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독일문화원 개원 50주년

한국-독일 문화교류의 전진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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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9월 17일 12:01 오전

FOCUS

1968년 개원해 50년 동안 한국과 독일의 예술 교류에 이바지한 주한독일문화원을 들여다보다

서울 남산 중턱의 주한독일문화원 ©Goethe-Institut Korea

서울 남산 중턱, 남산도서관 건너편에 자리한 주한독일문화원이 올해 개원 50주년을 맞았다. 독일문화원은 ‘괴테 인스티투트(Goethe-Institut)’라는 명칭으로도 익숙하며, 전 세계 98개국의 159개 지소에서 독일어 학습 및 독일과의 문화 협력에 힘쓰는 기관으로 독일 외무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1968년 1월 1일 괴테 인스티투트의 한국지부인 주한독일문화원이 설립되었는데, 초기에는 고정된 근거지가 없는 상태로 활동하며 문화행사 개최와 독일어 교육분야의 협력 지원 등을 맡았다. 1971년 2월 5일에 이르러 서울 남산의 현재 위치(용산구 후암동 339-1)에 주한독일문화원 건물이 문을 열어, 도서관과 강의실 등 주요 시설을 갖추게 됐다.

 

1978년 신축당시의 주한독일문화원. 남산의 경사면을 따라 지어진 독특한 구조가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예술교류의 창구로서의 문화원

해외 정보를 취득하기 어려웠던 과거, 문화원은 갈증을 해갈하는 소통창구 역할을 했다. 유학은 물론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각 나라 문화원을 방문해 자료를 수집하곤 했다. 독일 ‘괴테 인스티투트’를 비롯해 영국 ‘브리티시 카운슬’, 프랑스 ‘알리앙스 프랑세즈’, 중국 ‘공자학원’ 등이 전 세계에 자국의 문화와 언어를 보급하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 문화원은 단순한 일방적 정보 제공처의 역할을 넘어, 보다 적극적이고 상호적인 문화 교류 사업을 이끌고 있다. 문화원은 각 나라의 예술·영화·음식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자, 각국에 대한 전문적이고 믿을 수 있는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며, 가장 신뢰할 만한 외국어 교육 기관이다. 대사관이 외교를 위한 필수 기관이라면, 상대적으로 문화원은 선택적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대사관과 문화원 둘 다 한국에 주재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 그러나 앞서 나열된 국가와 문화기관명에서 볼 수 있듯이, 각국의 정체성과 문화권력은 문화원을 통해 발산된다. 소프트 파워, 소프트 외교다. 선진국의 문화원은 그 문화를 동경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문화적 지배력을 행사한다. 국가의 브랜드 마케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1970~1980년대 문화원은 문화예술 수입의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지금과 같은 공연전문기획사가 없던 시절, 해외 아티스트와 예술단체의 내한 등 문화교류는 대부분 문화원을 통해 성사됐다. 분단과 냉전, 유신과 군부 독재 등 정치·사회적으로 경직되어 있던 시기였기에, 국경을 넘나드는 문화교류가 민간 차원에서 일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한독일문화원은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한국에서도 독일 본토와 시차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예술가와 예술단체의 내한을 꾸준히 추진했다. 1973년 베를린 필하모니 8중주단의 내한을 이끌었으며, 1984년 내한한 카라얀은 주한독일대사와 주한독일문화원장의 영접을 받았다. 1978년 11월 주한독일문화원 건물의 신축을 기념해 이듬해인 1979년 개관행사가 열렸는데, 독일의 전설적인 무용단인 피나 바우쉬 부퍼탈 탄츠테아터가 처음으로 내한한 것이 이때였다. 한국에서 해외로의 ‘수출’은 더욱 까다로웠다. 게오르크 레히너 전 주한독일문화원장(1978~1981년 재임)은 임기를 마치고 독일로 귀국하는 길에 임권택 감독의 영화 ‘만다라’의 35mm 필름 복사본을 직접 가져가 베를린 페스티벌(Berliner Festspiele)에 전했다고 회고했다.

