있는 곡을 선정했다. 하이든 교향곡 83번 ‘암탉’을 비롯하여 신창용과 함께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7번, 드보르자크 ‘현을 위한 세레나데’가 연주된다. 김민은 “33년 전 교향악축제의 시작은 국내 오케스트라가 크게 발전하는 주춧돌이 되어줬다”라며, “이번 KCO 참여가 미래의 교향악축제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혜선 기자

그동안 악장 역할만 60여 년간 해왔다. 서울대 재학 당시 KBS교향악단의 객원단원을 하면서 ‘오케스트라 인생’이 시작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악장 역할이 주어졌다. 현재까지도 KCO에서 음악감독과 악장을 맡고 있다.

롤모델로 삼은 악장이 있었나? 미국의 전설적인 악장이자 세계 오케스트라에서 존경을 받았던, 보스턴 심포니의 조세프 실버스타인(1932~ 2015)이다.

오늘날 오케스트라 구조는 음악적 전권을 갖는 상임지휘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악장으로서 이러한 구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혹 상임지휘자가 공석일 때 악장이 지휘를 맡는 경우도 있지만 흔하지는 않다. 악장 운용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은 오케스트라 규모(1·2·3·4관), 연간 연주 횟수, 오케스트라 재정 규모, 단원들의 연주·연습 횟수에 따라 악장 복수제(더블 악장 시스템)를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악단의 수준 높은 연주를 위해서는 전 단원을 아우르며 중재하는 악장이 중요하다.

지휘자가 지휘대에 서면 음악적 스타일 역시 절대적으로 지휘자의 권한일까? 지휘자와 악장의 음악 해석이 다를 수 있어도 일단 악장은 지휘자의 의도에 협력해야 한다. 물론 대다수 지휘자는 보잉·프레이징·다이내믹(악상) 등을 연주 전 악장과 협의하곤 한다. 악장은 지휘자와 단원 사이에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완충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오디션은 객관성 있게 선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악장이라면 테크닉 외에도 다른 조건이 필요하진 않을지 궁금하다. 폭넓은 활동 경험이 있는 악장이 필요하거나 오케스트라 경영 자문이 필요한 경우, 이에 걸맞은 악장을 초청하기도 한다. 주로 신생 오케스트라에서 초청 악장을 계약직으로 시행한다.

수석과 부수석,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어떻게 보면 오케스트라는 ‘연주’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구성원들의 집합체이다. 보편적으로 서로를 부르는 존칭이 독일어권은 ‘Kollege’, 영미권은 ‘Colleague’로 모두 ‘동료’라는 뜻이다. 오케스트라는 전문 연주자들이 모여 각각의 개성보다는 지휘자 한 사람에게 음악적 완성도를 위임하여 연주를 선보이는, 독특한 프로세스의 예술집단이다. 준비 과정에서 앙상블 기능이 주요하게 요구된다. ‘동료’간의 섬세한 교감 없이는 좋은 연주가 만들어질 수 없다. 오케스트라는 단원 간의 존경심이 가장 중요하리라 본다.

현재 국내 오케스트라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어있는 경우도 많은데, 아주 오래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만큼 오케스트라의 노동 환경과 처우도 달라지고 있다. 오케스트라는 특수한 연주 집단으로 근본적으로 보편적인 노동조합에는 적합하지 않다. 오케스트라 노동시간은 실제 노동 시간(리허설 시간), 노동 날짜(주말 연주·연습), 노동 횟수(연간 연주) 등 공연예술 특성상 일반적인 근로자와는 차이가 있다. 공식적인 오케스트라 단원이 조합원이 될 수 있는 별도의 단체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국내 오케스트라 노동조합이 구성된다면 모든 직업 오케스트라의 단원은 결집된 조합원으로서 합리적인 발전을 위해 체계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겠다. 오케스트라 노동조합이 구성된다면 악장도 구성원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후배 악장들에게 전하는 김민의 전언

악장은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에서 인간적인 세심한 배려를 보이는 것이 중요해요. 동료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오케스트라는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죠. 단원들의 음악적 개성을 존중하여 지휘자와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도록 만들어야 해요. 악장은 성공적인 연주로 귀착할 수 있도록 하는 중재자 역할이라고 할 수 있죠.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편견을 갖지 말고 오케스트라 속에서 만들 수 있는 인간적인 하모니에 집중한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서울바로크합주단을 시초로 1965년 첼리스트이자 서울대 교수였던 고 전봉초(1919~2002)에 의해 시작됐다. 1966년 창단 연주회를 시작으로 휴식기(1976~1979)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다양한 연주를 펼쳐왔다. 1979년 초대 악장이 된 김민은 서울바로크합주단을 국내 최초 악장 중심의 전문 실내악단으로 재편성하여 한국 음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2016년 서울바로크합주단은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꾸고 새 출발을 했다.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는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그동안 김성태·김정길·김용진·구본우 등 국내 작곡가에게 창작곡을 위촉했고, 윤이상의 곡으로만 구성한 음반을 발매한 바 있다.

 

4.2 과천시립교향악단  

유재원 상임악장

만족을 향해

유재원은 유연하되, 강직한 악장이다. “인간관계에서는 유연함이 필요하지만, 인간 대 음악은 타협이 없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과천시향에서 10년간 악장으로 재직한 끝에 단원들과는 이제 일심동체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교향악축제에서 단원들과 한마음으로 들려줄 음악이 기대된다. 서진/과천시향은 베버 ‘마탄의 사수’ 서곡, 슈타미츠의 클라리넷 협주곡 7번(협연 채재일), 시벨리우스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박서정 기자

악장의 길로 이끈 이로 스승 김민을 꼽았다. 서울대 재학 시절 은사님이시다. 김민 선생님의 권유로 운 좋게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에 입단했고, 합주의 매력을 알게 됐다. 당시 선생님께서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기획적인 구성부터 음정 연습까지 철저히 챙기시는 모습을 보면서, 악장(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중요한 악장의 역할이란? 일종의 ‘메신저’가 되는 것이다. 지휘자마다 추구하는 음악이 다르다. 지휘자의 메시지를 연주자가 수월하게 인지하도록 전달하는 것이 악장의 임무다.

소통을 중시하는 것 같다. 전체가 하나의 흐름과 에너지를 가져가기 위해서다. 끊임없이 교감하다 보면 말을 안 해도 통하는 부분이 생긴다. 마치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예를 들어 객원지휘자가 와서 리허설을 진행하면, 그에 대한 파악이 단시간에 조직적으로 이뤄진다. 어떨 땐 5분도 안 걸린다. 도중에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단원들은 이미 물어볼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지휘자와 단원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해내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수겠다. 오케스트라도 거대한 조직이고, 사회생활을 하는 곳이다. 한 가지 명심할 점은, 인간관계에서는 유연함이 필요하지만, 인간 대 음악은 타협이 없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발전을 위해서 나 자신부터 많은 공부를 하려고 한다.

음악적 결정에 따른 부담감인가?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의 음악적 스타일은 여러 제안 중 하나일 뿐, 모범답안은 아니다. 나 역시도 실수하니까. 그래서 자주 연주했던 곡이라도, 다시 보잉을 수정하는 편이다. 잘한 것보다는 부자연스러웠던 부분이 더 기억에 남아서다.

음악적 역량을 쌓는 데 도움이 된 경험은 무엇인가? 해외에서는 오케스트라 전문 아카데미가 활발히 운영된다. 수업과 실제 연주 경험을 토대로 전문 오케스트라 연주자로서 생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유학 시절 서독일방송교향악단에서 2년간 연주했는데, 나보다 20~30년 먼저 오케스트라 생활을 시작하신 단원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았다. 그리고 악장은 비상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하므로, 빠른 초견과 실내악적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협연·독주·실내악을 균형 있게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천시향으로 승격된 2012년부터 악장으로 함께하고 있다. 각별한 추억을 떠올려 보자면. 10여 년 전, 낯선 이방인이었을 나를 받아주었던 단원들과 김경희 지휘자님에게 감사하다. 지금 상임지휘자로 계시는 서진 선생님과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리코딩 작업도 각별하다. 연주해본 적 있는 곡이지만, 모든 단원이 원점에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고생한 끝에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과천시립교향악단 2001년 과천시립청소년교향악단으로 출범했다. 2008년 조례가 개정됨에 따라 과천시립아카데미오케스트라로 승격됐고, 2012년 현재의 명칭인 시립교향악단으로 다시 승격됐다. 박진욱과 김경희가 상임지휘자로 재직했으며, 2014년부터 서진이 이끌고 있다. 2019년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음반(Sony Classical)을 발매해 호평받았으며, 지금까지 60여 회의 정기연주회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4.3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최지웅 제2악장

백발의 악장을 꿈꾸다

지난해 부천필은 대구시향 상임지휘자인 줄리안 코바체프와 교향악축제에 올랐다. 올해는 지휘자 장윤성과 함께 축제에 참여할 예정이다. 최지웅은 “장윤성 지휘자가 고심하여 축제 레퍼토리를 선정했다”라며, “상반된 분위기의 두 곡이 부천필의 다채로운 사운드를 즐기도록 이끌 예정”이라고 말한다. 서곡인 리스트 교향시 6번 ‘마제파’에선 위풍당당한 기운을,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에선 센티멘털리즘을 느낄 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는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 Op.14를 선보인다.

장혜선 기자

‘백발의 악장’을 꿈꾼다고 들었다. 어릴 적부터 연주회를 가면 백발인 악장들의 품위 있는 모습을 보며 동경심을 키웠다. 한 오케스트라에서 20~30년 활동하며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단원은 백여 명이지만, 악장은 1~3명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악장은 어떠한 방식으로 선발해야 할까? 외국처럼 단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악장을 선발하면 어떨까? 자신이 선발한 악장이라면 아무래도 느낌이 다를 것 같다.

단원들 간의 수평적 구조를 중시하는 편인가?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에서 수평적 구조는 굉장히 중요하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결정에 단원이 함께할 순 없겠지만, 그 비중을 점차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결정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게 된다면 여러모로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최고의 전문가는 다른 누구도 아닌 현장을 오롯이 느끼는 우리 단원들이니까.

자신의 음악적 성향을 강요하는 지휘자를 만나면 어떠한 느낌이 드나? 어떤 지휘자가 오더라도 원하는 의도를 악단에게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연주를 선보여야 하는 게 우리의 일이고.

지휘자의 의견과 단원들의 의견이 불일치할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하나? 견해 차이가 발생하는 걸 피할 순 없다. 다만 지휘자와 단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 그 간극 속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악장의 역할이다.

부천필에서 객원악장부터 시작했다. 부천필과의 인연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객원악장 요청이 들어와서 함께하게 됐다. 그로부터 2개월 뒤 교향악축제에 참여했다.

