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이라는 상상력의 자극제, 아리오단테·리날도·세멜레&헨델-음악의 세계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7월 26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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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이라는 상상력의 자극제

아리오단테·리날도·세멜레&헨델-음악의 세계인

헨델-음악의 세계인
로맹 롤랑 저 | 임희근 역 | 포노 | 2019

책 ‘헨델-음악의 세계인’에서 저자 로맹 롤랑(1866~1944)이 그리는 헨델(1685~1759)은 세속의 음악가이자 속세의 예술가다. 헨델의 스승 빌헬름 차호(1663~1712)가 가르친 것은 “하나의 스타일이 아니라 여러 나라 사람들의 모든 스타일이었다”. 그 가르침 위에 헨델은 ‘세속’의 모든 것을 끌어안았다. “어디에서나 헨델은, 할레에서 받은 교육에 따라 끊임없이 가장 훌륭한 예술가들과 그 작품을 자기 것으로 삼았다. (…) 가는 곳마다 그는 외국 작품들을 사들여 쌓아 놓고 베끼거나 혹은 읽다가 눈에 띄는 표현이나 생각들을 급히, 그리고 종종 부정확하게 대충 써 스스로를 음악적 기억의 보물 같은 존재로 만들었다.(111~112)”

그뿐만 아니다. “그는 비단 유식하고 세련된 음악의 원천에서만, 음악가들의 음악에서만 물을 길어 올린 것이 아니고, 가장 단순하거나 향토적인 대중음악이라는 시냇물도 마시곤 했다. 그는 이런 것들을 좋아했다. 그의 육필 악보에 달린 지시사항에서는 런던 거리의 함성이 들린다.”(112)

보편적인 삶을 들이마시고 이에 동화된 천재 헨델. 롤랑은 1·2부에 나눠 헨델의 생애, 미학과 작품을 살펴본다. 그 가운데 저자가 바라보는 헨델의 매력은 “음화, 즉 음악으로 풍경과 자연의 인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스타일화된 그림, 베토벤의 말처럼 ‘그림이라기보다는 감각의 표현’, 즉 우박이 쏟아지면서 치는 폭풍우라든가, 잔잔하거나 성난 바다, 한밤주의 커다란 그림자, 영국 시골에 내리는 황혼, 달빛 받은 공원, 봄 새벽, 새들의 깨어남 같은 것을 시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138)

이 감각의 집적체는 오늘날 오페라연출가와 지휘자들에게 상상력의 캔버스가 되고 있다.

 

 

 

 

리날도 페데리코 사르델리(지휘)/마지오 무지칼레 피오렌티노 오케스트라/라파엘레 페(리날도)/ 피에르 루이지 피치(연출) Dynamic 37896(DVD)

문학적 헨델이냐, 시각적 헨델이냐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다섯 남녀의 애증이 펼쳐지는 ‘아리오단테’(1735)는 헨델 사후에 잊혔다가, 1990년대 중반에 재조명된 작품이다.

아리오단테 왕자(체칠리아 바르톨리)와 스코틀랜드 왕의 딸이자 왕자의 약혼자인 지네브라(카트린 루에크)의 이야기다. 폴리네소(크리스토프 뒤모)는 지네브라의 시녀인 달린다(산드린 피오)를 이용해 공주가 자신에게 구애를 했다고 아리오단테가 믿게 만든다. 절망한 아리오단테는 바다 절벽에서 몸을 던진 것으로 소문나고, 지네브라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폴리네소는 자신의 모함임을 고백하며 아리오단테와 지네브라는 다시 만난다.

201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아리오단테’의 연출은 크리스토프 로이(1962~)가 맡았다. 함부르크·뮌헨·빈·잘츠부르크 등 오페라의 중심지에서 헨델을 선보여온 스페셜리스트다.

그가 ‘아리오단테’에서 보여주는 간소화된 소품, 텅 빈 무대는 시각을 자극하는 미장센에 집중하지 않겠다는 뜻 같다. 같은 해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코른골트 ‘헬리아네의 기적’에서도 같은 구도를 취했다. 다만 문학적 텍스트의 결합과 창조적 짜깁기로 서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로이는 16세기 이탈리아 서사시 ‘미친 오를란도’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랜드’의 주인공 이름이 같다는 것에서 착안해 아리오단테가 점점 여성화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바로크 오페라는 한 사람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퇴장하면, 다음 캐릭터가 나와 노래하고 퇴장하는 식이 주를 이룬다. 베르디나 바그너처럼 여러 인물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여 엉키고 안기고 뿌리치는 식이 아니다. 독창의 연속이며, ‘서사’보다 한 독창자의 ‘음악’이 더 와 닿는 이유다.

