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40주년 기념 음반으로 파헤친, 버르토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5월 24일 9:00 오전

RECORD COLUMN

 

탄생 140주년 기념

음반으로 파헤친, 버르토크

자국의 고유한 음악에 관심을 갖고, 고전음악과의 접목을 시도했다.

이런 작업을 현대적으로 수행한 그는 20세기 대표 작곡가로 굳건히 이름을 새겼다

 

헝가리에서 태어난 벨러 버르토크(1881~1945)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뉴욕의 한 병원에서 타계했다. 당시 그의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이후 1950~1960년대를 지나며 재평가 받았고, 지금은 20세기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힌다. 현대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1925~2016)는 버르토크의 중요성을 20세기 모더니즘의 문을 연 드뷔시(1862~1918), 쇤베르크(1874~1951), 스트라빈스키(1882~1971)와 동급으로 꼽았을 정도다. 오

늘날 그의 작품 상당수는 연주회 고정 프로그램으로 확실히 정착했고, 매해 신보가 발매되고 있다. 탄생 140주년을 맞은 그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초심자들을 위해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음반, 유튜브 영상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살핀다.

 

현악 4중주의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다

그가 남긴 현악 4중주 여섯 곡은 베토벤 이래 현악 4중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초기에 나온 1번(1909)을 시작으로 경력 후반에 작곡된 6번(1939)까지, 여섯 곡의 현악 4중주 작품은 그의 삶 전체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버르토크 음악의 변모 과정을 살펴보는 재미를 줄 뿐만 아니라, 개별 작품 하나하나의 신선한 소재가 전통적인 음악 양식과 절묘하게 융합된다. 높은 완성도 덕분에 거의 많은 현악 4중주단들이 베토벤 작품과 더불어 무조건 연주하는 걸작이다.

문제는 음악가들에겐 최고의 작품으로 통하지만, 대중에겐 다가가기 쉬운 요소를 거의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하면, 오랫동안 이 작품들을 들어온 필자도 바로 떠오르는 인상적인 구간은 현악 4중주곡 5번의 피날레뿐이다. 난데없이 튀어나와 당혹감을 안겨주는 친숙한 멜로디가 전부일 정도로 열성적인 음악 애호가에게도 접근이 용이한 작품은 아니다. 거의 모든 현악 4중주단이 그들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리코딩에 임하기 때문에, 어떤 음반을 선택해도 후회가 없을 정도로 명연주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유명하다고 하니 일단 사서 한 번 들어보고는 진열장 구석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을 확률이 높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의 현악 4중주를 처음 접하는 이들은 유튜브를 적극 활용하면 좋다. 인기작인 2번과 5번을 헝가리 콰르텟의 악보와 함께 들어보는 영상으로 입문한 후➊➋ 전곡 듣기에 도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음반으로는 에머슨 콰르텟➌이 여전히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며, 타카치 콰르텟➍도 완성도로 따지자면 에머슨 콰르텟을 능가할 정도로 탁월하다.

이런 명연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아니지만, 예루살렘 콰르텟➎의 신보도 새로운 시도보다는 정공법을 선택한 부류 중에서는 빼어난 연주다. 보통 여섯 곡을 하나의 세트로 내놓지만, 예루살렘 콰르텟은 3곡씩 묶어 4년간의 기간을 두고 음반을 발매해 전곡을 완성했다. 최근 발매된 1·3·5번보다는 먼저 선보인 2·4·6번 연주가 다소 전통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이번 신보 역시 빈틈없는 사운드의 호연이었다.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음반 중에선 벨체아 콰르텟➏의 연주가 작품의 날카로운 특징을 극대화하여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런 스타일의 연주와 완전히 대척점에 있으면서 느긋한 분위기까지 풍기는 도쿄 콰르텟➐의 첫 번째 녹음도 그 독특함 때문에 한 번은 거쳐야 할 연주이다.

