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도:] 2018년
뮤지컬 ‘미녀와 야수’ vs 뮤지컬 ‘메리 포핀스’
THEME RECORD 평론가·칼럼니스트 추천 테마 음반 무대 위에서 더욱 풍성해진 음악과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낸 음악 디즈니가 공연제작 법인인 디즈니 시어트리컬을 설립하고 브로드웨이에 본격 진출할 의사를 밝혔을 때, 많은 공연 관계자는 환영의 인사보다는 걱정 어린 시선을 먼저 보냈다. 1989년 선보인 ‘인어공주’를 시작으로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포카혼타스’ ‘타잔’ 등 애니메이션 필름으로 10여 년간 이어온 디즈니 르네상스가 무대에서까지 재현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1994년 ‘미녀와 야수’를 시작으로 ‘라이온 킹’ ‘아이다’ ‘타잔’ ‘인어공주’ ‘메리 포핀스’ ‘뉴시즈’ ‘알라딘’ 등을 꾸준히 제작하며 디즈니 뮤지컬은 독보적인 색깔을 확보했고, 명실상부 브로드웨이의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듀서로 자리 잡았다. 본 글에서 소개할 추천 음반은 디즈니의 영역을 확장한 두 편의 뮤지컬 음반이다. 애니메이션을 무대로 옮긴 디즈니의 첫 번째 마법 1994년 4월 첫선을 보인 뮤지컬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는 1991년 개봉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무대로 옮긴 디즈니의 첫 브로드웨이 작품이다. 호기심 많고 용감한 소녀 벨과 마법에 걸려 야수로 변한 왕자의 우연한 만남과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는 줄거리는 같지만, 뮤지컬에는 새롭게 추가된 음악으로 한층 풍성함을 더했다. 작곡가 알란 멘켄과 작사가 하워드 애쉬먼이 함께 작업한 애니메이션은 199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과 주제가상, 골든글로브 어워드에서 작품상·음악상·주제가상 등을 석권한 바 있다. 브로드웨이 무대를 위해서는 애니메이션 제작 도중 사망한 애쉬먼을 대신해 팀 라이스가 새롭게 합류해 멘켄과 함께 6곡을 추가로 작업하였다. 공연계의 우려 섞인 시선을 감지하고 있는 창작진과 제작진에게 디즈니월드에서 소개되는 테마파크용 공연과는 확연하게 다른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더욱이 라이스에게는 원작이 지닌 음악의 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추가 창작을 진행한다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멘켄과 라이스의 손길로 탄생한 새로운 음악은 스크린을 벗어난 캐릭터들의 감정과 이야기를 촘촘히 채우며 극의 완성도를 더했고, ‘미녀와 야수’를 향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발판으로 디즈니는 브로드웨이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특히 벨이 야수의 성에 도착해 부르는 ‘집(Home)’, 가스통의 ‘나(Me)’, 벨을 향한 야수의 애절한 감정이 묻어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할 수 없다면(If I Can’t Love Her)’, 벨의 아버지인 모리스의 부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어떤 일이 있어도(No Matter What)’ 등은 각 캐릭터의 섬세한 내면을 효과적으로 전하며 어린이만이 아닌 어른 관객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애니메이션에 소개되어 많은 사람에게 익숙했던 멘켄과 애쉬먼의 곡들 역시 무대에서도 빛을 발했다. 벨이 등장하며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벨(Belle)’, 저녁 식사에 초대된 벨을 위해 뤼미에르와 미세스 폿츠, 콕스워스 등이 함께 부르는 ‘오세요(Be Our Guest)’, 그리고 이 작품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등은 수잔 이건·테렌스 만 등 브로드웨이 배우들의 음성을 통해 다시 한번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멘켄과 애쉬먼이 완성했으나 아쉽게도 애니메이션 필름에서는 누락되었던 ‘다시 인간이 되었으면(Human Again)’도 뮤지컬에는 포함되었다. 브로드웨이 공연은 2007년 7월까지 13년간 공연되었으며, 디즈니의 또 다른 프린세스 뮤지컬 ‘인어공주’에게 바통을 물려주었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은 월트 디즈니 레코드를 통해 1994년 녹음되어 출반되었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합작품 두 번째로 추천할 음반은 뮤지컬 ‘메리 포핀스(Mary Poppins)’의 런던 오리지널 캐스트 음반이다. ‘메리 포핀스’는 1934년부터 1988년까지 시리즈로 발간된 파멜라 린던 트래버스의 어린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신비롭고 완벽한 보모 메리 포핀스가 런던의 뱅크스 가족에게 나타나 벌어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1964년 줄리 앤드류스와 닥 반 다이크 주연의 디즈니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뒀다. 196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과 주제가상, 그래미 어워드에서 영화음악상을 수상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이 작품을 무대로 옮기는 작업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영국 웨스트엔드의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가 디즈니보다 앞서 원작 소설의 무대화 권리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뮤지컬 영화로 많이 알려진 넘버를 손에 쥐고 있던 디즈니와 매킨토시는 오랜 논의 끝에 공동제작을 통해 비로소 뮤지컬 ‘메리 포핀스’를 완성할 수 있었고, 이 작품은 2004년 웨스트엔드, 2006년 브로드웨이에서 각각 개막했다….
