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4월 29일 2:50 오후
RECORD
이 달의 추천 음반
Selected Record

음악사에 새겨진 위대한 ‘B’
블롬슈테트·베토벤·브루크너
베토벤 교향곡 전곡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Accentus Music ACC60497(5CD)
다큐멘터리
‘음악이 울려 퍼지면 영혼이 말을 건다’
Accentus Music ACC20417(1DVD)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Accentus Music ACC80575(10CD)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는 현역이다. ‘오늘날에도 포디움에 오르는 최고령 지휘자’라는 수식어가 그의 현재를 잘 대변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의 과거를 잘 모를 때가 있다.
1927년 미국 태생의 그는 2살에 부모의 고국 스웨덴으로 이주했다. 이후 스톡홀름 왕립음악원과 웁살라 대학에서 수학했고, 1949년 독일 다름슈타트로 가서 현대음악을, 스위스 스콜라 칸토름 바실리엔시스에서 바로크 음악을 공부했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를 이어갔고, 탱글우드에서 번스타인을 사사했다. 스웨덴 노르셰핑 교향악단 상임지휘자(1954~1962)가 되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오슬로 필하모닉(1962~1968), 덴마크 방송교향악단(1967~1977),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1975~1985), 스웨덴 방송 교향악단(1977~1982), 샌프란시스코 심포니(1985~1995), 북독일 방송교향악단(1996~1997)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1998~ 2005)가 그가 거쳐간 곳이다. 그런 그가 만년을 보낸 라이프치히에 기반을 둔 악상투스(Accentus Music) 레이블은 영상물과 전집 프로젝트를 통해 블롬슈테트의 여생을 기념비로 남기고 있다.
‘음악이 울려 퍼지면 영혼이 말을 건다’(When Music Resounds, the Soul Is Spoken To)는 90세부터 95세까지 블롬슈테트의 시간을 담은 영상 다큐멘터리이다. 여타의 노장 지휘자들이 은퇴 이후의 여생을 즐기고 있는 동안 95세의 노장은 작품과 연주를 가다듬고, 음악의 역사를 새롭게 써가며 생물학적 법칙을 무시(?)하고 있다. 제3가 등장하여 노장의 삶과 예술에 증언할 법도 한데, 카메라와 시선은 오직 노장과 오케스트라 ‘사이’만 담고 있는 것도 매력이다. 그 ‘사이’로 노장의 경험은 물론 음악관과 예술관, 통찰력이 오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와의 리허설은 ‘새 역사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다가오며, 무대는 ‘새 역사가 쓰이는 순간’으로 다가온다.
블롬슈테트가 보여주고 있는 만년의 행보 중 주목해야 할 점은 교향곡에 대한 집중이다. 솔리스트와 음악적 지분을 나눠 갖는 협주곡이 아닌, 지휘자와 악단만이 교감하는 교향곡을 통해 ‘지휘의 순간’을 온전히 남기고, 21세기에 건네줄 ‘지휘론’을 설파하는 듯 하다.
그런 점에서 블롬슈테트 탄생 90주년을 맞아 출시된 베토벤 교향곡 전곡 박스물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녹음은 교향곡 8·3번(2014년), 7·2·9(2015), 6번(2016), 5·1·4번(2017) 순으로 진행되었다. 후기작부터 초기작 순으로, 베토벤의 원류를 따라 올라가는 블롬슈테트의 지휘는 상당히 진취적이다. 명확한 윤곽과 탄력적인 리듬, 유연한 흐름을 조화롭게 공존시킨다.
