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사상이 녹아든 클래식 음악, 19세기 바그너부터 21세기 탄둔까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5월 17일 9:00 오전

REPORT

 

불교 사상이 녹아든 클래식 음악

19세기 바그너부터

21세기 탄둔까지

 

서양에서 불교는 종교를 넘어 동양의 철학과 사상을 향한 창문과도 같았다. 음악사 속의 많은 작곡가들은

이 사상에 심취했으며, 서양의 예술에서 볼 수 없는 빛과 들이켤 수 없는 공기를 호흡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작품을 빚기도 했다.

부처님오신날이 있는 5월을 맞아 그들에게 창작의 원천과 사유의 전환점이 되었던 불교와 음악의 관계를 살펴본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북인도 왕국의 왕자 싯다르타는 보리수나무 아래서 명상을 하던 중 ‘세상 모든 고통은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된다’는 진리를 깨닫고 부처가 된다. 집착에서 벗어날 때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그의 가르침은 최초의 다섯 제자로부터 저 멀리 유럽과 미대륙에까지 가닿았다.

바그너(1813~1883)는 동양 철학, 특히 불교와 힌두교의 윤회 사상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리스트에게 보냈던 편지를 잠시 엿보자. 단순한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 불교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내비쳤음을 알 수 있다.

 

‘유대-기독교 교리와 비교해서 이 교리는 얼마나 숭엄하며, 얼마나 만족스러운가’

‘인간 본성의 가장 심오함에 관한 고결하고 의미 있는 표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신성한 종교인 브라만의 가르침과 이것이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변형된 불교에서 찾을 수 있다’

‘영혼의 순환(윤회)에 관한 부처의 가르침은 진리에 가장 근접해 있다’

 

서양에 영향을 준 불교

언뜻 바그너가 살던 ‘1800년대 독일’과 ‘불교’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무렵 독일에서는 인도 고대어인 산스크리트 연구가 한창이었다. 자연스레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종교·철학 서적을 통해 불교를 비롯한 인도 사상이 전파됐다. 이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철학가가 쇼펜하우어(1788~1860)다. 쇼펜하우어는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고대 인도 철학 경전 ‘우파니샤드’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적 철학은 그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9)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은 후에 혁명(1848)에 실패하고 좌절감에 빠진 청년 바그너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바그너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음악과 철학을 전공한 사색가이자, 둘의 완벽한 결합을 꿈꾼 작곡가였다. 그런 그의 작품에서 불교적 색채가 본격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트리스탄과 이졸데’(1859)부터다. 서곡에서 모든 강박과 욕망에 대한 해탈을 음악적으로 표현했고, 가사에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쇼펜하우어의 문장을 인용했다. 바그너의 최후작 ‘파르지팔’(1882)은 연민과 동정심으로 깨달음을 얻고 구원받는다는 점에서 자비와 깨달음을 강조하는 불교 사상과 상통한다.

 

조나단 하비 ©Maurice Foxall

부처의 일대기를 그린 바그너

사실,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은 부처의 일대기를 다룬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책을 접한 후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함께 ‘승리자들’(Die Sieger)이라는 제목의 오페라를 떠올렸다. ‘자기 자신을 극복한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라는 ‘법구경’의 경구에서 따온 제목이었다. 1856년경 대본 초안을 썼으나, 이후 수십 년 동안 미완성에 머물렀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바그너가 인도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목된다. 인도라는 나라의 역사·지리·자연·문화를 몰랐기 때문에,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다른 극처럼 완성도 있게 묘사해내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그너 시대의 대부분의 산스크리트 학자들은 고대 문헌을 자세히 알고 있을지언정, 인도에 대한 그들의 개념은 추상화되고 이상화된 것이었다. 사상적 이해와 관심에도 불구하고,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다. 영국 작곡가 조나단 하비(1939~2012)는 “바그너는 인종주의·허무주의·세상에 대한 증오로 인해 ‘파르지팔’에 불교를 왜곡해 반영했다”라며, “유일하게 ‘승리자들’의 대본에서 진정 고귀한 불교의 가르침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하비는 자신의 오페라 ‘바그너의 꿈’(2006)에 바그너와 ‘승리자들’ 속 부처를 등장시켜 동서양 문명의 대립과 충돌을 그렸다.

바그너

불교, 20세기 대중문화에 파고들다

불교에 관한 서구권의 관심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대중적으로 확산된다. 영국의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에드윈 아놀드(1832~1904)의 서사시 ‘아시아의 등불’(1879)이 핵심적인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부처의 생애와 가르침을 그린 이 시집은 6개국의 언어로 번역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오페라와 연극,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중 동명의 오페라는 영국 작곡가 이시도르 드 라라(1858~1935)에 의해 쓰였으며, 1892년 코벤트 가든에서 초연됐다. BBC 라디오는 영국의 극작가 클리포드 백스(1886~1962)의 연극 ‘붓다’(1947)를 송출했다. 당시 연극의 음악을 만든 작곡가 에드먼드 러브라(1901~1986)는 이를 바탕으로 2000년 ‘붓다’ 모음곡 Op.64을 발표했다.