부천필의 악장 운영 방식이 궁금하다. 부천필은 현재 제1악장, 제2악장, 수석, 부수석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오케스트라마다 악장 운영 방식이 약간씩 다르겠지만 사실상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악장이 되려면 우선적으로 갖춰야 하는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악장에게 요구되는 사항은 여러 가지다. 사실 실력은 당연히 겸비해야 하는 것이기에 논외로 하겠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인격’이라고 생각한다. 오케스트라 활동도 사회생활이기 때문이다. 악장은 매일 수많은 문제를 사무국과 협업하고 있다.

그렇다면 악장은 타고나는 걸까? 훈련되는 걸까? 좋은 악장, 좋은 리더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행히 경험이란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쌓이게 된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1988년 창단 직후 쇤베르크와 버르토크 등 20세기 작품을 국내 초연하고, 브람스와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 연주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부천필은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로 특히 유명하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지휘자 임헌정과 함께한 말러 사이클은 한국에서의 첫 시도여서 호평을 받았다. 2015년부터 제2대 상임지휘자로 박영민이 위촉되어 ‘말러 시리즈’와 ‘쇼스타코비치 시리즈’를 진행했다. 유명 오페라를 부천필 스타일로 선보이는 ‘BPO 오페라’도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4.4 춘천시립교향악단  

피호영 객원악장

늘 환영받는 손님

춘천시향은 북방의 기운을 몰고 온다.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배원희),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까지 러시아와 핀란드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는 작품들로 축제를 꾸민다. 지휘대에 춘천시향의 수장 이종진이 오르고, 바이올리니스트 피호영이 객원악장으로 그의 오른팔이 된다.

피호영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악장을 지내고, 1996년 비르투오조 현악 4중주단을, 1999년에는 성신트리오를 창단하는 등 실내악과 교향곡의 진영을 두루 거쳤다. 그런 그는 국내 많은 교향악단의 객원악장으로 꾸준히 러브콜을 받으며 터줏대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인기는 그의 음악성과 앙상블 조직력을 증명한다.

박찬미 기자

꾸준히 객원악장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비결이 있나. 남의 집에 가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지 않나. 객원악장도 일시적으로 초대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단체의 구조나 음악적 성격을 필요 이상으로 변혁시키려 드는 건 지양해야 한다. 물론 한 단체와 여러 번 함께 연주하며 더 친밀해질 수는 있지만, 선을 넘지 않는 관계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객원악장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물론 보잉이나 핑거링 등 음악·기술적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은 단체에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이런 긍정적인 효과로 인해 객원악장 제도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성화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 초대되나? 주로 악장 경력이 있고, 당시의 평이 좋은 경우 초청된다.

국내 많은 단체의 악장이 공석으로 남아 있다. 리더의 부재, 어떻게 봐야 할까. 새로운 악장을 찾는 과정 중에 있다고 본다. 실력은 물론, 단원·지휘자간의 소통 능력 등 여러 기준이 있는데,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여러 객원악장을 초청해 합주해보는 것도 그 한 사람을 찾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스카우트의 방식이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최근 오디션을 통해 악장을 선발하는 비율이 많이 높아졌는데. 독주자와 오케스트라 악장에 요구되는 기량은 차이가 크다. 먼저 악장에게는 앙상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는 대개 오케스트라 경험이 풍부한 사람에게서 보인다. 그래서 이전에 수석이나 부악장, 악장 등을 역임한 사람들을 스카우트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오디션 선발 사례도 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악장에게 많은 오케스트라 경험을 요구하는 것은 변함 없다. 예를 들어 프랑스 루아르 국립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재직하다가, 오디션을 통해 프랑스 라디오 필하모닉의 악장으로 발탁된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이 일례다.

1990년대 악장으로 재직했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는 현재 두 명의 악장이 있다. 해외의 경우에도 악장이 여러 명인 곳이 더러 있는데, 이상적인 악장 수가 있을까? 여러 명에게 악장이라는 타이틀을 주는 것은, 좋은 연주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함이다. 베를린 필은 악장이 4명인데 번갈아 가며 리더를 맡는다. 두 악장이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한 명이 모든 연주를 소화하는 건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다. 교대 가능하게끔 해서, 연주의 질을 높여야 한다. 재정적으로 뒷받침이 된다면 부악장도 여러 명인 게 좋다. 실력 있는 연주자들에게 합리적인 타이틀을 주는 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악단의 발전을 위한 일일 것이다.

춘천시향 춘천시는 강원도 내에서 문화·예술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재 도내 3개 시립예술단이 있는데 1985년 창단된 춘천시향이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다. 이한돈, 김윤식, 백정현에 이어 2015년에 부임한 이종진이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다. 정기연주회뿐만 아니라 강원지역 민영 방송사인 G1과 함께 매년 3~4차례 타지역 순회공연도 진행하고 있다.

 

4.6 인천시립교향악단  

한수혜 제1바이올린 수석

젊은 기운을 담아

2018년에 이병욱은 인천시향 8대 음악감독으로 부임했다. 수석으로 활동 중인 한수혜는 그의 취임 이후 “인천시향이 ‘지휘자 중심의 앙상블’보다 ‘실내악과 같은 앙상블’로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교향악축제에서도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여줄 계획이다.

이병욱/인천시향은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로 공연을 시작해, 슈만 피아노 협주곡 Op.54(협연 윤홍천),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연주한다. 한수혜는 “‘비창’은 이미 널리 알려진 곡이지만 인천시향만의 해석으로 보다 젊은 사운드를 보여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장혜선 기자

국내 오케스트라는 유독 젊은 연주자가 악장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드문 듯하다. 오디션을 진행하면 젊은 신인에게도 기회가 열린다는 장점이 있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악장을 초청하는 건 이미 많은 경험을 가진 연주자를 영입하면 악단이 안정적으로 연주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휘자와 악장간 안정적인 협업 방식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지휘자는 본인이 원하는 정확한 해석을 가지고 있다. 가끔 해석이 명쾌하게 전달되지 않을 때 악장의 도움을 받는다. 악장은 지휘자가 원하는 음악을 잘 짚어갈 줄 아는 지기와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유독 어려움을 느끼는 교향곡이 있나? 개인적으로는 바흐나 하이든, 모차르트처럼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자주 연주하지 않는 작품을 할 때 긴장감을 느낀다. 더욱 섬세한 앙상블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할 때면 마치 오케스트라의 맨 얼굴을 공개하는 것 같다.

흔히 오케스트라를 군대에 비유하기도 한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를 중심으로 악장과 부악장, 수석과 부수석 등 정해진 체계에 따라 움직인다. 오케스트라 리허설은 그렇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인천시향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중이다. 이병욱 음악감독은 단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음악을 만들고 있다.

봄은 곧 교향악축제 시즌이다.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교향악축제는 어떠한 의미인가? 단원들에게 늘 즐거운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다른 악단의 연주도 보면서 다양한 음악을 즐기곤 한다. 매회 인천시향이 교향악축제에 오를 때마다 주변 음악인들이 소중한 리뷰를 전해줬다. 의견을 하나 보태자면, 앞으로 한국 작곡가들의 음악을 소개하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다른 나라에서는 자국 작곡가들을 지원하는 것에 관대하더라.

현재 인천시향의 상임악장 자리는 공석이다. 인천시향에는 부악장 제도가 없고 상임악장 제도만 있다. 2020년에 전(前) 악장의 계약이 종료됨에 따라 현재 악장이 공석이다.

그렇다면 객원악장이 자주 올 텐데, 단원으로서 일장일단이 있다면? 객원악장에 따라 악단의 전체적인 사운드가 달라진다. 그만큼 악장이라는 자리는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보잉을 정하거나, 어떤 줄에서 연주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악장의 중요한 책임 중 하나다. 같은 곡이라도 악장에 따라서 연주 방법이 바뀌는 일은 흔하다.

‘이런 악장이 오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면? 악장이 갖춰야 될 자질은 여러 가지다. 훌륭한 연주력은 물론이고, 음악 전체를 이해하는 능력, 관악·타악 연주자와의 앙상블 능력이 꼭 필요하다.

부악장, 혹은 수석단원의 주된 역할도 궁금한데. 부악장직을 수행하는 단원은 악장을 잘 지원해야 한다. 악장도 실수할 수 있다. 부악장은 이럴 때마다 악장의 집중력과 자세가 흔들리지 않도록 그를 돕고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악장은 좀 더 편안하게 연주에 임할 수 있고, 결국엔 오케스트라 전체가 빛나게 된다.

인천시립교향악단 1966년 6월 초대 상임지휘자 김중석과 임원식·금노상·첸 주오황·금난새·정치용을 거치며 성장했다.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이 개관한 1994년에 4관 편성으로 증원됐다. 지금까지 총 380여 회의 정기연주와 3천여 회의 기획연주를 선보였고, 인천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사절단 역할 또한 하고 있다. 2018년부터 이병욱이 제8대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재직 중이다.

 

4.7 경상북도 도립교향악단  

신상준 객원악장

30년 세월의 자부심

국내 많은 악단에게 교향악축제는 가장 설레는 무대 중 하나일 것이다. 경상북도 도립교향악단(경북도향)은 이 중요한 무대에 신상준을 객원악장으로 초대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상임악장으로 함께한 인연이 그를 ‘신뢰 가는 리더’로 거듭나게 했을 터다.

경북도향은 2019년부터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는 백진현과 함께 러시아 레퍼토리로 통일성을 갖추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 러시아 부활제 서곡 Op.36,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협연 박진우),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2번 ‘1917년’을 통해 다채로운 러시아 음악을 즐겨볼 흔치 않은 기회다.

박찬미 기자

경북도향과의 인연이 계속되고 있는 데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느껴진다. 경북도향에 상임악장으로 있을 땐, 정기연주회는 물론 경북의 각종 기관과 학교, 그리고 음악을 접하기 힘든 환경에 있는 분들을 찾아가 여러 공연을 선보였다. 단원들의 열정과 겸손함에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여러 번이다.

경북도향 이전에, 울산시향·부산시향·서울시향의 상임악장을 거쳤다. 이 역할이 몸에 잘 맞았나 보다. 어렸을 때부터 악장이 되리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수학하던 시절부터 수석과 부악장, 그리고 악장으로서 오케스트라 생활을 했다. 특히 실력에서 인품까지, 악장으로서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던 스승,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징골드로부터 많이 배웠다.

지난해 경북도향 악장에서 물러나고 나서, 그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고 있는데. 각 오케스트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객원악장의 형태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 직책의 긍정적인 부분이 다소 가려져 있는데, 각자의 개성을 지닌 여러 악장과의 연주가 오케스트라 전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 과정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악장과 지휘자는 음악적 해석을 주도적으로 제안한다. 이와 관련해 지휘자와 의견 조율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지. 지휘자가 자신의 스타일을 요구하는 경우와 악장의 음악적 스타일을 존중하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으로 지휘자의 스타일을 따라가는 게 잘 맞았다. 여러 훌륭한 지휘자와 수많은 연주를 해보니, 같은 작품이라도 지휘자에 따라 연주의 색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랜 경력의 소유자인 만큼 교향악축제 참여 이력도 남다르다. 서울시향·부산시향·대구시향·울산시향·포항시향·코리안심포니 등 여러 오케스트라와 근 30년간 참가하고 있다. 상임악장, 객원악장뿐만 아니라 협연자로서도 함께했다. 내게 교향악축제는 훌륭한 악단, 지휘자, 협연자들과 함께 연주할 수 있었던, 말 그대로 ‘축제’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경상북도 도립교향악단 1997년 9월 창단 이래 두 차례의 세계문화엑스포 공연(2013·2017), 러시아 이르쿠츠크주 초청공연(2016), 베이징현대음악제(2019) 등에서 활약하며 국제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현재 6대 상임지휘자 백진현과 함께하고 있다.

