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깨우는 예술축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5월 10일 9:00 오전

봄을 깨우는 예술 축제들

 

 

 

 

봄의 시작을 알린 통영국제음악제와 모나코 몬테카를로 예술의 봄 페스티벌의 생생한 현장을 전한다.
오는 5·6월을 채울 풍성한 축제 리스트에도 주목해보자
박찬미 기자


PART1 Preview

제12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5월 7일~6월 6일 | 예술의전당, 국립극장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위원장 조장남)이 전통과 현대 사이의 균형 감각을 갖춘 모습으로 돌아온다. 베르디, 푸치니, 도니체티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그랜드 오페라 세 편과 현대인의 삶과 사랑을 담은 작품 세 편이 관객을 맞는다.

1871년 카이로 오페라하우스 개관을 기념하며 탄생한 베르디 ‘아이다’가 축제의 포문을 연다. 글로리아오페라단(예술총감독 양수화)이 1991년 창단 이래 여러 국내 초연작과 창작오페라를 선보여온 프로덕션 노하우를 십분 발휘해 작품의 장대함을 구현할 예정이다. 노블아트오페라단(단장 신선섭)는 하룻밤 새 펼쳐지는 치정과 격정의 드라마, 푸치니의 ‘토스카’를 올린다. 국내외 무대에서 미미·리우·수녀 안젤리카·초초상 등 푸치니 오페라의 여러 역할로 활약해온 소프라노 서선영이 토스카 역에 함께한다. 지속적인 프로그램 개발에 앞장서 온 라벨라오페라단(단장 이강호)은 지난 2015년 국내 초연한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를 재정비해 선보인다. 남편 헨리 8세에게 버림받고 참수형으로 짧은 생애를 마감한 앤 불린의 비극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한편, 디아뜨소사이어티(대표 양수연)는 잔 카를로 메노티(1911~2007)의 현대오페라 두 편을 한데 선보인다. 전화기로 인해 벌어지는 일을 재치 있게 그려낸 단막 희가극 ‘전화(The Telephone)’와, 남을 기만하려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마담 플로라의 이야기 ‘영매(The Medium)’다. 이번 무대는 악기와 기술의 결합을 시도해, 현대오페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작년 창작오페라 ‘레드 슈즈’로 큰 반향을 일으킨 국립오페라단(단장 박형식)은 또 하나의 새 오페라를 선보인다. 브람스와 로베르트 슈만, 클라라 슈만 사이 숙명적 사랑을 소재로 삼은 서정오페라 ‘브람스…’다.(관련 기사는 82쪽으로) 수 세기에 걸쳐 많은 사랑을 받아온 세 작곡가의 대표작이 모여 어떤 이야기로 피어날지 주목해보자. 축제의 폐막작으로는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을 각색한 코리아아르츠그룹(대표이사 하만택)의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오른다. 체질과 기질의 관점에서 극 중 인물들을 분석하고 표현해, 감상자가 보다 쉽게 작품에 이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 레치타티보와 아리아까지 모두 한국어로 풀어내 오페라 초심자들도 모두 즐길 수 있다.

축제 전 이 책!

오페라와의 만남
닉 킴벌리 저 | 김병화 역 | 포노
시대별 오페라의 매력을 한 권으로 만난다. 최초의 오페라로 일컬어지는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부터 헨델·모차르트·로시니·베르디·바그너·푸치니·도니체티·베를리오즈·차이콥스키·드뷔시 등을 아우르는 풍성함이 돋보인다. 각 작품의 하이라이트가 담긴 두 장의 CD와 오페라 용어집이 함께 제공되며, 각 시대의 역사·미술·건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비교 연표도 수록돼있어 오페라와 문화예술이 발전해온 시대적 맥락을 짚어볼 수 있다.