 


1967년 독일에서 어학강좌를 수강하는 한국인 수강생(오른쪽에서 두번째). 그해 11월 괴테 인스티투트 한국 지부 설립을 위한 인력이 한국에 파견되며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됐다

동시대 예술의 국가 간 교류를 주도하다

또한 주한독일문화원은 독일 예술가의 방한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예술활동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특히 1987년 한국의 민주화 및 시장 개방이 시작되며 주한독일문화원의 활동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검열이 폐지되어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그동안 검열 대상 목록에 올라 있던 독일어권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88년 브레히트 대본에 쿠르트 바일이 작곡한 ‘서푼짜리 오페라’가 한스 위르겐 나겔 전 주한독일문화원장(1987~1992년 재임)의 음악감독 하에 한국 출연진의 한국어 대사로 공연되었다. 또한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주한독일문화원이 주최한 ‘쿤스트디스코’는 독일의 젊은 작곡가·건축가·디자이너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기획한 프로젝트이며, 주한독일문화원은 이를 계기로 전 세계 괴테 인스티투트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문화행사에 동참하게 됐다.

19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끈 극단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도 주한독일문화원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1990년대 초 주한독일문화원은 독일 그립스(Grips) 극단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한국판으로 번안할 연출가를 물색한 끝에,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싱어송라이터 김민기를 낙점했다. 김민기는 자신이 이끄는 극단 학전과 함께 한국판 ‘지하철 1호선’을 성공적으로 선보였고, 작품은 1994년 초연 이후 2008년까지 4천 회 공연되며 김윤석·설경구·조승우·황정민 등 스타 배우들을 대거 배출했다. ‘김민기는 ‘지하철 1호선’으로 2007년 ‘괴테 메달’의 한국인 수상자로 선정됐다. 괴테 메달은 독일과의 문화교류에 이바지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독일의 문화훈장으로, 김민기와 같은 해 수상한 인물로는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있다. 괴테 메달의 역대 한국인 수상자는 서항석(1970, 독문학자·극작가)과 윤이상(1995, 작곡가), 백남준(1997, 비디오 아티스트)으로, 김민기는 4번째 한국인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지하철 1호선’은 올해 9월 ‘4001회’ 공연을 시작으로 10년 만에 다시 선보이며(9월 8일~12월 30일 학전블루소극장), 내년 6월엔 그립스 극단의 창단 50주년을 기념해 독일 베를린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

 

2014년 주한독일문화원이 선보인 ‘빙 파우스트’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Yunsik Lim

한 발짝 먼저 내딛는 교류의 발걸음

2013년부터 매년 주한독일문화원과 통영국제음악제와 함께하는 ‘아시아 작곡가 쇼케이스’는 아시아 지역의 신진 작곡가를 발굴하는 프로젝트로, 박영희와 크리스티안 요스트 등 저명한 작곡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매년 아시아 출신 작곡가 4명에게 신작을 위촉하고, 이 작품들은 통영국제음악제 공식 무대에서 세계 초연된다.

2014년 주한독일문화원은 한국 게임기획사 놀공과 손잡고 괴테의 ‘파우스트’를 재해석해 신체 및 디지털 요소와 결합시킨 게임 ‘빙 파우스트(Being Faust-Enter Mephisto)’를 선보였다. 모바일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참가자가 ‘젊은 파우스트’가 되어 메피스토와 계약을 체결하며 진행되는 이 게임 프로젝트는 현재 11개국에 소개되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주한독일문화원의 행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 발 빠르다. 전 세계가 제한 없이 빠르고 쉽게 소통하는 시대에 걸맞은 박자와 눈높이로, 주한독일문화원은 계속해서 신선한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예술교류를 선도한다.

 

INTERVIEW

주한독일문화원장·괴테 인스티투트 동아시아지역 대표

마를라 슈투켄베르크(Dr. Marla Stukenberg)

주한독일문화원 개원 50주년을 축하한다. 주한독일문화원이 한국과의 교류에 있어 가장 주력하는 것은 무엇인가?

주한독일문화원은 전 세계에 걸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새롭고 신선한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어와 독일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해 대전·대구·부산·광주에 위치한 기관에서 독일어와 독일에 관한 지식을 전하고, 한국의 예술가와 교육 전문가와 여러 기관들과의 우호적인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주한독일문화원의 원장이자 동아시아지역 독일문화원의 대표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지역과 유럽 지역의 국가들 간에는 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문화 교류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현대 기술은 세상을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다른 지역과 문화에 대한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오늘날 우리는 24시간 만에 세계의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까지 여행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다른 문화의 더욱 깊은 차원을 탐구하고 문화 교류를 위한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도전에 대해 말하고 싶다. 문화 교류는 사회적 이해와 자기반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문화계 종사자, 과학자, 학자, 기자 등은 사회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이자 그 변화를 계측하는 지진계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우리는 적절한 플랫폼과 창조적인 이벤트 형식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이 독일 문화 교류에 있어서 독특한 점이 있는가?

