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베아 치머만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실내악 & 관현악
REVIEW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 실내악 & 관현악 연주회 글 서주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시향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가 13년의 여정을 끝으로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새로운 음향의 세계로 열렸던 커다란 문이 닫힌 것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중략)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스물 아홉이라는 지나치게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한 시인 기형도는 ‘빈집’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이 시는 오늘,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를 위한 애가로 읽힌다. 라틴어로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아르스 노바’에서 유래한 이 연주회 시리즈는 2006년에 작곡가 진은숙이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로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고전과 낭만에 치중해 있던 국내 음악계에서 접하기 힘든 현대음악을 소개하는 이 시리즈는 국내 오케스트라 유일의 현대음악 시리즈였다. 낯설고 난해한 음악이라는 인식으로 청중에게 외면 받는 현대음악은 사실 우리와 시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음악이다.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음악적 사건들에 동참하는 것은 미래의 새로운 음악적 유산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다. 아르스 노바Ⅲ 실내악 콘서트 2018년 10월 19일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에서 열린 실내악 콘서트에서는 모두 다섯 작품이 연주됐는데, 이 중에서 네 작품이 초연작품이었다(초연은 세계 초연, 아시아 초연, 한국 초연 모두를 포함한다). 아르스 노바에서 연주됐던 수많은 작품 중 일부는 세대를 넘어 살아남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고전이라고 인정하는 작품들이 많은 경우에 당대에는 바로 수용되기 힘든 현대음악이었듯이. 이날 프랑코 도나토니의 ‘6명의 연주자를 위한 아르페지오’(1986), 프리드리히 골트만의 ‘12명의 연주자를 위한 굳어버린 불안’(1995), 디터 암만의 ‘반복의 층위’(2013-14) 등이 연주됐다. 작품에 붙은 독특한 제목들은 작품의 중심적 의도를 내포한다. 이 작품들은 귀로 인지하며 따라갈 수 있는 선율과 익숙한 화성 진행이 나오는 소리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감상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에게 이것은 일종의 도전이다. 세계 초연곡인 김지향의 ‘14명의 연주자를 위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2018)는 서울시향의 위촉곡이었다.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작곡가의 작품은 그가 이 사회에서 음악가로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드러낼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작곡가는 몇 년 전 봄에 일어난 죄 없는 아이들의 집단적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자신의 수치심으로 느낀다. 그는 당시에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끝도 없이 반복해” 들었고, “주머니를 뒤져봐도 가진 것이라곤 소리 밖에 없는 무능한 예술가가 자신의 무기력함에 쩔쩔매던 긴 시간”을 보낸 후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과거의 작품을 가져와 현대적 음색으로 탄생시킨 이 작품은 음악가가 가진 소리가 슬픔과 수치를 기억하게 함으로써 인간다움을 지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예술이 일깨우는 이 가치는 잊기 쉽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가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