 

현대오페라 미리 보기

안나 볼레나 ©라벨라오페라단

 

잔 카를로 메노티 ‘전화’
소라야 마치(루시)/
조나단 맥고번(벤)/
데이지 에번스(연출)/
스코티시 오페라

 

 

술집을 찾은 두 연인 루시와 벤. 벤은 루시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려 하지만, 루시는 끊임없이 울려대는 휴대폰에 영혼을 빼앗긴 듯하다. 1947년작 ‘전화’는 1막 구성의 로맨틱 코미디로, 본 영상물은 2020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스코티시 오페라의 필름 오페라다. 소프라노 소라야 마피와 바리톤 조나단 맥고번이 각각 루시와 벤으로 분했고, 오페라와 디지털의 결합을 실험하고 있는 오페라 연출가 데이지 에번스가 두 사람을 현대의 에든버러로 불러들였다.

 

제16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5월 13~23일 |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윤보선 고택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예술감독 강동석)는 ‘환희의 송가’라는 문패를 내걸고 성대한 생일잔치를 준비했다. 지난해 탄생 250주년을 맞은 베토벤이 그 주인공. 팬데믹의 여파로 순연된 이번 축제는 보다 풍성한 프로그램의 11개 공연으로 관객과 만난다.

우선, 베토벤, 그리고 그와 영향을 주고받은 동시대 작곡가들의 유산을 만나는 자리가 마련됐다. ‘베토벤의 시대, 그때 그 사람들’(5.13)에서는 훔멜과 보케리니, 베토벤과 크로굴스키의 작품을 만나고, ‘불멸의 베토벤’(5.19)에서는 한 대의 피아노, 성악·피아노 듀오, 피아노 3중주 등 다양한 편성의 베토벤 실내악을 감상한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언’(5.22)은 베토벤이 유언을 남긴 무렵 작곡한 플루트·바이올린·비올라를 위한 세레나데 Op.25와 바이올린 소나타 Op.30-3 등에 주목한다.

올해 16회를 맞은 축제는 그간 다채로운 실내악 만찬을 차려온 면모도 한껏 발산한다. ‘황혼’(5.15)은 덴마크(쿨라우)·프랑스(쇼송)·오스트리아(슈베르트)·독일(베토벤)로 이어지는 음악 여행을 관장하고, ‘둘은 좋아, 셋은 무리’(5.18), ‘매드 포 갈릭(Gallic)’(5.23) 등 재치 있는 타이틀의 공연은 다양한 형식과 문화권의 실내악을 선보인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시그니처가 된 윤보선 고택에서의 공연(5.16·17)은 하이든부터 이베르에 이르는 여러 시대의 레퍼토리로 채워져, 누구나 공간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서정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축제에는 예술감독 강동석을 비롯,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52인이 참여한다. 특히 김규연·김준희·이진상·정재원(피아노), 박규희·박종호(기타), 한수진(바이올린) 등이 축제에 첫 등장을 예고했다. 다양한 편성의 작품을 실내악으로 편곡해온 축제의 오랜 벗이자 숨은 공신인 김바로(작곡)도 함께한다.

통계로 만나는 축제 (2006년 제1회~2020년 제15회)

최다 출연자 | 공동 1위 16회
강동석(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김영호(피아노)

단골 작곡가
1위 베토벤 (46개 작품)
2위 슈베르트 (45개 작품)
3위 모차르트 (36개 작품)
4위 드보르자크(24개 작품)
5위 리스트 (23개 작품)

단골 레퍼토리 | 공동 1위 5회
브람스 피아노 5중주 Op.34
드보르자크 현악 5중주 Op.97
멘델스존 피아노 3중주 1번 Op.49
슈만 피아노 5중주 Op.44

축제 전 이 책!

실내악과의 만남 – 가장 친밀한 음악적 대화
제러미 시프먼 저 | 김병화 역 | 포노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한 두 번째 작곡가는 ‘슈베르트’다. 이 책 역시 실내악의 절정기는 슈베르트가 이 땅을 밟고 있던 ‘19세기’라고 지적한다. 또, 실내악에서 슈베르트가 이룬 성취를 한 챕터에 걸쳐 소개한다. 슈베르트에게 실내악은 “내적 경험의 양극단을 화해시키려는 노력”이었고, 이러한 노력은 현악 4중주 작곡을 신격화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책은 실내악의 변천을 시대·나라·작곡가에 따라 살피며, 추천곡을 엄선해 두 장의 CD로 제공한다. 실내악의 출구 없는 매력을 맛볼 입문서로도 탁월하다.