2024년,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도 발매되었다. 2005~2012년에 걸쳐 녹음된 교향곡 전집이다. 원래 크에르슈탄트(Querstand) 레이블에서 발매됐지만, 라이선스 기간이 만료되어 유통이 잠시 멈추었다. 이를 재출시한 것으로 교향곡 1번(1865/66년 린츠판·1955년 노바크판), 2번(1872년판·캐러건 교정판), 3번(1873년 제1판·1977년 노바크판), 4번(1878/80년·1953년 노바크판), 5번(1875-77년 노바크판) 6번(1879-81년,하츠 판), 7번(1881-83년 하츠 판), 8번(1890년 하츠판), 9번(1887-96년 벤야민 군나르 코어스 교정판)이 담겼다. 녹음이 시작된 때는 2005년. 악단은 신임 리카르도 샤이가 접수했지만 단원들이 일구는 소리에는 블롬슈테트라는 정신적 지주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 느껴진다. 블롬슈타트의 ‘B’, 베토벤과 브루크너의 ‘B’로 대변되는 기념비라 할 수 있겠다.
글 송현민(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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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추천 음반
THEME RECORD
현 위로 올라탄 시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우에노 미치아키(첼로)
La Dolce Volta LDV115.6(2CD)
2020년을 위한 스무 곡의 첼로 소품들
인발 세게프(첼로) 외
Avie AV2561(2CD)
현악 작품은 아슬아슬한 현 위에 오롯이 홀로 서 줄타기 묘기를 벌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도 소음이 될 만큼, 줄 위의 묘기는 한 치의 눈 가림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많은 연주자가 자신을 현 위라는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에노 미치아키(1995~)는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연주자의 발자취를 따라나서다 현 위에 홀로 선 듯하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그가 네 살 때 첼리스트 요요 마의 연주 영상으로 처음 본 이래로 늘 그의 마음에 남아 있었다. 요요 마는 미치아키를 ‘굉장한 첼리스트’라고 극찬했다. 정직하게 작품의 순서대로 담아진 음반에서 미치아키는 2021년에 제네바 콩쿠르 우승자로서 얻은 유명세가 진짜 실력임을 입증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발 세게프의 시험대는 미치아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잊힌 작품을 발굴하고, 동시대 작곡가와 활발하게 협업하는 그녀는 지난 팬데믹 기간에 나이와 성별, 문화를 초월한 스무 명의 다양한 작곡가에게 작품을 위촉했다. 모두 첼로를 위한 소품이며 무반주 작품부터 피아노와의 듀오, 첼로 8중주까지 그 구성 또한 다양하다. 네 개의 디지털 EP로 발매되었던 것을 묶은 음반으로, 두 장의 CD에는 우리의 일상과 창조적 활동을 모두 앗아간 시간에 대한 슬픔 혹은 회고,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새로움이 담겨 있는 듯하다. 허서현
추모의 마음 담아
미셸 코르보 고전&낭만시대 전집
미셸 코르보(지휘)
Erato 5419718678(36CD)
벨리니 ‘노르마’(1960)
마리아 칼라스(노르마)/프랑코 코렐리(폴리오네)/
툴리오 세라핀(지휘)/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외
Warner Classics 5419734463(4LP)
많은 음악가가 우리 곁을 떠날 때, 한편으로는 무력하게 느껴진다. 더 이상 이들의 생생한 연주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음반들을 다시 꺼내 들을 때면, 우리 곁에 다시 음악으로 살아난다.