1월, ‘객석’이 추천하는 주목할 만한 공연
MUST GO 소프라노 황수미의 ‘오페라 클라이맥스’ 1월 10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평창동계올림픽의 히로인으로 활약했던 황수미의 무대가 새해의 첫 장을 연다. 이날 무대에는 황수미와 바리톤 김주택, 테너 김승직이 함께한다. 독일 본 오페라 극장 주역가수로 활동하며 가곡 반주자인 헬무트 도이치와 영국 위그모어홀을 비롯하여, 독일, 한국 등에서 리사이틀을 가진 바 있는 황수미는 헬무트 도이치와 첫 번째 음반을 준비하는 등 국제적 성악가로서 입지를 차근차근 다져가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가진 리사이틀에서 모두 ‘예술가곡’을 선보였다면, 이번 무대에서는 처음으로 오페라 아리아로 채워질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2014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소프라노 황수미는 힘 있는 가창력과 서정적인 목소리로 단번에 해외 성악계에서 주목받았다. 동시에 독일 본 오페라 극장의 전속 가수로 활동하며 유럽, 남미 등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오페라 외에도 포레 ‘레퀴엠’, 브람스 ‘레퀴엠’ 등의 작품에 참여했고 영국 런던의 위그모어홀에서 헬무트 도이치의 반주로 리사이틀을 가졌다. 황수미와 헬무트 도이치는 오는 11월에 오스트리아 호헤넴스에서 데뷔 음반을 녹음할 예정으로 최근에도 활동하는 중 틈틈이 만나 음반에 대해 논의하고 연습하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이진상 피아노 독주회 1월 10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2009년 스위스 취리히 게자 안다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 우승과 동시에 대회 최초로 슈만 상, 모차르트 상 그리고 청중상의 모든 특별상을 휩쓸며 이목을 집중시킨 피아니스트 이진상의 이번 독주회는 라벨,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의 곡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진상은 어려서부터 국내외 유수의 무대에서 연주를 선보이며 두각을 드러냈고, 완벽한 소리에 대한 갈증으로 피아노 악기 자체에 심취하게 된 그는 피아노 테크닉 및 제작 과정을 직접 배워 ‘공장에 간 피아니스트’로 알려지기도 했다. 영화 ‘피아노마니아’에서 조명된 명 테크니션 슈테판 크뉴퍼를 사사하며 스타인웨이 오스트리아에서 피아노 테크닉을 공부하고, 이후 스타인웨이 함부르크 공장에서 피아노 제작과정에 직접 몸담았다. 그는 2017년부터 ‘도이체 로만틱 (독일 낭만)’ 시리즈를 시작하여 이진상이 특별한 애정을 가지는 브람스와 슈만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독주회 프로그램을 연주하고 있으며, ‘베토벤 트리오 본’과 함께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한 베토벤 트리오 전곡 연주 음반 발매를 예정하고 있다. 이날 무대에서는 라벨의 소나티네 M.40, 슈베르트의 3개의 피아노 소품집 D.946, 멘델스존의 엄격변주곡 Op.54,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 Op.13을 연주한다. 김두민 & 김태형 듀오 리사이틀 ‘로베르트 & 요하네스’ 1월 17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지난해 ‘베토벤의 시간 ’17’20 시리즈’의 일환으로 2주간에 걸쳐 베토벤 첼로 전곡 무대를 선사한 첼리스트 김두민과 피아니스트 김태형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다. 치열한 분석과 연습으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깊은 집중과 감동을 이끌어 낸 두 연주자의 호흡이 이번 무대에서는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해볼 만하다. 지난번 무대에서 숭고함과 울림이 담긴 거장의 숨결을 선보였다면, 이번 무대는 슈만과 브람스에 초점을 두어 더욱더 깊은 낭만의 세계로 이끌 예정이다. 1부에서는 슈만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민요풍 소품, Op.102와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2부에서는 브람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Op.99를 연주한다. 세 곡 모두 추운 겨울밤을 따스한 기운으로 채워줄 아름다운 선율을 담은 작품이다. 김두민의 깊은 낭만성과 김태형 특유의 맑고 서정적인 음색이 만나 어떤 시너지를 일으킬지 기대를 모은다. …
1월에 만나는 화제의 신보
