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아이슬란드 음악창고, 황량한 땅에서 일군 시작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6월 14일 9:00 오전

“INTRODUCTION
아이슬란드 음악창고”

 

당신이 몰랐던 아이슬란드 음악창고

황량한 땅에서 일군 시작

뒤늦게 유입된 역사는 그 어떤 새로움도 허락했다

 

힐뒤르 구드나도티르 ©Antje-taiga-jandrig

욘 레이프스

다니엘 비야르나손

비킹귀르 올라프손

요한 요한손 ©Jonatan Gretarsson_ DG

안나 소르발스도티르 ©Saga Sigurdardottir

세운 소르스테인도티르

 

 

 

 

 

 

 

 

 

 

 

 

 

 

 

 

2,000km, 북대서양에 위치한 섬 아이슬란드와 유럽 대륙 사이 거리다. 그 거리감을 극대화하는 건 ‘얼음의 땅’이라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 이름에 얽힌 설이 있는데, 이 땅을 처음 발견한 바이킹이 다른 민족의 침입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바이킹은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유럽에서 가장 늦게 클래식 음악이 당도한 곳이 바로 아이슬란드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처음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진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중세 시대 정립된 네 성부의 코랄 합창이 이때 처음 연주됐다. 당시만 해도 아직 기악은 존재하지 않았다. 최초로 교향악 라이브 연주가 펼쳐진 건 1926년, 투어를 온 독일의 함부르크 필하모닉(현 함부르크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에 의해서였다. 이렇게 아이슬란드(수도 레이캬비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클래식 음악을 수용해 나갔다.

 

자유의 땅을 그린 음악부터, 스크린의 ‘조커’까지

유럽 대륙에서 축적된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덕분에, 아이슬란드의 클래식 음악은 자국의 자연환경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색다른 모양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아이슬란드가 그만의 감성을 담은 현대음악으로 정평이 난 이유다.

특히 이들의 음악은 미니멀리즘 음악에서와 같은 명상적이고 종교적인 분위기나, 스산하고 침체한 감성을 공통적으로 자아낸다. 국토의 80%가 빙하와 호수, 용암 지대로 구성돼 차로 10분만 이동하면 완전한 적막을 경험할 수 있고, 낮이 아주 짧아 1년의 대부분은 어둠 속에서 지내야 하는 척박한 환경이 이런 감성에 영향을 미쳤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현대음악 작곡가로 처음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인물은 요한 요한손(1969~2018)이다. 레이캬비크에서 태어나 11세부터 피아노와 트롬본을 익힌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전통적인 음악 교육 방식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대학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전공했다. 대신 10년간 인디 록 밴드에서 작곡과 연주를 이어가며 클래식 음악과 전자 음악 등으로부터 고루 영향받았다. 그로써 어쿠스틱 악기의 울림에 디지털 프로세싱을 더한 고유의 음악 언어를 구축했다.

요한손이 홀로 세운 음악 세계는 2002년 발매된 첫 솔로 음반 ‘엥글라뵈른’(British Touch)을 기점으로 세상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후로 금관 앙상블, 현악 4중주, 관현악 등 다양한 편성의 음악을 실험해 음반으로 남겼다. 영화음악에도 참여해 필모그래피를 쌓던 그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삶과 사랑을 다룬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의 음악으로 골든 글로브상 음악상을 거머쥐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신경을 긁는 듯 왜곡된 현악과 스산하게 일렁이는 기타 등의 사운드는 요한손의 음악에 한결같이 흐른다. 그 독창성을 알아본 도이치 그라모폰(이하 DG)은 2016년 그와 계약을 맺고 솔로 음반 ‘Orphee’를 발매했다.

광활한 자연을 작품의 뿌리로 삼는 경향은 아이슬란드 출신의 작곡가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안나 소르발스도티르(1977~)는 풍경의 소리를 듣는 예민한 감각으로 무장한 작곡가다. 2018년 뉴욕 필이 위촉해 에사 페카 살로넨의 지휘로 초연한 교향시 ‘메타코스모스’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미지의 세계를 만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다니엘 비야르나손(1979~)은 2019년 LA 필의 의뢰로 푸른 지구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을 표현하는 ‘우주에서 나는 지구를 보았네’를 발표했다. LA 필의 창단 100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에서 구스타보 두다멜, 주빈 메타, 에사 페카 살로넨 세 지휘자가 동시에 지휘한,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 있어서 우주만큼이나 광대한 규모의 작품이었다.