 

INTERVIEW

최다 출연자
비올리스트 김상진

김상진(비올라)

16년간 이어진 축제의 의의
해마다 신진 연주자들이 소개되고 있다. 아주 젊은 나이였던 조성진(피아노)·이화윤(비올라)·성민제(더블베이스) 등이 거쳐 갔다. 올해 축제에 함께할 젊은 연주자들 역시 몇 년 뒤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를 이끄는 중심축으로 서리라 믿는다. 또, 프랑스에 거점을 둔 예술감독 강동석의 의지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프랑스 레퍼토리를 발굴해 국내 초연해왔다. 레퍼토리의 확장에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축제의 순간
세계적 연주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축제의 의의인데, 그 점에서 핀커스 주커만·막심 벤게로프(바이올린), 폴 노이바우어·노부코 이마이(비올라) 등 개인적으로 존경하던 연주자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올해 축제의 차별점
팬데믹으로 국내 연주자 위주로 출연진이 꾸려졌다. 대신, 그간 미국이나 유럽에 거주하고 있어 잘 만나지 못했던 한국의 실력파 연주자들을 만날 기회다. 이화윤도 오랜만에 국내 무대에 선다.

앞으로의 축제에 바라는 점
한 나라의 클래식 음악의 수준을 확인하려면 실내악이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는지 보면 된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한국에 고정적인 실내악 향유층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더불어, 음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었으면 한다.

 

제21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
5월 17~23일 | 대학로예술극장, 스튜디오 마루 외

제5회 제주국제즉흥춤축제
5월 25~29일 | 제주돌문화공원, 상가리문화곳간마루 외

 

 

서울국제즉흥춤축제(예술감독 장광열)는 ‘공간과 즉흥’이라는 주제로, 실내공연장의 담을 넘어 동숭동 골목길, 마로니에공원 야외무대 등으로 진출한다.

일주일간의 축제 중, 23일 마로니에공원 광장에서는 김나이무브먼트콜렉티브의 장소특정형 융복합 공연 ‘제비뽑기’가 펼쳐진다. 셜리 잭슨의 동명 단편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소설 속 광장을 마로니에공원으로 설정하고, 관객이 스마트폰을 통해 극의 전개를 따라가도록 했다. 이로써 인간을 고립시키기도, 연대하게 만들기도 하는 기술에 대해 고찰해본다.

이외에도 한국과 일본 예술가들이 협업하는 즉흥 공연, 4개국 아티스트 16인의 ‘90분 릴레이 즉흥’ 등이 차례로 이어진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어린이·청소년·성인 등 가족 단위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과 공연이 마련된다.

한편, 연계 행사로 제주의 자연을 무대로 삼아 즉흥춤을 펼치는 제주국제즉흥춤축제도 5회를 맞아 개최된다.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무가 이정인과 남영호, 대만 출신의 시아오 카 이, 중국의 짜오 징징 등이 참여하고, 국내 전문 무용단체인 리케이 댄스와 고블린파티, 그리고 제주에 거주하는 무용가들이 축제에 활기를 더할 예정이다.

즉흥의 미학
특별기획 ‘즉흥과 변용’

(‘객석’ 2000년 2월호 발췌)

‘오오, 예술의 마력인,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요정이여!(고대 그리스의 시 중에서)’

예술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즉흥의 기능은, 한마디로 하나의 ‘예술적 파격’이었다. 그러나 즉흥이 기존의 모든 ‘격’과 ‘식’을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경우에서 즉흥은 결코 원래의 악상과 예술적 이미지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작품이 가진 예술성의 한계를 넓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창조적 역할’이, 바로 미래의 예술에 있어서 우리가 여전히 즉흥의 기능에 기대하는 궁극적인 역할인 것이다.(박창호)

즉흥은 틀이나 치밀한 계산에서 벗어나 상상력 속에서 발휘되는 예술 행위의 자유로운 영역이다. 악보의 권위, 텍스트의 무게에서 벗어나 ‘아드 리비툼(Ad libitum)’, 애드리브의 자유로움 속에서 순간적인 창조와 정신적 해방감을 느끼려는 경향은 앞으로 보다 중시될 것에 틀림없다.(김방현)