스위스 출신 지휘자 미셸 코르보(1934~2021)가 남긴 수많은 ‘레퀴엠’과 오라토리오 연주는 언제나 합창 음반 순위에 빠짐없이 손꼽힌다. 2021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를 추모하는 전집이 발매되었다. 첫 번째 전집에서 르네상스, 바로크와 당대음악을 집성했다면, 이번에는 고전, 낭만주의 작품이 담겨있다. 로잔의 한 교회 음악감독으로 시작한 그는 당대음악을 주요 레퍼토리로 삼고 있는 앙상블 보칼 드 로잔을 설립했다. 이번 음반에는 브람스 ‘독일 레퀴엠’을 비롯해 모차르트·포레·베르디의 ‘레퀴엠’과 멘델스존 ‘엘리야’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1923~1977)는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60년 그의 첫 오페라 음반 벨리니의 ‘노르마’가 LP로 발매되었다. 툴리오 세라핀/라 스칼라 오페라가 연주하고 크리스타 루드비히 등 당대 명가수들과의 환상적인 호흡을 선보인 명반으로 손꼽힌다. 그녀는 뉴욕에서 태어나 그리스에서 성악교육을 받았다. 생전 그의 예민하고 고약한 성품을 뒤로하더라도, 그녀가 오페라계에 가져온 반향은 후대 성악가들에게 틀림없이 귀감이 되고 있다. 임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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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 명가의 신보
존 아담스: 관현악 작품집
파보 예르비(지휘)/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Alpha ALPHA874
뮬리: 테너를 위한 노래들
니콜라스 판(테너)/레지널드 모블리(카운터테너)/
브루클린 라이더(현악 4중주) 외
Avie AV2517
음악 하면 선율, 선율 하면 음악이라고 생각하지만, 따라 부를만한 선율이 없는 음악도 존재한다. 편집적인 박자는 눈앞에 부딪힐 듯 다가오더니 등 뒤로 멀리 떠나가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 무한히 반복하는 것만 같지만 조금씩 변화하여, 처음과 끝이 전적으로 다르다. 이 모두가 ‘미니멀리즘’ 음악의 특징이다.
이 개념 안에 포함되는 작곡가는 여럿 있지만, 그중 존 애덤스(1953~)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1970년대부터 주목을 받은 이후 한순간도 자신을 향한 조명을 꺼트리지 않은 그는 지금도 현장의 최전방에서 바쁘게 활보하는 현대음악 작곡가이다. 이번 음반은 지난 2021/22 시즌 스위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에 상주 음악가로 지내며 함께한 녹음으로 ‘트롬바 론타나’ ‘롤라팔루지’ 등을 담았다.
니코 뮬리(1981~)의 ‘이방인’을 담은 음반은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던 테너 니콜라스 판(1979~)의 위촉 작품으로, 첫 녹음이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수학한 니코 뮬리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두 번의 위촉을 받은 탁월한 성악 선율을 쓰는 작곡가이다. 현악 4중주단 브루클린 라이더와 함께한 ‘이방인’은 19세기 낯선 북미 지역을 밟은 이민자의 심정을 섬세히 표현해낸다. 카운터테너 레지널드 모블리와 함께한 신비극(Lorne Ys My Likinge)은 독특한 방식으로 화성을 쌓아 성스러움과 실험성을 동시에 담아냈다. 이의정
로미오와 줄리엣
차이콥스키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 외
마리스 얀손스(지휘)/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BR Klassik 900016
베를리오즈: 로미오와 줄리엣&클레오파트라
조이스 디도나토(메조소프라노)/
존 넬슨(지휘)/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굴벤키안 합창단 외
Erato 5419748138(2CD, DVD)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사랑은 오늘날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사랑과 죽음의 또렷한 대비를 동시에 보여주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두고 많은 작곡가가 곡을 붙였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17년간 함께 했던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1943~ 2019)가 2013년부터 2015년 사이 가스타익에서 남긴 세 개의 연주를 담은 음반이 발매되었다. 그 중 차이콥스키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은 몬태규와 캐퓰릿 두 가문의 대립을 드러내는 강렬한 리듬의 1주제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불안한 사랑의 결말을 떠올리게 하는 2주제로 구성된다. 2019년 얀손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연주는 곡에 담긴 낭만적인 비극을 가감 없이 묘사한다.
‘트로이인’ ‘파우스트의 저주’ 등 베를리오즈 작품 녹음을 이어가고 있는 지휘자 존 넬슨과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니도 베를리오즈의 극적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음반에 담았다. 극의 장면과 이미지를 독창과 합창, 관현악의 구성으로 세밀하게 표현한 베를리오즈는 원작의 서사를 따르지 않고 특정 장면을 주목해 강조했다. 이번 음반에는 앞선 두 음반 녹음에 참여한 바 있는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가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며, 테너 시릴 뒤부와와 바리톤 크리스토퍼 몰트먼이 함께한다. 홍예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