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울시향 2018 유럽 투어

WORLD HOT 파리에서 만난 윤이상과 서울시향, 그리고 피아니스트 김선욱     서울시향이 지난 11월 25일부터…

연극 ‘주름이 많은 소녀’

REVIEW  ‘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2018년 12월 6~30일 정동극장 공옥진의 춤을 다룬 공연 두 편이 연속해서 올라갔다. 지난 10월 남산예술센터의 ‘이야기의 방식, 춤의 방식-공옥진의 병신춤 편’(이하 ‘이야기의 방식’)과 12월 정동극장의 ‘주름이 많은 소녀’가 그것이다. 극단 그린피그의 ‘이야기의 방식’(연출 윤한솔)에는 공옥진의 수제자로 설정된 여배우 일곱 명이 출연해서 공옥진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인 병신춤을 재연했다. 현대무용 프로젝트 그룹 류장현과 친구들의 ‘주름이 많은 소녀’(연출 류장현, 음악감독 이자람)에는 남자 무용수 다섯 명이 출연해서 공옥진의 병신춤과 동물춤을 새롭게 재해석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연극과 무용으로,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나는 공옥진 춤의 공연들이다. 새삼 공옥진 춤의 현대적인 가치를 발견하는 기회였다. 공옥진 춤은 1980~1990년대에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었다. 텔레비전 방송에서, 대학로 공연장에서, 혹은 대학가 집회현장에서 어김없이 사람들을 모여들게 했고 다 함께 웃고 울게 했다. 온몸을 비틀고 어긋난 관절을 표현하는 병신춤, 천연덕스럽게 원숭이 흉내를 내며 관객들의 웃음을 뽑아내던 동물춤은 해학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었다. 공옥진 춤은 병들고 늙은 몸을 표현한다. 예술은 ‘미와 추(美醜)’를 다루는 세계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가 예술에서 주로 보아온 것은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공옥진 춤은 고통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 병들고 늙고 고통스러움 앞에 자유롭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러면서 병듦과 죽음에 주눅 들지 않고 웃음으로 툭툭 털고 일어서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주름은 냉소적이면 안 생긴다. 웃거나 울어야 생기는 것이 주름이다.” 류장현이 덧붙이는 공옥진 춤의 새로운 해석에 크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름이 많은 소녀’는 빈 무대에서 시작된다. 공옥진이 무대에 설 때 주로 입었던 하얀 무명 치마저고리처럼 하얀 무대이다. 공연은 소리를 사랑한 장노인과 유노인의 오프닝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천당에서도 판을 벌이고 소리를 하고 싶어 그곳에도 판이 있는지 궁금해서 서로에게 약속을 한다. 둘 중에 먼저 죽는 사람이 천당에 갔다가 보고 와서 꿈속에 나타나서 알려주기로. 마침내 장노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유노인의 꿈속에 찾아와 말한다. 그곳에도 판이 있다고. 그런데 내일 판에 나오기로 한 손님이 바로 자네라고. 이어서 거리의 사람들, 아이들 소리, 바람소리, 겨울 칼바람 소리가 들리고, 흰 무명옷 입은 소리꾼 하나가 걸어 나온다. 소리꾼 이나래다. 추운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인사말을 한다. 유노인의 저승길을 열며 방금 불렀던 노래가 공옥진이 잘 불렀다는 ‘심청가’의 한 대목인 ‘범피중류’라는 것도 알려준다. 심청이가 인당수 바다 한복판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설명이다. 다섯 명의 무용수들은 심청이를 바다로 실어 나르는 배가 되었다가, 오방색의 쫄쫄이 원피스를 입고 개구리와 메뚜기와 늑대와 닭의 몸짓을 흉내 내기도 한다. 알 수 없는 외계생명체와 같은 모습을 흉내 내기도 한다. 공옥진이 잘 추었다는 동물춤을 새롭게 표현한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춤으로 표현한 공옥진의 익살과 해학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런가 하면 병신춤과 동물춤의 모티브는 무용수들의 일상의 이야기로도 중요하게 변환되어 이야기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고통스럽고 외롭고 무거운 짐을 진 채 구부러진 몸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사진 정동극장

국립오페라단 ‘라보엠’