INTERVIEW
예술감독 장광열

서울국제즉흥춤축제의 주제는 ‘공간과 즉흥’ 해운대 모래사장에서의 즉흥이나, 제주돌문화공원을 무대로 삼은 즉흥 등 공간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공연을 여럿 해왔는데, 참가 아티스트뿐 아니라 지켜보는 관객도 큰 흥미를 보였다. 이런 묘미를 더욱 알리고자 축제의 주제로 삼았다. 21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즉흥춤’ 사랑 즉흥춤을 처음 접했을 때, 전문 무용가뿐 아니라 일반인,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위한 다양한 자리가 마련된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규격화된 공연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몸짓은 모두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

즉흥춤의 매력 안무가들은 무용수와 관객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작품이 변화하는 것을 발견한다. 관객은 그 예상치 못한 상황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직접 즉흥을 체험해보면 자신의 몸을 새롭게 인지하고, 숨어있던 감성을 발견하게 되면서, 우연에 의한 창의적 경험의 세계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두 축제가 국내 무용계에 이룬 것 서울국제즉흥춤축제는 수준 높은 즉흥 아티스트와 전문가를 대중에 소개하고, 무용계 국제 교류를 확장했으며 지역 무용계를 활성화했다. 한편 제주국제즉흥춤축제의 한 관객은 “이 공간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이처럼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제주 곳곳의 장소를 춤과 함께 조명하고 알리는 계기가 됐고, 무심코 지나쳤을 돌의 형상들도 즉흥춤과 만나 새로운 예술성을 얻기도 했다.

 

제42회 서울연극제
4월 30일~5월 30일 |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아트원씨어터 외

 

붉은 낙엽

마흔두 번째 서울연극제(집행 위원장 지춘성∙예술감독 김승철)는 여덟 개 공식초청작을 필두로 펼쳐진다. 극의 형식은 이머시브 시어터부터 현대판 마당극에 이르고, 그 내용으로는 성장기의 고통부터 인류의 공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창작 초연작으로 ‘다른 여름’(창작집단 상상두목), ‘노인과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극단 대학로극장), ‘허길동전’(LP 스토리)이, 각색 초연작으로는 ‘붉은 낙엽’(극단 배다)이 관객과 첫 만남을 가진다. 재연작으로는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극단 이루)와 ‘생활풍경’(극단 신세계), ‘정글’(극단 ETS)과 ‘이단자들’(극단 사개탐사)이 준비 중이다.

더불어, 20개 작품이 참여하는 탈극장 형식의 무료공연인 프린지 ‘제17회 서울창작공간연극축제’와 지난해 공모를 통해 선정된 단막 희곡 2개 작품을 무대화한 ‘단막 스테이지’가 진행된다. 국내 우수한 창작극 개발을 목표로 하는 ‘단막 희곡 공모’, 공식선정작 작품을 관람하고 평가하는 ‘100인의 관객리뷰단’ 등 다양한 부대프로그램이 축제의 풍성함을 더한다.

이머시브 시어터의 미학
올해 서울연극제 공식초청작 8개 중 3개가 이머시브 시어터를 포함하는 관객참여형극이다.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극단 이루)는 연극 속의 연극, 연극 밖의 연극의 3중 구조를 설정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생활풍경’(극단 신세계)은 관객이 극중 주민토론회의 일원으로서 특수학교 설립과 한방병원 설립 사이 결정을 내리게 한다. ‘정글’(극단 ETS) 역시 관객이 난민의 여정에 함께하며 공존에 관해 고찰하도록 한다.

‘이머시브 시어터’는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허물어 관객의 참여를 극대화하는 공연양식이다. 이승엽(전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저서 ‘극장에 대하여’에서 “이머시브 시어터에서 관람 행위는 관객 그룹의 집합적 경험이라기보다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행위다”라고 적었다. 이처럼 관객은 자신의 선택과 참여로 극의 전개와 결말을 써 내려가며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한다. 이머시브 시어터의 의의와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머시브 연극의 열풍을 이끈 영국 펀치 드렁크의 ‘슬립 노 모어’
(‘객석’ 2020년 1월호 발췌)

슬립 노 모어

“‘슬립 노 모어’의 배우들은 전통적인 무대가 아닌 멕키트릭 호텔로 명명된 5층짜리 건물 내 100여 개의 방안에서 일정한 동선으로 움직이며 연기를 펼친다. 제공받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 배우와 자신을 구분하는 관객들은 각자의 선택에 따라 움직이며 작품의 내러티브를 재구성한다.

