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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독재의 예술사, 서거 200주기 맞은 나폴레옹과 예술

SPECIAL NapoleonArt of Revolution & Empire PART1 | 나폴레옹과 음악    PART2 | 나폴레옹과 발레     PART3 | 나폴레옹과 미술     PART4 | 프랑스 현지의 나폴레옹 관련 예술 행사 혁명과 독재의 예술사 서거 200주기 맞은 나폴레옹과 예술 세상은 산 나폴레옹을 저버렸으나, 죽은 나폴레옹은 세상을 얻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 1821)가 사망한 지 정확히 200년이나 지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의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는 점에서다. 그의 이름은 예술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했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는 나폴레옹을 향한 다각적 접근이 이뤄졌다. 평화에 싫증 난 평화론자, 비판을 허용하는 독재자,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미래지향적 야심가 등 나폴레옹의 상충하는 성향 때문이다.그러나 젊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국민 앞에 처음 등장했을 땐 열렬한 기대와 지지를 받았다. 베토벤이 그러했듯, 사람들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대혁명의 여세를 몰아 세상에 자유를 가져올 영웅이라 믿었다. 혁명으로 국내 정세가 불안할 때 이탈리아 원정을 승리로 이끌어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북돋는 한편, 나폴레옹의 불굴의 투지와 진취적 기상은 당시 정쟁과 부패에 찌든 총재정부와 좋은 대조를 이룬 것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그런 대중의 희망을 발판 삼아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고 권좌에 올랐다. 실망한 베토벤은 교향곡 3번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했던 계획을 철회해버렸다.서양사학자 이용재는 나폴레옹이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은 것은 그가 세운 공로가 남들보다 우월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구세주로 부각할 줄 아는 능란한 정치 수완을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검열제도를 확대해 비판 여론을 단속하는가 하면 관변 언론을 효과적으로 동원해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통치자의 이미지를 심어나갔다는 것이다.  예술도 여기에 활용됐다. 회화로 자신의 위업을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각인시켰고, 음악으로 과거의 영광을 찬양하게 했다. 이러한 가운데 음악당, 발레단, 미술관 등의 조직을 재정비하는 개혁가로서의 실천도 해나갔다. 이에 따라 음악, 발레, 회화 등의 예술은 변화해갔다.예술에 남은 나폴레옹의 흔적을 따라, 파리의 예술 공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특집 지면을 준비했다. 음악의 중심지였던 궁정 음악당, 나폴레옹이 단행한 파리 오페라 발레 조직 개혁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르니에 극장, 그리고 그가 기틀을 마련한 루브르 박물관, 올해 나폴레옹 서거 200주기를 맞아 다양한 전시와 공연을 개최하고 있는 앵발리드까지 들러보자. 각 공간에 흐르는 당대 예술은 나폴레옹의 성향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글 박찬미 기자 PART1Napoleon’s art music 나폴레옹과 음악황제가 사랑한 음악황제를 사랑한 음악가 나폴레옹의 음악 취향은 매우 분명했다. 그는 성악 작품을 선호했으며, 무엇보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좋아했다. 프랑스인으로서는 조금 특별한 그의 음악적 취향은 그가 코르시카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항상 조용하고 슬픈 음악을 즐겨 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음악을 즐겨 듣는 것은 주로 긴장을 풀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가 음악회에 도착할 때는 정치 현안들로 인해 근심이 가득한 잔뜩 경직된 얼굴이었지만, 음악회가 끝나고 나면 주위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눌 정도로 기분이 좋아져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당대 수많은 음악가가 나폴레옹을 추종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과 충성심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쏟아냈다. 