REVIEW  ‘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2018년 12월 6~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국립오페라단은 2018년 시즌의 마지막 작품으로 작년에 이어 푸치니의 ‘라보엠’을 선택했다. 2년 연속해서 시즌 연말에 ‘라보엠’을 무대에 올리면서 국립오페라단은 연출가 마르코 간디니를 리더로 하는 연출팀을 그대로 기용했다. 말하자면 2017년 라보엠 프로덕션의 앙코르 버전이었달까. 2018년 국립오페라단이 전작 ‘코지 판 투테’와 ‘헨젤과 그레텔’ 등에서 선보였던 재기발랄한 무대와 의상들은 사라지고, 고전적인 해석에 충실한 ‘라보엠’이 올해 무대에 등장했다. 하지만 ‘2017년 라보엠의 앙코르 버전’이라는 표현이 올해 ‘라보엠’에 딱 들어맞는 말은 아니다. 우선, 연출가 마르코 간디니는 이미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2012·2013년에도 ‘라보엠’을 올렸었고, 테너 정호윤은 2013년에도 로돌포 역을 노래했었다. 올해 공연에서 정호윤은 모든 테너들이 꿈꾼다는 로돌포 역을 멋지게 노래했다. 이런 점에서 올해의 ‘라보엠’은 혹자에게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던 프로덕션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2018년 ‘라보엠’에 특별한 것이 있다면, 바로 새로 구성된 음악팀이었다. 이제는 세계 무대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지휘자 성시연이 코리안심포니를 이끌어서 주목을 받았고, 필자가 관람한 12월 7일 공연에서 미미 역을 노래한 이리나 룽구(Irina Lungu) 또한 관심을 모았다. 특히 룽구는 201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의 두 번째 작업에서 ‘라보엠’의 무제타 역을 노래했었고, 같은 해 런던 로열 오페라에서도 같은 역을 노래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녀가 한국의 성악가들과 함께 노래하는 미미는 시작부터 관객들의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적 조합이 처음에는 순탄해 보이지 않았다. 1막에서 오케스트라와 노래는 가끔씩 어긋나는 부분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가장 크게 기대했을 부분은 1막 마지막 부분에서 로돌포의 아리아-미미의 아리아-사랑의 이중창으로 이어지는 명곡 릴레이 부분이었을 것이다. 정호윤이 노래한 로돌포의 아리아가 큰 갈채를 끌어낸 반면, 룽구의 미미는 관객들이 기대한 그녀의 노래를 100% 보여주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공연이 진행되면서 룽구의 미미는 점차 흡입력을 발휘해서, 미미가 죽는 4막에서 멋진 노래를 들려주었다. 무제타 역의 강혜명과 마르첼로 역의 이동환의 연기와 노래도 결코 이에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 공연이 거의 전석 매진이었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상연되는 오페라가 ‘라보엠’이라지만, 우리의 오페라가 나흘 공연의 객석을 이렇게 꽉 채워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오페라 팬으로서도 무척 신나는 일이다.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연인, 이들 사이의 오해와 다툼, 오래된 연인들의 재회와 이별, 그리고 연인의 예고된 죽음. 이 모든 드라마적 클리셰들은 어찌 보면 새로운 무대, 새로운 연출을 위한 공간을 많이 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극적요소들을 알면서도 다시 연말에 ‘라보엠’을 찾게 되는 것은, 푸치니의 노래들이 오늘은 어떻게 노래될까 하는 기대감이 아닐는지. 또한 ‘젊은 날의 초상’이 주는 빛바랜 기억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우리 마음속에서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기 위함은 아닐까. 마음 같아서는 국립오페라단이 매년 연말 ‘라보엠’을 해서 이것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매해 연말 연주되듯 우리 오페라 문화의 ‘연말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정이은(홍콩대학교 음악학 박사)  사진 국립오페라단

노경애의 ‘21°11’’ & 정세영의 ‘세 마리 곰’