 

4.8 진주시립교향악단  

김준영 상임악장

믿음직한 날개

지난 2020년, 진주시향은 5년 만에 상임지휘자를 맞았다. 객원지휘 체제로 운영되는 동안에는 악장인 김준영이 묵묵히 연습을 도맡았다. 비상을 앞둔 진주시향은 16년 만에 교향악축제에 오른다. 새롭게 부임한 상임지휘자 정인혁은 의미 있는 무대를 꾸밀 곡으로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 서곡과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협연 김민지),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선정했다.

글 박서정 기자

교향악축제에 참여하는 감회가 남다르겠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10여 년 전 교향악축제는 내 연주 인생 중 최고의 무대였다. 단원들과의 합은 물론 관객의 박수 소리도 대단했다.

관객을 사로잡을 진주시향의 전략이 있다면? 진주의 넉넉한 자연을 브람스 교향곡 2번에 담고자 한다. 목가적인 성격의 작품인데, 지휘자가 부임 후 진주에서 받은 느낌을 바탕으로 정했다.

상임지휘자 부임으로 악단이 새로운 날개를 단 것 같다. 오케스트라는 전적으로 지휘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악장은 지휘자가 원하는 음악을 잘 이해할 때 오케스트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여러 시향과 민간 단체에서 악장을 역임했다. 각 악단의 상황과 특성에 따라 악장의 역할과 권한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악장은 지휘자와 단원 간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여기에 진주시향의 경우에는 객원지휘 체제로 운영되는 동안 악장이 연습을 진행했다. 객원지휘자는 연주회 직전 2주만 오기 때문이다. 곡의 특성과 흐름을 고려해 보잉을 만들고, 총보를 공부하면서 연습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닮고 싶은 악장이 있나. 서울예고 1학년 때 개교 30주년 동문음악회에서 김민 선생님을 보고, ‘나도 저렇게 리더십 있는 악장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다. 좋은 방향으로 단체를 이끌어 오케스트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

진주시립교향악단 1986년 진주시립관현악단으로 역사를 시작한 후 1999년 진주시립교향악단으로 승격됐다. 정기연주회는 물론 가곡·영화음악·아리아 콘서트·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해 진주 시민에게 다가가고 있다. 2020년부터 상임지휘자 정인혁이 이끌고 있으며, 지난 3월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제86회 정기연주회 ‘비상’을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했다.

 

4.9 부산시립교향악단  

임홍균 상임악장

상호 존중의 필요성

2017년, 최수열 예술감독 부임 이후 부산시향은 ‘안정’과 ‘도전’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다. 고전부터 현대까지 모든 시대의 레퍼토리를 감상하도록 균형을 맞췄으며, 2017~2019년에는 R. 슈트라우스 사이클을 무사히 마쳤다. 2020년부터는 라벨 사이클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 ‘올해의 예술가’ 제도를 시작해 첫 아티스트로 작곡가 김택수(1980~)를 택했다.

교향악축제의 일환인 이번 공연에선 부산시향이 김택수에게 위촉한 ‘짠!!’을 선보인다. 아울러 R. 슈트라우스 ‘돈 후안’과 라벨 ‘라 발스’를 준비했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협연 김태형)도 선보인다. 최수열/부산시향은 이번 교향악축제에서 ‘부산시향만의 정체성’을 오롯이 보여주고자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장혜선 기자

베를린 필 악장이었던 도루 야스나가(1951~)와 인연이 깊다고. 일본에서 함께 실내악을 한 후 몇 번씩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보잉을 정하는 과정, 단원들과 소통 방식, 악장으로서 몸 쓰는 방법 등 상당히 자세한 내용들을 배웠다.

프랑스에서 오랜 기간 공부했다. 프랑스 악단 중 인상 깊은 단체가 있다면? 수년 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본 단체는 프랑스의 레 디소낭스(Les Dissonances)이다. 지휘자 없이 모든 시대의 레퍼토리를 수월히 다루더라. 가령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같은 곡도 지휘자 없이 훌륭한 연주를 가능케 한다. 악단을 이끄는 다비드 그리말은 비범한 음악감독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악장 시스템은 복수의 실력 있는 리더들이 적절한 로테이션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구조다.

지휘자와 논의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지? 지휘자가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 악장과 상의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지휘자마다 표현하고 싶은 색깔이 있으니까. 그것을 최대한 잘 파악해서 멋지게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다만 현악 파트의 보잉 같은 부분은 강요보다는 상호 존중이 필요하다.

악장 사이에서 가장 어렵다고 꼽히는 곡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 번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악장인 데이비드 김과 R. 슈트라우스의 ‘서민귀족’ 모음곡을 공부한 적이 있다. 이 곡의 독주 부분을 연주하기 전엔 ‘어떤 곡도 쉽다 어렵다고 단언하지 말라’고 하더라.

보통 악장은 오케스트라 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다고 들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악장만의 사회적 권리를 내세울 기회가 별로 없는데, 이러한 환경 때문에 ‘악장 연합회’를 구성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선배 악장에게 들어본 적 있다.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보호’ 때문이다. 악장은 단원과 음악감독 사이에서 애매하게 겹치는 유일한 위치이기에 계약상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일들도 있다. 일단은 악장에게 적합한 계약조건과 그에 맞는 보호가 시스템적으로 구축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부산시향에 2018년 3월에 합류했고, 바로 다음달에 있었던 교향악축제가 첫 데뷔무대였다고. 마침 부산시향은 R. 슈트라우스 사이클을 진행 중이었다. 슈트라우스 교향곡 3번 ‘가정’을 메인 곡으로 연주했는데, 라디오뿐만 아니라 네이버에서도 생중계를 진행했기에 여러모로 긴장감을 가지고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부산시향과 최수열 지휘자 간의 ‘케미’는 어떠한가? 근래 부산시향 공연에서 단원과 지휘자 사이에 마찰이 있었던 적은 없다. 가끔씩 지휘자와 보잉에 대해 깊게 소통하는 경우가 있는데, 악단이 선호하는 방식과 차이가 벌어질 땐 적절히 조율하려고 한다. 요즘은 바뀐 시대 흐름에 맞춰 많은 지휘자들이 오케스트라를 대하는 태도가 신사적이다.

젊은 연주자들이 악장 자리에 오르려면 갖춰야 하는 자질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면 전문적인 경험이 필수다. 요즘은 과거에 비해 일찍이 오케스트라 경력을 쌓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력과 인성을 갖춘 젊은 파트너가 임용된다면 진심으로 환영할 것 같다!

부산시립교향악단 1962년 창단 후 초대 지휘자 오태균, 2대 한병함, 3대 이기홍, 4대 박종혁과 함께 토대를 마련했다. 2017년부터는 11대 예술감독인 최수열과 함께 하고 있다. 최수열 취임 이후부터 ‘안정’과 ‘도전’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명확하게 쥐었다. 최수열 특유의 젊은 리더십이 관록의 부산시향과 만나 개성 있는 행보를 보인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에서 최초로 도전한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전곡 사이클을 성공적으로 완주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라벨의 관현악곡 전곡 사이클을 진행 중이다.

 

4.10 서울시립교향악단  

웨인 린 부악장

화합의 제스처

웨인 린은 2008년 8월, 오디션을 통해 서울시향에 입단했다. 정명훈 지휘자가 부임하던 시기였다. 그는 “정 지휘자가 이끄는 오케스트라라는 점에서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서울시향의 결정적 순간마다 늘 함께했다. 정명훈이 떠난 후 모두가 서울시향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을 때에도 유럽투어 공연을 훌륭히 마쳤다. 언젠가 그는 “서울시향 부악장으로서 악단 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교향악축제에서 오스모 벤스케/서울시향은 시벨리우스 ‘핀란디아’와 윤이상의 실내교향곡 1번을 선보인다. 크리스텔 리(바이올린)와 요나단 루제만(첼로)이 협연하는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도 기대를 모은다. 웨인 린은 “시벨리우스와 윤이상의 작품을 선택한 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나라의 화합을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장혜선 기자

솔리스트가 아닌, 오케스트라 주자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어린 시절부터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경험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악장이 됐다. 그동안 수많은 악장에게 영향을 받았다. 뉴욕 필의 악장이었던 글렌 딕테로우와 공부했고, 스베틀린 루세브(전 서울시향 악장), 데이비드 김(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악장), 라이너 퀴힐(전 빈 필 악장), 로버트 첸(시카고 심포니 악장) 등과 같은 훌륭한 리더 옆에서 연주할 기회가 많았다.

서울시향에서 13년 동안 부악장으로 재직했다. 2008년 11월부터 서울시향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근무를 시작한 첫 주간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일본 투어를 포함하여 2개의 프로그램, 4~5개의 콘서트가 있어서 매우 바빴다. 미국에 있는 짐을 챙겨 이사한 직후였다. 시차 적응할 틈도 없이 아파트에 입주하고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출입국 관리 사무소를 방문하는 등 할 일이 정말 많았다.

처음 서울시향에 왔을 때는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두렵진 않았나? 악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면서 여러 경험을 체득했다. 책임감 또한 영광이라고 생각하면서 연주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오케스트라 악장 운용 방식에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유럽 오케스트라는 여러 명의 악장을 두는 반면, 미국의 오케스트라는 대체로 한 명을 둔다. 좋은 악장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홀로 역할을 수행하기보다는 다른 연주자들과 책임을 함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휘자와 음악적 견해가 다를 때에는 어떻게 하나? 지휘자의 아이디어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악장으로서 지휘자를 지지하고, 그들이 오케스트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직무다. 만약 호흡이 잘 맞지 않는 경우, 지휘자와 토론하거나 연주자들과 논의하여 방법을 찾곤 한다.

왠지 긴장되는 오케스트라 작품이 있다면?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나 R.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처럼 독주 역할이 큰 작품을 할 때 긴장하곤 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면서 긴장을 다스리는 법도 배우게 되더라.

이번 교향악축제에서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점은? 서울시향에는 핀란드 출신의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가 있다. 이번 교향악축제는 그가 새로운 청중과 조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시벨리우스와 윤이상의 작품을 선택한 건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두 나라의 화합을 보여주는 좋은 방법이라 믿는다.