나폴레옹의 승전, 결혼, 즉위, 득남, 재혼 등 나폴레옹의 개인적 또는 공적인 경사에 맞추어 작품을 헌정했다. 거기에 나폴레옹이 작곡가에게 위촉한 작품까지 더해져, 나폴레옹이 주최하는 축하 행사나 축제에는 음악이 넘쳤다. 황제의 이탈리아 음악 취향나폴레옹이 가장 총애한 작곡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조반니 파이시엘로(1740~1816)➊였다. 나폴레옹이 파이시엘로를 처음 만난 것은 1797년 1차 이탈리아 원정 때다. 그는 이탈리아의 명망 있는 두 작곡가였던 파이시엘로와 루이지 케루비니(1760~1842)에게 모젤 주둔군 총사령관이었던 루이 나자르 오슈 장군의 죽음을 애도하는 음악을 작곡하는 경합을 벌이게 했는데, 거기서 파이시엘로가 우승을 차지했다. 나폴레옹이 이 작품의 악보를 직접 파리 음악원에 기증한 것을 보면, 그의 작품이 대단히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1802년 7월 20일 나폴레옹은 그를 불러들여 새로 개관한 자신의 음악당(나폴레옹의 집권기에 따라 통령채플, 황실채플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_편집자 주)을 맡기는 등 융숭하게 대접했다. 파이시엘로는 그 보답으로 수많은 미사와 모테트, 대관식 음악을 헌정한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따듯한 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파리에 2년밖에 머무르지 않고 1804년 나폴리로 돌아가 1806년 나폴리 왕이 된 나폴레옹의 맏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위한 실내악과 교회음악 책임자가 되었다. 그의 나폴리 행 배경에 관한 여러 추측이 있는데, 그중 1803년 나폴레옹에게 헌정한 오페라 ‘프로세르피나➋’의 흥행 실패와 그 배후에 프랑스 음악가들의 음모가 있다고 생각한 까닭이 설득력을 얻는다. 파이시엘로는 프랑스를 떠났지만 나폴레옹은 그가 여전히 파리 음악원의 교수 자격을 유지하게 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1802년 나폴레옹이 제정한 훈장으로, 전장에서 공적을 세운 군인들에게 수여 한다_편집자 주)도 수여했다. 비록 파이시엘로와의 경합에서는 졌지만, 케루비니 역시 나폴레옹에게 여러 작품을 공적으로 위촉받은 작곡가다. 그의 오페라 ‘피말리온느’(1809/피그말리온)를 포함해 궁정 음악회에서 그의 작품들이 자주 무대에 올랐다. 그가 나폴레옹을 증오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나폴레옹의 왕정복고 직후에 있었던 일이고, 그 소문 자체도 의심할 여지가 있다.  파이시엘로가 나폴리로 떠난 후 여러 음악가가 그가 맡았던 일들을 대신했다. 음악당의 후임자로는 장 프랑수아 르 쥐외르(1760~1837)가 내정되었다. 나폴레옹이 그를 파이시엘로만큼 총애한 것 같지는 않지만, 나폴레옹이 1804년 초연한 르쥐외르의 오페라에 감명받아 그에게 6,000프랑을 하사했으며 금으로 된 담뱃갑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나폴레옹은 파이시엘로가 맡았던 궁정극장의 음악회를 위해 드레스덴 잭슨 궁정에서 일하던 이탈리아 작곡가 페르니난도 파에르(1771~1839)를 데려왔다. 1807년 그는 공식적으로 제국의 종신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직을 맡았는데, 이는 음악적 능력보다는 그가 아부를 잘하고 나폴레옹을 잘 섬긴 덕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가수와 반주자로서 음악적 활동은 계속했지만, 파리에 온 이후 거의 작곡을 하지 않았다. 그의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인 ‘누마왕’(1808) ‘클레오파트라’(1808) ‘디도’(1810) 등은 모두 궁정극장에서만 연주되었을 뿐 일반 청중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다.  가스파레 스폰티니(1774~1851)는 나폴레옹에게 파이시엘로, 르쥐외르, 파에르 다음으로 총애를 받은 이탈리아 작곡가로, 황비 조제핀의 특별한 후원을 받기도 했다.  그의 오페라 ‘베스타 여사제’(1807)➌가 연주될 수 있었던 것도 황비가 고집한 덕분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나폴레옹도 이른바 ‘황제 스타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을 인정하고 보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나폴레옹은 스페인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스폰티니에게 ‘페르낭 코르테즈’(1809)➍를 위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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