REVIEW  ‘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안무의 차원에서 춤은 동사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춤을 현란한 운동성의 세계와 동일시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스펙터클한 움직임을 전시하는 춤의 근대적 욕망의 기저와 조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며, 춤이 다른 예술 장르들 틈새에서 독립적인 예술 형태로 발전하기 위해 제시한 물 흐르듯 이어지는 운동성이라는 이상향을 의문시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사가 개입되지 않는 인간 활동이 거의 없는 만큼, 광범위하고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춤의 영역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안무는 춤과 다르다. 이 두 가지를 동일시하는 시각은 춤의 자율적 영역을 확보하려는 근대적 기획에서 비롯된 편견일 뿐이다. 안무는 춤에 대한 일종의 거리감각을 내포한다. 춤을 춤이라고 여기는 관념을 다시 검토하고,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요소와 조건을 들여다보는 일을 포함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동사를 다룬다는 것 또한 춤이나 일상에서의 그 관성적 사용과의 거리가 중요하다. 가령, 움직임의 매끄러운 흐름 혹은 연속성 안에 갇힌 테크니컬한 스텝은 얼마나 ‘걷는다’라는 의미와 멀어져 있는가? 혹은 ‘걷는다’라는 개념의 추상은 어떻게 거기에 잠재된 독특성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여기에 중단과 머뭇거림의 미학이 있다. 이미 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무엇을 다시 발견하는 순간, 혹은 오래된 사용이 비활성화되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기존의 목적 추구 방식이 무위로 돌아가게 되거나 중단되고 망설임을 불러오지만, 또 다른 창조, 즉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용어로 ‘탈창조’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것이면서 기존의 것이 아닌 모순 사이에서 틈을 내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노경애의 ‘21°11’’(12월 11일, 이음센터)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걸음걸이 사이에서 그러하듯이, 그리고 정세영의 ‘세 마리 곰’(12월 6~9일, 문래예술공장 M30)이 비극적 상황을 구성하는 술어를 재현하지 않음으로써 전혀 다르지만 그렇지 않은 또 다른 길을 내듯이.   걷기의 무수한 조합  우선 노경애 안무의 ‘21°11’’에서 중단과 머뭇거림의 순간은 수시로 발생한다. 출연자들이 앉아서 대기하고 있는 무대 양옆 단상에 관객들이 섞여 앉게 되는 순간부터 어떤 낯섦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무용수들과 함께한 뇌성마비 시각예술 작가들의 존재 자체로 인해 겪게 되는 다차원적인 미세조정의 순간이랄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둘씩 나와 무대를 걷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일어난다. 일종의 시지각적 지각변동을 거쳐 이내 그 자체의 특이성으로 다가온다. 사람마다 걸음걸이는 사실상 무한히 달랐다. 이 작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걷기의 대위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걷기들을 보면서 일련의 판단 중지와 망설임의 과정이 조금씩 더해지자, 무용수와 장애인 출연자가 함께 걷는 순간에도 통상적인 차별의 기제가 작동하기보다는 그저 다름 혹은 다양성 그 자체로서 인식될 뿐이다. ‘걷는다’라는 동사에는 무궁무진한 개별의 몸짓이 잠재되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서로 다른 선율이 포개져서 또 다른 음 구성을 이루듯이 걷기의 조합이 무수히 펼쳐졌다. 그뿐만 아니라 걷기는 몸 전체에 해당하는 얘기였다. 특히 뇌성마비 출연자들의 경우, 몸 부분들은 각각의 걷기를 행하는 상태라고 할까. 안무가 머스 커닝햄이 움직임에서 기본이 되는 것을 걷는 것으로 보고 심지어 “나는 발, 다리, 손, 몸통, 머리로 걷는 것을 한다”고 했을 때, 그들은 인위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히려 무용수들에게는 애써서 도달해야 하는 어떤 비관성적 지점인 것이다. 이러한 기준의 변환은 사실 조금 앞서 공연된 ‘움직이는 표준’(11월 18·19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탐구된 바 있다. ‘21°11’’에서는 이미 중심이 많은 몸과의 차이와 그로 인한 입장의 전복을 보여주지만, 여기서는 균형을 잡는 중심점을 이동시킬 때 위태로워지는 몸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동하다’라는 동사는 어쩌면 이러한 모순적 지점에서, 가장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지점을 건드림으로써 제대로 사유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적어도 거기에는 새로운 컨트롤 지점과 또 다른 균형점의 계속된 생성이라는 의미가 잠재되어 있었음을 보게 된다.  이 두 작품은 개별적이기도 하면서 마치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 듯 보이기도 한다. 다중심의 몸이든 중심을 변화시키는 몸이든 ‘걷다’나 ‘이동하다’에 가정된 전제 조건에 대한 통념을 깨고 있음은 분명하다.   동사를 다루는 또 다른 방식 한편 이와는 좀 다르게 동사를 다루는 방식은 정세영의 ‘세 마리 곰’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말에 담긴 소리와 의미 혹은 이미지와 의미의 분열을 통해 그 사이의 지연된 망설임 같은 것을 겪게 하는 방식이다….