일본의 선학자 스즈키 다이세츠(1870~1966)는 1893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종교의회에서 선불교를 소개했는데, 대중잡지인 ‘보그’ ‘뉴요커’에도 실릴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특히 명상을 통한 깨달음이라는 신비주의적인 체험에 매료된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선(禪)사상은 미국 작곡가 존 케이지(1912~1992)가 음악에 우연성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수많은 담론을 불러일으킨 그 유명한 ‘4분 33초’(1952)도 그 결과물이다.

 

 

 

존 케이지

작곡을 통해 수행한 존 케이지

초연 당시 악보를 들고나온 피아니스트는 4분 33초간 침묵을 지키며, 3개로 된 악장을 구분하기 위해 피아노 뚜껑을 여닫을 뿐이었다. 연주회장을 채우는 소리는 그 순간 포착되는 객석의 웅성거림과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이었다. 케이지는 작곡의 기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을 만들고자 했는데, 이는 ‘존재의 실체 없음’을 자각함으로써 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선사상의 핵심 개념인 ‘공(空)’을 실천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작곡을 통해 선(禪)에 대한 수행을 한다고 주장했으며, ‘4분 33초’를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았다.

색(色)이 곧 공(空)이라는 ‘반야심경’의 구절을 가사에 넣은 이도 있었다. 미국 작곡가 루 해리슨(1917~2003)은 세계 각국의 전통음악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했다. 이를 위해 직접 중국의 전통 현악기인 고쟁(古箏)과 인도네시아의 전통 타악기인 가믈란을 배우기도 했다. 그의 작품 중 가믈란과 합창이 함께 하는 ‘La Koro Sutro’(1972)의 제목은 국제 공용어인 에스페란토어로 ‘수트라의 마음’, 즉 불교 경전인 ‘반야심경’이라는 뜻이다. 서주와 총 7악장으로 구성되며, 2악장에서 ‘물리적 현상(色)은 실체가 없는 것(空)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 물질적 현상이다’를 에스페란토어로 번역한 가사가 나온다.

 

필립 글래스

불교는 음악이 아닌, 삶이다

필립 글래스(1937~)는 현대음악의 또 다른 사조인 미니멀리즘의 대표 주자다. 그는 존 케이지의 저서 ‘사일런스’(1961)를 통해 처음 불교를 접한다. 이후, 인도의 시타르 연주자 라비 샹카르(1920~2012)를 사사하며 불교적 경향을 보이게 된다.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에게 시타르를 가르치기도 한 라비 샹카르는 글래스에게 음악과 삶의 깊은 곳을 통찰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의 가르침에 따라 글래스는 1966년 떠난 인도 여행에서 불교와 명상을 공부하기도 했다.

사상으로 세상을 바꾸는 이들은 글래스에게 영감을 주었다. 오페라 ‘샤타그라하’(1979)는 비폭력 운동을 주창한 간디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달라이 라마의 생애를 다룬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쿤둔’(1997)의 사운드트랙에는 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새천년을 기념하며 위촉한 교향곡 5번 ‘레퀴엠, 바르도, 니르마나카야’(2000)도 그 제목처럼 불교적 색채가 강하다.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된 만고의 진리를 영어로 번역해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다시 태어난다(니르마나카야)’는 것이 작품의 주제다.

주제 외적인 측면에서도 사람들은 필립 글래스의 음악을 ‘새로운 명상 음악’으로 받아들였다. 단조로운 리듬과 구조가 반복되어 심신을 이완하는 평화로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글래스는 “오해”라며 명상 음악으로 규정되기를 거부했다. 그는 1960년대 예술계 전반에 영향을 준 미니멀리즘이 미술에서 출발했음을 지적하며 “솔 르윗, 도널드 주드, 로버트 모리스 같은 작가들은 인도에서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즉, 인도 고대음악부터 동시대 미국 미술의 경향 모두 자신의 음악적 자양분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불교는 나의 작품보다는 내 삶에 더 많은 영향을 주었다”라고 강조했다.

아예 불교에 귀의한 작곡가도 있다. 40대에 티베트 불교도가 된 프랑스의 작곡가 엘리안느 라디그(1932~)는 티베트불교 경전 ‘바르도 퇴돌’에서 영감을 받은 ‘죽음’ 3부작(1988~1993), 11세기 티베트에 실존했던 수행자의 삶을 시기별로 아홉 장으로 구성한 ‘Jetsun Mila’(1986) 등의 작품을 남겼다. 미국의 피터 리버슨(1946~2011)은 1976년 티베트 승려인 초감 트룽파의 가르침은 아래 명상 수행을 했다. 그의 오페라 ‘아소카의 꿈’(1997)은 기원전 3세기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건설하고, 불교를 장려한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왕 아소카의 일대기를 그린다.