지난 2019년 세계 영화계를 뜨겁게 달군 ‘조커’의 음악감독 역시 아이슬란드 출신의 첼리스트이자 작곡가인 힐뒤르 구드나도티르(1982~)다. 그는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 음악상을 거머쥔 ‘조커’ 이전에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현장을 재현한 미국 HBO 드라마 ‘체르노빌’(2019)의 음악을 맡아 그래미 어워드를 석권했다. 요한 요한손과의 인연으로 발 들인 영화음악과, 지금까지 발매된 네 장의 정규 음반에는 자연 앞에 무력할 뿐인 인간의 존재와 인간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보편적 외로움이 그려지고 있다. 동시대 아이슬란드 출신 음악가 중 가장 대중적 인기를 얻은 인물은 피아니스트 비킹귀르 올라프손(1984~)일 것이다. 2017년 DG와 전속계약을 맺고 발매한 ‘필립 글래스’ ‘요한 제바스찬 바흐’ ‘바흐 리워크’ ‘드뷔시·라모’에는 아이슬란드의 청명하고도 시린 바다를 연상케 하는 음색이 관통한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리플렉션’ 시리즈를 통해서는 드뷔시 ‘피아노를 위하여’ L95 등에 전자음향이나 성악 선율을 덧입히는 과감한 실험도 하고 있다.

세운 소르스테인도티르(1984~)는 레이캬비크에서 태어났지만, 오랫동안 미국에서 거주한 첼리스트다. 그는 자신처럼 타지 생활을 오래 한 아이슬란드 작곡가 4인의 첼로 무반주 작품들을 한데 모아, 음반 ‘Vernacular’(Sono Luminus, 2019)를 발매했다. 수록곡 중 할그림손의 ‘솔리테르’와 스마라손의 ‘오’는 망명자의 비애를 표현했다. 욘스도티르의 곡 ‘달의 48개 영상’에는 한밤중 녹음한 피오르의 소리를 결합해, 음악으로 아이슬란드의 자연환경을 상상해볼 수 있게 했다.

 

역사의 시작

위와 같은 음악가들이 독특한 현대음악 씬을 일구기 전, 그 기반을 닦은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욘 레이프스(1899~1968)다. 레이캬비크에 거주하던 그는 10대에 들어 피아노를 접한 이후 그리그와 베토벤의 작품을 독주회에서 선보일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가가 되겠다는 그의 열망을 당시의 음악 교육 인프라가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이에 레이프스는 1916년 말 독일로 이주해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피아노, 지휘, 작곡을 섭렵한 그는 이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함부르크 필하모닉 등의 유서 깊은 악단을 지휘하며 성공적인 음악가의 길을 걸어 나갔다. 특히 함부르크 필하모닉과는 1926년 여름,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그리고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한 작은 덴마크령 페로 제도를 아우르는 투어도 진행했다. 이 투어로 아이슬란드에서는 최초의 교향곡 실황 연주가 열린 셈이었다.

레이프스가 작곡을 시작한 건, 고국의 민속 선율을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발견하고서였다. 작곡을 시작한 무렵엔 지휘와 피아노 연주도 병행했지만, 점차 ‘아이슬란드 고유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깊이 몰두했다. 1925~1928년에는 아이슬란드 전역을 여행하며 민속 선율을 수집해, 이후 자신의 작품에 기초 요소로 활용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슬란드의 자연경관을 적극적으로 음악에 끌어들였다. 레이캬비크의 동쪽 110km에 있는 활화산 헤클라 화산을 묘사하는 ‘헤클라’ Op.52, 유럽 최대의 평균 유수량을 가진 데티포스 폭포로부터 영감받아 쓴 ‘데티포스’ Op.57 등이 대표적이다.

 

아이슬란드의 두 악단

클래식 음악의 유입이 19세기 중반 이후 이뤄졌기 때문에, 아이슬란드의 음악 단체들은 그 역사가 길지 않다. 자체적으로 작은 앙상블이 최초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욘 레이프스와 함부르크 필하모닉이 아이슬란드를 처음 찾았던 1926년 무렵이다. 당시 레이캬비크 오케스트라라고 불린 이 단체는 수도인 레이캬비크에서만 몇 차례의 공연을 열었다. 1950년에 들어서면서 단체는 ‘아이슬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국가를 대표하는 단체로 거듭났다.

아이슬란드 심포니에는 현재까지 아홉 명의 음악감독이 재직했다. 올라브 셸란·카르스텐 아네르센(노르웨이), 장 피에르 자킬레(프랑스), 페트리 사카리·오스모 벤스케(핀란드), 얀 파스칼 토르틀리에(프랑스) 등이 악단의 성장을 견인했다.

구소련 출신의 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1937~)와도 특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아시케나지는 아이슬란드의 피아니스트 소룬 요한스도티르와 결혼해 1972년 이곳으로 귀화했다. 그때부터 이어진 인연으로 아시케나지는 현재 아이슬란드 심포니의 명예지휘자로 무대에 서고 있다. 악단의 현 상임지휘자는 2018년 선임된 핀란드 출신의 에바 올리카이넨(1982~)이다.

1974년에는 아이슬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뤼트 잉골프도티르가 레이캬비크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창설했다. 당시 유학을 마친 후 귀국한 젊은 음악가들 12인으로 꾸려졌다. 바로크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실내악을 정기적으로 공연함으로써 연주자들에게는 도전 정신을 고취하고, 관객에게는 더욱 풍성한 레퍼토리를 소개하겠다는 이중의 목표로 움직였다. 오늘날에는 3명부터 35명에 이르는 다채로운 편성의 음악을 무대에 올리고 있으며,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라인하르트 괴벨 등 저명한 지휘자들과도 협업하고 있다.

