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플루티스트 안드레아 리버크네히트 Andrea Lieberknecht

클래식 음악계를 뜨겁게 달군 젊은 음악가들의 스승을 만나다 “물 흐르듯이 연주하라.” “바라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0세기 독일 최고의 플루티스트로 일컬어지는 파울 마이젠이 그의 제자, 안드레아 리버크네히트에게 자주 이야기했던 두 문장이다. 연주자로서 소리에 대한 연구는 물론 중심 잡힌 마음가짐 또한 강조했던 그의 철학은 안드레아 리버크네히트의 음악에 크나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스승의 철학에 자신만의 경험을 덧붙이며 친구이자 어머니, 멘토로서 제자들에게 음악적 상상력을 불어넣고 있다. 리버크네히트의 교육은 음악계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부족한 자리와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제자 대부분이 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이다. 올해 초 쾰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종신 수석이 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플루티스트 조성현 또한 그녀의 제자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출신의 안드레아 리버크네히트(1965~)는 열 살의 나이에 처음 플루트와 만났다. 이후 파울 마이젠을 만나 음악가로서 중요한 성장의 시기를 거쳤으며, 대학 재학 중 뮌헨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으로 발탁되고, 3년 후에는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으로 자리를 옮기며 연주자로서 뛰어난 행보를 이어왔다. 솔리스트이자 실내악 연주자로서 여러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유수의 페스티벌에 초청받는 등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현재 뮌헨 국립음대 교수로 재직하며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젊은 음악가들의 스승이 되고 있는 그녀는 더 나은 연주를 위해,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끊임없는 고민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쾰른 음대, 하노버 음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뮌헨 국립음대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28살에 처음으로 쾰른에서 강의했을 때에는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WDR)의 활동이 더 주를 이루었다. 하노버로 옮기고 처음 3년간은 하노버와 쾰른을 왕래하며 두 가지를 병행했지만, 2002년부터는 오케스트라를 그만두고 하노버로 완전히 넘어왔다. 하노버 음대는 목관악기과가 일원화되어 있었고 시스템도 굉장히 잘 갖춰져 있었다. 열린 분위기는 물론, 학생들의 수준도 굉장히 높았다. 이후 2011년에 바순 연주자인 남편 다그 옌센(Dag Jensen)과 함께 뮌헨 음대로 자리를 옮겼다. 유럽은 학사 시스템이 일원화되어 있어서 시스템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학교마다 분위기의 차이는 있다. 뮌헨 음대는 굉장히 규모가 큰 학교이고,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하노버보다 악기당 교원 수도 많다. 도시도 매우 아름다울 뿐더러 내 음악 작업에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 세 개가 이곳에 있어 학생들에게도 좋은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함께 공부할 학생은 어떻게 선발하는가? 학생의 성격·기질·음악적 열망 및 직관력을 가장 중요시한다. 이러한 특성을 드러내기 위한 음악적 기술 또한 중요하게 보고 있다. 나이나 학력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석사 과정은 2년밖에 시간이 없기 때문에 테크닉이 너무 부족하면 곤란하다. 현재 내 학생들은 매우 어린 편이다.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는 16세 학생 2명과 학부생 5명이 있다. 어린 학생들의 경우 이들이 어떻게 발전할지, 어려운 연습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우선 악기를 다루는 기술을 익히도록 하고, 호흡법 등 신체를 다루는 방법을 중심으로 가르친다. 이미 학사를 거치며 실력을 쌓은 석·박사 학생에게는 콩쿠르나 연주를 위한 정신적인 준비가 더 중요하다. 많은 학생을 가르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음악적 상상력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를 위해 학생들의 개인적 특성을 이해하고 그들을 최대한 지원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여러 해를 거치며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내 스승들의 영향은 물론, 다른 음악가들을 통해 영감을 받기도 했다. 스스로 연구하면서 깨닫기도 했고, 학생들의 성공이나 실패를 통해서 교육방식을 수정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한국 학생에게서는 어떤 인상을 받았나? 지금까지 다섯 명의 한국 학생들을 가르쳐봤고, 다음 학기에도 한국 여학생이 또 들어올 예정이다. 한국 학생들의 공통점은 음악적 기술성이 굉장히 높고, 똑똑하고, 착하고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내가 가르친 한국 학생들 모두 오케스트라에 들어갔다. 특히 그중 세 명은 독일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는데, 매우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 학생들을 일괄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겠지만,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손가락을 사용하는 테크닉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젓가락을 사용하는 식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도 하더라. 그래서 나도 젓가락 사용을 시도해봤는데, 오히려 경련이 와서 더 나빠지기만 했다.(웃음) 얼마 전 음악적 두뇌에 대한 신경학 논문을 읽었는데, 한국인의 두뇌는 유럽인의 두뇌와는 다르게 구성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 음악과 관련된 두뇌 영역들이 한국인의 경우 서로 가깝게 있어서 더 빠르게 작동을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제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있다면. “넌 무엇을 연주하고 싶니?”라는 질문이 가장 많을 것 같다. 하지만 학생이 설명하려 하면 “음악으로 보여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잘 표현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네 마음속 귀로 듣기에 어땠니?”라고 묻는다. 스스로 상상하면서 동시에 그대로 연주가 되고 있는지 잘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로 하면 단순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힘들고 복잡한 과정이다. 연주자이자 교육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 왔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어떤 고민을 했을지 궁금하다. 연주자로서는 대중에게 어떻게 하면 내 감정과 음악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동시에 가능한 한 완벽한 연주를 들려드리려 한다. 스승으로서는 학생들의 실패를 연구한다. 교수직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어떻게 제자들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많이 배우고 관찰하고, 경험을 더 쌓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성공은 학생과 교수의 협력과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두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당신과 플루트의 첫 만남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처음 음악을 접한 건 네 살, 플루트를 시작한 것은 열 살 때부터였다. 악기를 시작할 때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안과의사이자 쳄발리스트였던 부모님의 친구 덕에 무대에서 연주했고, 이레나 그라페나우어 선생님도 알게 됐다. 굉장히 자상하고 열린 마음을 지닌 그라페나우어 선생님은 나와 자주 듀엣을 해주셨다. 13세 때부터는 어린이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고, 그 영향으로 17세 때에는 9번을 제외한 브루크너의 모든 교향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파울 마이젠 교수님을 만난 것은 16세 때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마이젠 교수님의 어시스트였던 일본의 히데아키 사카이 선생님에게도 함께 수업을 받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굉장히 감정적이고 혼란스러운 아이였고, 음악적 재능은 있었지만 기술적으로는 형편없었다. 히데아키 사카이 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테크닉 연습을 지루하지 않게 가르쳐주셨고, 그 과정에서 편안하면서도 다채로운 음색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2년 후부터는 전적으로 파울 마이젠 교수님께 배우며 8년간 함께했다. 교수님은 편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연주를 가르쳐 주셨다. 어린 시절부터 순탄한 길을 걸어온 것 같다. 마이젠 교수님과 함께 좋은 학교에서 공부했고, 곧이어 많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우수한 목관 5중주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생 때 뮌헨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었고, 몇 년 후에는 WDR에 들어갔다. 이런 큰 오케스트라의 솔로 플루티스트로 활동함과 동시에 고베와 프라하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우승도 하며, 많은 무대에서 솔리스트이자 실내악 연주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쉬웠고,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다 하노버 음대 교수직을 얻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과연 모든 것이 쉬웠던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쉬웠다면 내 학생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줘야 하니까!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고통스러웠던 순간도 많았던 것 같다. 음악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연주했던 때도, 그래서 예민했던 시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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