RECORD OF THE MONTH 테오도르 쿠렌치스/무지카 에테르나의 말러 교향곡 6번 테오도르 쿠렌치스(지휘)/무지카 에테르나 Sony Classical S80417C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그가 이끄는 단체 무지카 에테르나는 2004년 창단 이후 모차르트·라모·스트라빈스키·차이콥스키 등 다양한 작품들의 파격적인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극단적인 악상과 직관적인 해석으로 급격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연극배우 출신인 쿠렌치스는 말러 교향곡 6번의 부제 ‘비극적’을 감정적 비극이 아닌 고대 그리스 희곡의 ‘비극’으로 해석한다. 그는 말러의 음악에 내포된 드라마성을 극대화한다. ‘행진곡 테마’와 ‘알마의 테마’ ‘요람 동기’ 등 작품 속 재료들의 특성을 명확히 드러내면서, 민감하고 세밀하게 악상을 부각시킨다. 박영민/부천필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박영민(지휘)/서선영(소프라노)/이아경(알토)/부천필하모닉/부천시립합창단/수원시립합창단/고양시립합창단 Sony Classical S80419C 진취적인 음악적 도전이 돋보이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이 담긴 음반이다. 이 작품은 말러 작품 중에서도 가장 영감이 충만한 작품으로 부천필은 안정된 사운드와 다채로움으로 말러만의 드라마틱한 아름다움과 강렬한 선율을 잘 담아내고 있다. 특히 삶과 고통의 의미를 묻는 죽음과 희망의 메시지가 합창과 함께 펼쳐지고 소프라노 서선영과 알토 이아경의 우아하고 서정적인 음색으로 채색되는 과정이 무척 아름답다. 찬란한 환희로 노래한 부활의 희망이 말러의 철학을 느끼게 하는 음반이다. 마크 베빙턴의 그리그 & 딜리어스 피아노 협주곡 마크 베빙턴(피아노)/얀 라탐 콰니히(지휘)/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Somm SOMMCD269 말콤 아놀드·프랭크 브리지와 같은 영국 작곡가들의 피아노 작품 녹음으로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등에 선정되며 주목받아온 영국의 피아니스트 마크 베빙턴이 이번에는 그리그와 딜리어스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려준다. 그리그와 딜리어스는 평생 각별한 우정을 함께 했던 사이로 프로그램 구성에 의미를 더하고, 특히 미완성 스케치로 남은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피아노 협주와 솔로 버전으로 각각 담겨있어 흥미롭다. 얀 라탐 쾨니히가 지휘하는 로열 필하모닉의 완숙한 서포팅 위로 베빙턴의 열정적인 연주가 돋보인다….
첼리스트 최하영 펜데레츠키 콩쿠르 우승 외
ISSUE & NEWS 첼리스트 최하영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첼로 콩쿠르 우승 첼리스트 최하영이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린 제3회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상금은 8만즈워티(한화 약 2천400만 원)이며, 2019/2020 시즌에 폴란드 주요 오케스트라 6곳과의 협연 기회도 제공받는다. 최하영은 우승과 함께 펜데레츠키 연주 특별상도 받았다. 한국예술영재교육원과 퍼셀 음악학교를 거쳐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를 졸업한 최하영은 브람스 콩쿠르 등에서 우승한 바 있다. 펜데레츠키 첼로 콩쿠르는 폴란드 출신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지휘자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이름을 딴 대회로, 5년마다 열린다. 2013년 열린 제2회 콩쿠르에서는 첼리스트 홍은선(2위)과 문웅휘(3위)가 각각 수상했다. 피아니스트 이혁 하마마츠 피아노 콩쿠르 3위 피아니스트 이혁이 제10회 하마마츠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3위를 차지했다. 콩쿠르 심사위원장은 피아니스트 오가와 노리코가 맡았으며, 엘리소 비르살라제·문익주·폴 휴즈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연극 ‘주름이 많은 소녀’
REVIEW ‘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2018년 12월 6~30일 정동극장 공옥진의 춤을 다룬 공연 두 편이 연속해서 올라갔다. 지난 10월 남산예술센터의 ‘이야기의 방식, 춤의 방식-공옥진의 병신춤 편’(이하 ‘이야기의 방식’)과 12월 정동극장의 ‘주름이 많은 소녀’가 그것이다. 극단 그린피그의 ‘이야기의 방식’(연출 윤한솔)에는 공옥진의 수제자로 설정된 여배우 일곱 명이 출연해서 공옥진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인 병신춤을 재연했다. 현대무용 프로젝트 그룹 류장현과 친구들의 ‘주름이 많은 소녀’(연출 류장현, 음악감독 이자람)에는 남자 무용수 다섯 명이 출연해서 공옥진의 병신춤과 동물춤을 새롭게 재해석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연극과 무용으로,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나는 공옥진 춤의 공연들이다. 새삼 공옥진 춤의 현대적인 가치를 발견하는 기회였다. 