엘리소 비르살라제 피아노 독주회

REVIEW  ‘객석’ 필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2018년 11월 29일 금호아트홀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에 누구나 익숙하고, 또 그리 되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시간예술인 음악을 ‘영원성’ 이라는 이상 속에 가두는 일이 진정 바람직할까. 결국 음악하는 사람도 멋지게 나이들고, 시간 속에 흐르는 음악도 매 순간 그것을 창조한 사람과의 잊지 못할 기억들을 남기며 곁을 따라오게 마련이라는 느낌이다. 일 년 만에 이루어진 엘리소 비르살라제의 두 번째 내한 독주회를 감상하며, 그녀의 피아니즘은 참으로 적절하고 매력적인 모습과 속도로 음악가의 인생과 발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르살라제의 건반 위 풍모는 일체의 가식이나 트릭 없이 그녀가 가꿔 온 음악을 최상의 모습으로 드러냈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갈고 닦은 기량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무대에 풀어 놓는 자신감은 여전히 날선 모습으로 듣는 사람을 긴장시켰으며, 76세의 경험치 역시 꾸미지 않은 자연스런 결과로 나타났다. 비르살라제가 연주하는 슈만의 권위는 결코 그 젊음의 매력을 잃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그녀의 해석은 은유적 서정보다 직접적인 서사를 앞세운다. 악상이 매우 복잡하게 움직이며 결코 단순화시켜 표현하지 않음에도 언뜻 들으면 무뚝뚝하거나 강성의 터치로 다가오는 것은 그녀의 어법이 산문적이어서다. 첫 무대였던 6개의 간주곡 Op.4에서는 뚜렷한 선으로 또박또박 써내려가는 젊은 슈만의 문학적 아이디어가 언어적 구체성을 띈 채 들려왔다. 서두르지 않는 템포로 외유내강의 느낌을 준 스케르초 풍의 2번, 기복이 심한 악상과 사색이 두드러진 4번, 슈만 특유의 절뚝이는 리듬을 과도하지 않게 그린 5번 등이 호연이었다. 이어진 ‘다비드 동맹 무곡집’은 캐릭터에 대한 독득한 시각이 인상적이었다. 외향적인 플로레스탄과 온화한 오이제비우스의 기질을 다루는 비르살라제의 연출은 그다지 많은 대비를 두지 않는데, 오히려 두 개의 상성은 곡이 열기를 더해가며 새로운 스토리가 탄생하는 후반부에서 보색대비를 이루며 강렬하게 대립하는 모습이었다. 슈만의 크고 작은 음악적 단상이 모여 맛있는 요리로 변했지만, 각각의 요소들이 저마다의 신선함과 본래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조절한 요리사 비르살라제의 모습은 흉내내기 어려운 오리지널리티임에 분명했다. 전반의 슈만이 살아있는 현역 피아니스트의 역량과 날카로운 해석력에 대해서였다면, 후반부의 쇼팽 프로그램은 비르투오소의 노년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사례를 보는 듯 했다. 단단한 구성 감각과 엄격한 통제가 숨어있는 선율선의 표현, 교묘하게 어긋나 있는 듯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루바토 등은 비르살라제의 고유한 스타일이지만, 화사한 톤과 부드러운 쿠션이 느껴지는 음상은 70대에 들어선 여유로움이자 시간이 허락한 홀가분함으로 다가왔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모습에서 묘한 통일성이 느껴진 발라드 2번으로 시작한 무대는 달달한 선율미를 서슴없이 드러낸 왈츠 Op.34-2, 녹턴 Op.15-1 등을 거치며 달아올랐다. 특유의 제어 감각이 돋보인 A♭장조의 왈츠 두 곡도 오래 회자될 해석이었지만,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템페라멘트와 청중과의 교감, 연주자의 상상력과 홀의 음향감각이 극적으로 맞아떨어진 Op.27의 녹턴 두 곡이었다. 카리스마와 범접하기 힘든 존재감으로 일관하던 비르살라제가 무대에서 자주 미소짓는 모습을 보인 것 자체가 내겐 놀라움이었고, 그녀의 웃음과 함께 달콤함과 애교로 변모된 쇼팽의 세계는 인생 전체를 치열함과 자기희생으로 살아 온 음악가만이 보일 수 있는 행복감으로 다가왔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1월 ‘객석’ 기자들이 꼽은화제의 무대

