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한승원, 주크박스 오페라의 탄생!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5월 10일 9:00 오전

INSIGHT
연출가 한승원

주크박스
오페라의 탄생!

연출가 한승원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무슨 존재였을까?

‘브람스의 오페라’가 오른다는 소식에 놀란 이들이 있을 테다. 브람스(1833~1897)는 교향곡·협주곡·독주곡·실내악곡은 물론 가곡·합창곡까지 방대한 레퍼토리를 남겼다. 하지만 그는 단 하나의 오페라도 쓰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국립오페라단의 신작 ‘브람스…’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브람스와 슈만, 클라라는 삼각 구도를 이뤘다. 스무 살의 브람스는 슈만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클라라를 조우했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던 클라라와 슈만은 젊은 브람스에겐 은인이었다. 정신분열을 앓던 슈만이 투신한 이후 브람스는 둘의 아이를 정성껏 돌봤다. 평생 독신으로 산 그는 1896년 클라라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내가 평생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비로소 고백했다.

국립오페라단의 서정오페라 ‘브람스…’는 작곡가 생애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한 작품이다. 그간 창작뮤지컬 ‘살리에르’ ‘라흐마니노프’ ‘파리넬리’ ‘파가니니’를 통해 음악가들을 조명해온 한승원이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는다. 그는 이번 작업을 두고 ‘주크박스 오페라’라는 표현을 썼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이미 익숙한 장르이다. 아바의 히트곡을 묶은 뮤지컬 ‘맘마미아’가 대표적인데.
그동안 뮤지컬에선 주크박스를 많이 시도해왔다. 사실 주크박스 뮤지컬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다양한 소재의 음악을 하나의 서사로 연결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브람스의 곡들을 모았을 때, 극과 잘 어우러져 하나의 오페라 같았다.

‘브람스…’는 일종의 주크박스 오페라인데, ‘서정오페라’를 표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페라의 한 종류인 ‘서정오페라’는 일반 대중에게 낯설게 다가올 텐데.
오페라에서는 ‘푸치니의 오페라’ ‘도니체티의 오페라’ 등 오페라 앞에 작곡가의 이름을 붙이더라. 뮤지컬과는 명백히 다른 현상이다. 이번 작품은 브람스 작품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오페라처럼 ‘브람스의 오페라’라고 부르기가 애매했다. 브람스는 실제로 오페라를 작곡하진 않았으니까.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다가 ‘서정오페라’가 떠올랐다.

그동안 주로 창작뮤지컬을 만들어왔다.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작업을 하면서 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를 발견한 것이 있는지.
미묘한 차이가 있다. 뮤지컬에서는 음악 외에도 극적 상상력이 고조되는데, 오페라에서는 음악 안에 극이 공존한다. 오페라 앞에 작곡가 이름을 붙여 ‘누구의 오페라’라고 하는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오페라를 연출하는 한승원’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나에게 기대하는 건 그랜드 오페라보다 기존 오페라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오페라일 것이다. 이번 작업을 하다 보니 재밌는 영감이 많이 떠올라 신이 난다. 처음 창작뮤지컬에 뛰어들었을 때와 같은 마음이다.

 

뮤지컬 ‘파가니니’

 

 

 

 

 

 

 

 

 

 

 

 

 

 

 

 

 

 

 

 

 

현재 우리나라 뮤지컬이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건 오롯이 창작뮤지컬 덕분이다.
창작뮤지컬이 계속 나오는 현상을 보고 뮤지컬 본고장에서도 박수를 보낸다. 현재 국내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을 보면 오리지널 버전보다는 라이선스 작품이 더 인기가 많다. 오페라도 우리 언어를 살려서 재창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오늘날 대중의 선택을 받는 작품은 그 안에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의 맛집 문화를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나. 대중은 매력을 느끼면 긴 기다림을 감내하고서도 향유하고야 만다. 끌린다는 건 공감한다는 것이다. 브람스와 클라라의 이야기는 ‘너의 얘기’가 아니라 ‘나의 얘기’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브람스를 파헤치다!

오페라든 뮤지컬이든 ‘음악극’이라면 작곡가와 면밀히 소통해야 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브람스의 곡들이 대거 활용될 예정인데, 작곡을 맡은 전예은과의 호흡은 어떠한가.
전예은 작곡가는 착한 사람이다. 그에겐 사람을 끌어당기는 좋은 매력이 있다. 실력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파트너를 신뢰할 수 있는 것도 협업의 핵심이라고 본다.

브람스의 레퍼토리들을 어떻게 활용할 예정인지.
원곡은 원어 그대로 부를 예정이다. 과거 회상은 독일어로, 현재는 한국어로 처리했다. 두 곡을 새로이 재창작했는데 한국어 가사를 붙인 뒤 독일어로 변환하는 작업을 거쳤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살리에르’ ‘파리넬리’ ‘라흐마니노프’ 등의 연출작이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동안 주로 한 인물의 삶의 행태를 파고드는 작업을 해온 것 같다. 이 작업을 두고 ‘예술가 시리즈’라고 부르던데.
사실 의도한 건 아니다. 삶이 참 그런 것 같다. 의도하지 않은 대로 흘러가는 것. 내가 왜 예술가들을 계속 다뤘을까 생각해 보면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다. 예술가들을 파다 보면 결국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던 사람들일 뿐. 이러한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위로가 되어줬다.