공옥진 춤은 1980~1990년대에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었다. 텔레비전 방송에서, 대학로 공연장에서, 혹은 대학가 집회현장에서 어김없이 사람들을 모여들게 했고 다 함께 웃고 울게 했다. 온몸을 비틀고 어긋난 관절을 표현하는 병신춤, 천연덕스럽게 원숭이 흉내를 내며 관객들의 웃음을 뽑아내던 동물춤은 해학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었다. 공옥진 춤은 병들고 늙은 몸을 표현한다. 예술은 ‘미와 추(美醜)’를 다루는 세계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가 예술에서 주로 보아온 것은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공옥진 춤은 고통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 병들고 늙고 고통스러움 앞에 자유롭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러면서 병듦과 죽음에 주눅 들지 않고 웃음으로 툭툭 털고 일어서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주름은 냉소적이면 안 생긴다. 웃거나 울어야 생기는 것이 주름이다.” 류장현이 덧붙이는 공옥진 춤의 새로운 해석에 크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름이 많은 소녀’는 빈 무대에서 시작된다. 공옥진이 무대에 설 때 주로 입었던 하얀 무명 치마저고리처럼 하얀 무대이다. 공연은 소리를 사랑한 장노인과 유노인의 오프닝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천당에서도 판을 벌이고 소리를 하고 싶어 그곳에도 판이 있는지 궁금해서 서로에게 약속을 한다. 둘 중에 먼저 죽는 사람이 천당에 갔다가 보고 와서 꿈속에 나타나서 알려주기로. 마침내 장노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유노인의 꿈속에 찾아와 말한다. 그곳에도 판이 있다고. 그런데 내일 판에 나오기로 한 손님이 바로 자네라고. 이어서 거리의 사람들, 아이들 소리, 바람소리, 겨울 칼바람 소리가 들리고, 흰 무명옷 입은 소리꾼 하나가 걸어 나온다. 소리꾼 이나래다. 추운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인사말을 한다. 유노인의 저승길을 열며 방금 불렀던 노래가 공옥진이 잘 불렀다는 ‘심청가’의 한 대목인 ‘범피중류’라는 것도 알려준다. 심청이가 인당수 바다 한복판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설명이다. 다섯 명의 무용수들은 심청이를 바다로 실어 나르는 배가 되었다가, 오방색의 쫄쫄이 원피스를 입고 개구리와 메뚜기와 늑대와 닭의 몸짓을 흉내 내기도 한다. 알 수 없는 외계생명체와 같은 모습을 흉내 내기도 한다. 공옥진이 잘 추었다는 동물춤을 새롭게 표현한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춤으로 표현한 공옥진의 익살과 해학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런가 하면 병신춤과 동물춤의 모티브는 무용수들의 일상의 이야기로도 중요하게 변환되어 이야기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고통스럽고 외롭고 무거운 짐을 진 채 구부러진 몸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사진 정동극장
드뷔시 ‘달빛’
PROLOGUE 프랑스를 대표하는 서정시인 중 하나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 1844~1896)은 보들레르의 감성을 계승해 음악적인 상징주의 시를 개척했으며 아르튀르 랭보를 문단으로 이끌었다. 육신은 가난과 광기와 병으로 고통받은 ‘저주받은 시인’이었을지라도 그는 시인들이 뽑은 ‘시인의 왕’이었다. 베를렌의 ‘하얀 달’은 드뷔시 ‘달빛’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드뷔시가 몸담았던 ‘화요회’의 젊은 예술가들은 기존의 미학에서 벗어나려고 몸짓하고 있었다.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집에서 화요일마다 모였던 그 예술가들 중 화가로는 고갱·모네·마네 같은 이들이 있었고, 문인으로는 베를렌·발레리·프루스트, 음악가로는 드뷔시가 있었다. 드뷔시는 바로 이 상징주의와 인상주의를 음악으로 가져왔다. 그의 음악은 기존의 것과 다른 맛을 내고 있으며, 귀로 듣는 회화라고도 불린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에 주목했던 것처럼 드뷔시도 외부 세계에서 받은 ‘어떤 순간’의 느낌을 오선지에 옮겨놓았기 때문에 기존의 표제음악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달빛’이 포함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은 이탈리아 북부의 베르가모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온 드뷔시가 1890년에 작곡을 시작한 음악이다. 바그너적인 음악과 결별하고 ‘화요회’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예술가의 길을 걷고자 결심했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1곡 ‘전주곡’, 2곡 ‘미뉴에트’, 3곡 ‘달빛’, 4곡 ‘파스피에’로 구성되었는데, 특히 ‘달빛’에서는 미끄러지는 듯한 글리산도 주법과 달빛의 확산을 묘사하는 것 같은 분산화음들이 몽롱하면서도 달콤하다. 글 권하영 기자