서울시립교향악단 1945년 설립된 고려교향악단에 기원을 두고 있다. 2005년 재단법인이 된 이후 유럽 투어(2010·2018), 북미 투어(2012), 러시아 투어(2019) 등을 통해 국제적인 성장을 이뤘다. 지난해 1월 제2대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오스모 벤스케와 두 명의 수석객원지휘자(티에리 피셔·마르쿠스 슈텐츠), 두 명의 부지휘자(윌슨 응·데이비드 이)가 재직 중이다. 2011년 도이치 그라모폰과 5년간의 음반 계약을 맺으며 말러·차이콥스키·베토벤·진은숙 등의 작품이 담긴 음반을 출시했다.

 

4.11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이정일 상임악장

음악적 고향

코리안심포니는 1985년 우리나라의 첫 민간 오케스트라로 출범했다. 갓 사회에 발을 디딘 이정일은 당시 객원악장으로 코리안심포니의 초석을 다지는 데 동참했다. 이후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상임악장을 역임한 뒤 2013년 다시 돌아왔으니, 코리안심포니는 그에게 떠나려야 떠날 수 없는 ‘음악적 고향’인 셈이다.

코리안심포니는 이번 무대에서 객원지휘자 다비드 레일랑과 함께 멘델스존 ‘핑갈의 동굴’ 서곡, 슈만 첼로 협주곡 Op.129(협연 양성원),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이정일은 “정년이 다가올수록 매연주가 각별하다”며 소감을 밝혔다.

박서정 기자

코리안심포니의 36년 역사를 함께했다. 출범 직후부터 객원악장으로 활동했고, 1999년부터 상임악장으로 있었다. 중간에 울산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느라 공백기가 있었던 것만 빼면 젊은 시절부터 내내 함께한 셈이다. 내 음악 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체감하는 악단의 변화가 있나. 최근 악단 내에 수평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악단원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코리안심포니는 정기연주회 외에 국립발레단·오페라·합창단 등과 함께하는 레퍼토리를 포함해 연 120회 이상의 공연을 소화한다. 악장으로서 겪는 어려움이 있을 텐데. 다행히도 코리아심포니는 두 명의 악장을 보유하고 있다. 정기·기획공연은 함께 연주하고, 그 외의 공연은 서로 번갈아 가며 연주한다. 여러 공연에 대비해 충분히 준비하고 연습할 수 있다.

어떤 지휘자와 합이 좋은가. 지휘자의 성향에 따라 유연하게 맞춰가는 편이다. 선호하는 지휘자는 있다. 노련함으로 오케스트라를 편안하게 이끌고 최고의 연주력을 보이게 하는 지휘자다. 그중 하나가 제임스 터글이다. 여러 차례 함께했는데, 국립발레단 ‘해적’(3.23~28)에서 다시 호흡을 맞추었다.

코리안심포니는 재정비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를 끝으로 정치용 상임지휘자가 임기를 마쳤는데. 새로운 지휘자가 부임할 때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케스트라마다 고유한 색깔이 있어서다. 그 과정에서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한데, 악장이 중간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새 악장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다면? 요즘 능력 있는 젊은 연주자가 많다. 김민균 악장과 함께 단원들을 배려하며 잘 이끌어가기를 바란다.

 

김민균 상임악장

악장의 정석

김민균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악장으로서의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코리안심포니와의 인연은 2008년 교향악축제에 객원악장으로 오르면서 시작됐다. 그해 6월부터 현재까지 코리안심포니를 든든히 받치고 있다.

박서정 기자

대학교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여러 악단에서 악장으로 활동했다. 어린 시절 첫 스승님이 스페인 국립오케스트라의 악장이셨다. 자연스럽게 스승님을 보며 악장의 꿈을 키웠다. 우연히도 그 이후에 뵙게 된 선생님들께서도 악장으로 근무하셨기에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여러 악단의 악장 운영 방식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겠다. 오케스트라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나름의 합당한 이유로 악장 시스템을 운용한다. 코리안심포니는 많은 연주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준비할 수 있도록 두 명의 악장을 두고 있다. 반면 상임악장 없이 부악장과 수석단원이 그 자리를 빈틈없이 채우는 오케스트라도 있다.

이른바 ‘악장 형제’다. 동생 김필균은 2005년부터 대전시향 악장으로 재임 중이다. 나 역시 미국과 캐나다에서 악장으로서 경험을 쌓다가, 2008년 교향악축제 무대에 코리안심포니 객원악장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그해 6월 상임악장으로 취임했다.

교향악축제가 맺어준 셈이다. 개인적으로도, 또 오케스트라와 관객 모두에게도 뜻깊은 축제다. 전국에 있는 교향악단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는 흔치 않다. 교향악축제에서 한 번 정도는 여러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함께 연주하는 공연을 해보면 어떨까.

코리안심포니 악장만의 특권이라면, 어느 악단보다 다양한 장르, 여러 지휘자와 연주한다는 것일 텐데. 매번 지휘자가 요구하는 음악과 프레이즈에 맞춰 보잉을 정하곤 한다. 최근 인상 깊었던 지휘자는 다비드 레일랑이다. 2018년 국립오페라단과 ‘코지 판 투테’를 지휘했는데, 이번 교향악축제에서 다시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1985년 창단됐다. 1987년부터 국립극장 전속 오케스트라로서 국립오페라단·국립발레단·국립합창단의 정규 레퍼토리에 참여했으며 2001년 예술의전당 상주 오케스트라로 지정되어 교향악, 국립예술단체와의 연주, 예술의전당 기획 공연 등에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아부다비 페스티벌 초청연주·한-태국 수교 60주년·한-베트남 수교 26주년·한-덴마크 수교 60주년 기념음악회에 오르며 한국 클래식 음악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4.13 대전시립교향악단

김필균 제1악장

문제는 신뢰다

대전시향이 창단된 1984년 당시 음악계에는 지역 출신을 악장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에 따라 초창기 악장에 대전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이름을 올렸다. 기반을 다진 대전시향은 도약을 준비했다. 특히 제4대 상임지휘자 함신익은 해외의 저명한 악장과 수석을 영입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27세의 김필균이 악장으로 임명됐다. 해외 출신, 게다가 젊은 악장에 대한 불신의 눈길도 있었을 터. 그는 묵묵히 책임을 다했다.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쌓아 올린 신뢰는 꽤 두터워졌다.

올해 교향악축제에서 제임스 저드/대전시향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협연 문지영)과 작년 코로나로 올리지 못했던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을 선보인다. 김필균은 “작년에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으로 훌륭한 호흡을 맞췄던 피아니스트 문지영과의 무대가 기대된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박서정 기자

27세에 악장으로 입단했다.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결정이었을 텐데. 인디애나 음대를 다닐 때다. 교수님이 대전시향을 객원지휘하고 오시고는, 악장 오디션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을 맡은 적이 있었고, 당시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악장이었던 알렉산더 커 교수님께 오디션에 관해 조언을 구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캐나다 출신으로 해외에서 성장했다. 한국의 조직문화가 낯설진 않았나. 오케스트라에 서열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열을 내세울수록 좋은 음악, 그리고 효과적인 연습과 멀어진다. 악장으로서 단원들에게 좋은 파트너가 되려고 한다.

그렇다면 오케스트라에 필요한 건 무엇인가? 신뢰다. 서로 신뢰할 때 지휘자와 단원이 하나의 소리를 낸다. 악장도 단원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자질을 두루 갖춰야 한다. 연주 실력뿐만 아니라 성격, 오케스트라와의 조화 등, 모든 면에서 말이다.

대전시향은 악장의 역할을 중요하게 인식하는 단체다. 1984년 창단 이래 한 번도 악장 자리를 비워둔 적이 없다. 최근에 어느 외국 지휘자는 ‘악장 없는 교향악단은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정도로 악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현재 대전시향 악장으로서 훌륭한 단원 선생님들과 실내악 연주를 하기도 하고 지휘자 없이 연주회를 리드하기도 한다.

2001년부터는 2인 악장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제1악장과 제2악장(태선이)의 역할은 어떻게 다른가? 제1악장과 제2악장은 대체로 모든 연주를 같이하지만, 제2악장이 단독으로 이끄는 음악회가 일 년에 몇 차례 열린다. 제1악장을 보조하는 ‘부악장’이 아니라, ‘제2악장’인 만큼 많은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다.

그간 수많은 지휘자가 거쳐 갔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지휘자는? 기억에 남는 몇 사람은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오케스트라 단원 한 명 한 명은 그 악단의 자존심이다. 지휘자가 할 일은 바로 단원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이다.”

대전시립교향악단 1984년 지역 음악인들의 오랜 추진 끝에 창단됐다. 음악적 역량을 쌓아 제1회 교향악축제(1989)에 초청됐다. 창단 6년 만에 위촉된 초대 상임지휘자 정두영은 전 단원 상임체제를 갖추고, 부지휘자 제도를 마련했다. 제4대 상임지휘자 함신익은 2001년 취임 후 미주 4개 도시 투어를 성사시켰다. 2016년부터 제임스 저드가 상임지휘자로 재임 중이다.

 

4.14 수원시립교향악단  

이석중 객원악장

기괴한 독주를 쏘다

수원시향과 이석중의 첫 인연은 2019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객원악장으로 초청받아, 브람스의 교향곡으로 호흡을 맞춘 것. 그 연을 이어 이석중은 또 한 번 수원시향의 악장 자리에 앉는다. 상임지휘자 최희준이 이끄는 수원시향은 두 명의 협연자와 함께한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2번 K482를 임윤찬과 연주하고, 말러 교향곡 4번을 소프라노 홍혜란과 선보인다. 이석중은 특히 말러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찬미 기자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 가운데 가장 기대되는 것은? 교향곡 4번은 말러의 작품치고 쾌활하고 밝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곡 중간에 악장이 한 음씩 높게 조율된 바이올린으로 독주를 한다. 기괴함과 유쾌함의 공존을 그리는 작품에서, 이 독주는 ‘기괴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공연 리허설은 어떻게 진행됐나? 일주일 정도 준비했다. 여러 번 호흡을 맞추다 보니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 편하게 음악에 관해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수원시향은 2017년까지 2인 악장 체제로 운영됐는데, 최근 몇 년간 객원악장을 초빙하고 있다. 악단마다 고유의 음색과 스타일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어떠한 형태로든 정형화되기 쉽다. 객원악장은 악단에 신선하고 색다른 요소를 가미할 수 있다. 악단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관객에게 교향악축제는 매일 다른 악단의 연주를 즐길 수 있는, 말 그대로 ‘축제’다. 연주자들에게도 ‘축제’로 다가오는지? 대한민국 대표 악단들이 한자리에 모여 개성과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멋진 축제임이 틀림없다. 한 가지 건의하자면, 연주 활동도 활발하고 실적이 좋은 사립 단체들이 축제에 함께할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

수원시립교향악단 1982년 창단됐으며, 송태옥·정두영·김몽필·금난새·박은성·김대진 등이 상임지휘자로 재직했다. 창단 30주년을 기념한 베토벤 교향곡 2·5번을 비롯하여 차이콥스키 교향곡 전곡 연주 실황,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한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연주 실황 등을 소니에서 발매했다. 뉴욕 카네기 홀에서 연주했으며, 독일·오스트리아·미국·영국 등에서 초청연주회를 가졌다.