배우와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나 스킨십은 허용되지 않지만, 자유롭게 공간을 넘나들고 시선을 확보하면서 관객들은 극 안에, 또는 각 장면 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특정 배우를 선택해 따라다닐 수도 있고, 각 공간 내 배치된 소품들로부터 단서를 얻어 나름의 이야기를 전개하거나 해석할 수도 있다. 또는 극의 흐름과 다른 관객들의 반응을 그저 관망할 수도 있다. 관객들은 마치 게임을 하듯, 또는 테마파크 속 헌티드 하우스를 체험하듯, 참여를 통해 수동적인 관람을 넘어서는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축제 전 이 책!

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저 | 장은재 역 | 고려원북스
연극 ‘붉은 낙엽’(극단 배다)이 원작으로 삼은 토머스 H. 쿡의 추리소설. 연극은 추리극과 심리극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소설의 특징을 잘 담아내기 위해 ‘소설의 희곡화’ ‘희곡의 대본화’로 이어지는 단계별 텍스트 개발에 힘을 기울였다. 작품은 시골 마을에서 에이미라는 소녀가 유괴당하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인물은 에이미를 마지막으로 돌본 오빠 키이스. 남매의 아버지인 에릭은 점차 옥죄어 오는 경찰의 수사망과 마을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 아들의 무죄를 증명해내야 하지만 자신조차 때때로 아들 키이스를 믿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평범한 가족에게 닥친 위기를 통해 불신과 오해, 불완전한 추리의 파괴적인 성질을 오롯이 보여준다.

 


PART2 REVIEW

통영국제음악제 포토 리뷰
전지적 아티스트 시점으로 만나는 축제 현장

 

사샤 괴첼, 카미유 토마, 크리스티안 바스케스

 

 

 

 

 

 

 

 

 

 

 

 

 

 

 

작년 코로나로 인해 전면취소돼, 2년 만에 개최된 통영국제음악제(대표이사 이용민)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3월 26일부터 4월 4일까지 개최된 축제의 평균 좌석점유율은 92%에 달했고, 20개 공연 중 13개 공연이 일찍이 매진되는 등 관객의 화답은 뜨거웠다.

축제를 기다렸던 건 관객뿐만이 아니다. 만발의 준비를 마친 아티스트들은 다채로운 레퍼토리로 관객과 한 자리에서 호흡했다. 또, 봄비와 기록적인 미세먼지가 스쳐 지나간 후, 따뜻한 햇볕을 되찾은 통영을 만끽했다.

제각각 봄의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아티스트들의 소셜미디어에서 포착됐다. 이들이 ‘객석’으로도 자신의 휴대폰 속 사진들을 보내왔다. 이번 지면에서는 아티스트의 눈으로 생생한 축제 현장을 만나보고, 다시 돌아올 통영의 봄을 기약해보자.

축제의 포문은 크리스티안 바스케스/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그리고 김봄소리(바이올린)가 열었다. 윤이상의 ‘서주와 추상’,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으로 이어진 프로그램으로 평화와 희망의 긍정적 메시지를 전했다. 바스케스는 미륵산에 등반해 양손을 활짝 펼친 모습으로 기념사진을 남겨, 음악에서와 같은 호쾌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처음 한국을 방문한 카미유 토마(첼로)는 통영의 아름다운 전경에 흠뻑 빠진 듯했다. 그녀가 보내온 풍경사진은 끝이 없을 정도였다. 27일 리사이틀로 낭만과 격정이 가득한 프랑스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한국 관객과 성공적인 첫 만남을 가진 토마는 이튿날 바스케스/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다시 무대에 올라 파질 세이의 첼로 협주곡 ‘네버 기브 업’을 아시아 초연했다. 세계를 위협하는 폭력 사태에 대한 목소리가 담긴 이 작품의 여운은 마지막 음이 끝나고도 오래 객석을 맴돌았다. 그 객석에는 31일 무용과 판소리가 어우러진 ‘야드’ 공연을 선보인 소리꾼 안이호도 함께였다.

