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6월 21일 9:00 오전

“신간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외”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외

사람이 예술이다

글 박서정 기자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조진주 저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솔직당당한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1988~)는 독보적인 존재다. 2014년 본지에 기고한 ‘굿바이! 콩쿠르’는 기성 음악 체제에서 벗어나겠다는 신예 연주자의 선언문에 가까웠다. 그래서일까. 그의 첫 에세이집 출간은 오히려 늦은 감마저 있다. 네다섯 살에 악기를 시작해 일찍이 클리블랜드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난 조진주는 17세에 몬트리올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콩쿠르와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까지 우승을 거듭했다. 평생 해야 할 일이 너무 빨리 정해져 버린 삶.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던진 수많은 질문과 답이 이번 에세이에 녹아있다. 한 명의 연주자이자 사람으로서 느낀 양면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써낸 그 용기에 끝내 박수를 보내게 된다.

15,000원 | 아웃사이트

©Kyu-Tae Shim

#책 속으로

#13쪽 #연습이 체질이라면 #연주는 반복과 단련의 결과

나는 체질적으로 연습이 힘들다. 그게 뭐든 한 가지를 반복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고역이겠지만, 나는 산만하고 의지력도 약해 더욱더 힘이 드는 것 같다. 매일매일 생각한다. 연습 좀 안 해도 악기에서 원하는 소리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내가 상상하는 소리가 몸뚱아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악기로 전달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연주자는 음악을 체화하는 직업이다. 음정의 차이를 매순간 동물적으로 판단해 손가락의 방향을 틀어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몸의 감각도, 음악적인 지적 감각도, 모두 최상이 되어야 한다. 연주자의 삶은 흡사 장인의 삶처럼 이런 감각들을 반복적으로 단련하며 그 깊이를 더하는 것인데, 이 작업에 필요한 끈기가 천성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내겐 큰 콤플렉스다.

 

#32쪽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워지는 아이들 #폭력 같은 경쟁

생각해보면 즐거운 어린 시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종료된 셈이다. 그곳은 어른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4학년인 내 또래 아이들은 이미 계획적으로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워지고 있었다. (…) 많은 어른의 야망과 책임감이 얽히고설킨 한예종에서 갓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들은 한계점까지 경쟁했다. 과열된 경쟁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장려되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연습실 안에서 울고 있거나 얻어맞는 아이들을 보는 게 두렵고 무서웠지만 곧 익숙해졌다. 우리는 너무 어릴 때 실패를 경험했고 모두 함께 패배자가 됐다. (…) 2000년대 아이들은 1800년대 베토벤처럼 맞으면서 재능을 키워나갔다. 200년 세월이 무색했다.

 

#52쪽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모범생이거나 연예인이거나

나는 특히 두 종류의 사람을 보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열등감이 폭발한다. 첫 번째는 굉장히 틀에 박힌 모범생 같은 스타일의 연주자다. (…) 악보처럼 정확하게 딱 떨어지는 연주를 듣고 싶어 하는 음악가와 관객은 생각보다 많고, 특히 권위적인 선생님들은 이렇게 연주하는 제자들을 밀어주려 할 때가 많다. (…) 두 번째는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넘치는 연주자들이다. (…) 이런 상반된 두 가지 타입에 유난히 자존감이 박살나는 건 아마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는 될 수 없어서일 것이다. (…)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특별히 예술적인 직업을 가지기에 나는 너무 평범한 사람인가? (…) 완벽한 테크니션도, 매력적인 연예인도 아닌 나는 도대체 어떤 강점을 갖고 살아남아야 하는 연주자인가?

 

#198쪽 #계속하는 수밖에 #음악은 사랑하는 대상이자 나의 업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아끼는 게 꼭 행복하고 즐거운 일일까? 사랑은 행복과 연결 짓기엔 너무 많은 욕망을 동반한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게 과연 ‘사랑’이라는 단어의 어감처럼 순수할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연습을 하고, 연주를 하고, 음악을 다듬는 행위를 지속하는 이유는 단순히 내가 음악을 ‘사랑해서’는 아니다. 음악에 깊이 몰입한 그 순간, 내가 어떤 무형물의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에 깊이 중독돼 있다. 몸을 움직여 소리를 만들고 싶은 강력한 충동은 어느새 인생의 업이 됐고, 이제는 이 업에서 나라는 존재를 떼어내 생각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쩌겠는가, 계속하는 수밖에.