2020년, 피렌체에 위치한 마지오 무지칼레 피오렌티노에 오른 ‘리날도’(1711)의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1930~)는 이러한 바로크 오페라의 문법을 미장센에 십분 녹여 넣는다. 독창을 부르는 모든 캐릭터를 단 위에서 노래하게 하여, 바로크 오페라 특유의 독창자를 더욱 부각시킨다. 성악가들은 제라르 코르비오(1941~)의 영화 ‘파리넬리’나 ‘왕의 춤’의 등장인물들처럼 고증에 고증을 더한 화려한 복식과 가발을 착용했다.

흥미로운 점은 검은 옷을 입은 보조출연자들이다. 그들은 바퀴가 달린 단을 밀어 이동시키고, 출연자들의 망토를 잡고 흔들어 바람의 효과를 일으킨다. 이들의 존재와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게끔 피치는 무대의 조도를 최대한 낮췄다. 대신 성악가들을 향한 핀 조명은 강한데, 이로 인해 성악가들은 제단 위에 올라선 그리스 조각상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상력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일본 전통극 가부키(歌舞伎)에 ‘구로코’(黑子)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말 그대로 자신을 어둡게(黑) 하여 극의 진행을 돕는 자(子)이다. 2012년 LG아트센터에 내한한 피터 브룩의 ‘마술피리’(모차르트)에서도 구로코 같은 인물들이 나왔다. 그 때는 흑인 출연진이 이를 맡았다. 피치가 연출한 ‘리날도’를 보고 있으면, ‘아리오단테’의 로이가 확실히 문학적 서사에 기반을 두고 있음이 느껴진다. 독창자의 등·퇴장이 이어지는 바로크 오페라의 특유의 규칙을 최대한 살린 피치의 기법에 비해, 로이는 설령 노래를 부르지 않는 캐릭터도 무대에 등장시켜 일종의 드라마를 만들기 때문이다. 한편, 피치만큼 등장인물들의 영웅적 노래 대결이 펼쳐지는 바로크 오페라의 ‘허장성세’를 잘 표현해낸 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멜레
존 엘리엇 가디너(지휘)/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몬테베르디 합창단/
루이즈 앨더(세멜레)/후고 하이마스(주피터)/토머스 구트리(연출)
EuroArts 2057614(Blu-ray)

그래도 정답은 음악의 헨델이다

헨델은 당시 위대한 카스트라토 조반니 카레스티니를 위해 ‘스케르차 인피다’를 썼다. ‘아리오단테’에서 주인공이 약혼자의 ‘부정’을 노래하는 곡이다. 바순의 비애에 찬 반주에 감정을 한껏 살린 메조소프라노 바르톨리(아리오단테)의 목소리에서 비애의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연출가들이 헨델의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에 온갖 변신의 옷을 입혀도 헨델의 음악적 정수는 변함이 없다. 존 엘리엇 가드너(1943~)는 이러한 믿음으로 160여분의 ‘세멜레’(1743)를 끌어간다. 비록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낸 헨델 선배의 정신과 정수는 영국음악의 적자인 자신만큼 잘 아는 이가 없다는 자신감이다. 콘서트 버전으로 진행되는 ‘세멜레’는 연출의 최소화를 통해 헨델의 음악적 뼈대와 근육을 드러낸다. 소품도 작은 소파와 손거울 뿐이다.

테베의 공주 세멜레(루이즈 앨더)는 제우스의 사랑을 받지만,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세멜레의 여동생으로 변신해 마법의 손거울을 전한다. 세멜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나 자신을 숭배하게 되네’를 노래한다. 하지만 그녀가 깊이 빠져버린 허황은 결국 죽음을 불러온다. 나르시즘에 깊이 빠진 자의 비극이다.

엘리엇은 로이처럼 문학적으로, 피치처럼 시각적으로 헨델에게 다가서지 않는다. 그저 지휘자다운 음악적 정공법이다. 다만 신화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종교적으로 채색하고, 교훈적인 분위기로 마무리한다는 점에서 그 역시 연출가의 한 면모를 보여준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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