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7월 13일 9:00 오전

“EDITORS’S NOTE
기자 공연수첩”

 

©프로젝트그룹 일다

1인극을 성사시키는 감각적 자극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6월 1~27일 국립정동극장

암전 상태에서 스피커에서 나오는 심장 고동 소리, 이윽고 들려오는 배우의 독백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무엇인지, 그 인간의 심장, 태어난 순간부터 활기차게 뛰기 시작해서 그 일을 반기며 지켜보던 다른 심장들도 덩달아 빨리 뛰던 그 순간 이래로 그 심장이 무엇인지 (…)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무엇인지, 스무 살 난 육신의 블랙박스, 그것이 무엇을 걸러 내고 기록하고 쟁여 뒀는지, 정확히 그게 뭔지 아무도 모른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시몽 랭브르라는 청년의 심장이 하루 동안 겪는 일을 그린다. 심장이 주인공이라니? 정확히는 한 사람의 몸에서 다른 사람의 몸으로 심장이 이식되기까지 그 상황을 둘러싼 여러 인물의 반응과 심리, 이해관계를 그린다. 프랑스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1967~)의 동명의 장편 소설이 원작이다(각색 에마뉘엘 노블레·번역 임수현). 소설을 원작으로 한 문학적이고 은유적인 대사, 배우 혼자서 펼치는 1인 16역의 연기. 관객의 적극적인 관람 행위가 필요한 작품일 것이라 예상했다. 예상을 깨고 이 소설을 ‘친절한 1인극’으로 만든 것은 무대 연출(민새롬)이었다. 음향·영상·조명효과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몰입감을 높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음향효과였다. 서핑 보드에 맞부딪치는 파도소리, 막 태어난 아들을 향해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아버지의 목소리, 줄리엣을 힘껏 쫓아갈 때 내리던 빗소리… 모두 스무 살 청년의 심장을 뜨겁게 뛰게 했을 소리들이었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배우의 역할은 ‘서술자’다. 3인칭 전지적 시점에서 극의 맥락과 캐릭터의 상황을 설명하다가 일순간 여러 캐릭터의 입이 되어야 한다. 요컨대 극 중 서술자와 인물 사이를 얼마나 매끄럽게 오가느냐가 관건이다. 지금 누구의 시점인지 관객이 헷갈리지 않게 하는 것도 배우의 몫이다. 배우 손상규는 16개 배역 중 시몽 랭브르, 그의 부모,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장기이식센터의 담당자 등 주요 인물을 성격적 특징과 말투를 다르게 연출하여 차별성을 두었다. 서술과 대사를 오가는 부분에서는 각 인물의 특성을 반영해 연기하는 것으로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연극의 결말부, 청년에게 속했던 육신의 한 조각은 50대 여성의 몸으로 이식되어 봉합까지 깨끗하게 완료된다. 감상적인 태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관객에게 남는 것은 묘한 신비감이다. 생명의 신비, 그리고 이 순간에도 내 몸 안에서 쿵쿵 뛰며 나를 살게 하는, “지금 들리는 것은 분명 최초의 박동, 여명을 알리는 첫 박동입니다.”

글 박서정

©국립극장

고선웅표 창극!

국립창극단 ‘귀토-토끼의 팔란八難’

6월 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리모델링한 극장 해오름에 앉았다. 분장실에서는 연습 소리가 들린다. 목청을 풀던 창극 단원들이 하나 둘 무대에 올랐다. 언덕에 모인 광대들은 함께 노래하다가 잔치에 모인 손님들께 넙죽 절했다. 물끄러미 보다가 잠시 울컥했던 건 ‘해오름에서의 떼창’이 내심 그리웠기 때문이다. ‘귀토-토끼의 팔란八難’(이하 ‘귀토’)의 막이 올랐다.

이제는 ‘고선웅표 창극’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것 같다. 이전에 고선웅은 국립창극단과 두 번의 협업을 선보였다. 잃어버린 판소리 일곱 바탕 중 하나인 ‘변강쇠타령’을 재해석한 ‘변강쇠 점 찍고 옹녀’(2014)는 그야말로 화제였다. 흥보가를 토대로 재구성한 창극 ‘흥보씨’(2017)의 반응은 엇갈렸다. 하나 두 작품 모두 고전을 소재로 대담무쌍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이번 세 번째 협업에서는 판소리 ‘수궁가’를 ‘제대로’ 비틀었다. ‘귀토’는 수궁가 그 후의 이야기다. 대뜸 무대에 등장한 토부(이광복)와 자라(유태평양)가 거칠게 싸운다. 떼어놓은 간을 찾아 함께 육지로 돌아온 토부와 자라. 토부가 한 대 휘갈기자 자라의 등짝이 뒤집힌다. 토부는 자라에게 “예끼 시러베 발기를 갈 녀석”이라며 욕을 내뱉는다. 원작의 가장 끝부분이, 바로 ‘귀토’의 시작점이다. 토끼는 애걸복걸하는 자라에게 “복어의 독한 내장만 골라서 용왕에게 갖다주라”며 홀연히 사라진다. 극중 주인공은 용궁에서 무사 탈출한 토부의 아들 ‘토자(김준수)’이다. 부모가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자 토자는 천애 고아로 남는다. 서러운 마음에 토끼 눈알 붉히며 엉엉 운다. 아비를 잃게 한 하늘이 싫고, 어미를 잃게 한 땅이 싫다. 그렇다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바다가 아닐까? 험난한 산중살이에 질린 토자는 미지의 수궁을 제 발로 찾아간다.