한편,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14일간의 자가격리를 거쳐야만 했던 카미유 토마의 소식은 세계로 뻗어나갔다. 격리 기간 중, 통영 바다가 내다보이는 숙소에서 무대를 준비하는 그의 모습은 프랑스의 방송사 BFM TV에도 소개됐다.

김유빈(플루트)은 올해 음악제에서 가장 많은 무대에 올랐다.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수석단원으로도 두 번 무대에 섰는데, 특히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에서는 그의 힘차고 또렷한 음색이 좌중을 압도했다. 29일에는 백주영(바이올린)·잉고 고리츠키(오보에)·이강호(첼로)와 윤이상의 ‘영상’을, 30일에는 오롯이 무대에 올라 프랑스 플루트 작품들을 관객과 나누었다.

김태형·김다솔·박종해·윤홍천, 네 피아니스트의 마라톤 콘서트는 4색 스타일을 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획이었다. 슈만·슈베르트·헨델·브람스의 레퍼토리로 170분간 이어진 공연은, 스트리밍된 모든 축제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승원(지휘)·이한나(비올라)·심준호(첼로)· TIMF 앙상블·아벨 콰르텟·앙상블 아인스는 현대음악의 창작과 유통을 담당하는 축제의 역할에 힘을 보탰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정헌주·김은성·이아름·김지현·올리 잔의 작품을 새로이 소개하고, 윤이상의 제자이자 지난해 타계한 작곡가 강석희의 대표작을 되새기는 자리가 마련됐다.

2021년 통영국제음악제는 베토벤의 웃음과 모차르트의 눈물이 교차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베토벤 교향곡 제8번과 모차르트 레퀴엠이 연주된 폐막 공연에는 임선혜(소프라노)·김선정(메조소프라노)·파벨 콜가틴(테너)·박종민(베이스),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대전시립합창단이 출연했으며, 사샤 괴첼이 지휘를 맡았다.

특히 사샤 괴첼은 자가격리 기간을 포함하여 약 한 달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다. 통영행에 오르기 전인 3월 25일, KBS교향악단과 첫 공연을 치렀다. 괴첼은 2주의 자가격리 기간을 작품 연구와 온라인 소통으로 채웠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자가격리가 해제되기까지의 나날을 영상으로 기록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했다. 한국에서 선보인 여러 작품을 분석하고 소개하는 장면도 함께 담겨 21세기형 지휘자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박찬미 기자 사진 리우코토프·목프로덕션


PART3 REVIEW

몬테카를로 예술의 봄 페스티벌 3.13~4.11
2㎢의 봄과 자유

프랑스에 접해있는, 약 2㎢ 면적의 작은 나라. 그곳의 봄은 예술과 함께 왔다

 

몬테카를로 전경 ©visitmonaco

 

 

 

 

 

 

 

부활절 휴가 기간의 모나코는 그랑프리(F1) 준비가 한창이었다. 호화 요트들이 정박한 모나코항 앞으로 거대한 경주용 도로와 계단식 관중석이 설치됐고, 정비 중인 도로 위로 페라리의 최신 모델들이 달렸다. 식당가는 주말 점심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고, 거리에는 ‘몬테카를로 예술의 봄 페스티벌’(이하 몬테카를로의 봄) 현수막이 펄럭였다.