 

4.15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이마리솔 상임악장

음악적 어울림

올해 교향악축제는 이마리솔에게 더욱 특별하다. 2017년 악장으로 입단 후 처음으로 출연한 교향악축제에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다시금 선보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초심은 음악이다. 여자경/강남심포니는 이어서 드보르자크 ‘카니발’ 서곡 Op.92와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협연 김영욱)을 들려준다.

박서정 기자

악장들 사이에서 어렵기로 ‘악명 높은’ 곡이 있을까? 악장의 독주가 등장하는 R.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는 전 세계 모든 악장을 긴장하게 만드는 곡이다. 테크닉적으로 매우 어렵기도 하지만, 전체를 조율하는 악장의 역할과 솔리스트의 역할을 계속 번갈아 가며 연주해야 한다.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우리 악단에서 5월 정기연주회로 준비 중인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 또한 빠질 수 없다.

전체를 듣는 귀가 필요하겠다. 확실히 악장을 경험하며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음악적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예원학교를 다닐 때부터 오케스트라 악장을 맡으며 많은 사람이 하나로 화합하는 오케스트라에 매력을 느꼈다.

국내 음악교육이 솔리스트 양성에 치중되어 아쉽다는 의견도 나온다. 독일 유학 시절 칼 플래시 아카데미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주최한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라이너 쿠스마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베를린 필 악장을 역임한 그는 솔리스트 연주에 치중했던 내게 ‘함께하는 어울림’의 의미를 일깨워주었다.

잘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데 악장은 어떻게 기여하는가?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의 리더라면, 악장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연결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보잉을 연구하면서 지휘자가 원하는 음악적 스타일을 반영하기도 하고, 일반 단원의 의견을 묻고 각 수석과 논의를 거치기도 한다.

강남심포니는 올해 새로운 상임지휘자와 교향악축제에 참여한다. 여자경 지휘자는 취임 전에도 객원지휘로 강남심포니와 여러 번 함께했다. 그때마다 많은 것을 배웠다. 음악적 재치나 끊임없는 연구, 음악가로서의 카리스마를 본받고 싶다.

최근 새로운 단원도 여럿 입단했다고. 단원들의 연령대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음악을 향한 열정과 사랑은 다 같은 마음이다. 좋은 음악은 함께 화합하며 연주하려는 열린 마음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1997년에 창단된 서울시 최초의 기초자치단체 소속 교향악단으로, 2009년 6월부터 강남문화재단 소속 예술단체로 활동 중이다. 폭넓은 레퍼토리를 담은 정기연주회와 기획 공연으로 지역 관객의 저변 확대를 이뤄가고 있으며, 강남구 자매결연을 맺은 미국 리버사이드시 초청 공연(2003), 시카고 문화회관 초청 연주(2013)를 선보이기도 했다. 1998·1999·2000년 교향악축제실황 음반 제작을 시작으로, 국내 교향악단 최초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음반(2002~2006)과 브람스 교향곡 전곡 녹음(2009~2011)을 진행했다. 2020년 상임지휘자에 여자경이 취임했다.

 

4.16 군포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김영기 상임악장

악장의 기량은 악단의 기량

실력 있는 연주자라고 하여 무조건 좋은 악장이 되는 건 아니지만, 김영기는 악장으로서, 또 솔리스트로서 균형감각을 자랑하는 음악가이다. 인천시향과 성남시향에서 악장으로 재직했고, 객원악장으로 여러 악단을 거쳤다.

2017년 프라임필은 리더십과 기량을 모두 갖춘 그를 제5대 악장으로 초빙했다. 이번 교향악축제에서는 박준성의 지휘로 바그너 ‘지그프리트의 목가’, 모차르트 바순 협주곡 K191(협연 유성권), 하차투리안 교향곡 2번 ‘종’을 연주한다.

박서정 기자

보통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 연주자의 길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처럼 악장 독주가 주요하게 등장하는 교향곡이 있다. 2001년 KBS교향악단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로 오케스트라 경력을 시작했는데, 당시 김복수 악장이 그 곡의 독주부분을 멋지게 연주하는 것을 보고 큰 영향을 받았다. 나도 악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오케스트라는 연주 기량이 뛰어난 악장을 얻었다. 사실 악장에게 연주능력보다 더 중요한 건 오케스트라에 적합한 연주를 할 수 있느냐다. 오디션 같은 객관적 평가만으로 악장을 선발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함께 연주를 해봐야 알 수 있다.

프라임필과도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거쳤을 텐데. 2015년 부임한 장윤성 상임지휘자와의 인연으로 처음 같이 연주하게 됐다. 객원악장을 경험했던 다른 악단과 비교해 연주력이 좋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점점 발전하고 있다.

발전의 비결은 뭔가? 소통이다. 하나의 소리를 내기 위해 소통은 꼭 필요하다. 악장으로서 지휘자와 단원 사이에서 음악적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지휘자와 단원 사이,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하는지? 일단 지휘자가 음악으로 실력을 보여주면, 단원들은 따르기 마련이다. 나 역시 웬만하면 지휘자의 음악적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를 독단적으로 주장하는 지휘자와 대립한 적도 있다. 경험상 좋은 지휘자는 단원들의 아이디어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교향악축제를 앞둔 각오는. 이제 교향악축제는 특별한 축제라기보다 친숙한 연례행사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렇지만 어떤 연주를 준비하든 긴장감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군포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1997년 2월 창단 후 오페라와 발레 반주에 적극 참여하며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1998년 유니버설발레단과 뉴욕 및 워싱턴 공연을 함께했고, 2000년에는 영국 현대무용의 메카 새들러스 웰스 극장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협연 김대진)을 하루 만에 연주한 공연은 국내에 신기록을 세웠다. 2000년부터 군포문화예술회관에 상주하며, 2018년에는 아힘 프라이어가 연출한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중 ‘라인의 황금’을 한국 초연으로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4.17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정하나 제1악장

새로움의 경험치

2011년 경기필은 악단의 체질 변화를 예고했다. 철학과 출신의 구자범을 상임지휘자로 맞은 것. 그는 단원들을 무대에서 마당으로, 단골 레퍼토리에서 말러와 바그너, 쳄린스키와 쇤베르크로 이끌었다. 새내기 악장이었던 정하나는 변화의 시간을 생생히 겪었다. 새롭고 낯설었지만 그만큼 설레고 보람찬 시간이었다.

경기필에서 차곡히 쌓은 10년의 경험치는 그를 유연한 악장으로 만들었다. 현 상임지휘자 마시모 자네티가 경기필을 “새로운 레퍼토리를 함께 탐구하고 싶은 악단”으로 꼽은 이유다. 이들은 이번 교향악축제에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협연 김다솔),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를 들려준다. 각기 다른 뉘앙스의 곡을 유연하게 넘나들 예정이다.

박서정 기자

2019년 교향악축제에서 선보인 레스피기 ‘로마의 축제’에 이어 올해는 ‘로마의 소나무’다. 이탈리아 출신의 상임지휘자 마시모 자네티의 색채가 분명하게 느껴진다. 레스피기는 로마 3부작을 남겼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곡이 ‘로마의 소나무’다. 같은 이탈리아 출신인 자네티가 해석한 레스피기를 기대해도 좋다. 음악적 스케일이 큰 작품인 만큼 축제에도 잘 어울린다.

연주자 입장에서는 교향악축제가 ‘축제’라기보다 ‘경연’처럼 느껴지기도 할 텐데. 아무래도 여러 오케스트라가 한자리에 모이다 보니, 더욱 신경 써서 준비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중과 연주자에게 교향악단끼리의 ‘대회’가 아닌, 말 그대로 ‘축제’처럼 즐겨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각 오케스트라의 개성과 색깔, 역사가 모두 다른데 어떻게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겠는가. 아예 새로운 기획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상임지휘자를 바꿔서 연주한다든지, 두 오케스트라를 합병해 연주한다든지. 축제 분위기가 더욱 살아날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던 경기필의 악장다운 제안이다! 와인 파티가 있는 콘서트 오페라, 18세 이하 관람 제한 연주회 등을 열기도 했었다. 구자범 상임지휘자 재임 시절 기획성 연주회를 다양하게 시도했다. 첫 연주로 함께 말러 1번을 연습하고 연주한 기억이 생생하다. 악장 경험이 많지 않았던 때라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악장 경력을 시작한 건 그보다 앞선 2006년, 정명훈/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아카데미에서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연주했는데, 처음으로 악장이라는 자리의 매력을 느꼈다. 그때 스베틀린 루세브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생겼다. 악장으로서 리드하는 법을 지금까지도 중요하게 새기고 있다. 루세브는 곡 중 독주는 물론, 실내악, 협연 등 모든 장르를 완벽하게 연주한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악장이다.

악장이 되려면, 다른 오케스트라에서의 악장 경력이 필수인가? 어떤 오케스트라에서든 악장직을 수행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단원이든 악장이든 오케스트라에서의 경험이 중요하다. 외국에서 공부 중이라면 학생 신분으로 참여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연수 단원을 권하고 싶다. 물론 프로 오케스트라에 합격해서 경험을 쌓는 것이 가장 좋다.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 같은 실내악단에서 활동한 경험은 어떤 도움이 됐나? 실내악단에서 익힌 감각이 지금도 중요하게 작동한다. 지휘자의 비팅이 불분명하거나 헷갈릴 때 단원들은 악장의 활을 본다. 실내악 연주를 하듯 사인을 더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주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악장이 지휘자의 역할을 한다는 건데, 반대로 지휘자가 악장의 역할을 하기도 하나? 현재 상임지휘자 마시모 자네티는 항상 본인의 보잉을 제시한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경기필은 모든 시대·스타일·장르·작곡가에 대해 유연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탐구해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97년 경기팝스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창단됐다. 2대 상임지휘자에 유광이 오르며 본격적인 관현악 체재로 개편됨과 동시에 경기도립오케스트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2006년 지금의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을 얻었다. 2015년에는 한국 오케스트라 최초로 데카에서 말러 교향곡 5번 음반을 발매했다. 2018년 첫 외국인 상임지휘자로 이탈리아 출신의 마시모 자네티를 위촉했다.

 

4.18 원주시립교향악단

김현지 객원악장

앙상블이 주는 행복

원주시향과 상임지휘자 김광현은 ‘고전의 멋’을 전면에 세운다. 하이든의 하프시코드 협주곡 11번 Hob.XVIII(협연 안종도), 모차르트 교향곡 35번 ‘하프너’,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4번에 이르는 프로그램이다.

김현지는 작년에 축제에 관하여 “원주시향이 가진 고전미와 김광현의 신선한 에너지의 조합이 좋은 연주를 끌어냈다”라며 회상했다. 두 사람의 시너지는 이번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할 전망이다.

박찬미 기자

지난해 원주시향에 처음 객원악장으로 함께하면서 김광현과 만났다. 뜨거운 에너지와 흔들림 없던 모습이 첫인상으로 남았다. 원하는 음악이 뚜렷해서 리허설 내내 확고하게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가더라. 연주하며 새로운 힘을 얻는 느낌이었다.