수중에 간 토자는 간을 탐내는 용왕을 만난다. 뭍이나 물이나 험난한 건 다 거기서 거기다. 토자는 고단한 민초들의 삶을 공감하며 동정여론을 일으킨다. 제철 음식을 찾는 육지 욕망 때문에 그물에 걸려, 바늘에 낚여, 가족을 잃은 민중을 위로한다. 마무리까지 유쾌하다. 백성들의 고충에 공감한 용왕(윤석안)이 갑자기 희한한 트림소리를 낸다. 용왕의 병명은 ‘급체’였다. 수국 백성들을 괴롭히고, 토끼의 생명까지 탐했던 용왕이 잘못을 뉘우치자 얹혔던 모든 게 다 내려간다. 고선웅은 ‘수궁가’를 재탄생시켜 이 시대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입증했다. 판소리가 토대인 창극의 연출은 덜어내면 덜어낼수록 좋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판소리는 무대 위에서 부채 하나로 천만 대군을 불러오기도 한다. 광대의 노련한 연기력만 있다면 ‘산중’과 ‘수중’을 넘나드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를 잘 아는 연출가 고선웅은 난잡한 무대미학은 덜어내고 오롯이 ‘극’ 자체로 승부수를 띄웠다.

코로나 시대 동안 창극단은 ‘아비. 방연’ ‘트로이의 여인들’처럼 어두운 작품을 주로 올렸다. 우리는 삶의 터전을 나와 공연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한이 서린 외침만 듣다가 돌아갈 때면 마음이 영 무겁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어수선하지만 ‘귀토’를 통해 웃는 잠깐의 시간이 소중했다. 이 시대 그 어디에도 평화로운 미지의 세계는 없다. 바람이 없는 곳으로 도망갈 것이 아니라,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소망의 끄나풀만 놓지 않는다면 바로 여기가 유토피아일 테다. 공연장에서 한바탕 신명 나게 웃을 수 있다면 더 좋고. 글 장혜선

COLUMN

일대일 음악회,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Zoom) 비디오 커뮤니케이션즈가 최근 발표한 ‘화상회의 활용에 관한 인식조사’(2021) 보고서에 따르면,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업무환경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친밀감의 부재’였다.

‘친밀감’은 공연예술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무대 위 출연진과 함께 호흡하고, 나란히 앉은 다른 관객과 순간의 경험을 공유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공연이 대면 공연의 당연한 대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대면에서와 같은 정서적 영향을 갖지 못한다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지난 6월 발간된 ‘2020년 서울시민 문화향유 실태조사’(서울문화재단)는 온라인 대체 관람과 실제 현장 관람 경험에 차이가 있으며(70.6%), 특히, 문화예술 관람 기회의 제한이 미친 영향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가 좋아졌다’는 항목이 가장 큰 낙폭(-9.9)을 보였음을 시사했다.

관객이 갈망하는 대면 공연의 ‘친밀감’을 (어쩌면 일반적인 대면 공연보다 더) 경험할 수 있는 동시에,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완벽하게 준수할 수 있는 음악회의 한 형태가 부상했다. 한 명의 연주자와 한 명의 관객이 공연에 참여하는 전부인, 일대일 음악회다.

브루클린 음악원은 지난 5월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일대일 콘서트를 열었다. 단 한 명의 관객은 브루클린 네이비 야드의 건물 옥상에서 연주자를 마주하고 앉는다. 10분 남짓한 연주에는 첼리스트 요요 마가 설립한 실크로드 앙상블의 멤버, 뉴욕의 프리랜서 음악가 등이 참여했다. 2시간이 훌쩍 넘기도 하는 일반적인 클래식 음악회와 비교하면 훨씬 짧지만,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유대감은 더 높다. 환호나 박수를 보내지 않아도, 서로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진하게 남은 연주의 여운을 나눌 수 있다.

미 대륙의 반대편 끝에서도 일대일로 관객을 맞고 있는 단체가 있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다. 단원은 20~30분간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직접 구성해 관객에게 직접 설명하고, 연주를 시작한다. 이들의 무대는 데이비스 심포니홀의 야외 공간이었다.

사실 일대일 음악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실험되어온 음악회의 형태다. 2019년 보스턴에서는 광장에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에서 단 한 명을 위한 게릴라 음악회를 열었다. 광장을 찾은 행인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10일간 60명의 음악가가 4,000여 명의 관객을 일대일로 만났다. 한편, 앞서 언급된 브루클린 음악원의 일대일 음악회는 201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단원 슈테파니 빈커와 동료 음악가들이 모여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빈커는 일대일 방식이 특히 팬데믹 시대에 적합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프로그램을 확장했다. 이로써 미국뿐 아니라 일본, 호주 등에도 ‘일대일 음악회’의 씨앗이 뿌려지게 됐다. “10여 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경험은 훨씬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한 관객이 남긴 후기다. 일대일 음악회에서는 응축된 시간이 흐른다. ‘함께 있음’의 갈망을 가장 강력하게 채워줄 또 하나의 좋은 대안이 아닐까?

글 박찬미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일대일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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