지금까지 소재로 다룬 예술가 중 음악가의 비율이 높은 이유는.
기획적인 측면이었다. 어떤 콘텐츠를 내놔야 경쟁력이 있을까 고민했다. 라이브에 적합한 소재를 찾다 보니 음악가에 닿았다. 나는 공연예술의 경쟁력은 라이브에 있다고 본다. 활개를 편 OTT 시장에 맞서려면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라이브가 강렬해야 한다.

예술가를 소재로 다룰 때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친다든지, 동시대 인물로 변용한다든지 여러 방식이 있을 텐데.
가장 중요한 건 원형이다. 실화를 가장 잘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 방식을 선호하고 있으며, 풀리지 않는 간극에 넣는 상상력은 최소화한다. ‘브람스’라는 인물에게 느낀 매력이 궁금하다. 결국은 사랑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랫말은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널리 알고 있을 테다.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 그 정서가 브람스의 곡에 녹아 있다.

이번 작품 연출 의도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소화하고 정서적 기억의 울림을 표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보이지 않는 것들을 연출로 어떻게 실체화시킬 것인지.
처음에는 연출 의도를 상상할 수 있는 단어들로 채웠다. 그런데 오페라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런저런 장치들을 다 집어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답답하던 와중에 본질에 집중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서정오페라’에 관한 리서치를 했는데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뭐랄까. 스파게티 면으로 비빔국수를 만들고 있는 느낌이랄까. 브람스 본질에 다가가려고 하니 감춰왔던 사랑만이 남았다. 외형적으로 큰 사건을 보여주는 작품보다는 정서적 빛깔을 담은 작품이 되길 바란다. 성악가들에게도 브람스를 연기하지 말고, 마음속 진정한 사랑을 꺼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에게 마음을 품은 브람스… 요즘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던데.
무엇이 됐든 꾸준한 것에서 진정성을 느끼는 편이다. 브람스는 그녀를 꾸준히 사랑했다. 인물에 접근할 때 ‘why(왜?)’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세종에 관한 작품을 만들 때도 ‘왜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과 계속 부딪히면서까지 한글을 만들었을까?’ 이런 식으로 ‘왜’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런데 브람스에서는 ‘왜’가 안 되더라. 사랑에 ‘왜’를 붙일 순 없지 않나. 그래서 ‘what(무엇?)’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무슨 존재였을까?’ ‘그의 마음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에 대한 관심으로 접근했다.

오페라는 단 한 곡의 유명 아리아로 깊게 각인되기도 한다.
창작뮤지컬을 보고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 즉 ‘킬링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전예은 작곡가가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으로 새롭게 곡을 써 가사를 입혔다. 곡이 정말 잘 나왔다. 이번 무대에 찾은 관객은 아마 3악장 선율을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장혜선 기자 사진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서정오페라 브람스…’
5월 13~1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한승원(대본·연출)/전예은(작·편곡)/여자경(지휘)/양준모(브람스 역)/정혜욱(클라라 역)


봄날의 브람스를 즐기는 방법

브람스의 합창곡이 궁금하다면?
서울시합창단 ‘오월의 브람스’
5월 25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서울시합창단은 제159회 정기연주회 ‘오월의 브람스’를 개최한다. 프로그램은 브람스의 ‘운명의 노래’ Op.54와 ‘독일 레퀴엠’ Op.45로 구성됐다. 지휘자 최승한이 군포 프라임필을 이끌고, 소프라노 박현주 외에 국립오페라단의 ‘브람스…’에서 브람스 역으로 열연할 바리톤 양준모가 함께 하기도 한다.

‘운명의 노래’는 프리드리히 횔덜린(1770~1843)의 시를 가사로 한 짧은 곡이다. 브람스는 친구가 소장한 횔덜린의 문장집을 본 뒤 바로 이 곡을 스케치했다. 시는 두 개의 연으로 되어 있다. 첫 연은 신들의 축복을 비는 내용, 두 번째 연은 인류의 고통을 그린다. 브람스는 원래 첫 연을 맨 뒤에 한 번 더 넣고자 했으나 횔덜린의 비극과는 반대된다고 판단하여 코다에 넣고 가사는 없앴다.

‘독일 레퀴엠’은 브람스가 1860년에 시작해 8년에 걸쳐 완성했다. 슈만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로 작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통적인 레퀴엠이 라틴어 가사인 것과 달리 브람스는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서에서 직접 구절을 선정해 곡을 만들었다. 이 작품을 들은 클라라 슈만은 브람스에게 “당신의 레퀴엠에 정말 매혹됐다”는 편지를 전하며 극찬했다고 한다.

 

브람스의 교향곡·협주곡이 궁금하다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OST : 클래식 앨범
Warner Classics

 

지난해 막을 내린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클래식 음반이다. 오랜만에 공중파에서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다. 제목과는 달리 이 드라마에는 브람스의 곡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바흐의 ‘샤콘’ 등 주요 장면마다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와 등장인물의 감정을 전한다.

앨범에서는 드라마에 등장했던 주요 작품은 물론, 드라마가 소개하지 못했던 브람스의 명곡을 감상할 수 있도록 수록했다. 브람스의 교향곡·협주곡을 워너 클래식스가 자랑하는 음악가들의 명망 높은 연주로 감상할 수 있다. 드라마에 실제 사용된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1970~)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 오리지널 음원도 수록했다. 드라마의 대본 작가 류보리가 직접 쓴 음악에 대한 단상, 음악 칼럼니스트 김경수의 상세한 곡목 해설도 함께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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