원주시향과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지? 객원악장은 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연주자들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먼저 그들과 교감하며 오케스트라의 호흡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 다른 단체에서 익힌 경험과 유연성을 적용하면서 말이다. 여러 차례 함께 연주하면서 단체의 스타일과 지휘자의 지시를 읽는데 더 밝아졌다.

크지 않은 규모의 고전음악으로 축제 무대를 채운다. 악장을 가장 긴장하게 하는 곡들로는 악장의 화려한 독주가 있는 R.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나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를 꼽을 수 있겠다. 그런데 모차르트와 같이 섬세한 앙상블을 요구하는 음악도 만만치 않다. 반듯한 리듬과 정제된 소리로 여러 악기가 빈틈없이 맞춰 들어가야 하니 숨 막히는 과정이다. 그러나 고된 리허설을 거쳐 완벽한 앙상블이 실현될 때, 가슴 떨리는 행복을 느낀다.

앙상블을 빚는 일에 엄청난 애정이 느껴진다. 어렸을 때부터 로체스터 필하모닉이나 뉴월드 심포니에서 악단 생활을 경험한 바 있다. 그중 일본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의 악단에 함께하면서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당시 지휘를 맡았던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을 연주마다 달리 해석해냈다. 음악을 자유자재로 다룬 것이다. 지휘자의 작은 손짓에 음악이 달라지고, 80여 명이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데서 오케스트라의 묘미를 느꼈다. 독주나 실내악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에너지와 드라마틱함이 존재한다.

게르기예프의 사례는,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을 확실히 요구하는 지휘자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와는 다른 경우도 있을 텐데, 바람직한 지휘자 상은 무엇이라고 보나? 지휘자가 음악을 구상하면, 연주자는 그 생각을 소리로 구체화한다. 그래서 지휘자는 확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단원의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이것이 이뤄질 때 비로소 최상의 연주가 가능하다. 다만, 진정성 있는 지휘자는 단원의 연주를 존중하는 따스함도 겸비한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지휘자들은 그랬다. 그래서 나도 같은 마음으로 힘을 모을 수 있었다.

원주시립교향악단 임헌정을 초대명예음악감독으로 초빙하여 1997년 7월 창단됐다. 모차르트 페스티벌, 대한민국 국제음악제 등에서 초청연주를 가졌고, 창단 15주년을 기념해 초대 상임지휘자 박영민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연주를 선보인 바 있다. 2015년 제2대 상임지휘자로 김광현이 취임한 후 시민이 직접 듣고 싶은 곡을 사연과 함께 신청하는 ‘신청곡 콘서트’와 원주 출신의 음악가와 협연하는 ‘아이 러브 원주’를 시행하는 한편, 2019/20 시즌에 말러&브루크너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4.20 광주시립교향악단

이종만 상임악장

악단을 사랑하는 마음

광주시향 상임지휘자에 취임한 홍석원은 교향악축제에서 데뷔 무대를 치를 예정이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협연 손정범)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으로 새 출발을 선포한다. 이종만은 “홍석원 지휘자는 지난 두 번의 객원연주를 통해 광주시향과 호흡을 맞춰본 만큼, 최선의 역량을 끌어낼 프로그램을 선정했다”라며, 신임 지휘자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박서정 기자

광주시향에는 2011년 오디션을 통해 입단했다. 갓 서른이 넘었던 나를 악장으로 키워준 고마운 단체다. 솔직히 악장의 역할이나 덕목에 대해선 악장직을 수행하면서 깨닫게 된 것들이 많다. 센스와 여유는 필수적이라고 느끼는데, 그 센스 안에는 음악적인 역량은 물론, 함께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포함된다. 부족했던 초반의 모습을 나 역시 낱낱이 기억하는 만큼, 앞으로 광주시향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독일에서도 악장직을 경험했다. 운영상의 차이점을 꼽자면? 제2악장으로 활동했던 독일 하겐 시립극장은 제1악장부터 제3악장까지 두고 있다. 독일에서는 흔한 경우다. 현재 몸담고 있는 광주시향은 조례상 부악장을 둘 수 있지만, 현재는 1인 악장 체제로 운영된다. 악장 운영 방식은 오케스트라의 규모나 연 공연 횟수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 정해진다. 다만, 궁극적으로는 상임악장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좋은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교체와 상관없이 고유한 사운드를 갖는다. 전통을 계승하고 지켜나가는 데 악장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은 오랜 오케스트라 역사를 가진 나라다. 이러한 역사와 문화에서 비롯된 특성도 있을 것이다. 악장을 일컫는 독일어 명칭은 ‘콘체르트마이스터(Konzertmeister)’다. 이 안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기본적으로 악장에 대한 단원들의 존경이 전제되어 있고, 여기서 악장의 권위가 나온다. 역할 외적으로 군림하려 드는 권위 의식과는 다르다. 오케스트라 내에는 수직적·수평적 구조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본질이 있다. 오케스트라 문화는 민주적이어야 하나, 합주는 절대적인 질서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에 답이 있다.

단원들의 인정과 존경이 바탕이 될 때 건강한 오케스트라가 된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악장을 채용할 때도 단원들의 동의와 검증을 거쳤느냐의 여부가 전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디션을 통해 후보자의 독주 역량과 스타일을 파악할 수는 있지만, 같이 공연을 준비하고 실제 연주를 하면서 드러나는 리더십이나 앙상블 역량 또한 무척 중요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을 요구하기보다, 단원의 의견을 존중하는 지휘자를 선호하는가? 경험상 훌륭한 지휘자는 여러 면을 만족시킨다. 악장으로서 지휘자의 해석에 설득되기를 항상 기대한다. 또한 지휘자의 해석을 단원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협력한다. 다만 설득력이 부족한 지휘자와의 삐걱거림은 모든 오케스트라 연주자에게 슬픈 일이고, 그 결과는 청중에게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악장은 단원들과의 합주 부분에 합류하다가도 곡 중 독주도 담당해야 한다. 악장을 가장 긴장하게 하는 작품을 꼽자면? 합주를 하다가 급작스레 독주 부분이 나오는 작품이 까다롭게 느껴진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의 짧은 독주는 호른과 함께 연주해야 하기에 악보에 쓰인 것보다 신경 쓸 게 많다. 의외로 악장의 독주가 긴 곡은 준비한 대로 연주하기가 용이하다.

마지막으로 악장을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해준다면. 꼭 악장이 아니더라도 오케스트라 경험 여부는 무척 중요하다. 오케스트라 또한 앙상블의 확장형인 만큼 실내악 연주 능력도 큰 도움이 된다. 악장으로서 시행착오는 필수로 겪겠지만, 이를 통해 배워나갈 수 있는 포용력을 키우기를 바란다. 그리고 악장에게 주어진 책임과 무게를 기꺼이 감내하기 위해 교향악단에 대한 애정은 필수다.

광주시립교향악단 장신덕을 초대 상임지휘자로 1976년 창단했다. 이후 이용일·한니 헨닝·금노상·니콜라이 디아디오우라·이현세·김홍재 등이 지휘봉을 잡았으며, 2021년 홍석원이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었다. 지금까지 350여 회의 정기연주회와 800여 회가 넘는 시즌 및 테마별 기획연주회를 통해 관객과 만났다. 2016년 창단 40주년을 기념해 일본 동경예술극장 무대에 올라 현지 관객으로부터 호평받았다.

 

4.21 포항시립교향악단

조가현 객원악장

시대의 변화를 담을 때

포항시향은 상임지휘자 임헌정과 함께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서곡,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협연 이진상),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선보인다. 임헌정은 이번 무대를 위해 조가현을 객원악장으로 초빙했다.

2012년, 조가현은 임헌정/부천필과 함께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연주한 협연자로 교향악축제 무대에 처음 오른 바 있다. 그의 두 번째 교향악축제를 함께할 포항시향과의 연주는 조가현에게 음악을 하는 이유를 다시 발견하게 해줬다고 전했다.

박찬미 기자

교향악축제에 오랜만에 선다. 해외에 거주할 때는 온라인으로 축제 실황을 듣곤 했다. 많은 음악인이 1년 중 가장 기대하는 시즌이다. 나도 무척 설렌다.

지휘자 임헌정의 부름이 있었다고. 그를 매개로 지난 2월 포항시향을 처음 만났다. 신년음악회에 객원악장으로 함께했다. 당시 리허설 중 마음에 차오르는 행복감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는 KTX 안에서 악보를 다시 펼쳐볼 정도였다. 음악을 하는 이유를 상기시켜준 것이다. 축제에 함께하자 제안해준 임헌정 지휘자에 감사하다.

그와의 인연은 언제 시작됐나? 서울대 재학 중 만난 은사님이다. 스승이 만하임 대학교 오케스트라와 서울대 음대 오케스트라의 합동 해외 투어를 진행했을 때, 악장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만나게 돼 감회가 새롭다.

프로 악단에서 악장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음악가가 있나? 몇 년 전,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서 음악감독이자 악장인 김민의 연주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원래 알고 있는 분이었는데, 그날따라 유독 빛났다. 지휘자 없이 음악을 이끌어가는 리더십, 독주도 흔들림 없이 소화하는 모습 때문이었을 거다. 이후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의 해외 투어에 객원 단원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 김민 음악감독이 어떻게 팀을 운영하는지 가까이에서 봤다. 연주에 대한 기준을 높게 유지하고,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하면서 모든 단원을 살피는 모습을 보며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됐다.

체임버오케스트라가 아닌 경우에는 보통 지휘자에게 음악적 결정권이 있다. 악장과의 권한 분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휘자가 음악적인 강요를 하려할 적에, 그 요구에 따라가려다 몸이 점점 굳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시대가 변했다. 악장의 음악적 스타일을 존중하는 것 또한 지휘자의 리더십에 포함된다고 본다. 지휘자와 악장의 에너지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테다.

지금은 공석이지만 포항시향도 상임악장 자리를 다시 채울 것이다. 스카우트와 오디션, 이중 더욱 성공적으로 악장을 영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을 보여주어야 하는 오디션 방식에 모두가 최적화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고, 오디션 결과가 연주회 질을 보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공평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에선 오디션이 효과적이겠다. 한편, 상임악장을 초청해오는 경우, 지휘자와의 유대관계를 빠르게 쌓을 수 있다. 그간의 경력과 실력을 입증한 인물들이 초청될 테니. 각각의 장단이 있다.

객원악장 제도가 거둘 수 있는 긍정적 효과는 무엇일까? 음악인에게 필수로 요구되는 능력 중 하나는 ‘유연성’이다. 한 개인과 단체가 처음 만나 서로의 일부가 되는 과정에서 그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서로 맞추어가는 이 시대의 가치를 익힐 수 있을 것이다.

포항시립교향악단 1990년 3월 포항시립합창단과 함께 창단됐다. 이로써 포항시립예술단은 1983년 5월 13일 창단된 포항시립연극단을 위시하여 포항시립교향악단, 포항시립합창단으로 구성되었다. 현재 73명의 단원이 포항시청 문화예술과에 소속돼있다. 포항문화예술회관에 상주하며 정기연주회를 개최하고, 이외 시·도 개최 행사의 특별연주와 각 사회·종교단체·기업·학교·복지시설·군부대 등을 순회하며 연 60여 회 공연하고 있다.