 

현악 4중주 2번

현악 4중주 5번

DG 4776322

Decca 4552972

HMM 902240

Warner 3944002

 

DG 4452412

다섯 번째 문

아담 피셔가 지휘한 영화(1988년)

 

 

 

 

 

 

 

 

 

 

유일한 오페라 ‘푸른 수염 영주의 성’

그는 오페라에서는 ‘푸른 수염 영주의 성’, 단 한 작품만을 남겼다. 1911년에 완성하고 1917년에 결말을 손본 이 작품은 한 시간을 넘지 않는 분량의 단막 오페라다. 스토리는 유명 동화작가 샤를 페로(1628~1703)의 ‘푸른 수염’에서 가져왔으나, 푸른 수염을 응징하는 원작의 결말과는 달리 푸른 수염이 여주인공을 마지막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어두운 분위기로 끝을 맺는다. 버르토크가 설정한 결말이 유명해지면서 원작이 원래 이런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많을 테다.

‘푸른 수염 영주의 성’은 짧은 길이 때문에 오페라 무대보다는 연주회 프로그램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무대에 올리더라도 비슷한 길이의 단막 오페라, 예를 들어 스트라빈스키의 ‘오이디푸스 왕’과 같은 작품과 짝을 지어 무대에 올린다.

작품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라면 ‘다섯 번째 문’ 장면부터 시작하면 좋다. 푸른 수염이 여주인공인 유디트에게 자신의 광대한 왕국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강렬한 금관 사운드가 자신만만한 푸른 수염의 포부와 맞닿아 가장 유명한 부분이다.

유튜브에서 여러 연주를 볼 수 있는데 영문 자막이 제공되는 BBC 프롬스 공연➑을 추천한다. 이 영상이 마음에 든다면 아담 피셔(1949~) 지휘의 영화판 연주➒로 전곡에도 도전해보기를 바란다. 해당 영상에는 영문 자막 또한 붙어있기 때문에 감상에 큰 도움이 된다. 헝가리 지휘자 이슈트반 케르테스(1929~1973)➓의 전통적인 명연을 필두로, 최고의 녹음 수준으로 유명한 이반 피셔의 음반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출시된 가드너/베르겐 필과 멜키/헬싱키 필 녹음은 모두 SACD로 발매되어 음질의 부족함은 없지만, 에드워드 가드너(1974~) 판은 훌륭한 성악가들에 비해 세기가 부족한 오케스트라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훨씬 인상적인 수잔나 멜키(1969~)의 해석은 새로운 명연주의 출현으로 봐도 좋다. 이외에도 시종일관 묵직한 울림으로 청자를 만족시키는 하이팅크/베를린 필의 해석이 어쩌면 최고의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Decca 4663772

Channel Classics CCSSA90311

Chandos CHSA5237

BIS BISSACD2388

EMI 5561622

에스트라다/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RCA 09026615042

DG 4378262

Decca 4256942

 

 

 

 

 

 

 

 

 

 

 

20세기 관현악을 대표하다

버르토크는 파시즘을 철저하게 배격한 인물이다. 조국 헝가리가 독일과 급속도로 가까워지자 부인과 함께 1940년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으나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경제적으로 궁핍하진 않았다. 그를 가장 괴롭혔던 건 1942년부터 시작된 건강 악화였다. 열과 함께 몸 구석구석에 통증이 시작됐다. 여러 진단이 내려졌지만 확실한 병명이 무엇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마지막 진단으로는 백혈병이 사인으로 남았다.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미국 시절에 작곡된 작품이다. 버르토크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작곡 스타일이 점차 변모하던 버르토크는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로는 더욱 대중 친화적으로 변했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에서 그 정점을 보여준다.

이후 작곡된 피아노 협주곡 3번 역시 신고전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전작들과 차이가 난다. 작곡가로서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미국 생활을 타개하려는 그의 의도가 강하게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의 이러한 의도는 큰 성공으로 이어졌지만 금전적인 보상은 타계한 이후에야 돌아오게 된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스트라빈스키에게 ‘봄의 제전’이 차지하는 비중만큼 버르토크에게 있어서 중요한 작품이다. 그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출발점으로 제격인 곡이기도 하다. 버르토크는 소나타와 같은 고전적인 양식을 대거 도입했으며 민속음악 요소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해서 작품에 녹였다. 작품 곳곳에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이 있는데, 4악장에 인용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주제가 특히 인상적이다. 거의 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을 버르토크가 왜 패러디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다. 그 의도에 대한 수많은 추측이 쏟아져 나오며 수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20세기 관현악을 대표하는 최고 걸작 중 하나이기 때문에 백여 종이 넘는 음반들이 출시되어 있다. 유튜브에도 볼만한 실황 공연이 여럿 올라와 있다. 우선 안드레아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1977~)와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의 실황 영상을 추천한다. 이 영상의 장점은 깨끗한 화질, 에스트라다의 열정적인 지휘, 깔끔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이다.