엘리안느 라디그

피터 리버슨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동양의 문화적 힘

불교 사상이 녹아든 작품은 다음 세대 작곡가에게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이 된다. 불교에서 직접 영향을 받지 않더라도, 앞세대 작곡가로부터 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벨기에 작곡가 빔 핸데릭스(1962~)는 작곡가 조나단 하비를 추모하기 위한 ‘Blossomings’(2016)에서 18세기 티베트 불교도 지그메 링파의 글을 차용했다. 오페라 ‘바그너의 꿈’을 작곡한 조나단 하비가 기독교와 불교의 관계를 고찰하는 작품을 다수 남겼기 때문이다. 핸데릭스는 작품에서 12세기 로마 가톨릭 수도원장을 지낸 힐데가르드와 13세기 이슬람을 대표하는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의 글을 포함해 총 세 개의 서로 다른 시대적·종교적 배경을 가진 원문을 인용하면서, 문화적 화합의 메시지를 던진다.

한편, 중국의 작곡가 탄둔(1957~)은 서구 음악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불교를 취한다. 오라토리오로 부처의 가르침을 표현한 ‘붓다 수난곡’(2018)이 대표적이다. 드레스덴 페스티벌·멜버른 심포니·LA 필·뉴욕 필에서 공동 위촉한 작품에 탄둔은 중국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지인 모가오 석굴에서 영감을 받은 음악을 당당히 내놓았다.

모가오 석굴은 과거 중국에서 서역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던 실크로드에 자리한다. 중국의 불교 예술이 꽃핀 지역으로, 그곳에 위치한 석굴 안에서 수천 점의 벽화·불상·필사본이 발견됐다. 1907년 뒤늦게 세간에 공개된 도서관 동굴은 티베트어·중국어·산스크리트어 등으로 된 문서 총 5만 건을 보유하고 있어 놀라움을 샀다. 탄둔은 모가오 석굴을 직접 방문해 현지 조사하고, 도서관 동굴에서 소실된 원고를 찾아 연구하는 등 2년간의 준비 끝에 사랑과 용서, 헌신이라는 인류애적인 주제를 다룬 고대 불교 벽화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복원해냈다.

‘붓다 수난곡’에는 모가오 석굴 벽화 속 해탈을 열망하는 어린 왕자, 만물의 새, 보트리가 전 6막에 걸쳐 등장한다. 중국어와 산스크리트어로 노래 부르며, 일곱 명의 독주자,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이다. 탄둔의 지휘로 2018년 5월 드레스덴 페스티벌에서 뮌헨 필하모닉이 세계 초연했다. 당시 협연자로 소프라노 젠 구오와 메조 소프라노 주후이링, 바리톤 선양, 호주계 중국인 테너 강 왕까지 모두 중국 출신 성악가가 무대에 올랐다.

빔 핸데릭스 ©Jonas Roosens

탄둔

 

 

 

 

 

 

작품의 해석에도 영향을

불교의 교리를 작품에 녹여 넣은 작곡가들이 있다면, 지휘자들에게는 작품을 해석하는 영양분이 된다. 주관의 영역이 넓은 지휘대는 한 사람의 신념과 사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다. 루마니아 출신 지휘자 첼리비다케(1912~1996)가 대표적이다. 대학에서 작곡과 철학을 전공한 그는 이 무렵 선불교를 접하고, 자신의 지휘관을 정립하는 데 적용했다. 느린 템포로 유명한 지휘 스타일은 “행한 것보다 행하지 않은 것에서 더 많은 것이 표출된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충분한 여백을 둠으로써 작품의 구조와 관계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를 의도한 것이다. 첼리비다케의 지휘는 영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브루크너 교향곡 8번에서 빛을 발한다.

첼리비다케

 

그는 녹음에 인색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역시 선사상에 기인한다. 선사상이 근간이 되는 일본 다도에는 ‘일생 단 한 번의 만남(이치고이치에)’이라는 말이 있다. 단 한 번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차를 대접할 때는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것이다. 첼리비다케에게는 연주가 그러한 숭고한 마음으로 이뤄지는 행위였고, 몇 번이고 재생할 수 있는 녹음으로는 초월적인 경지를 담아낼 수 없다고 믿었다. 정식으로 출판된 몇 안 되는 음반 상당수가 그의 사후 유족의 동의하에 발매된 것이다.

한편, 첼리비다케와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 자리를 두고 숙명의 경쟁을 벌였던 카라얀(1908~1989)도 오랜 선불교 신자였다. 그가 음반

산업의 호황을 일으켰다는 사실만 고려하더라도, 첼리비다케와는 다른 방식으로 불교를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카라얀에게 선불교는 삶의 태도에 가까웠다.

1978년 ‘그라모폰’지와의 인터뷰에서 베를린 필 취임 후 20년 넘게 호흡을 맞추면서도 진부해지지 않는 비결을 묻자, 카라얀은 “200번, 300번 넘게 함께 연주한 곡을 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라며, “현재에 충실히 행하되, 일상에 빠지지 말라는 선불교의 가르침 덕분인 것 같다”라고 답했다. 윤회 사상을 신봉했던 그는 자신이 죽으면 사랑하는 알프스 위를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독수리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카라얀

 

 

글 박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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