 

4.22 KBS교향악단

최병호 부악장

동일한 움직임을 위하여

현재 KBS교향악단은 상임지휘자가 공석이다. 혹자는 KBS교향악단이 위기에 처했다고 말하지만, 신진 지휘자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지난해에는 지휘자 지중배가 KBS교향악단의 객원지휘자로 교향악축제에 데뷔했다.

올해는 차웅이 KBS교향악단의 지휘봉을 든다. 제10회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입상한 기대주다. 프로그램으로는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서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협연 손민수), 브람스 교향곡 3번을 준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분주한 이는 바로, KBS교향악단의 부악장 최병호다. 그는 4년간 공석인 상임악장 자리를 오가며 안팎으로 연주와 살림을 챙기고 있다.

장혜선 기자

KBS교향악단이 첫 직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덧 입사 21년 차가 됐는데. 바이올린 공부를 시작하고 제일 처음 가 본 연주가 바로 KBS교향악단이었다. 그리고 21년 전, 악단은 나의 첫 직장이 됐다. 다시 생각해 봐도 감회가 새롭다.

현재 KBS교향악단은 악장 공석 기간이 4년 정도 이어지고 있다. 꽤 긴 기간 동안 상임악장을 채용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 악단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다. 내가 입사할 때는 심사위원과 전 단원 앞에서 공개 오디션을 했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신임하여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악장을 선발하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 현재 악장 자리가 공석이 된 지 4년쯤 됐는데, 여러 번 오디션을 했지만 적격자를 못 찾고 있다.

악장이 부재하는 긴 시간은, 어떻게 보면 악장이란 존재와 역할을 느끼는 시간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악장은 지휘자와 단원, 사무국 중간에 위치해 있다. 무엇보다 연주를 끌고 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KBS교향악단처럼 연주가 많은 단체에서는 악장이나 부악장이 균형을 잡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휘자 파비오 루이시와 함께한 공연이 유독 잊히지 않는다고. 지휘자들은 연습 때 큰 그림을 미리 그려 온다. 악장은 거기에 맞춰 여러 요소를 조율한다. 서로 소통하고 합의점을 찾는 건 크게 어렵지 않다. 파비오 루이시와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연주할 때였다. 바이올린 활의 속도를 몇 군데 바꿨을 뿐인데 지휘자의 음악적 방향성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같은 움직임으로 연주를 하였고, 객석에서까지 교감을 느껴졌다는 평을 받았다.

가장 집중력을 요하는 곡이 있다면? 까다로운 성악곡을 할 때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악단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악단 내 계급과 서열 간의 수직적 구조에서 온다고 보는 일각의 시각도 있다. 사실 오케스트라는 수직적인 구조일 수밖에 없다. 상부에서 지휘자가 음악을 설계하고, 그 다음으로 악장과 각 파트 수석이 긴밀히 채워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 연주는 모든 단원이 수평적으로 최선을 다할 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겠다.

이번 교향악축제를 통해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바는? 교향악축제는 늘 관심 대상이었고, 매년 각 악단 프로그램과 협연자에 주목해왔다. 이런 음악축제가 한국에 있다는 것은 오케스트라 주자로서 정말 감사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번 축제는 지휘자 차웅과 맞춰보는 첫 연주여서 기대가 된다.

KBS교향악단 1956년 12월 초대 상임지휘자 임원식과 창단 연주를 가진 이래 홍연택·원경수·오트마 마가·정명훈·드미트리 키타옌코 등 세계 정상의 지휘자들과 함께했으며, 백건우·장영주·길 샤함·정명화·미샤 마이스키·파비오 루이지와 같은 국내외 음악가들을 초청해 수준 높은 무대를 선사하고 있다. 2018년 DG에서 말러 교향곡 9번 실황 음반을 발매했다.


interview

노장의 혈기

바이올리니스트 라이너 퀴힐

©winnie kuechl

45년 빈 필하모닉 최장수 악장에게 ‘악장의 길’을 묻다

빈 필하모닉은 상임지휘자가 없다. 대신 네 명의 악장이 오케스트라의 전통을 이어갈 권한과 임무를 부여받는다. 라이너 퀴힐은 1971년 20세의 나이에 악장으로 임명되어, 45년간 재임 후 2016년 은퇴했다. 반세기 가까이 빈 필의 역사를 써 내려간 것이다.

재임 당시 단원들은 그를 ‘바라쿠다’(독특한 외양과 포악한 성질로 잘 알려진 물고기)라고 불렀다. 엄격한 악장이었다. 음악적 책임은 전적으로 악장이 지되, 오케스트라의 운영은 단원들의 뜻에 따랐다. 이것이 긴 세월, 악장의 ‘고집’이 ‘아집’이 되지 않게 한 비결이었다.

“빈 필을 향해 완벽한 오케스트라라고 다들 칭송한다. 나는 가급적 비판적인 입장에 서려고 노력했다. 음악에 있어서 완벽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니까. 원래 악장이라는 자리가 음악의 모든 것을 결과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자리 아닌가? 전통에 어그러짐 없는 악장의 위치를 지켜가고자 했다.”

퀴힐 재직 당시 악장은 네 명이었다. 여타 유럽 오케스트라와 비교해도 많은 축에 속한다. 이는 빈 필이 빈 슈타츠오퍼 소속으로 오페라를 포함해 여러 장르의 음악과 공연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악장별로 전문 장르를 정해 한 공연에서도 번갈아 리드한다. 퀴힐은 고전적인 음악을 주로 담당했다.

“빈 필은 교향악 레퍼토리뿐만 아니라, 오페라도 연주하기 때문에 악장으로서 어려움을 겪었다. 오페라는 교향악 공연보다 리허설을 할 기회가 적다. 따라서 오페라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악장에게는 빠른 초견 능력과 유연성이 더욱 요구된다.”

객원지휘자 체제로 운영되는 빈 필에서 주인은 단연 단원이다. 단원들로 구성된 자체 운영위원회에서 빈 필을 지휘할 후보자를 선정해 연주를 의뢰한다. 짧은 리허설만으로 일사불란한 호흡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면서도, “선정한 지휘자들은 대부분 몇 번씩 빈 필과의 연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서 의구심을 불식시켰던 퀴힐은 객원악장체제에 대해서는 사뭇 다른 온도의 답변을 내놓았다.

“객원악장이 오케스트라와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면, 충돌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오케스트라가 상임악장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정 단원이 뭉쳐서 만드는 음악은 확실히 다르다. 혹은 같은 객원악장을 정기적으로 초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현재 한국 교향악단의 악장은 대거 교체를 앞두고 있다. KBS교향악단·부천필·서울시향·성남시향·수원시향·창원시향 등 굵직한 악단의 악장 자리가 공석이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모범답안이 필요한 시기. 20세에 악장직에 올라, 60대에 내려온 그에게 물었다. 어떤 악장이 좋은 악장일까.

“한편으론 풍부한 연륜이, 다른 한편으론 음악에 관한 열정이 살아있는 음악가여야 한다.”

글 박서정 기자

빈 국립음대를 졸업한 후 1967년 솔리스트 활동을 시작했다. 1971년 20세에 빈 필하모닉 악장으로 취임했다. 1973년에는 퀴힐 4중주단(빈 무지크페라인 4중주단)을 창단했고, 1982년 빈 국립음대 교수로 임명됐다.

 

평화주의자의 긴장감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

25년 수원시향 최장수 악장

미래를 향해 제언을 던지다

김동현은 1992년부터 2016년까지 25년 간 수원시향 악장을 지낸 ‘대한민국 최장수 악장’으로 불린다. 악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양성한 제자들은, 선생의 영향으로 여러 오케스트라에 악장과 수석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창원시향 이리나(부악장), 서울시향 문지영(수석), 대전시향 심민경(수석) 등 그 이름은 길게 이어진다. 김동현의 파급력은 해외에서도 찾을 수 있다. 프랑스 라디오 필하모닉 박지윤(악장), 뉴욕 필 박수현(수석), 데트몰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종신단원인 임수아, 천재영 부부도 모두 그의 제자다. 이중 박지윤은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악장의 삶을 사는 이유는 두 스승 덕에 어릴 적부터 오케스트라에 관심이 많아서”라고 했다.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로 하여금 오케스트라를 꿈꾸게 한 김동현. 그가 꿈꾸는 국내 관현악단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간 배출한 제자들이 국내외 오케스트라의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비결이 있나. 나도 한때 솔리스트를 꿈꿨다. 세계 여러 공연을 관람하다 보니, 훌륭한 지휘자들과 호흡을 맞추는 오케스트라에 관심이 생겼다. 오케스트라 아니면 저런 지휘자를 언제 만나보겠나 싶더라. 우선 그런 흥미를 유발하는 게 중요하다. 악단 생활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줬다.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도 얻고 해외 투어도 한다고. 투어는 마치 수학여행을 떠나는 듯한 재미도 준다고 말하곤 했다.(웃음)

실제로 어떤 악장이었나. ‘평화주의자’로 알려져 있는데. 나보고 ‘관악’적 성격을 지닌 악장이라고 하더라. 음악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관악주자들에게도 의견을 제시하곤 했다. 단원에게 불편한 점이 있어 보일 땐 “술 한 잔 하자”고 부르기도 했다. 밥 잘 사주는 털털한 악장이었다. 단원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25년간 악단에 있으면서 시대의 변화도 목격했을 터다. 악장의 역할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1990~2000년대에는 악단 사무국이 소수의 직원에 의해 운영됐다. 환경이 열악하니 악장이 지휘자나 협연자를 찾고, 섭외했다. 예산 확보를 위해 시청에 찾아가는 등 비즈니스 마인드까지 갖춰야 했다. 요즘은 사무국의 기능이 커지고 세분화됐다. 기획부터 홍보까지 각 분야 전문가가 악단과 함께한다. 덕분에 악장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여러 오케스트라에 악장이 부재하다. 현 상태를 어떻게 진단하나. 코로나19의 여파도 분명 있다. 연주 횟수도 줄고, 예산도 삭감됐을 터다. 다른 한편으론,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찾는 데 난항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 인물을 객원으로 초청하며 호흡을 맞춰보고 있는 시기 같다.

악장을 선발하는 데 크게 스카우트와 오디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어느 쪽이 더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스카우트의 경우는 지휘자가 잘 아는 인물일 때다. 생활적인 면이나, 음악을 만드는 데에 빠르게 교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런 장점을 모든 단원에게서 인정받아야 한다. 그들과의 관계를 잘 쌓는 게 숙제다. 한편, 오디션을 통하면 연주자들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독주자를 뽑는 게 아니라는 점을 늘 유의해야 한다.

