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심포니
국립현대무용단 ‘쓰리 스트라빈스키’
HOT STAGE _2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안성수, 정영두, 김재덕과 코리안심포니. 그의 음악에서 춤을 깨운다. 2017년 안성수 예술감독 취임 이후 국립현대무용단은 음악과 함께 진화 중이다. 취임 후 첫 신작인 ‘제전악-장미의 잔상’(2017년 7월)은 창작국악과 함께 했다. 이를 위해 작곡가 라예송은 새로운 국악을 빚었다. 안무가 로렁스 야디와 니꼴라 껑띠용을 초빙하여 만든 ‘슈팅스타’(2017년 11월)에서는 거문고를 중심으로 한 월드뮤직 그룹 블랙스트링이 함께 했다. ‘스윙’(2018년 4월)에서는 스웨덴 스윙재즈밴드 젠틀맨 앤 갱스터즈와 함께 했다. 무대에는 무용가와 음악가들이 공존했고, 연주와 안무가 몸을 섞었다. 음악의 뼈대를 올곧이 드러내며, 춤의 살을 붙이는 작업으로 일관해온 안성수의 전력이 무용단의 기획력으로 녹아들어간 것이다. 지난 9월, 라벨의 ‘볼레로’를 놓고 김용걸, 김보람, 김설진이 함께 한 ‘쓰리 볼레로’를 지나 국립현대무용단은 11월에 ‘쓰리 스트라빈스키’를 선보인다. 스트라빈스키의 세 곡에 맞춰 세 안무가 함께 하는 형식으로, 안성수는 ‘봄의 제전’, 정영두는 ‘심포니 인 C’, 김재덕은 ‘아곤’를 선보인다. 음악도 정치용 예술감독과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올라 무용과 함께 실연이다. 국립현대무용단과 코리안심포니의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다. 존 애덤스의 ‘셰이커 룹스’이라는 동일한 음악을 놓고 이해준과 정수동이 각기 다른 선보였던 ‘오케코레오그래피’ 이후 2년 만이다. 안성수의 첨예, 김재덕의 경쟁, 정영두의 자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 그는 바흐나 헨델처럼 자신의 작품을 ‘춤곡’이라 명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그를 ‘춤의 작곡가’로 기억한다. 1910년 파리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출세작 ‘불새’부터 마지막 발레음악이라 할 수 있는 1957년 초연작 ‘아곤’에 이르기까지, 춤의 음악을 빚던 이 시기에 대해 본인 스스로도 “다른 그 어느 때보다 세 배나 많은 음악적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라고 한다. 그의 고향도 마린스키 발레가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이다. 춤의 지기(地氣)를 받고 태어났던 것이다. 안성수는 ‘봄의 제전’을 선보인다. 1913년 5월의 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가득 찬 관객들의 야유와 소동 속에서 태어난 곡이다. 사실 그 소동은 음악에 대한 반응이었다기보다는 발레에 대한 통념을 뒤엎은 니진스키(1890~1950)의 안짱다리 위주의 파격적인 안무가 야기한 관객들의 거부감과 혼란이었다. 그런 결과를 뻔히 내다보고서 공연을 강행한 디아길레프(1872~1929)의 흥행 전략도 녹아 있다. 스트라빈스키의 무용음악에는 복잡다단하고 강렬한 리듬이 두드러진다. 5박자, 7박자, 11박자 등 스트라빈스키 이전에는 자주 사용되지 않은 변박들이다. ‘봄의 제전’에서 해방된 리듬은 온갖 기묘하고 복잡한 형태로 감정의 가장 원초적인 영역을 사정없이 두들긴다. 여러 악기로 형성된 육중한 오케스트라는 ‘초대형 타악기’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소리와 박자를 ‘중첩’한 특징도 도드라진다. 악보에 ‘현자의 행차’라고 적혀 있는 대목의 클라이맥스에선 서로 다른 두 가지 리듬 패턴이 중첩되어, 소리들은 서로 몸을 섞으며 협화음으로, 또 서로 밀어내며 불협화음을 만든다. 안성수는 학창 시절에 ‘봄의 제전’을 처음 접했다. 음악이 준 충격이 커서 찾아보니 유명 안무가의 작품영상이 나왔는데, 그 때에도 “음악이 너무 좋아서 작품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안무작에는 ‘봄의 제전’의 음악적 특징이 잘 드러나도록 춤과의 결구를 치밀하게 끼워 맞을 예정. 즉, “음악에서 느껴지는 관념에 기대기보단 음악이 춤으로 하여금 눈에 보이게 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한다. 김재덕은 ‘아곤’을 맡았다. ‘아곤’이란 고대 그리스어로 갈등, 대결, 경기 등을 뜻한다. 이 음악은 1957년에 발란신(1904~1983)의 안무로 뉴욕 시티발레단이 초연하였다. 표제의 특징은 음악에 잘 잘 배어 있다. 그래서 하나의 ‘오케스트라’이지만, 청각의 초점을 맞춰보면 그냥 ‘여러 악기가 한 자리에서 연주한다’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악기들의 대비와 갈등이 돋보인다. 이러한 음악적 특징에 맞춰 김재덕도 ‘아곤’적인 질문으로 춤의 재료를 모았다고 한다. “살다보면 두 사람이 만나는 때가 있을 텐데, 이땐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둘은 항상 같이 가야 할까? 좁은 길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들을. 안성수와 김재덕에 비해 ‘심포니 인 C’를 맡은 정영두는 보다 자유롭다. ‘C조 교향곡’ 혹은 ‘심포니 인 C’라 불리는 이 음악은 1940년, 스트라빈스키의 지휘로 시카고에서 초연되었다. 4개의 악장으로 1악장은 드라마틱한 전개, 2악장은 서정적인 명상, 3악장의 활기, 4악장 힘찬 집약과 해결이 돋보인다. 춤의 작곡가였던 스트라빈스키가 ‘발레음악을 너무 작곡하여 이젠 음악만을 위한 곡을 남겨야지’라는 생각으로 작곡한 작품인 만큼, 음악은 춤과 거리를 두려 한다. 하지만 그 ‘거리’는 정영두에게 상상력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간극으로 다가갔다. 그는 “무용수들은 무대 위에서 음악으로 빚어낸 춤의 정경을 펼치고, 관객들은 그것을 통해 마음껏 자신만의 정경을 상상하고 즐기게 될 것”이라 한다. 이와 함께 “메시지가 없을 때에도 느낄 수 있는 즐거움”도 안무작 ‘심포니 인 C’의 특징이다. 국내에서 실연으로 접하기 힘든 ‘아곤’과 ‘심포니 인 C’을 실연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번 공연만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