페스티벌이라니. 모든 식당과 상점, 문화 시설이 닫힌 산 너머 프랑스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프랑스는 지난 10월 두 번째 봉쇄 이후로 대면 공연이 열리지 못하고 있다. 같은 시기 프랑스의 음악 축제인 ‘엑상프로방스 부활절 축제’가 전면 비대면 중계된 것과 대조적으로, ‘몬테카를로의 봄’은 3월 13일부터 4월 11일까지 매 주말 관객을 맞았다. “‘몬테카를로의 봄’은 모나코 곳곳을 순회하는 페스티벌이지만, 올해는 전통적인 형식으로 돌아와 질 높은 연주회를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주말에만 공연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그마저도 야간 통금 시간(7시) 전에 끝낼 수 있도록 해야 했죠. 다행히 모나코 정부는 티켓 소지자에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마르크 모네)

올해는 19년간 축제 예술감독이었던 마르크 모네(1947~)의 임기 마지막 해다. 스스로 작곡가이기도 한 모네는 그동안 ‘고전과 현대’ ‘아르스 노바와 아르스 안티콰’ ‘몬테베르디와 아르투시’ 등의 주제로 충돌과 절충의 프로그램을 구성해왔다. 올해 레퍼토리는 리스트와 하프시코드, 그리고 현대음악 세 축으로 구성됐다.

축제는 3월 14일 마티아스 핀처/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이 열었으며, 페스티벌 동안 세바스티안 리바의 감각주의 음악극 ‘그녀의 입술에 눈이…(Snow on her lips…)’를 포함한 네 작품이 초연됐다.

필자는 예술감독이 ‘전통적인 형식’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을 3월 21일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샤마유(1981~)의 리스트 ‘순례의 해’ 전곡 연주, 4월 10일 하프시코디스트 올리비에 보몽(1960~)과 피에르 앙타이(1964~)의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샤마유, 한나절 이어진 마라톤

 

베르트랑 샤마유 ©Alice Blangero

 

 

 

 

 

 

 

 

 

 

 

 

 

 

 

 

 

 

 

 

 

베르트랑 샤마유의 연주 당일, 프랑스 정부는 대도시 및 남프랑스를 봉쇄했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역에서는 경찰들이 프랑스에서 넘어온 이들의 신분증과 코로나 PCR 음성 증명서를 검사했다. 연주회는 프랑스 야간 통금을 지키기 위해 오전 11시에 시작됐다. 샤마유는 리허설을 포함해 오전 9시 30분부터 연주가 끝나는 오후 5시까지 피아노를 쳐야 했다.

아침의 가르니에 홀. 황금 장식들이 햇살에 빛났고 커다란 창 너머로 바다가 푸르렀다. 거리두기한 좌석은 가득 찼다. 공연 관계자는 “생각보다 봉쇄가 객석 점유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전했다.

커튼이 닫히고 남색 정장을 입은 샤마유가 걸어 나왔다. 베르트랑 샤마유는 리스트 ‘순례의 해’ 전곡 리코딩(2011, Naïve)으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테크닉으로 무장한 30세의 청년이 3시간 동안 펼친 영적인 여정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40세가 된 샤마유의 연주는 보다 섬세하고 여유로웠다. 초반부는 그간 쌓인 유명세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치는 느낌이었지만, ‘순례의 해 2년’ 중 ‘단테를 읽고’에서 완전히 만회했다. ‘단테를 읽고’의 상징적인 옥타브 겹타로 시작해 모티브가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혼란의 장에서 샤마유는 온 힘을 쏟아부으며 17분의 대장정을 완벽하게 마쳤다. 숨죽이던 관객은 3곡이 남았음에도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박수를 터뜨렸고, 박수가 멈추지 않아 샤마유는 짧은 커튼콜을 해야만 했다. ‘순례의 해 3년’에서는 에스테 별장의 전경을 묘사한 반짝이는 전(前)인상주의적 터치가 빛났다.

인문학이 된, 하프시코드의 매력

 

피에르 앙타이 ©Alice Blangero

 

 

 

 

 

 

 

 

 

 

 

 

 

 

 

하프시코드 리사이틀은 해양박물관 콘퍼런스홀에서 열렸다. 2시의 연주를 맡은 올리비에 보몽은 삐걱대는 나무 바닥을 밟으며 객석 뒤편에서부터 걸어 나왔다. 회색 정장을 입고 낱장 악보들을 품은 모습이 흡사 단상에 오르는 학자 같기도 했다.