REVIEW 유쾌하게 휘몰아친 춤 마르쿠스 슈텐츠/서울시향 연주회 (협연 안드레아스 오텐자머) 2018년 12월 14·15일 | 롯데콘서트홀 서울시향이 수석객원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와 함께 12월을 맞아 선보인 공연은 춤의 향연이었다. 춤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을 프로그래밍하여 한 편의 휘황한 파티를 펼쳤다. 슈텐츠가 수석객원지휘를 하는 또 다른 악단인 미국 볼티모어 심포니의 악장 조너선 카니가 이번 공연의 객원악장을 맡아 남다른 호흡을 자랑했다.  흥겨운 무대의 포문을 여는 첫 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이었다. 슈텐츠가 선보이는 특유의 속도감은 유속이 빠른 강물을 연상케 했다. 서울시향의 장기인 풍성하고 일체감 있는 현악기군의 사운드가 에너제틱하면서도 세련되게 흘렀다. 이번 공연의 협연자인 클라리네티스트 안드레아스 오텐자머는 짧은 두 작품을 나란히 선보였다. 슈타미츠 클라리넷 협주곡 7번은 트릴과 스케일 등 클라리넷의 쉼 없는 기교가 요구되는 곡인데, 오텐자머는 테크닉과 유머를 버무리며 고전적 우아함을 한껏 드러냈다. 루토스와프스키의 ‘클라리넷과 챔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댄스 전주곡’은 한국 초연으로, 오텐자머 본인도 피아노와 연주해본 경험만 있었고 오케스트라와는 처음 연주하는 기회였다고 한다. 5개 악장이 총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곡이지만 폴란드 민속춤을 기반으로 한 리듬이 인상적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춤판’은 2부에서도 계속됐다. 2부의 첫 곡은 버르토크의 ‘춤 모음곡’으로, 버르토크 특유의 쿵쿵거리는 투박한 리듬과 독특한 강세가 강렬하게 표현됐다. 슈텐츠는 거의 춤을 추듯이 머리와 몸을 흔들며 악단을 지휘했다. 마지막 곡인 라벨의 ‘볼레로’는 대중적으로는 유명하지만 연주가 까다로워, 막상 실연으로는 자주 만나기 어려운 작품이다. 스네어 드럼이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리듬을 연주하는 가운데, 관악기가 한 대씩 돌아가며 조용하게 주제 선율을 연주하며 점층적으로 쌓아올리는 것이 이 곡의 묘미다. 곡의 시작부터 중반까지 슈텐츠와 서울시향은 아주 조심스럽게 악상을 다져나갔다. 피치카토로 리듬을 잡아가던 현악기군이 중반 이후로 활을 잡고 주선율을 함께 연주하면서부터는 본격적인 관능의 소용돌이가 시작됐다. 계속해서 적극적인 사운드를 요구하는 슈텐츠의 모습은 사뭇 도발적이라고까지 느껴졌다. ‘볼레로’는 화려한 폭발을 향해 점점 더 달려갔고, 현·관·타악기가 총동원돼 포효하며 격정의 춤은 막을 내렸다.  이정은   예술을 함께 하는 여정 김대진 피아노 독주회…

루드비히 트리오 & 인발/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 유럽 투어

WORLD HOT_글 안드레스 아센시오(스페인 음악전문기자) 사진 Markus Palmer/SWRClassic, TOOLMUSIC 피아니스트 임효선이 이끄는 루드비히 트리오와 엘리아후…

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 마린스키 발레 ‘돈키호테’