국립오페라단 ‘라보엠’
REVIEW ‘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2018년 12월 6~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국립오페라단은 2018년 시즌의 마지막 작품으로 작년에 이어 푸치니의 ‘라보엠’을 선택했다. 2년 연속해서 시즌 연말에 ‘라보엠’을 무대에 올리면서 국립오페라단은 연출가 마르코 간디니를 리더로 하는 연출팀을 그대로 기용했다. 말하자면 2017년 라보엠 프로덕션의 앙코르 버전이었달까. 2018년 국립오페라단이 전작 ‘코지 판 투테’와 ‘헨젤과 그레텔’ 등에서 선보였던 재기발랄한 무대와 의상들은 사라지고, 고전적인 해석에 충실한 ‘라보엠’이 올해 무대에 등장했다. 하지만 ‘2017년 라보엠의 앙코르 버전’이라는 표현이 올해 ‘라보엠’에 딱 들어맞는 말은 아니다. 우선, 연출가 마르코 간디니는 이미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2012·2013년에도 ‘라보엠’을 올렸었고, 테너 정호윤은 2013년에도 로돌포 역을 노래했었다. 올해 공연에서 정호윤은 모든 테너들이 꿈꾼다는 로돌포 역을 멋지게 노래했다. 이런 점에서 올해의 ‘라보엠’은 혹자에게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던 프로덕션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2018년 ‘라보엠’에 특별한 것이 있다면, 바로 새로 구성된 음악팀이었다. 이제는 세계 무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지휘자 성시연이 코리안심포니를 이끌어서 주목을 받았고, 필자가 관람한 12월 7일 공연에서 미미 역을 노래한 이리나 룽구(Irina Lungu) 또한 관심을 모았다. 특히 룽구는 201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의 두 번째 작업에서 ‘라보엠’의 무제타 역을 노래했었고, 같은 해 런던 로열 오페라에서도 같은 역을 노래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녀가 한국의 성악가들과 함께 노래하는 미미는 시작부터 관객들의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적 조합이 처음에는 순탄해 보이지 않았다. 1막에서 오케스트라와 노래는 가끔씩 어긋나는 부분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가장 크게 기대했을 부분은 1막 마지막 부분에서 로돌포의 아리아-미미의 아리아-사랑의 이중창으로 이어지는 명곡 릴레이 부분이었을 것이다. 정호윤이 노래한 로돌포의 아리아가 큰 갈채를 끌어낸 반면, 룽구의 미미는 관객들이 기대한 그녀의 노래를 100% 보여주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공연이 진행되면서 룽구의 미미는 점차 흡입력을 발휘해서, 미미가 죽는 4막에서 멋진 노래를 들려주었다. 무제타 역의 강혜명과 마르첼로 역의 이동환의 연기와 노래도 결코 이에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 공연이 거의 전석 매진이었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상연되는 오페라가 ‘라보엠’이라지만, 우리의 오페라가 나흘 공연의 객석을 이렇게 꽉 채워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오페라 팬으로서도 무척 신나는 일이다.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연인, 이들 사이의 오해와 다툼, 오래된 연인들의 재회와 이별, 그리고 연인의 예고된 죽음. 이 모든 드라마적 클리셰들은 어찌 보면 새로운 무대, 새로운 연출을 위한 공간을 많이 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극적요소들을 알면서도 다시 연말에 ‘라보엠’을 찾게 되는 것은, 푸치니의 노래들이 오늘은 어떻게 노래될까 하는 기대감이 아닐는지. 또한 ‘젊은 날의 초상’이 주는 빛바랜 기억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우리 마음속에서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기 위함은 아닐까. 마음 같아서는 국립오페라단이 매년 연말 ‘라보엠’을 해서 이것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매해 연말 연주되듯 우리 오페라 문화의 ‘연말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정이은(홍콩대학교 음악학 박사) 사진 국립오페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