“1601년에 태어난 자크 샹피옹 드 샹보니에르부터 1799년 죽은 클로드 발바스트르까지, 50분 안에 약 2세기에 걸친 프랑스 음악을 연주하는 여정”이라는 보몽의 설명대로, 프로그램은 바로크(자크 샹피옹 드 샹보니에르, 루이·프랑수아 쿠프랭)에서 로코코(라모)로, 초창기 고전음악(발바스트르)으로 진화했다.

정직한 자세, 큰 움직임 없는 단단한 타건에선 재빠른 꾸밈음들이 흘러나왔다. 페달이 없는 하프시코드였지만 보몽은 리듬을 쥐락펴락하며 휴지를 확실히 장악하여 마치 잔향이 오래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특히 전조될 때마다 한 템포 느린 도입으로 프레이즈를 정리하고 노련하게 주제의 구획을 나누는 모습에서 연구자의 면모가 엿보였다.

4시 리사이틀은 원래 안드레아스 슈타이어의 프랑스 레퍼토리로 예정됐으나 독일의 제재로 40시간 전에 취소되어, 급히 피에르 앙타이가 독일 작품으로 재구성했다. 연주자는 바뀌었어도 프랑스-독일 간 교류를 보여준다는 아이디어는 유지됐다. 프로그램북에 작품 설명을 실을 시간이 없었던 탓에 앙타이는 모든 곡을 직접 설명하며 연주했다.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앙타이의 연주는 보몽과 확연히 대조적이었다. 그는 왼손이 쉴 때면 지휘를 하듯 허공에 제스처를 그리며 오른손의 멜로디를 보조했고, 자유자재로 스톱을 사용하며 두 단의 건반을 바쁘게 오갔다. 압권은 바흐의 ‘g단조 모음곡,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d단조 BWV1004에 부쳐’(레온하르트 편곡)였다. 앙타이는 가벼운 건반을 강하게 내리꽂으며 거대한 화음들을 소화했다. 작은 몸집에서 내뿜는 에너지는 놀라웠다. 루이 쿠프랭의 ‘프로베르거 모방 프렐류드’는 쿠프랭이 독일의 정격을 모방한 당대의 크로스오버 작품으로, 반대로 독일 작곡가가 프랑스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었다.
전윤혜(프랑스 통신원) 사진 몬테카를로 예술의 봄 페스티벌

프랑스에서 열릴 여름의 페스티벌
프랑스의 여름 페스티벌은 5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문화부 장관 로즐린 바슐로는 “대부분의 페스티벌이 이번 여름에 개최될 것”이라며 “인원 제한은 완화될 것”이라 전망했다. 발언 이후 그녀 역시 코로나19에 걸렸지만 4월 14일 건강히 상원에 복귀했다.

현재 여름 페스티벌들이 하나둘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있다. 먼저 5월 27~30일 프랑스 중서부의 낭트에서 ‘라 폴 주르네’가 열린다. 매년 1월 열리는 ‘라 폴 주르네’는 통제가 완화될 가능성이 있는 5월 말로 연기되었다. 연주자 수의 제한으로 소규모 연주가 가능한 바흐와 모차르트를 선택했다. 연극, 음악, 춤, 서커스 등 폭넓은 공연예술을 다루는 리옹의 축제 ‘푸르비에르의 밤’은 5월 27일부터 7월 30일까지 열린다. 파리 근교의 생드니 성당에서는 ‘생드니 페스티벌’이 6월 1~29일 열리며, 페스티벌 측은 ‘요한 수난곡’을 지휘할 존 엘리엇 가디너의 건강을 주시하고 있다.

북부 릴에서는 6월 3~21일 다원예술 축제인 ‘라티튀드 콩탕포랭’이 개최된다. 6월 14~29일 최북단 파드칼레에서 바로크 음악 축제 ‘미드서머 페스티벌’이 열리며, 같은 시기 남쪽의 마르세유에서도 ‘바로크 행진’이 6월 16일부터 7월 6일까지 진행된다. 중남부 도시 오랑주의 고대 원형 극장에서 열리는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는 6월 18일부터 7월 말까지 이탈리아 작품들을 올린다. 6월 30일 시작되는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는 몬테베르디부터 바그너에 이르는 오페라, 핀란드,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 다양한 출신 작곡가의 초연작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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