REVIEW 글 장인주(무용평론가)  사진 유니버설발레단·서울콘서트매니지먼트 한동안 뜸했던 해외 유명 발레단들이 올해는 줄지어 내한했다. 스코틀랜드 발레가 26년 만에, 볼쇼이 발레가 13년 만에 연이어 내한했고(볼쇼이 오케스트라와 합동 내한은 23년만), 현대발레의 최선봉에 서 있는 NDT1이 16년 만에 방문해 반가웠다. 올 한해, 갈수록 예술계 불황이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지만, 문전성시를 이루는 발레공연만큼은 예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공연계에서 블루오션은 말일 뿐,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순수예술 중 발레는 대중의 사랑을 한껏 받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특히 11월에는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야심작을 내놓았고, 이어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까지 내한하면서 발레축제가 열린 듯했다. 국립발레단이 발표한 신작 ‘마타하리’(10월 31일~11월 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는 이탈리아 태생의 레나토 자넬라를 초대해 안무를 맡겼다. 그는 슈투트가르트 발레 상임안무가를 거쳐 빈 국립오페라 발레 예술감독을 지낸 바 있다.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마타하리의 생을 내레이션하는데 그친 밋밋한 시놉시스로 인해 극의 절정을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래도 이탈리아에서 제작해 공수한 화려한 의상과 무대·영상 디자인의 세련미가 드라마발레의 뼈대가 되어주었고, 관객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라 바야데르’(11월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를 공연했다. 1999년 처음 무대에 올린 이후 꾸준하게 다듬고 있어, 작품 선정만으로는 야심작이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러시아 스타 발레리나인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를 주인공으로 초청하면서 올해 발레계 최고의 이슈가 되었다. 지난해 블라디보스토크 지역극장 마린스키 프리모스키 스테이지 발레와 함께 내한했던 김기민이 올해는 오케스트라까지 대동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발레 본진과 함께 금의환향했다. 2011년 마린스키 발레에 입단해 4년 만에 수석무용수 자리까지 단숨에 올라간 김기민은 ‘돈키호테’(11월 15~1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익살꾼 바질 역으로 실력을 입증했다. 올해가 고전발레의 아버지 마리우스 프티파의 탄생 200주년이기도 하지만 유독 발레에 대한 환호성이 넘쳐났다. 그 중심에 있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김기민.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둘의 비결은 무엇인지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자하로바의 근육은 고무줄인가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를 부르는 ‘프리마 발레리나 압솔루타’라는 호칭 그대로였다.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는 불혹의 나이를 맞은 지금이 오히려 전성기인 듯했다. 그녀보다 선배격인 프랑스 출신 에투왈 실비 길렘 이후에 이처럼 유연하면서 강인한 발레리나의 ‘몸’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작 13년 전에도 그녀를 보면서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 풍부한 감정몰입까지 가세하면서 남들 은퇴할 나이에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고 있으니 ‘완벽’을 뛰어넘는 그 이상을 꿈꾸는 듯했다. 러시아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과의 결혼과 딸 출산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을까. 스스로도 인생 경험이 더 큰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고 고백하듯이 니키아를 춘 자하로바는 세계 최고의 정점에 도달해있었다. ‘라 바야데르’ 2막 감자티와 솔로르의 결혼식이 한창인 라자왕 중정의 정원에 니키아가 등장했다. 길게 꼬인 팔과 다리를 타고 눈물이 흐르는 듯하고, 한껏 뒤로 젖혀진 허리의 곡선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절함이 고여 있었다. 양다리를 옆으로 벌려 ‘그랑 주테 아 라 스공(양다리 옆으로 벌려 높이 뛰는 동작)’을 뛸 때는 두 다리가 180도를 넘어 어깨에 닿을 듯했다. 마치 자하로바에게 있어 유연함의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음악의 여운만큼 최대한 길게 뻗어 나갔다. 더할 나위 없이 길고 가는 8등신 미녀에 톡 튀어나온 발목 아치까지 최상의 신체조건에 안주하지 않고 지금도 진행 중인 세계 최고 발레리나의 치열한 노력은 나이 들어 뻣뻣해지는 근육까지 녹여내었던가. 아니면 우리는 그녀의 원숙한 감정이 심장을 지나 다리를 타고 발끝까지 뻗쳐오르는 걸 목격한 것일까.   점프하는 김기민은 깃털 같았다  러시아 최고의 전통을 자랑하는 마린스키 발레에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입단한 김기민. 그에게 행운이라는 단어가 쫓아다닌 것은 신인 시절 뿐이었다. 김기민이 점프하는 것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그것은 운이 아니라 실력이라는데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Load More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