한국과 독일은 다양한 방면에서 끈끈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데,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한국과 독일은 강력한 유대감을 갖고 있다. 국제적인 활동을 꿈꾸는 한국의 많은 젊은 음악가들이 독일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케스트라와 오페라하우스와 합창단 등에 소속되어 활동한다.

한국은 예전 독일처럼 분단을 겪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양국 간의 문화교류에 영향을 미치는 점이 있나? 이와 관련하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

분단이라는 개념이 주한독일문화원의 모든 문화행사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중요하고 혁신적인 프로그램에 영감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주한독일문화원은 한국의 게임기획사 놀공과 함께 베를린 장벽과 한국 DMZ(비무장지대)의 역사를 반영하는 디지털 게임을 개발하고 있으며, 오는 10월 DMZ 인근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또한 우리는 탈북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연극을 공동제작하고 있다. 통일에 대한 가능성을 전망하며 북한과의 문화 교류를 증진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주한독일문화원이 한국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는가?

앞으로도 주한독일문화원이 연극·영화·문학·음악·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주한독일문화원은 예술적 실험과 혁신적인 협업 관계를 가능케 하는 실험실이자, 복잡하고 국제화된 세계 속에서 독일과 한국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실 문제를 놓고 활발하고 민주적인 토론을 나누는 공간으로 시민들과 함께할 것이다.

 

PREVIEW

주한독일문화원 개원 50주년 기념 음악회

10월 20일 오후 5시, 21일 오후 2시·8시 |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음악감독·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

현재 한국 음악계를 수놓는 음악가들 중 수많은 이들이 독일과 인연이 깊다. 학생 시절 독일에서 유학하는 사람들이 많음은 물론이고, 독일 전역의 오케스트라와 오페라극장, 합창단 등 예술단체에서 한국인을 발견하기란 결코 어렵지 않다. 이들은 클래식 음악사의 본류이자 유럽 음악계의 중심지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커리어를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과 독일을 연결하는 음악의 끈

주한독일문화원 개원 50주년을 맞아, 한국과 독일 음악계의 친밀한 우정이 펼쳐지는 공연이 10월에 열린다. 20일과 21일 낮 공연은 실내악, 21일 밤 공연은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가 가세하는 관현악과의 협연으로 꾸며진다.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한국 연주자로는 우선 노부스 콰르텟의 두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김영욱이 참여한다. 두 사람은 뮌헨 음대에서 포펜에게 사사한 인연이 있다. 뮌헨 음대에서 엘리소 비르살라제와 헬무트 도이치를 사사한 피아니스트 김태형의 연주도 만날 수 있다. 칼스루에 음대에서 수학했고, 독일을 본거로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앙상블과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등 유수의 악단과 활동하는 소프라노 임선혜도 무대에 오른다.

김재영

독일 음악가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클라리네티스트 니콜라 유르겐젠과 비올리스트 안드레아스 빌볼, 첼리스트 베네딕트 클뢰크너가 한국을 찾으며, 200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최고연주상과 청중상을 수상한 피아니스트 벤야민 모저가 함께한다. 또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재직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슐트하이스가 이번 공연에서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의 객원 악장을 맡기로 해 기대를 모은다. 슐트하이스는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과의 인연이 더욱 깊다.

임선혜

김영욱

 

 

 

 

 

 

음악으로 나누는 우정

공연의 레퍼토리 역시 독일과 한국의 안배가 이뤄졌다. J.S.바흐·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슈만·브람스·말러·슈토크하우젠 등 독일어권 작곡가의 작품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독일과 관계가 깊은 한국 작곡가 윤이상과 조은화의 작품을 선보인다. 생의 대부분을 독일에서 보내며 그곳에서 눈을 감은 윤이상의 ‘바이올린·첼로·피아노를 위한 3중주’는 김영욱과 베네딕트 클뢰크너, 김태형의 연주로 10월 20일 들을 수 있고, 21일 낮 공연에는 벤야민 모저가 윤이상의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을 연주할 예정이다. 21일 밤 공연에는 독일 한스아이슬러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인 작곡가 조은화의 ‘첼로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이 연주된다. 이번 공연의 위촉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베네딕트 클뢰크너의 협연으로 세계 초연된다. 한국과 독일 양국 음악계의 긴밀한 우정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 이정은 기자 사진 주한독일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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