오디션 선발 방식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최종 후보를 몇 명 뽑은 뒤 4~5번 함께 연주를 해봐야 한다. 그 시간을 통해 성격, 보잉을 준비해 오는 등의 성실함, 지휘자와의 호흡도 파악할 수 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경우가 이런 방식을 취한다. 1999년부터 이곳 악장을 지내고 있는 데이비드 김은 오디션 당시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와 최종 후보에 올랐다. 몇 차례의 공연을 거쳐 데이비드 김이 낙점됐는데, 상대가 ‘독주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국내 관현악단의 운영 제도에 개선점을 제안하자면. 단원 평가가 더욱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금은 지휘자나 악장이 평가자의 입장에 서는데, 단원 전체가 서로를 무기명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력이 입증되면 종신 단원으로 승급하는 등 동기부여도 필요하다.

글 박찬미 기자

맨해튼 음대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수원시향에서 25년간 악장을 지내며 금난새, 박은성, 김대진 상임지휘자와 함께했다. 퇴임 이후에도 국내 많은 악단으로부터 객원악장으로 초청받고 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악장들이 말하는 악장의 생애

악장의 탄생과 권위는 오케스트라와 맞물려 흥망성쇠한다. 그간 ‘객석’이 취재해온 악장들의 이야기를 통해 국내외 오케스트라 악장들의 희로애락을 돌아본다

정리 임원빈 수습기자

 

악장이 말하는 악장론 

빈 필 악장 퀴힐 

원래 악장이라는 자리가 음악의 모든 것을 결과적으로 책임져야 되는 자리가 아닌가? 사실 그런 점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조금 꺼려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통에 어그러짐 없는 악장의 위치를 지켜갈 생각이다.    1994년 1월호

악장이 되기까지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제2악장 김재원 

라디오 프랑스 필의 부악장을 지내다 프랑스 릴 국립오케스트라 악장이 된 아야코 타나카가 본인이 지냈던 부악장 자리를 추천했다. 이것이 첫 오케스트라 오디션이었다. 연주자의 순발력을 확인하고자 오케스트라 곡 중 까다로운 부분을 짧게 발췌하여 독주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액섭(excerpt)을 연주해볼 기회가 많이 없었다 보니 파이널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래도 예상보다 좋았던 결과에 용기를 얻을 때 취리히 톤할레 제2악장 공고가 떴다. 망설이지 않고 지원했다. 파이널 당시 전 단원이 콘서트홀에 모였다. 인자하게 웃고 있는 단원들의 모습에 깊은 배려가 느껴졌다. 무대를 끝내고 단원들이 모두 한 줄로 나와서 인사를 건넸다. 취리히 톤할레 악장인 줄리아베커가 “우리 오케스트라에 시험 보러 와줘서 고맙다”며 꼭 껴안아 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2019년 7월호

악장이 되고 나서 

파리 오케스트라 악장 강혜선  

프랑스인도 아닌 한국 사람으로, 그것도 최연소로, 여자가 ‘콘서트 마스터’(악장)에 임명된 사실은 프랑스 음악계에 한동안 파문을 일으켰다. 1992년 11월호

악장의 즐거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 악장 이지윤

악장이라는 위치는 오케스트라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이들과 음악적이고 인간적인 교류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독일음악계의 중심부로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8년 7월호 

악장의 힘겨움

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 윤소영

제1바이올린 단원 중 내가 가장 어리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바이올리니스트는 64세이다. 무언가를 결정하고 지시할 때면 아직도 좀 불편하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니 윗사람의 말에 따르는 것이 익숙하지 않겠는가. 무대에서의 자리를 결정하거나 오케스트라의 재정적인 부분을 논의할 때면 일어서서 생각을 이야기하고 단원들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아직도 조금 힘들다. 막상 그들은 당연하게 여기는데 말이다.   2016년 6월호 

악장의 책임감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악장 데이비드 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세계 최정상급 젊은 지휘자로 꼽히는 야니크 네제 세갱과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이 단체가 필라델피아와 펜실베니아 주, 더 나아가 미국 음악계를 대표한다는 책임감을 느낄 뿐 아니라 그 명성에 걸맞는 공연을 하기 위해 단원 전체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2015년 6월호 

악장에게 지휘자의 개성이란

빈 필 악장 힌크

1년에 보통 12명 정도의 지휘자를 빈 필에서 선정해 의뢰하고 있지만 모두 훌륭한 개성을 가진 지휘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빈 필 단원들 또한 지휘자와의 충분한 호흡을 맞추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4년 1월호 

악장의 귄위와 보잉

베를린 필 악장 스타브라바

20세기 악장들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과제는 보잉을 정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악장의 보잉 표시는 카라얀(1908~1989)조차도 바꿀 수 없는 ‘성역’이었다. 꼭 고치고 싶은 부분들이 있을 때는 나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해석의 최종적인 결정권은 지휘자가 가지고 있지만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은 큰 부분이 악장의 영향 아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의 ‘제2의 인물’이 악장이라고 할까? 1994년 4월호


column

시대의 악장

오케스트라 환경의 변화가 초래한 악장 체제 변천사

18~19세기 유럽 오케스트라의 발전 과정은 군대를 중심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한 유럽 열강의 지배 기제와 흡사하다. 일사불란한 지휘를 수행하는 오케스트라 조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악장은 참모와 부사령관의 위치를 겸했다. 기본적으로 지휘자의 뜻을 구현해야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단순히 지휘자의 악기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악단 내부 입장도 관철해야 한다.

악장은 당일 지휘자의 요구를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존재다. 동료 바이올린 단원들이 보기 편하도록 몸통을 옆으로 틀어 부드럽고 큰 동작으로 자신의 연주법을 전파한다. 악장이 활의 어느 위치를 쓰고 어느 빠르기로 움직이는지 단원들이 악장의 보잉과 같은 형태를 유지해야 지휘자의 음악 언어가 정돈된 형태로 형상화된다. 19세기 오케스트라에선 악장이 관현악곡에서 독주 연주 시 일어나서 연주하는 관습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획일에서 다양으로

빌리 보스코프스키(빈 필/1939~1969), 라자르 고스만(레닌그라드 필/1949~1977), 미셀 슈발베(베를린 필/1957~1985), 게르하르트 보세(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1955~1987), 라이너 퀴힐(빈 필/1971~2016), 롤란트 슈트라우머(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1982~), 로타 슈트라우스(베를린 슈타츠카펠레/1984~), 플로리안 손라이트너(바이에른 방송교항악단/1986~2018).(괄호 속은 재임기간)

냉전 시절부터 유럽 명문악단에서 거장 지휘자 시대를 목격한 베테랑 악장의 면면이다. 한 악단과 오랜 기간 역사를 일군 카라얀·번스타인·숄티가 사망하면서 거장 지휘자 시대는 저물었고 악단은 전통과 다양성을 동시에 요구받게 됐다. 성향이 다른 음악감독, 수석객원지휘자, 초청지휘자를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 노장·중견·신진을 섞은 복수 악장제를 시행하는 악단이 늘었다. 베를린 필은 제1악장(1. Konzertmeister) 3인에 악장(Konzertmeister) 1인으로 운영하고, 빈 필은 3인의 악장(Konzertmeister) 중 여성(알베나 다나일로바/2011~)이 있다. 런던 심포니는 악장(Leader)·공동악장(Co-Leader)·보조 수석(Sub-Principal)으로 악장진이 짜였다.

동시에 두세 곳을 감독하는 지휘자 입장에선 완성도를 위해 프로야구 전담 포수처럼 자신의 언어를 능동적으로 포용하는 악장의 존재가 절실하다. 어느 감독이 지휘대에 오르면 악장은 아무개라는 공식이 관객에 자리 잡는다.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뮌헨 필을 감독하는 발레리 게르기예프 곁에는 로렌츠 나스투리카 헤르슈코비치가 양 악단의 악장 자리에 앉기 마련이다. 그러나 음악감독과 오랜 구력의 악장이 모든 공연을 함께할 수는 없다. 단순히 일처럼 처리할 공연에도 악단에겐 악장이 필요하므로 그 자리엔 대개 어린 악장, 후순위 서열의 부악장, 외부 연주가가 객원악장으로 동원된다.

2010년대 들어 유럽 악단에서 아시아인 악장을 임명하는 사례가 늘었지만 대부분 청년 세대다. 일본과 한국의 자국 악단에서 오래 활동한 베테랑 동양인을 악장으로 스카우트하는 경우는 없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악장 데이비드 김(1999~)이나 제1부악장 줄리엣 강(2005~) 모두 북미 태생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유럽 악단의 악장을 희망한다면 오디션 통과 후 단원 그룹에 흐르는 관습과 도시의 정서를 존중하는 시간이 한참 지나야 야스나가 도루(베를린 필/1983~2009)처럼 롱런할 수 있다.

 

능력 외에 필요한 것

악장 오디션은 조직 개편으로 악장 인원을 늘리지 않는 한, 전임자 유고나 은퇴, 이적에 따른 후속 조치로 열린다. 보통 행정감독이 개최 여부를 정하고 오디션 심사는 각 섹션의 단원 대표들이 참여한다. 악단 창단이나 재창단 경우가 아니면 음악감독이나 수석지휘자가 오디션에 직접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저명 악단에서 악장직 오디션 공고가 나면 해당 악단의 부악장급부터, 솔리스트 경력만 있는 루키, 노련한 경력의 타 악단 현역 악장들이 도전한다. 보통 상대 평가로 최고 득점자 1인을 선정한 다음, 1위에 입단 자격을 부여할지 각 섹션의 대표들이 내부 토의를 거친다. 악단원 대표진이 임용을 결정하면 행정감독이 우승자와 입단 협상에 나서 악장직 트라이얼 여부와 기간을 협의하거나 바로 악장에 임명한다.

현재 아시아인으로 최정상의 오케스트라 악장에 오른 건 런던 태생의 일본인 카시모토 다이신(베를린 필/2009~)이다. 카시모토의 악장 안착 과정은 현대 오케스트라의 악장 인사를 살피는 데 유용하다. 카시모토는 유학 시절부터 베를린 필 역대 최연소 악장을 역임한 가이 브라운슈타인과 친교를 맺었고, 브라운슈타인은 “(베를린 필 악장) 야스나가 씨가 곧 악단을 떠날 것 같으니 오디션을 준비하면 좋겠다”고 내부 사정을 친구에게 전했다.

베를린 필은 카시모토를 합격자로 뽑았지만 정규악장 대신 객원악장을 제안했다. 기존 악장이 모두 스케줄이 안 맞거나 지휘자와 성향이 맞지 않을 때, 베를린 필에 필요한 자리다. 카시모토는 친분이 있던 일본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하는 멘델스존 오라토리오에 악장으로 투입됐지만 오자와는 리허설과 공연 내내 후배에게 차가웠다. 일본인 비올라 단원은 “베를린 필에는 본인(오자와)을 싫어하는 멤버들도 있는데, 카시모토를 보고 호감을 나타내면 악장 자리가 걸려 있는 그에게 불리함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부러 차갑게 대했다”고 거장의 배려를 카시모토에 전했다고 한다.

글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에투알 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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