음반으로는 라이너/시카고 심포니의 역사적인 연주, 불레즈/시카고 심포니의 명석하고 냉정한 연주가 손꼽힌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음반으로는 불레즈만큼 냉정하지만 적당한 온기도 느껴지는 도흐나니/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화려한 독주자들로 팀을 꾸린 오자와/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의 음반 등이 있다. 최신 음반으로는 다우스고르/BBC 스코틀랜드 심포니의 연주가 있다. 투명하게 세공된 오케스트라 질감이 준수하지만, 독자적인 장점을 갖지 못한 점이 아쉽다.

 

Philips 4756201

ONYX 4210

에스트라다/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DG 4477472

RCA 19439721812

DG 4473992

BIS BISSACD2310

살로넨/스웨덴 라디오 심포니(유자 왕)

Chandos CHAN10610

 

 

 

 

 

 

 

 

 

 

 

버르토크 입문작으로 안성맞춤!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과 함께 버르토크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현과 타악기,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이다. 전성기인 1936년에 작곡됐으며, 1939년에 완성된 ‘현을 위한 디베르티멘토’와 함께 이 시기 버르토크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관악기를 아예 배제하고, 건반악기인 첼레스타와 실로폰, 스네어 드럼, 심벌즈, 탐탐 등 다양한 타악기를 동원한 구성이 독특하다. 버르토크의 음악을 상징하는 황금 분할, 타악기처럼 사용되는 건반악기, 민속음악적 요소가 완벽하게 융합되어 있다. 사용된 주제와 전개도 비교적 이해하기 쉽기에 버르토크 입문 음악으로 자주 추천되는 작품이다.

수많은 음반과 영상물 중에서 앞서 소개한 에스트라다/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의 실황 영상을 먼저 보기를 추천한다. 불레즈/시카고 심포니의 철두철미한 해석을 선호하는데, 해당 음반에 수록된 ‘중국의 이상한 관리’도 놓치기 아까운 명연이다. 최근 연주에서는 파보 예르비/NHK 심포니의 음반이 돋보인다. NHK 심포니의 빼어난 합주와 이를 뒷받침하는 상쾌한 음질이 놀라울 정도다.

 

스타일이 다른 세 개의 피아노 협주곡

버르토크가 남긴 세 개의 피아노의 협주곡 역시 20세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피아노라는 악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타격이라는 건반악기만의 특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1·2번과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3번은 작품의 성격이 판이하다. 그래서인지 1번과 2번을 잘하는 연주자와 3번만 주로 다루는 연주자로 피아니스트 성향이 나뉘곤 한다. 따라서 전곡을 담은 음반의 경우 곡에 따른 연주 편차가 심한 편이라 고루 만족스러운 음반은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나 유명해 교과서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게자 안다(1921~1976)의 음반도 2·3번보다 1번이 처지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우리치오 폴리니(1942~)는 1·2번, 크리스티안 지메르만(1956~)은 1번, 그리고 마르타 아르헤리치(1941~)는 3번만 녹음했다.

최근 선보인 안드레아스 헤플리거(1962~)의 협주곡 3번 음반은 본인의 솔리스트 역량을 증명한다. 멜키/헬싱키 필의 서포트도 빼어나기 때문에 꼭 들어보면 좋을 연주다. 1번 협주곡은 유자 왕(1987~)의 영상을 살펴보기 바란다. 유자 왕의 강렬한 매력이 잘 살아 있는 훌륭한 연주라고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에게 극악의 난이도로 악명 높은 2번은 세 곡을 모두 담은 음반 중 고른 수준의 연주를 선보이는 장 에프랑 바부제(1962~)의 연주가 괜찮다.

글 송준규(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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