 

레이캬비크에 위치한 자연을 닮은 공연장

아이슬란드는 2011년 수도 레이캬비크에 대형 예술문화 센터 하르파를 개관함으로써 국가 예술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구도심 지역에 흩어져 있던 아이슬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아이슬란드 오페라(1980년 창단)가 하르파의 상주 단체가 되어 풍성한 공연 프로그램을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덴마크와 아이슬란드의 두 건축 디자인 회사가 협업해 탄생한 이곳은 아이슬란드의 빙하 절경을 건물 외관에 옮겨 놓은 듯한 디자인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내 국가의 랜드마크로 거듭났다.

아이슬란드 최초의 클래식 음악 전용홀은 살루린 콘서트홀이다. 1999년 레이캬비크에 개관한 이곳은 300여 석 규모로, 개관 당시 일주일에 2번 정도의 공연을 올렸다. 레이캬비크의 대표 관광지이기도 한 할그림스키르캬는 루터교 교회로, 아이슬란드의 교회들 중 ‘최고’와 ‘최대’ 기록을 동시에 보유한 곳이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74.5m)이자, 5,275개의 파이프로 이루어진 가장 큰 규모의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 할그림스키르캬 프렌즈 오브 아트 소사이어티는 여름마다 세계적 오르가니스트들을 초청해 연주회를 개최한다. 이 밖에도 1982년 창단된 모테트 콰이어, 1996년 창단된 스콜라 칸토룸 두 합창단의 공연이 할그림스키르캬에서 열린다.

 

아이슬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레이캬비크 체임버 오케스트라

하르파

하르파 콘서트홀 내부

할그림스키르캬

창작의 촉매제

레이캬비크 아트 페스티벌과 다크 뮤직 데이스 페스티벌은 독특하고 실험적인 아이슬란드의 예술을 든든히 떠받드는 주춧돌과도 같다.

레이캬비크 아트 페스티벌은 아이슬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레이캬비크 문화센터인 노르딕 하우스의 센터장이었던 이바 에스키란드의 주도로 1970년 시작됐다. 오늘날 북유럽 국가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로, 도시 곳곳의 문화 공간에서 클래식 음악·오페라·연극·무용·시각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개최한다. 축제는 창작의 촉매제이자, 아이슬란드의 문화 다양성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유럽 대륙과 멀리 떨어져 있는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국내외 예술가들 사이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크 뮤직 데이스 페스티벌은 1980년대 아이슬란드 작곡가 협회에 의해 출범한 현대음악제다. 레이캬비크에서 매해 열리며 동시대 실험 음악을 선보이는 장으로 역할한다.

척박했던 자연환경으로, 과거 이 땅은 ‘빈 도화지’였다. 자유롭게 각자의 개성을 펼친 예술가들에 의해 오늘날 아이슬란드의 문화예술계는 밤이면 꽃피는 오로라처럼 색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글 박찬미 기자

 

 

아이슬란드 공화국 (Republic of Iceland)

수도 레이캬비크

인구 약 35 만명(2021년 기준)

종교 루터교(81%), 레이캬비크자유교회(2.1%), 카톨릭(2%)

독립 1944. 6. 17 덴마크로부터

한국과의 외교관계 수립 1962.10.10

 

실푸르(Silfur)

더스틴 오할로란(작곡·피아노)

DG 4839880

아이슬란드의 자연환경은 우리의 감성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칠 만큼 강렬하고 극적이다. 미국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더스틴 오할로란(1971~)이 최근 아이슬란드에 거주하며 작곡한 음악을 발표했다. 그는 이곳에서 ‘은빛 바위’라는 의미의 독특한 크리스털 ‘실푸르’를 선물 받고 그 이미지를 음악으로 묘사했다. 담백한 피아노 선율에 담긴 미묘하고 다채로운 감성으로부터 아이슬란드의 정서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문학과 영화

아이슬란드는 북유럽 신화의 진원지로, 중세 시대 등장한 산문체의 영웅담 ‘사가’가 대표적인 문학 양식이다. ‘반지의 제왕’ ‘호빗’ 등을 쓴 판타지 문학의 아버지 J. R. R. 톨킨이 이런 아이슬란드의 전설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한편, 야외 활동에 제약이 큰 아이슬란드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독서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인구 대비 저술가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10명 중 1명은 1권 이상 책을 출간한 작가인 셈이다.(2013년 통계) 최근에는 북유럽의 서늘하고 황량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물 ‘노르딕 누아르’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등의 아이슬란드 작가들이 주목을 받았다. 우리말로도 여러 권이 번역 출간되었다.

이곳의 자연환경은 영화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외부인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외딴 협곡 마을 바우르달다르를 배경으로 한 ‘램스’(2015), 화산 폭발로 어부였던 천직을 버리게 된 인물의 삶의 무상함과 공허함을 그린 ‘볼케이노: 삶의 전환점에 선 남자’(2011), 설원과 빙하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 피오르에 사는 십 대 소년의 도시 탈출기를 담은 ‘노이 알비노이’(2003) 등은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로, 아이슬란드의 정서와 분위기를 그대로 전한다.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