소리가 노래로 춤을 추다

황봉구 저

 

시인 황봉구(1948~)의 음악비평집이다. 서문을 여는 글귀는 자작시 ‘사람소리’에서 따왔다. ‘하늘이, 땅이 소리이니 만물이 소리 속에 산다’라는 시구처럼, 저자는 ‘만(萬)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아마추어가 출연하는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부터, 록과 재즈, 클래식 음악과 전통음악에 이른다. 현대음악의 조류를 분석한 1부에 이어 2부는 국악그룹 ‘블랙스트링’, 작곡가 양진모의 한국가곡, 원일의 곡 ‘Bardo-K’ 등 작품에 대해, 3·4부는 최우정·말러·바흐 등 작곡가에 대해 비평한다. 통찰력 있는 해석과 시적 감수성으로 음악에 의의를 더한다.

30,000원 | 파란


예술의 주름들

나희덕 저

 

‘시적인’ 예술 작품을 마주한 나희덕(1966~) 시인의 감응을 펴낸 산문집이다.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조동진,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화가 마리 로랑생·M.C. 에셔 등의 작품 세계에 대한 사유를 적었다. 목차는 예술가들은 특정 장르나 시대로 구분하지 않는다. 이들을 묶어내는 것은 오직 저자가 그들의 예술로부터 길어 올린 메시지와 태도이다. 이를 바탕으로 책은 생태적 감수성(1부), 여성주의 정체성 탐색(2부), 예술가적 자의식의 탐구(3부), 장르의 경계를 흔드는 실험(4부), 시와 다른 예술의 만남(5부)으로 구성된다.

16,000원 | 마음산책


발레리노 이야기

이영철 저 | 김윤식 사진

이만큼 생생하고 솔직한 입문서가 있을까.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 이영철(1977~)이 들려주는 발레리노 이야기다. 남성용 타이츠를 민망해하던 발레와의 첫 만남부터 발레리노가 된 이후의 일상과 무대 경험을 자세히 기록했다. 나아가 대표적인 발레 작품 속 발레리노 캐릭터 분석과 현재 안무가로 활동하는 저자의 작품 ‘빈집’ ‘간’ ‘Dance to the Liberty’에 대한 뒷이야기도 전한다. 스무 살에 뒤늦게 발레에 입문한 만큼, 초심자라면 공감할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풀어낸다.

12,800원 | 플로어웍스


이야기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이야기를 만든다

이강백·이상란 대담 | 박상준 정리

희곡작가 이강백(1947~)의 데뷔 50주년을 맞아 그의 연극과 삶을 돌아보는 대담집이 발간됐다. 대담은 2017년 3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총 열한 번 진행됐으며, ‘이강백 희곡전집’ 1~8권을 연대기 순으로 훑으며 1971년부터 2014년까지 극작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담자로 참여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이상란 교수는 “한 개인을 심층적으로 천착하면 그 안에 이미 역사가 담겨 있다”라며 이강백 대담집이 한국연극사의 한 궤적을 드러내는 의의를 지님을 밝혔다.

25,000원 | 평민사


배우에 관한 역설

드니 디드로 저 | 주미사 역

“훌륭한 배우라면 판단력이 좋아야 한다. 배우는 냉정하고 침착한 관찰자여야 한다.” 계몽사상가 드니 디드로(1713~1784)의 연기론에 관한 책이다. 디드로는 배우의 연기에 집중해 논의를 전개한다. 그는 좋은 연기는 감수성에서 나오지 않으며, 그 역할에 어울리는 행동과 말·표정·목소리·움직임 등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익혀서 표현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즉 타고난 것이 아닌 인위적인 연구와 계산, 기교가 자연스러운 연기를 만든다는 것이 바로 디드로가 말하는 배우의 역설이다.

10,000원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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